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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 바위가 무엇이길래

Author: 랑끗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2 12:48:40

신화읍의 어느 한 옛날 통닭집.

다섯 자리 남짓 있는 홀 한구석에는 세 사람이 앉아서 치킨을 시켜두고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에스더와 정렬만 신나서 이야기하는 동안, 인협은 묵묵히 500cc 잔을 말끔히 비워내는 중이었다.

정렬은 앞에 콜라를 두고 있었다. 

술만 들어가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로 인해 정렬부터 시작해 그의 동생들까지도 술이라면 입에 대기도 싫어했다. 

“그래서 유림이가요-.”

“하하하-.”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정렬의 막둥이 동생들의 학교생활 이야기에 인협은 조용히 술잔을 다 비워냈다.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이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이 어쭙잖게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면, 인협은 다시는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터였다. 

그러나, 서로로 인해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듯한 두 사람을 인협은 묵묵히 구경만 하면 됐다. 

사실 에스더가 주로 떠들고, 정렬은 떠드는 에스더를 사랑스러워하며 중간중간에 그녀가 필요한 것을 굳이 말을 하거나 내색하지 않아도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그게 약간 힘든 부분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의 나들이에 나쁘진 않았다. 

에스더의 맞은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렬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한순간도 가시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데이트에 낀 건 맞는 거 같은데. 그럼, 고제환은 도대체 뭐지? 

인협은 날개 부위를 뜯으며 에스더와 인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형은 어쩌다가 소원리로 다시 오게 된 거야?”

다 뜯은 날개뼈를 뼈통에 집어넣으려던 인협은 정렬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아-.”

어렸을 적, 교육을 위한다는 아버지의 횡포로 인해 컴퓨터는커녕, 인터넷도 없는 집에서 살던 정렬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렬은 돌아가는 세상사에 유독 관심 없어 했었다. 

인협은 프로게이머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죽어도 숨길 예정이었다. 

애초에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 사람들만 있는 곳이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어느 날 불현듯이 소원리가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세상에는 배반자이자 위법자가 되어버린 그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무척이나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돌팔매질 당해야 마땅한 그가 숨어들 수 있는 구석 하나쯤은 필요했으니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어낸다거나, 단단한 피난처를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은 티끌조차 없었다. 

한 사람이 그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그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냥. 공부 때문에 바빠서 할아버지 할머니 장례식에도 안 온 놈이 뭔 할 말이 있겠냐마는. 그냥 이곳이 떠올랐어.”

그냥이라는 말이 그냥일 리가 않으리라는 걸 모를 만큼 어리숙하지 않은 에스더와 정렬이었다. 

더럽게 사연 있는 척 구네. 보나 마나 별것 아닌, 배부른 사람의 하소연이겠지. 

여기서 살면서 일도 안 구하고 계속 소원리에서 이렇게 죽치고 있는 것 보면. 

에스더는 속으로 몰래 인협을 비웃고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인협은 어렸을 적부터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편이었지만, 마음까지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을에 있던 또래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라는 건 당시에 소원리에서 가장 약자 중 하나였던 정렬이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왜소했던 체구와 동네에 퍼진 그의 가정사에 관한 소문 때문에 그는 열 명 남짓 되는 아이들 중 왕따였다. 

아이들의 부모도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정렬과 어울리는 걸 대놓고 싫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폭력적으로 군 건 그들의 아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서울에서 전학을 왔던 인협이 나서서 정렬을 보호해 주고 그와 함께해준 덕분에 그는 곧잘 또래 아이들과 다시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동네에서 따돌림이 심했을 적에는 인협은 정렬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할머니를 졸라서 얻어냈던 구형 컴퓨터로 온갖 게임을 알려주고 시켜주었다.

비록 정렬이 게임에 소질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으나, 인협과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 좋아서 그는 꼭 인협 곁에 붙어서 그가 하는 게임들을 구경하고는 했었다.

 

“공부를 워낙 잘했었으니까, 형은.”

“너도 잘했었잖아. 근데, 너는? 너는 왜 이곳에 남아 있었어?”

인협의 질문에 에스더가 정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도 정렬로부터 직접 들었던 건 아니지만, 젊고 똑똑한 편인 정렬이 왜 굳이 시골에 남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정렬은 미소 띤 얼굴로 잠시 콜라 잔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앞에서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겠다 싶네. 아버지 때문이지, 뭐.”

“아버지 아직도 그러셔?”

정렬의 말에 인협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정렬의 아버지인 원길이 술만 들어가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은 그 당시의 소원리에도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마을의 맨 안쪽에, 소원리 교회가 지어지기 전에는 다른 집들로부터 유독 멀리 떨어져 있던 집이라서 소리가 많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원길이 아이들이나 그의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이젠 안 그러셔. 나도 컸고, 내가 이곳에 있으니까.”

정렬의 말에 미래가 창창해 보이던 그가 이 외딴 시골에 굳이 남아 있는 이유를 모두 짐작해 낸 인협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너도 참 기구한 생을 살고 있구나.

“정아랑 정민이는 애저녁에 이곳을 떴어.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여기에는 절대로 안 돌아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서 나갔는데, 진짜로 한 번도 안 돌아오네.”

“……….”

세 사람에게 정적이 찾아왔다. 정렬은 조용히 콜라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사실은 성인이 되자마자 이 마을에서 도망칠 생각이었거든? 근데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막둥이 동생들 둘이 덜컥 생겨버렸지 뭐야. 웃기지?”

하나도 웃기지 않은 이야기에 혼자서 푸흐흐, 웃음을 흘린 정렬은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탁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은 그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겨우 아기들인 애들을 보는데, 그런 아기들이랑 노산에 몸이 더 약해져 버린 엄마만 이곳에 두고 도저히 갈 수가 없더라고.”

“미련한 놈.”

인협의 입에서 나온 욕설에 에스더는 그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정렬을 바라보는 인협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늘 묵묵히 견뎌온 정렬을 대신해 느끼는 속상함과 잃어버린 그의 지난 몇 년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 속마음을 읽어낸 에스더는 잠시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생각보다 둘의 사이는 깊구나, 라는 생각에 에스더는 이 대화에서 잠시 빠져주기로 마음을 먹고는 치킨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아. 유림이랑 정결이가 얼마나 예쁜데. 꼭 내 자식들 같아.”

“그거야 불 보듯 뻔하네. 네가 다 키웠으니까, 정이 들었겠지.”

“빙고.”

“진짜로 후회하지 않아?”

인협의 말에 쿡쿡하고 웃는 정렬의 눈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여서 인협과 에스더를 절로 입을 다물고 그를 기다려주게 만들었다.

제 선택에 관해 후회하는 제 모습조차도 잘못으로 돌려버린 탓에 어쩌면 정렬은 후회하는 방법조차도 잊어버린 줄도 몰랐다. 

“그렇다고 여기에 남은 걸 후회하면 너무 슬프잖아. 그러면 꼭 유림이랑 정결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으니까.”

정렬의 마지막 말에 인협의 눈에도 잠시 이채가 서렸다. 

서울에서 어두운 방 안에 자신을 몰아넣고서 얼마나 후회했던가. 

당연한 것처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스포츠 세계에 일찍이 발을 들였던 것, 성공이라는 걸 거머쥐기 위해 저를 돌봐주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한 인간의 도리도 저버리고 장례식에 안 가기로 했던 선택, 그리고 저에게는 한없이 아끼면서도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고생의 값을 모두 넘겨주었던 것.

 

절벽 아래로 떠밀린 후에는, 그동안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던 선택들 중 후회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었다.

너도 간혹 감정적으로 떠밀려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그렇게 후회했었을까. 

아니면 너무 그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버려서 이제는 뭘 후회해야 할지 몰라 스스로만 지독히 미워하는 지경에 다다랐을까.

인협의 혀끝에 마지막 질문이 걸렸지만, 그는 그것을 맥주와 함께 넘겨버렸다. 

이미 그 선택들을 하고서 책임져 온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너무 잔인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인협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회는 후회고, 예쁜 아이들은 아이들이죠.”

침묵만 흐르던 테이블 위로 에스더의 담담한 말이 툭 던져졌다.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있던 두 남자는 시선을 돌려 에스더를 바라보았다.

“후회는 내가 살아왔던 과거에 대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죠. 늘 선택하지 못했던, 알 수 없는 또 다른 미래에 대한 미련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니까요. 대신, 그게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잡아먹게만 두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

“스치듯 후회라는 감정이 올라올 수는 있죠. 우리는 어두운 감정도, 밝은 감정도 모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그것까지 억누르느라 지금 충분히 고생하고 있는 자신을 너무 괴롭게 하지는 말아요.”

에스더의 조언에 묵묵히 귀 기울이는 정렬의 얼굴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감정이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옅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언젠가 내게 거대한 바위 같았던 감정과 기억은 시간이 흐르니 점점 삶에 더해지는 행복한 기억에 깎여나가서 작아지기는 하더라고요.”

에스더는 말을 마친 후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본 인협의 눈에는 의아함이 스쳤다. 

그 바위가 무엇이길래. 

한치의 그늘도 없어 보이던 에스더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그림자에 인협은 궁금해졌다. 

“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 좋은 소원리에 오거나 남게 된 거네요, 그렇죠?”

“…….”

“그러니까, 우리 건배나 한번 해요!”

일부러 더 쾌활한 목소리로 잔을 든 에스더의 행동에 나머지 두 사람은 얼떨결에 잔을 들어 건배했다.

랑끗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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