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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매콤 칠리소스
안유경은 손을 들어 카메라를 막아섰다. 문득 민해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인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민해준의 힘이라면 그녀가 어디에 숨든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그분들은 우리 아빠가 죽인 게 아니에요.”

기자들의 날 선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안유경은 수없이 반복해 온 말을 다시 내뱉었다.

“당시 아빠는 의로운 일을 하려다 사고를 당하신 거예요. 제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가던 길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고 그때 저는 아빠와 통화 중이라 모든 상황을 들었어요. 아빠 역시 피해자였다고요.”

이전의 수많은 해명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설명하는 것조차 지쳐버린 상태였다.

“녹음 파일 하나 없이 무슨 근거로 떠드는 거야? 그냥 네 입으로 지어내는 헛소리 아니냐고! 경찰도 인정하지 않은 진술이야. 그저 아비 죄를 덮으려는 파렴치한 변명으로밖에 안 들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시엔 집 전화기로 통화했기 때문에 녹음 기능이 없었어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우리 아빠가 무고하다는 증거, 제가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그때 저를 모함했던 자들에게 기필코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정의를 바로 세울 거예요!”

그녀의 단호한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확성기를 타고 들려온 목소리가 분위기를 짓눌렀다.

“안유경 씨, 아버지가 무고하다고 계속 주장하시는데 그럼 옛 약혼자였던 민해준 씨가 당신을 버리고 송지연 씨를 선택하고 약혼까지 한 이유는 뭐라고 설명하실 건가요?”

“안유경 씨를 누구보다 잘 알고 가장 신뢰했던 사람이 반대편에 섰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본인이 말하는 ‘진실’이 아버지의 죄를 덮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강력한 증거 아니겠습니까?”

안유경은 질문을 던진 기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개한테 물려본 적 있으세요?”

“네?”

질문했던 기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안유경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정성껏 키우던 개가 어느 날 갑자기 광견병에 걸려 기자님을 물었다면 그건 기자님 잘못일까요? 기자님이 그 강아지를 학대했다는 증거가 되냐는 말입니다.”

기자는 그제야 깨달았다. 안유경이 지금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민해준을 광견병 걸린 개에 비유하고 있다는 걸...

기자가 잠시 할 말을 잃고 침묵한 그 짧은 찰나, 안유경은 마치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기척을 느낀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인파 너머,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조용히 도로변에 서 있었다.

반쯤 내려간 뒷좌석 창문 너머로 민해준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는 오늘 연한 회색의 아르마니 셔츠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에 얽힌 금색 실은 새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얼굴을 한층 더 냉담하게 만들었다.

한편 송지연은 그의 어깨에 나른하게 기댄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온몸에서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 특유의 얌전하고 순종적인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눈썰미 좋은 기자들이 민해준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카메라를 돌렸다.

순간 사람들이 그쪽으로 와르르 몰려들었다.

“민해준 씨! 방금 안유경 씨가 한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해준 씨! 과거 안유경 씨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연인이었음에도 송지연 씨를 택한 이유는 혹시 안정국 씨가 범인이라고 굳게 믿으셨기 때문인가요?”

“오늘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신 건 송지연 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인가요?”

차창이 완전히 내려가고 민해준의 시선은 카메라 렌즈를 뚫고 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안유경과 마주쳤다.

주변의 공기 흐름이 느려지는 듯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기자들은 민해준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이미 공정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안유경 씨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향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말에 갇혀 사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민해준의 이 발언은 안유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온갖 언론사가 민해준 앞으로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민 대표님 말씀은 안유경 씨가 지금까지 줄곧 거짓말을 해왔다는 뜻인가요?”

“당사자로서 그리고 안유경 씨의 옛 약혼자로서 분명 모든 것을 알고 계실 텐데요. 민해준 씨마저 그렇게 말한다면...”

군중 바깥쪽에 서 있던 안유경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송지연을 위해 나선답시고 민해준이 이렇게까지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을 줄이야.

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와 논쟁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바로 그때, 뒤편에 있던 진경찬이 통화 중인 휴대폰을 건넸다.

“사모님, 차 대표님 전화입니다. 아마 사모님이 곤란한 일을 겪으신 걸 안 모양이에요. 많이 화나셨다고 항공권 예약해서 오늘 밤에 당장 오시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안유경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기자들의 시선을 피해 한쪽으로 물러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차도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간결했다.

“나 오늘 밤에 돌아가.”

“오늘에?”

안유경이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외국에서 중요한 프로젝트 몇 개를 진행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아주 희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유경아, 이 세상엔 내 아내가 모욕당하는 걸 방관하게 만드는 프로젝트 따위는 없어.”

안유경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때 차도현 쪽에서 비서가 회의 참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몇 마디 짧게 당부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안유경은 꺼진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며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 시각, 기자들은 민해준에게 더욱 맹렬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이를 본 송지연은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더 이상 해준 오빠 곤란하게 하지 말아 주세요. 오빠는 원래 정이 많은 사람이라 지금도 차마 너무 직접적인 말은 하지 못하는 거예요. 궁금한 거 있으면 유경 언니한테 직접 여쭤봐 주세요. 당사자는 유경 언니니까요.”

송지연의 말에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안유경에게 꽂혔다.

안유경이 자리를 피하려 하자 송지연은 놀란 척 중얼거렸다.

“어머, 유경 언니 벌써 가시려나 봐요... 기자님들 서둘러서 인터뷰하셔야겠는데요.”

그 말에 기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안유경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진경찬은 거머리처럼 달려드는 기자들을 보고 즉시 안유경을 보호하려 나섰다.

이번엔 질문의 강도가 아예 차원이 달랐다. 더욱 교묘하고 날카롭고 지독하게 모욕적이었다.

안유경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안유경 씨! 방금 민 대표님 말씀대로라면 유경 씨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왔다는 증거가 되는 것 아닌가요?”

“방금 슬쩍 빠져나가려던 건 인터뷰를 피하려는 건가요? 당시 사고로 희생된 무고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죄책감 같은 건 눈곱만큼도 안 느껴지십니까?”

“살인자의 딸은 역시 냉혈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건가요? 피해자 가족들에게 어떠한 보상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사람들은 서로를 거칠게 밀치며 진경찬의 방어선을 뚫으려 했다.

그 혼란 속에서 누군가의 삼각대가 넘어졌다.

무거운 방송용 카메라가 달린 금속 지지대가 그대로 안유경의 머리 쪽으로 떨어졌다.

“위험해요!”

진경찬의 반응은 빨랐다. 그는 잽싸게 안유경을 품에 안고 몸을 돌려 자신의 등 뒤로 카메라를 받아냈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진경찬의 몸에 부딪히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충격이 상당했는지 진경찬이 고통스러운 듯 짧게 신음했다.

“경찬 씨!”

안유경의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다급하게 진경찬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 없으세요?”

그녀가 진경찬을 걱정하는 다급한 표정이 사람들 틈을 뚫고 민해준의 눈에 박혔다.

남자는 미간을 꿈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이를 본 송지연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바로 그때, 혼란스러운 기자들 틈에서 한 중년 남자가 붉어진 눈으로 안유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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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의 딸과 바람난 남친   제25화

    다른 한편 안유경도 경미란의 심리 검사 진단서를 조사 중이었지만 아직 뚜렷한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그러던 차에 차도현의 비서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안유경이 멈칫했다가 마우스를 움직여 메일을 클릭했다.내용을 확인한 순간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아주 상세한 조사 보고서와 함께 여러 장의 비교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보고서는 경미란의 중증 우울증 진단서에 문제가 있음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서류에 찍힌 도장과 의사의 서명 등 여러 군데가 해당 심리 클리닉에서 사용하는 실제 양식과 달랐다.결론은 자명했다. 위조된 진단서였고 이 또한 예상했던 바였다.거짓말이 일상인 경미란과 송지연 모녀라면 증거를 위조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터.안유경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톡톡 눌렀다.차도현의 일 처리 속도에 안유경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제 막 귀국해서 회사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사건이 터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런 결과물을 내놓았다.누가 차도현 아니랄까 봐 일 처리가 지극히 효율적이었다.안유경이 보고서를 저장한 뒤 컴퓨터를 껐다.창밖이 어느새 어두워졌고 도심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피어올랐다. 안유경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밤 9시가 다 되어갈 무렵 차도현이 퍼스트 강남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켜진 스탠드 조명 하나가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안유경이 무릎 위에 얇은 담요를 덮고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있었지만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였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안유경이 고개를 들었다.차도현이 입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어 소파 등받이에 걸쳐두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가 그녀를 보며 평소처럼 덤덤하게 물었다.“밥 먹었어?”“아직.”안유경이 책을 덮었다.“같이 먹자, 그럼.”차도현은 짧게 말하고는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가사 도우미가 금세 정갈한 4첩 반상과 국을 차려냈다.다이닝 룸에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두 사람 모두 이 갑작스러운 식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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