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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산미치광이

Author: 랑끗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9 12:16:23

“이게 맞나?”

“나도 몰라.”

철호와 태욱은 긴장한 얼굴로 내리막길을 걸어가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이들 예배가 시작된 후. 

부인인 조 선생과 영애에게 양해를 구한 두 사람은 잠시 인협의 집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니, 그 폐가에 사람이 들어와 산다꼬?”

“그러니까. 못해도 10년 정도는 방치되었던 거 같은데. 우리가 소원리에 왔을 때 이미 김 씨 할머니네 부부가 돌아가신 후였으니까.”

“그래?”

“응.”

귀향하기 전에도 영애를 따라서 소원리를 일 년에도 여러 번씩 찾아왔던 태욱이었다. 

그래서 어렴풋이나마 지나가다 마주쳤던 어린 시절의 인협을 기억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읍내에 있는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때쯤 부모님의 상황이 좀 잘 풀리게 되어서 다시 인협이랑 동생을 데리고 갔다고 들었고. 

태욱은 사실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두 형제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 와중에 인협이 나이에 답지 않게 어둡던 인상을 하고 있던 건 기억이 났다.

“그 꼬맹이는 어떻게 자랐으려나?”

태욱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인협의 집으로 향하는 길로 꺾어 들어갔다.

“저기요, 계십니까?”

목소리가 큰 철호가 담장 너머에서 외쳤다. 

그러자, 이내 집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끼이익, 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낡은 철문이 열렸다.

얼마나 관리가 안 되어있으면 저 철문에 기름칠 한번을 안 했대.

굳이 집안까지 둘러보지 않아도, 집안 상태가 눈에 훤하다고 느낀 철호였다.

“누구시죠?”

그 어둡던 꼬맹이는 더 어두워지고, 가시까지 돋아나 버렸구나. 

차가운 표정으로, 마당으로 걸어 나오는 인협을 본 태욱은 속으로 생각했다. 

인협의 두 눈은 고요하고 어두워 보였으나, 동시에 세상을 향해 불만 가득한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 인협아. 나 태욱이 아저씨야, 기억나? 문 씨 할머니네 첫째 딸인 영애 이모의 남편.”

“아-.”

태욱의 기나긴 소개에도 인협은 꼿꼿한 태도로 일관했다. 

큰일이네, 이거. 생각보다 어렵겠는데.

갑순이 인협을 한번 봐주기를 왜 그리 간절하게 부탁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마지못해 건네온 인협의 인사에 철호와 태욱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저 옆집에 갑순 할머니 알지요? 할머니가 이 집을 한 번만 보고 보수해달라고 사정 사정을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싫어요.”

태욱의 망설임을 알아차린 철호는 단번에 인협을 찾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는, 성질 급한 철호의 평생 철학이었다. 

“네?”

“알다시피 집이 10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셨으니까 원체 관리가 안 되어있었을 거고,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안 살아서 집안이 엉망일 건데-.”

철호의 눈에도 인협은 아직 완전히 여물어지기 전인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사회는 그를 성인이라 인정하고, 다 자란 어른이라고 인정해도 50대 어른의 눈에는 스물다섯인 인협도 이런 집에서 살기에는 지나치게 앳되어 보일 뿐이었다.

“됐습니다.”

“네?”

인협의 차가운 거절에 어느 정도 예측했던 태욱은 눈을 꾹 감았고, 철호는 입을 헤벌린 채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됐다고요. 저는 이런 도움 원한 적 없습니다.”

“그게-.”

흔들리는 철호의 두 눈에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집의 외관이 들어왔다. 

지붕 상태도 엉망인 데다가, 집 외관도 고치고 보수할 곳이 수십 가지였다. 

외관도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 사는 공간인 집 내부일까. 

“돌아가세요.”

“아니-.”

“이만 돌아가자.”

인협의 단호한 거절에 황당해하는 철호의 한쪽 어깨를 손으로 살짝 붙든 태욱이었다.

“하지만-.”

“돌아가자. 집주인이 싫다잖아.”

철호는 다정하지만, 표현은 조금 투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나고 자랐던 태욱보다 속정은 훨씬 더 깊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인협같이, 딸뻘인 사람이 이런 엉망인 환경 속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협의 집 보수를 해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버린 것이고. 

그러나 송곳니를 드러내고서 으르렁거리는 인협의 선을 넘는 게 좋지는 않겠다는 판단이 선 태욱이었다. 

이 엉망인 집에서 살기를 고집 피우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쯤 되면 물러서야 할 때임을 태욱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자.”

“안녕히 가세요.”

태욱의 반복된 권유에 인협은 차가운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쉿.”

억울하고도 황당한 마음에 무언가 토로하려던 철호에게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한 태욱은 그를 데리고 마을 길로 나왔다. 

인협의 집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서야, 철호의 입이 터졌다.

“아니, 유진이보다 어린 녀석이 무슨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보기 드문 청년일세. 집을 공짜로 고쳐주겠다는데도 저런 썩어빠진 집에서 살아보겠다고 하고-.”

“사정이 있겠지.”

“아이고, 내 속이야. 뉘 집 아들내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속이 썩어나시겠네.”

“부모가 애한테 관심이 있었으면 애가 이 깡촌에 들어와 저런 꼬라지의 집에서 이러고 있겠어?”

늘 밝고 다정한 편인 태욱의 비꼬는 어투에 철호가 놀란 얼굴을 했다.

“아니, 이런 말투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웬 제대로 된 고슴도치 한 마리가 동네에 들어왔네.”

껄껄. 철호의 말을 회피한 태욱은 소리를 내어 웃을 뿐이었다. 

“고슴도치는 귀엽기라도 하지. 그, 어디 자연 다큐에서 봤는데 아프리카 어딘가에 산미치광이라는 게 있던데. 딱 그것 같아.”

태욱의 말에 철호는 대놓고 투덜거릴 뿐이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 영애를 만나기 전까지 세상에 잔뜩 뿔이 나 있던 그 시절이. 

태욱은 이제는 다른 사람의 과거처럼 느껴지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싱긋 웃었다. 

저 가시들은 또 누가 뽑아주려나? 분명 저 가시보다 더 단단한 손을 가진 여자가 한 명 있을 텐데 말이야. 

태욱은 제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

아이들 예배가 끝난 후. 

늘 늦게까지 남아서 도우미를 자처해 주는 정렬과 함께 뒷정리를 마친 에스더는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아, 황 선생님!”

“사모님!”

소원 초등학교의 최고 모범생인 예담의 엄마이자, 가끔 심심할 때마다 학교로 도둑 수업을 들으러 오는 어린 예솜의 엄마인 지혜였다. 

식당에서 올라온 지혜의 양손에는 남은 반찬이 담겨있는 반찬통이 담긴 봉지가 두 개 들려있었다.

일요일마다 남은 반찬을 지혜는 늘 마을에 혼자 사는 사람 위주로 나눠주고는 했다. 

그중에 한 명은 에스더였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반찬이 좀 많이 남았나 봐요?”

“그러니까요. 이렇게 대량으로 할 때마다 양 조절이 잘 안되네요. 모자란 것보다 많은 게 낫다 싶어서 양을 자꾸만 늘리다가 맨날 이래요.”

에스더의 질문에 지혜가 민망해하며 웃음을 흘렸다. 

“감사해요.”

“아 참, 선생님. 갑순 할머니 댁 옆집에 손주분이 들어오셨다고-.”

지혜의 말에 에스더는 방금 받아 든 두 개의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혹시 가시는 길에 그쪽에도 하나 갖다드리는 걸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분은 이걸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지도 몰라요, 사모님. 

에스더는 진실을 알리고 싶었으나, 순수한 지혜의 눈망울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 인협이네 들리게?”

그때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교회 화장실에 들리기 위해 잠시 안으로 들어온 갑순의 음성이 들려왔다.

갑순과 복란은 종종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교회에 남아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돌아가고는 했다. 

“네, 할머니.”

“그럼 혹시 인협이한테 내 소쿠리도 좀 받아서 우리 집 앞에 놔줄 수 있을까?”

“아-.”

에스더는 어제의 만남의 끝을 떠올리고는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망했다. 

속마음과는 다르게 에스더는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할머니나 사모님이 그 인간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겠지.

어쭙잖은 정의감일지 배려심일지 모를 마음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아으아아악-.”

교회에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에스더가 절규했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속마음 담긴 소리를 내뱉고는 에스더는 주변을 빠르게 두리번댔다. 

다행이다. 아무도 못 들은 것 같아.

“어? 철호 아저씨. 태욱 아저씨-.”

절망 속에 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맞은편에서 걸어 올라오는 

태욱과 철호가 에스더의 눈에 띄었다. 

“퇴짜 맞았어요.”

“황 선생님, 저 친구 보통내기가 아니네요. 이야기 나눠본 적 있으세요?”

태욱과 철호가 허허 웃으며 인협과의 첫 만남에 대한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그럼요. 쉽지 않으셨죠?”

“아잇, 선생님. 서운해요. 아셨으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사실 그럴까 했었는데, 그러면 두 분이 안 가실 거 같아서요.”

에스더의 대꾸에 철호는 깊은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러네요.”

“어제 봤는데, 집 상태가 워낙 엉망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도 적잖이 위태위태해 보였고요. 

에스더는 끝말은 생략한 채로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눈치가 빠른 태욱과 철호는 그녀가 하지 못한 말의 의미를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사모님이 인협이 반찬 갖다주래요? 줘요, 내가 대신 다녀올게요.”

에스더 손에 들린 두 봉지를 발견한 태욱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마 막내딸보다 어린 에스더가 인협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릴까 싶어서 배려의 마음으로 제안을 한 듯 싶었다. 

“괜찮아요. 오늘의 분량은 충분히 다 하신 듯해요, 아저씨.”

에스더의 당찬 말에 철호와 태욱은 소리를 내어서 껄껄껄 웃었다. 

“그래요, 그럼.”

“우리는 와이프 얼굴 보며 다친 마음 힐링을 좀 해야 하겠어요.”

태욱과 철호는 에스더의 선택을 존중하고는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괜히 내가 간다고 했나? 

에스더는 결의를 다지고서 길을 걸어 내려가며 생각했다. 

“아냐, 무서워하면 지는 거야.”

무서워할 이유 따위는 없는 거야. 

원래 요란하게 짖어대는 사람은 분명 약함이나 두려움을 감추려고 그러는 법이니까. 

에스더는 반찬통이 담긴 비닐봉지를 꼭 붙들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에스더는 오늘은 또 어떤 막말을 마주해야 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서 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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