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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람이긴 하구나

Author: 랑끗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3 00:15:11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어두운 시골길을 포터는 열심히 내달렸다. 

읍내로 나가던 길의 차 안 분위기와 돌아오는 길의 차 안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차 안은 여전히 고요했으나, 에스더와 인협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직접 나눈 대화는 거의 없었으나,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있었다.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 서로가 아닌 정렬을 향해 보내던 따스한 모습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이 사람도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을 어느 정도 심어준 듯싶었다.

정렬 씨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 사람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던데. 

묵묵히 창밖만 내다보던 에스더는 치킨집에서 보았던 인협의 여러 모습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녀 앞에서나 다른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성격 파탄자처럼 굴던 그가 유일하게 정상인처럼 보이던 시간이었다.

저 사람도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만큼. 

인협을 속으로 마음껏 비웃고 미워하던 시간만큼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와 동시에 인협이 소원리로 오게 된 이유를 가볍게 치부했던 것도 떠올랐다. 

어쩌면 저 사람에게도 타당하고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몰라, 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포터는 소원리 입구로 진입했다. 

차 한 대만 겨우 지나다닐 만한 길을 어둠 속에서도 정렬은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그만큼 이 동네에 익숙한 그였다. 

“어어-.”

그때 포터가 소원 초등학교 교문 앞을 지나쳐 내리막으로 향한 탓에 에스더가 놀란 소리를 냈다. 

“아, 형 먼저 내려주고 선생님 내려드릴게요.”

 

정렬이는 다 생각이 있었구나. 

인협은 어둠 속에서 고요히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늦은 시간에 핑계를 대고 관사 앞까지 걸어가서 데려다주기 딱 좋을 터였다. 

“응, 나 먼저 내려줘.”

물론 에스더에게 정렬이 아깝다고 생각한 인협이었지만, 저 정도로 좋아 죽으려는 정렬의 마음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협의 말에 정렬은 재빠르게 인협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 앞에 차를 세웠다. 

“정렬 씨, 번거롭잖아요.”

“전 괜찮아요.”

정렬과 선의의 투닥거림을 하는 사이, 자신에게 눈짓하는 인협과 눈을 마주친 에스더였다.

“뭐요?”

“저 좀 내립시다. 비켜요.”

“아-.”

그제야 자기가 나와줘야 인협이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스더는 황급히 문을 열고 길에 내렸다. 

인협이 뿌듯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텅, 하고 조수석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황 선생님-.”

다급한 손짓으로 조수석 창문을 열고서 제게 인사를 건네는 에스더를 정렬이 불렀다. 

“여기서 걸어가도 얼마 안 걸려요! 차 돌리는 게 더 어렵겠어요.”

“후진하면 되죠.”

“아뇨, 정렬 씨는 그냥 쭉 가세요. 애들도 기다리겠어요.”

에스더의 정중한 거절에 정렬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해졌다. 

만만치 않네, 이 여자.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가. 

인협은 팔짱을 낀 채로 둘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오늘 읍내까지 태워주시고, 즐거운 시간도 선물해 주시고. 오늘 할 일은 넘치도록 해주셨어요. 고마워요.”

에스더가 싱긋 웃자, 정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녀만 바라보았다. 

“네.”

저 답답한 녀석. 

순순히 수긍하고서 차를 출발할 채비를 하는 정렬을 지켜보며 인협은 안타까워했다. 

정렬이 저 녀석은 여태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 저 모양이겠지. 

아, 그럼 나도 그렇게 나은 입장은 아니네. 나도 연애를 못 해봤으니까.

이내 정렬에게 훈수를 둘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인협은 입을 꾹 다물고서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나머지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잘 들어가. 오늘 고마웠어.”

“오늘 치킨 사줘서 고마워, 형!”

정렬은 아쉬움을 빠르게 갈무리하고는 포터를 출발시켰다. 포터의 뒤편에 달린 빨간색 등이 간간이 집에서 흘러나오는 빛 외에는 칠흑 같은 어둠뿐인 곳으로 점점 더 구불구불 멀어져갔다. 

“그럼, 이만.”

인협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서 집 쪽으로 몸을 돌렸다. 

턱. 그때 그의 팔뚝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잡아챘다. 

“뭡니까?”

“학교 앞까지만 부탁해요.”

에스더의 답지 않은 공손한 어투에 인협의 의아한 눈길이 달빛만 겨우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그녀를 향했다. 

“내가 왜요?”

“그야-.”

당차게 입을 연 에스더는 이내 다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무서워요?”

“아뇨.”

인협의 질문에 애써 부정하는 에스더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무서워하네.”

“아니, 오늘 유독 달빛이 덜 밝기도 하고 제가 이 시간에 잘 다니는 편도 아니니까요-.”

“그래서요?”

에스더의 얼버무리는 말에 은근히 신이 난 인협이 일부러 그녀에게 더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말 끝났으면 저는 이만 들어갑니다.”

“아, 좀 데려다 달라고요! 그래요, 이 정도로 어두워질 줄도 몰랐고, 이 정도로 무서울 줄 몰랐어요. 집에 가서 할 것도 없을 텐데 이거 하나 해주면 어디가 덧나요?”

“이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인협이 일부러 더 짓궂게 굴며 몸을 집쪽으로 약간 더 틀어버리자, 에스더의 손에 힘이 더 실렸다. 

“아, 미안해요! 미안해! 좀 데려다줘요. 부탁해요!”

귀뚤, 귀뚤. 개굴개굴. 

그들의 대화를 들은 건지, 주변 풀벌레와 개구리들이 더 세차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저 원래 이런 거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이번만 특별히 들어드릴게요.”

미세하게 떨리는 에스더의 손끝을 알아차린 인협은 이쯤 해두기로 했다. 

이 정도로 떠는 사람 앞에서 무정하게 굴만큼 매정한 사람이 아니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그제야 안도한 에스더의 음성이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터벅터벅. 두 사람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원리에 가로등은 매우 띄엄띄엄 놓여있어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특히나 인협의 집과 초등학교 앞은 유독 어두운 편이었다. 

“그나저나, 팔 좀 놔주시죠.”

“아,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붙들고 있던 인협의 팔을 놓아준 에스더는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와 온갖 풀벌레와 개구리 소리를 배경 삼아 둘은 침묵했다. 

이내 소원 초등학교 앞에 다다른 에스더는 핸드폰 플래시를 의지해 키로 교문을 열었다.

교문이 열리자, 풍성한 나무에 둘러싸여 어둠 속에서 유독 더 스산해 보이는 분교의 전경이 보였다. 

그나마 관사에 야외 등이 하나 켜져 있어서 다행이긴 했으나,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온 불빛이 학교를 둘러싼 수풀의 선을 한결 더 으스스해 보이게 만들었다. 

아까도 무서워하더니. 여기는 더 무서워하겠네, 이 여자. 

그 전경을 에스더 너머로 본 인협이 생각했다. 그의 생각대로인지, 에스더는 웬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안 가요?”

“그게-.”

인협과 키가 몇 센티미터 차이 나지 않아 늘 커 보이고 당당해 보이던 에스더는 지금만큼은 순한 강아지처럼 굴고 있었다. 

꼬리와 귀를 내리고 낑낑거리던 어떤 동네 강아지가 인협의 머릿속에 절로 떠오를 만큼. 

“같이 가줘요?”

평소의 심술이었으면, 에스더가 어떻든지 그냥 집으로 가버렸을 인협이었다. 

그러나 치킨집에서 함께 정렬을 위해주던 나름의 전우애일지, 아니면 하도 으르렁거리다가 들어버린 미운 정일지 모를 어떠한 감정이 그를 움직인 것이었다. 

아, 어쩌면 정렬이에게 한 줄기 빛이라도 되어준 이 사람을 향한 고마움이려나. 

인협은 딱 짚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뒤로하고서 먼저 앞장서서 운동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교문은 닫아서 잠가두고 따라와요. 나는 지난번에 그쪽이 다니던 샛길로 내려가면 되니까.”

인협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에스더는 이내 교문을 걸어 잠그고는 인협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도 고고한 자존심을 세우기에는 너무 달콤한 제안이기 때문이었다. 

에스더를 기다려주느라 느릿해졌던 인협의 두 발이 그녀의 걸음 속도보다 약간 빠른 정도로 움직였다. 

저벅저벅. 텅 빈 밤의 운동장에 두 사람의 발소리만 울렸다.

천만다행이야. 이 길을 혼자서 걸어오지 않아도 돼서. 

에스더는 인협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둠을 그다지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모든 게 도시보다 훨씬 더 무성하고 더 어두운 이곳의 한밤은 유독 더 무섭게 다가왔다. 

그래서 소원리로 온 후로는 어두울 때 밖을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었다. 

저벅저벅. 평소에 싫어하고 깔보던 사람으로부터 도움받는다는 사실은 굉장히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고마워요.”

관사 앞에 다다르자마자 에스더는 일종의 고해성사를 하듯이 고마움을 전했다. 

에스더가 사는 관사 문 위에 켜져 있는 등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인협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만 서 있을 뿐이었다.

시골의 여름밤 소리가 두 사람을 덮었다. 

주변이 고요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완전히 고요했다면, 그 정적을 이기지 못하고 에스더의 얼굴은 붉어지고 말았을 테니.

동그란 안경알 너머의 시선과 에스더의 시선이 얽혔다. 

동공이 꽤 큰 편이네. 은근히 빛나는 편인 거 같기도 하고. 

에스더는 처음으로 인협의 얼굴을 오목조목 뜯어볼 수 있었다. 그 시선을 묵묵히 견뎌내던 인협은 이내 에스더의 관사 문 방향으로 머리를 한번 까딱했다. 

“네?”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갈게요.”

“어-.”

늘 나쁘게만 행동하던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는 것만큼 당황스러운 것도 없었다.

에스더는 동그래진 눈으로 멍하니 인협만 바라보았다. 

“어두운 거 무서워하는 거 아니에요?”

“아, 그건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짓만 일부러 골라서 하는 줄로만 알았더니. 

에스더는 의아해하며 손짓으로 관사 문을 가리키는 인협을 쳐다보았다. 

“안 들어갈 거면, 지금 그냥 갑니다?”

“아, 아뇨. 들어갈게요.”

홀로 남는 건 싫어서 에스더는 자존심도 내버린 채 냉큼 관사 문을 열었다.

두려움 앞에서 자존심은 많이도 옅어져 있었다. 

덜 친절하고 어딘가 많이 모나 보이던 인협은 늘 내려다봐도 되고 우습게 여겨도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가 무례하게 굴어도 에스더는 그에게 겉으로는 늘 친절했고, 그를 존중해 주었으니까.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막상 모든 걸 벗어내고 그의 앞에서 작아진 순간이 되자마자 그를 내려다보았던 시간만큼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한 꺼풀 벗겨진 채로 인협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평소와 다름없는 인협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늘 그를 내려다보던 그녀였다. 

관사 문손잡이를 잡고서 그냥 이대로 들어가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에스더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인협 쪽으로 돌렸다. 

“고마워요.”

“뭐가요?”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요.”

에스더의 말에 인협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으나, 평소의 그가 지었던 것처럼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기 위한 웃음은 아니었다. 

한구석에 행복이 조금은 묻어나오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도 사람이긴 하구나. 살아있는 사람. 이런 무심한 친절도 베풀 줄 아는 사람. 

에스더는 그런 인협의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랑끗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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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의 어느 오래된 경양식 돈가스집. 봉길과 유진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때요? 입에 좀 맞아요?” “네, 맛있어요.” 유진의 소개로 오게 된 곳이었다. 봉길의 얼굴에 깃든 아쉬움을 포착한 유진은 피식 웃었다. “나는 여기 되게 좋아하는데.” “네?” “첫 데이트인데, 더 좋은 곳으로못데려가서 지금 미안해하는 거 아니에요?” “엇….” 자신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봉길을 본 유진은 쿡쿡 웃었다. “나한테는 여기가 가장 좋은 맛집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식당이라, 봉길 씨랑 한번 와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요?” “네, 다른 곳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한테는 가장 특별한 곳이에요.” “아….” “그러니까, 첫 데이트다운 데이트, 잘 즐겨봐요.” 유진의 말에 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는 돈가스 진짜 좋아하는데, 여자분들은 파스타집 이런 곳을 데이트 장소로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어디서요? 인터넷에서요?” “네. 연애를 따로 배울 곳이 없다 보니, 이 나이를 먹고도 힘을 빌릴 수 있는 데가 인터넷뿐이네요.” 봉길은 면목이 없는지 시선을 내리깔며 고해성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은 그런 봉길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서툰 모습에서도 절로 묻어나오는 저를 향한 사랑에 유진은 고마울 뿐이었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닐 수도요. 아마도 평균적인 여자들은 좋아할 수도요?” “네?” “근데, 나는 평균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일단 대학생 때를 제외하고는 늘 이런 소도시에서 자라왔고, 지금은 시골에서 애 하나 키우는 미혼모인데요.” “…….” “그런 사람의 취향은 인터넷에는 알려진 게 많이 없어서 봉길 씨가 직접 알아봐야 할지도요?” “유진 씨.” “그러니까, 인터넷 같은데 뒤지지 말고, 나한테 직접 물어봐요. 아이 키우고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니까 좋은 게 뭔지 알아요? 삶이 아주 심플해져요.” 유진의 말에 봉

  • 웰컴 투 소원리   69. 물음표로

    “봉길 씨!”“유진 씨.”유진은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카페 주차장에 서 있는 봉길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그를 불렀다. 분명히 오늘 할 일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러자 봉길은 태연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품에는 만개한 꽃이 가득한 꽃다발을 들고서, 그보다 더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보고 싶었어요.”“…….”봉길의 수줍은 고백에 유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간 그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간 쌓여있던 마음이 기쁨이 되어 벅차오르면서도, 유진은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것만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어? 유진 씨, 울어요?”“몰라요.”“어? 내가 뭐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불시에 왔죠.”바보 같은 사람. 내 눈물에 당신이 왜 사과하는지.유진은 봉길의 품에 폭 안기면서 생각했다. 그의 품 안에 안기자, 그가 뿌린 향수 향과 함께 진득한 땀 냄새가 났다. 아마도 봉길은 바깥에서 긴 시간 동안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녀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 사랑에 실패하고 주아를 키우면서 마음이 많이 무뎌지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봉길 앞에서는 말랑해지고 말았다. “바보.”“맞아요, 좀 바보예요. 어쩌죠? 유진 씨같이 예쁜 사람이 이렇게 모자란 나랑 만나게 되어서요.”이런 게 정말 더 바보 같다니까. 내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유진은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봉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나도 봉길 씨를 닮아가나 봐요.”누군가를 한 명 바보 만드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일일 줄이야. 나도 덩달아 바보가 되어버려서 그런가. 유진의 말에 봉길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내 그녀를 더 꼭 안아주고는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일단 차에 가요. 너무 덥겠다.”봉길이 유진의 이마에 맺힌 작은 땀방울을 보며 걱정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의 머리는 이미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좋아요.”봉길은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감싸고선 그녀를 차 안으로 이끌었다. “주아 픽업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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