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1. 애물단지

Aвтор: 랑끗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0 03:30:19

“황 선생님!”

시골 동네의 단점은 종종 너무 고요해서 소음이 잘 들린다는 것. 옛 시골집의 단점은 방음이 잘 안된다는 것. 

어떤 젊은 남자의 밝은 음성에 인협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일요일 아침. 

물론 딱히 주말 주중 구분 없이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는 인협이었지만, 깰 이유가 없는데 원치 않는 시간에 원치 않는 이유로 깨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었다. 

“에이씨-.”

그놈의 황 선생 이름은 왜 집안까지 들리냐고. 

조용히 투덜거린 인협은 숙취에 묵직한 두통이 느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서 자리에서 몸을 겨우 일으켰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가 쓸데없이 밝아.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에스더의 인사에 인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교회 가는 길이세요?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드릴까요?”

이름 모를 남자의 조심스러운 질문 세례에 인협이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묘하게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오지만, 서울말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느낌이었다. 

소원리 사람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애쓴다, 애써. 

물론 게임만 하느라 모태 솔로인 그였지만, 남자의 음성과 말에 담긴 진심을 읽어내지 못할 만큼 그는 최악의 눈치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저 여자가 얼마나 우악스러운지 알아야 하는데-.”

여하튼 제환이 형도, 이름 모를 남자도 불쌍하네. 아, 제환이 형은 취소. 어쩌면 잘 맞는 한 쌍일지도. 

인협은 옆에 놓인 2리터짜리 생수병을 통째로 들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뇨, 걸어갈게요.”

“아, 그럼 같이 걸어가요. 저도 시간이 많아서-.”

아주 눈물겨운 노력이네. 

꿀꺽꿀꺽 물을 삼키며 인협은 생각했다. 

도란도란 대화하며 멀어지는 두 사람의 소리에 인협은 물병을 내려놓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늦잠은 물 건너갔네. 으, 머리야.”

불만 가득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인협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

산뜻한 월요일 아침.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소원 초등학교의 유일한 교사 세 명이 교무실에 모여있었다.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 선생님으로 1년 파견 나왔었지만, 계약을 1년 더 연장한 에스더, 고 이장의 아들이자 수학을 맡아 가르치는 제환, 

그리고 그 나머지 과목을 도맡아 가르치는 데다가 학교의 전반적인 행정까지 맡고 있는 조순옥 선생이 있었다. 

조 선생은 평생 동해 시내 있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몇 년 전에 외지에서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생겨서 분교로 전근 신청을 하게 되어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결과적으론 딸인 유진과 손녀인 주아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버린 유진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고, 한 다리 건너면 모두를 아는 동해시 안에서 눈초리를 덜 받게 하려고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그들이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얼마 안 되어 더해졌다. 

짧은 단발머리에 굵은 웨이브를 준 깔끔한 머리를 하고, 늘 정장 차림에 가까운 차림을 고수하는 조 선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보수적이고 융통성이 없어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었다. 

특히나 손녀인 주아가 생긴 후에는, 손녀 또래인 아이들만 보면 유독 더 상냥해지는 그녀였다.

물론 아이들을 혼낼 때는 따끔하게 혼내는 편이긴 했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 많은 애정을 아이들에게 부어주고는 했다.

“자, 아침 조회 잠시만 할까요?”

“네, 좋아요.”

교장실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거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늘 비어 있었다. 

소원 초등학교의 교장인 구본용은 늘 조 선생에게 모든 행정 업무나 결정권을 맡기고는 학교에 오는 법이 없었다.

제환의 고자질을 고 이장을 통해서 불만이 생긴 날이 아니면, 거의 나타나는 법이 없었다. 

조 선생의 부름에 개인 책상이 놓인 공간 옆에 놓여있는 작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제환이 에스더의 옆자리에 있는 의자를 굳이 에스더 쪽으로 약간 끌어서 앉았다. 

그걸 느낀 에스더는 그만큼 옆으로 물러났다. 거의 날마다 있는 일이었다. 

“고 선생님은 늘 제 옆자리가 싫으신가 봐요?”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칠 리가 없는 조 선생은 상냥한 미소를 띠고서 물었다. 

“맞은편에 앉으면 선생님 얼굴 뵙기가 편하니까요.”

제환은 태연하게 둘러대고는 싱긋 웃었다. 월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유독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창백했다. 

게다가 평소에도 눈이 웃지 않는 편이 그가 씩 미소를 짓자, 그는 흡사 뱀파이어 백작 같아 보였다.

“아하, 그렇군요. 그래도 제 옆에 한 번씩 앉아주세요, 서운하니까. 흠흠, 그럼 회의를 시작하죠.”

말을 하며 에스더를 향해 찡긋 웃어 보인 조 선생은 이번 주 진행될 수업에 관해 숙지해야 할 내용들을 읊어주었다. 

조 선생이 워낙 많은 과목을 맡은 지라 종종 도움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특히나 체육 같은 경우는. 

보통 조 선생의 도움 요청에 응하는 건 에스더였다. 두 사람뿐인데도 불구하고 제환은 늘 덤으로 주어지는 일은 회피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비겁한 태도를 지켜보는 것조차 불편한 탓에 자연스럽게 에스더는 그 일들을 자처하게 됐다. 

“이번 주는 이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에요. 혹시 질문 사항 있으실까요?”

“없습니다.”

“그럼, 이번 주도 우리 아이들 많이 예뻐해 주도록 합시다.”

에스더의 시원시원한 답에 조 선생은 환하게 웃으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아, 곧 장마철이 다가오네요.”

“그러네요.”

“좀 대비해 놓아야겠어요.”

조 선생과 에스더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빠진 제환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행여나 누군가가 일을 맡길까 봐 자리로 숨어 들어간 것이 뻔했다. 

이렇게 소원 초등학교의 6월 중순이 흘러가고 있었다.

***

“곧 장마철인가, 온몸이 쑤시네.”

듀오 할머니, 곧 갑순과 복란은 집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마늘을 까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종종 이렇게 함께 일하는 편이었다. 

 

갑순의 앓는 소리에 복란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언니, 파스라도 붙이라니까.”

“아휴, 붙이기도 귀찮아. 효과도 거의 없는 거.”

“지난번에 딸내미가 바르는 파스 사다 줬잖아. 그게 더 세다며. 발라. 밤마다 끙끙 앓지 말고.”

복란이 딸 이야기를 꺼내자, 잠시 갑순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그 찰나의 침묵의 이유를 알아차린 복란이 혀를 끌끌 찼다. 

“또, 또. 자식 걱정하지. 잘 살고 있을 자식, 뭐 하러 걱정해. 다 지 삶 잘 살고 있어.”

복란의 말에도 먼 산만 응시하는 갑순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서울이 이 시골보다는 훨씬 더 잘 되어있지. 장마 오기 전에 우리 밭에 고랑이나 잘 살피자고.”

“그래-.”

“또, 또. 아휴, 그렇게 자식들이 걱정되면 전화 한번 쭉 돌리고 와.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간 나만 이 마늘을 다 까겠네.”

“그래, 나 좀 다녀올게.”

복란의 잔소리에 갑순은 굽은 허리로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미닫이문이 열렸다가 닫히고는 복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서울에 사는 세 명의 자녀가 전화받을 때까지 연락을 돌려야 저 불안감이 해소될 터였다.

이제는 천국으로 가버린 남편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늘 살아왔던 복란. 젊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갑순의 남편의 가혹했던 가정폭력. 

어렸던 자식을 이름 모를 병인지, 영양실조인지로 잃어본 갑순. 자식들이 모두 도시에서 풍족하게 잘 자랐던 복란. 

남편을 보내고 갑순과 함께 살게 되면서 복란은 이런 갑순의 자식을 향한 불안감에 대해 굉장히 답답해했었다. 

그러나 언젠가 이 대조된 삶의 결과가 어쩌면 자식들을 향한 큰 불안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복란은, 그 이후로 갑순에게 이 일로 짜증을 내지 않게 되었다. 

나도 이 사람의 삶을 살았더라면, 비슷하거나 더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에휴, 자식들이 뭐라고. 지 삶 제 몫 해내면서 아주 잘 사는 게 좋으면서도 또 안 찾아오면 아쉽고.

낳고 어느 정도 큰 순간부터는 애물단지야, 애물단지.

심란해진 복란의 손놀림이 더 빨라졌고, 어느새 대청마루에는 마늘 향이 가득했다. 

그리고 큰 바구니에는 곱게 까진 마늘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 당연하지.”

자식 걱정은 눈 감을 때까지 한다던데. 복란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모두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이 배 아파 낳았던 작은 골칫덩어리는 그들에게 충분한 기쁨이기도 하다는 것을.

언젠가는 각자의 이유로 버거웠던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던 버팀목이었다는 걸.

Продолжить чтение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웰컴 투 소원리   17. 각자의 고민

    “끄으응-.”조 선생을 보낸 후, 관사로 돌아온 에스더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관사 부엌과 거실 공간을 서성거리고 있었다.아, 괜히 큰소리친 건가. 조 선생이 맡은 과목은 일단 고 선생이 맡은 수학, 과학, 그리고 에스더가 맡은 영어를 제외한 과목 모두였다. 국어, 사회, 도덕, 음악, 미술, 체육. 게다가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까지. 교장인 본용이 학교에 거의 나오지도 않는 걸 보면 사실상 학교의 모든 업무를 조 선생이 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 조 선생은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학교 관련 업무는 딸인 유진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일곱 과목…. 일곱 과목-.”에스더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을 떠난지라 한국 과정은 잘 기억도 나지 않았고, 애초에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교육 과정이 많이 바뀌었을 터였다. 게다가 소원리 초등학교 특성상, 아이들에 맞춰서 그녀가 준비해야 할 과정은 다양했다. 전교생은 열 명 남짓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골고루 있었다. “아으으-. 그래, 일단 과목 중 두 개 정도는 고 선생님이 맡아주겠지. 사람이라면 말이야.”정말? 힘없고 비열한 드라큘라 백작처럼 생긴 고 선생의 심드렁한 얼굴을 떠올린 에스더는 또 한 번 앓는 소리를 냈다. 안 한다고 해도 그 인간을 어떻게든 설득해 봐야지.그는 당장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걸 충분히 못 견뎌 할 위인이었다. “후우, 그럼 다섯 과목.”예체능만 누구한테 부탁할 수 없나? 에스더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음악과는 정말 연이 없다는 것. 심지어 노래도 못 부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즐기고 좋아하던 조 선생의 음악 교실에는 전자피아노와 노래가 필수였다. 때때로 그녀는 창고에서 사물놀이를 꺼내 와 아이들을 가르치고는 했다. “아-.”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다고 고 선생도 이렇다고 할 음악적인 재능도 없었다. 당장 며칠 동안은 어떻게든 버텨볼 만했지

  • 웰컴 투 소원리   16. 장마의 시작

    같은 날 점심시간 무렵. 카페가 유독 바쁜 날이라 카페 사장인 아내 영애를 도우러 출근한 태욱이었다.그는 가게 일을 돕다가 잠시 한산해진 틈을 타 커피 한잔을 하며 쉬는 중이었다. “철호!”태욱은 그때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뜻밖의 손님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비싼 커피보다는 인스턴트커피가 제 입맛에는 제격이라며 읍내에서 일하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에 절대 들리지 않던 철호였다. 대개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철호의 얼굴이었지만, 아는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서글서글해지는 얼굴이 웬일로 가장 친한 태욱을 발견해 내고 나서도 여전히 굳어있었다. 어딘가에 영혼을 빼앗겨버린 듯한 철호의 모습에 태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태 봐왔던 철호의 모습 중 새로운 모습이었다. ”태욱아.” “웬일이야, 여기에는? 철물점은?”카페 한구석에 빈자리에 앉아 있던 태욱 맞은편 의자에 철호는 쓰러지듯 앉았다. 다리가 풀려버린 사람처럼. “태욱아.” “커피 한잔 내려줄까? 달달하고 따끈한 거로?”평소에 펄펄 끓는 물로 만든 인스턴트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하는 철호였다. 뜨끈한 기운이 몸을 데워줘서 좋다나. 그런 철호의 취향을 아는 태욱은 인스턴트커피와 얼추 비슷한 달달한 라떼를 만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시원한 걸로 내려주라. 내 속에 천불 좀 끄게.” “뭐?” “……..”놀란 태욱이 되물어도 철호는 말없이 카페의 자랑인 바다 풍경만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았다. 잠시 답을 거부하는 그 옆모습을 읽어낸 태욱은 바로 향해 능숙한 손길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영애가 이 카페를 시작했을 무렵. 그녀만 고생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로 태욱은 그녀 옆에서 부지런히 카페 일을 배워서 그녀를 보좌했었다.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고정으로 돌릴 직원이 생겨난 데다가, 갑자기 맡게 된 영애의 조카들 때문에 태욱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어, 여보? 커피 한잔만 하고 바로 집에 들어간다면서?”카운

  • 웰컴 투 소원리   15. 어른의 정의

    주중 어느 평범한 날 낮.“아니, 거기 김씨네 첫째 손주 만나봤나?”“아휴, 말도 마. 성질이 어찌나 고약한지. 지난번에는 지나가다 나를 맞은편에서 이렇게 딱 맞닥뜨려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지나가더라니까-.”“하여튼, 그 버르장머리 보면 김 씨 아주머니네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거야.”고 이장의 부인 심 씨가 부쳐다 놓은 전 몇 장을 중간에 두고서 막걸리와 함께 어른 몇이 함께 밭일을 하던 차림으로 새참을 먹고 있었다. 6월 중순으로 치닫는 시간 속 햇볕은 매우 뜨거웠다. 멋보다는 기능에 더 치중한 모자나 토시 같은 걸 잔뜩 걸친 모두는 고 이장의 넓은 밭 한 귀퉁이에 그늘진 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오늘의 멤버는 고 이장, 심 씨, 소원 초등학교 교장 구본용, 그의 부인 정 씨, 그리고 정렬의 아버지 원길이었다. 여기다 종종 최 씨까지 함께 자리하고는 했는데, 최 씨의 밭은 동떨어져 있기도 했고, 그는 가게 핑계로 밭일 품앗이에서 종종 제외되고는 했다. 오늘은 마을에서 가장 넓은 고 이장의 밭에 나 있는 물꼬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날이었다. 보통은 6월 말에 찾아오는 끈질긴 장마 때문에 소원리는 6월을 기점으로 많이 바빠졌다. 이전해 장마로 인해 모양을 잃은 물꼬를 보수하고, 그곳에 있는 이물질들을 잘 치워줘야 장마철에 밭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서로의 잔에 채워주며 그들은 아침 노동의 피로를 덜어내고 있었다. “아휴, 매년 도와줘서 고마워요.”“아이, 우리 형님들 일이면 나서서 도와야죠.”심 씨는 원길의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며 감사 인사를 했고, 원길은 쑥스러워하며 대꾸했다. “크으-.”원길이 시원하게 막걸리를 들이키자, 심 씨와 정 씨가 순간 걱정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원길이 거나하게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온 마을 사람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김 씨 아주머니네 첫째 손주가 어떤데 그래요? 어렸을 땐 그래도 고분고분하더니만.”원길의 질문에 최근에 인

  • 웰컴 투 소원리   14. 사람이긴 하구나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어두운 시골길을 포터는 열심히 내달렸다. 읍내로 나가던 길의 차 안 분위기와 돌아오는 길의 차 안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차 안은 여전히 고요했으나, 에스더와 인협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직접 나눈 대화는 거의 없었으나,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있었다.서로가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 서로가 아닌 정렬을 향해 보내던 따스한 모습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이 사람도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을 어느 정도 심어준 듯싶었다.정렬 씨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 사람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던데. 묵묵히 창밖만 내다보던 에스더는 치킨집에서 보았던 인협의 여러 모습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녀 앞에서나 다른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성격 파탄자처럼 굴던 그가 유일하게 정상인처럼 보이던 시간이었다.저 사람도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만큼. 인협을 속으로 마음껏 비웃고 미워하던 시간만큼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와 동시에 인협이 소원리로 오게 된 이유를 가볍게 치부했던 것도 떠올랐다. 어쩌면 저 사람에게도 타당하고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몰라, 라는 생각과 함께.어느새 포터는 소원리 입구로 진입했다. 차 한 대만 겨우 지나다닐 만한 길을 어둠 속에서도 정렬은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그만큼 이 동네에 익숙한 그였다. “어어-.”그때 포터가 소원 초등학교 교문 앞을 지나쳐 내리막으로 향한 탓에 에스더가 놀란 소리를 냈다. “아, 형 먼저 내려주고 선생님 내려드릴게요.” 정렬이는 다 생각이 있었구나. 인협은 어둠 속에서 고요히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늦은 시간에 핑계를 대고 관사 앞까지 걸어가서 데려다주기 딱 좋을 터였다. “응, 나 먼저 내려줘.”물론 에스더에게 정렬이 아깝다고 생각한 인협이었지만, 저 정도로 좋아 죽으려는 정렬의 마음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협의 말에 정렬은 재빠르게 인협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 앞에 차를 세웠다

  • 웰컴 투 소원리   13. 그 바위가 무엇이길래

    신화읍의 어느 한 옛날 통닭집.다섯 자리 남짓 있는 홀 한구석에는 세 사람이 앉아서 치킨을 시켜두고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에스더와 정렬만 신나서 이야기하는 동안, 인협은 묵묵히 500cc 잔을 말끔히 비워내는 중이었다.정렬은 앞에 콜라를 두고 있었다. 술만 들어가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로 인해 정렬부터 시작해 그의 동생들까지도 술이라면 입에 대기도 싫어했다. “그래서 유림이가요-.” “하하하-.”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정렬의 막둥이 동생들의 학교생활 이야기에 인협은 조용히 술잔을 다 비워냈다.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이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이 어쭙잖게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면, 인협은 다시는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터였다. 그러나, 서로로 인해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듯한 두 사람을 인협은 묵묵히 구경만 하면 됐다. 사실 에스더가 주로 떠들고, 정렬은 떠드는 에스더를 사랑스러워하며 중간중간에 그녀가 필요한 것을 굳이 말을 하거나 내색하지 않아도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그게 약간 힘든 부분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의 나들이에 나쁘진 않았다. 에스더의 맞은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렬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한순간도 가시지를 않았다.아무래도 데이트에 낀 건 맞는 거 같은데. 그럼, 고제환은 도대체 뭐지? 인협은 날개 부위를 뜯으며 에스더와 인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형은 어쩌다가 소원리로 다시 오게 된 거야?”다 뜯은 날개뼈를 뼈통에 집어넣으려던 인협은 정렬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아-.”어렸을 적, 교육을 위한다는 아버지의 횡포로 인해 컴퓨터는커녕, 인터넷도 없는 집에서 살던 정렬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렬은 돌아가는 세상사에 유독 관심 없어 했었다. 인협은 프로게이머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죽어도 숨길 예정이었다. 애초에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 사람들만 있는 곳이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어느 날 불현듯이 소원리가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진실 여

  • 웰컴 투 소원리   12. 일종의 광기

    “황 선생님-!” “아, 오늘 오빠, 형아가 데리러 오는 날이었구나-.” “오빠!” “형아-!”마지막 두 아이만 남은 교실. 선생님 중 학교에 홀로 남은 에스더는 복도를 걸어오는 정렬을 발견하고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교실에서 조용히 놀던 아이들은 단숨에 복도로 뛰쳐나와 정렬에게 폭 안겨버렸다. 유림과 정결은 정렬의 늦둥이 동생들이었다. 정렬의 밑으로 한 살, 세 살 차이 나는 여동생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일찌감치 서울로 독립을 한 상태였다. 제환은 보통 자기 수업을 마치면 퇴근해 버리는 편이었다. 조 선생은 평소에는 에스더와 함께 자리를 지키다가 느지막이 퇴근하는 편이었으나, 오늘은 일이 있다며 마지막 수업을 맡은 에스더에게 뒷정리까지 부탁하고는 먼저 떠났다. 에스더가 소원리에 오고는 처음으로 조 선생이 그녀보다 먼저 자리를 비운 날이었다. “어? 오늘 조 선생님은-.”정렬의 눈이 늘 하굣길을 지키고 있던 조 선생을 찾았다. “아, 개인적인 일이 있으시다고 일찍 퇴근하셨어요.” “그랬구나.”에스더의 말에 정렬의 얼굴이 밝아졌다. 수줍음이 많은 편인 그는 조 선생이 함께 있으면 에스더 앞에서 행동을 유독 조심하는 편이었다.혹시라도 소원리에 엄한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는 건 여자인 에스더일 테니. “아이들이 워낙 잘 있어 준 덕분에 기다리는 동안 틈틈이 뒷정리를 해두어서 이대로 정렬 씨랑 같이 나가도 될 거 같아요.” “정말요?”에스더의 말에 정렬이 환하게 웃었다. 넷은 자연스럽게 함께 복도를 걸어갔다. “나 먼저 뛰어야지!” “같이 가!”이내 유림과 정결이 장난을 치며 큰소리로 웃으며 앞장서서 뛰어갔다. 기특한 녀석들. 그런 두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정렬은 속으로 기뻐했다. “아참, 선생님. 저랑 저녁에 한번 읍내에 나가실래요? 치킨 한번 어때요?”에스더는 유독 치맥을 좋아했다. 우연히 주말에 읍내 농합마트에서 마주친 그들은 정렬의 차에 함께 타서 동네로 들어오기로 하고는 저녁을 한번 같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