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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잘 자, 나인협

Author: 랑끗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4 12:00:33

똑똑똑. 

“나인협!”

노크 소리에 방에 들어갈 힘조차 없어서 거실 소파에 옆으로 누워있다가 깜빡 잠에 들었던 인협이 겨우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열이 올랐는지, 온몸이 뜨거웠다. 

인협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주위를 확인하고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식은땀이 이마에 맺혀 있었다.

“아으….”

몸이 천근만근인 것도 모자라,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 

똑똑똑.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지금 나가….”

인협의 힘없는 음성에 에스더의 힘찬 노크 소리가 잠시 멈췄다.

“너, 아파? 목소리가 좀 안 좋은데?”

인협이 느릿하게 움직여 구부정한 몸을 하고선 손으로 벽을 짚고는 문을 열었다. 

“너 아프구나.”

“조금.”

에스더의 동그래진 눈을 본 인협이 겨우 미소 띤 얼굴로 대꾸했다. 

에스더는 잠시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벌린 채로 잠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어째, 네가 더 아픈 것 같은 표정이야?”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에스더의 표정에 인협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몸, 많이 안 좋아? 병원에 가서 링거라도 맞을래?”

“추워….”

훅 불어온 여름 밤공기에 인협이 몸을 떨자, 에스더는 다짜고짜 발을 들이밀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쾅. 그렇게 현관문이 닫혔다.

두 사람은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집안에 함께 있게 되었다.

“어디 봐. 이 더운 여름에 춥기까지 한 거면 꽤 심각한 거 같은데.”

에스더는 손을 뻗어서 인협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잔뜩 오른 이마에 닿은 그녀의 손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인협은 그 기분 좋은 감각에 눈을 감고서 그녀의 손에 살짝 기댔다.

“시원해. 기분 좋아.”

“인협아. 병원 가자.”

“괜찮아. 돈 아까워. 그냥 견디면서 약 먹으면 돼.”

행여나 큰 병원에 갔다가 신상이라도 밝혀질까 두려워진 인협은 에스더의 제안을 거절했다.

“약은 있고?”

도리도리. 인협의 힘없는 고갯짓에 에스더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루쯤 꼬박 견디면 나아.”

인협이 숙소에서 혼자 지내면서 터득한 방법이었다. 

이쯤이면 하루 끙끙 앓고 나면 적당히 생활할 만큼은 괜찮아질 터였다.

이렇게 견디고 견디는 법만 배웠다가 과거 어느 날 봉길에게 발견되고는 엄청난 잔소리를 듣긴 했었지만. 

피식. 작은 웃음을 흘린 후 봉길의 동그란 눈을 떠올린 그는 그 위로 에스더를 겹쳐보았다. 

어째 내 걱정을 더 해. 자기네들 걱정이나 하지. 봉길 코치님도, 에스더도. 

“뭘 견뎌, 견디긴. 약 먹으면 좋아져. 잠깐만 기다려, 우리 집에 약 있어.”

“…….”

에스더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이내 그녀가 돌아와 노크하자, 인협은 슬며시 문을 다시 열어주었다. 

손에 약을 든 에스더가 서 있었다. 에스더는 인협이 추울까 걱정되는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제집처럼 신발을 벗고서 집 안으로 들어와 부엌 불을 켜고는 물을 한 컵 따랐다. 

“누가 참으래?”

“뭐?”

인협이 시원한 벽에 기대어 몽롱한 정신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에스더가 대뜸 말했다. 

언뜻 들으면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누가 아픈 걸 참으래? 아프면 아픈 거지. 병원에 가든지, 약을 먹든지 해야지.”

“화났어?”

에스더는 성난 얼굴로 인협에게 물컵과 약을 내밀었다. 

“일단 먹어.”

인협은 멀뚱거리는 얼굴로 약과 물을 받아서 그것을 순순히 삼켰다. 

그러고는 컵을 다시 달라고 손을 내민 에스더에게 그것을 내어주었다. 

“왜 찾아온 거야?”

싱크대에서 컵을 씻으려던 손이 인협이 질문하자, 멈칫했다. 그러다가 에스더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을 틀었다. 

“그냥.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하려고 했어. 출근 첫날이잖아. 잘했다는 기념으로 밥 한번 해주고 싶었어.”

“…….”

“바보야, 혼자서 왜 끙끙 앓고 있었어? 병원이든, 약국이든 가야 할 거 아니야. 정 안 되면 우리 집 문이라도 두드리든지.”

“왜 그렇게 화가 난 건데?”

인협의 질문에 컵을 건조대에 올려놓은 에스더가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남들한테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말할 줄 알면서 왜 네가 아프다는 말은 한마디를 못 해?”

“지금 아픈 사람 혼내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인협의 파리한 얼굴을 본 에스더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그래, 지금 내가 아픈 애한테 뭐 하는 거냐. 

에스더는 화를 가득 담은 한숨을 크게 내뱉고는, 인협에게 다가섰다. 

“가자.”

에스더가 손을 내밀자, 인협은 멀뚱거리며 그런 그녀의 손만 내려다보았다. 

“침대에 데려다줄게. 혼자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데, 도움 필요할 거 아니야.”

에스더의 말에 인협은 얼떨결에 그녀의 손 위에다가 제 손을 올려놓았다. 

제법 의지가 되는 에스더의 손에 무게를 실은 인협은 천천히 침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다가 침대에 다다른 순간. 인협의 발이 다른 쪽 발에 걸렸다. 

“어-.”

평소 같았으면 중심을 금방 잡았을 휘청거림이, 열로 인해 힘이 없는 인협의 몸은 그대로 앞으로 쏠렸다.

“어어-!”

그걸 본 에스더는 재빠르게 인협을 부축하기 위해 그의 앞을 몸으로 막아섰으나, 인협의 무게를 못 견딘 그녀는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다행히 두 사람의 상체는 침대에 안착했다. 에스더가 침대에 깔리고, 그 위에 인협이 엎어지듯이 누운 상태로. 

“으윽-.”

푹신한 매트리스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비슷한 체구여도 남자인 인협의 몸은 에스더에게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열감기 때문에 힘이 잔뜩 빠진 채라 그런지, 그의 몸은 유독 더 무거웠다. 

“인협아-.”

“으윽-.”

쓰러지면서 느낀 큰 충격 때문인지 인협은 더 심한 두통을 느끼며 겨우 몸을 가누었다. 

그러다가 힘을 잃은 인협의 고개가 에스더의 어깨에 톡 하고 닿았다. 

두근두근-. 어깨에 닿은 뜨거운 체온과 입김에 에스더는 심장이 세차게 뛰는 걸 느꼈다.

그 순간 제 몸에 닿은 인협의 몸의 느낌이 다 하나하나 인지가 되었다. 단단하고 뜨거운 느낌. 

보기보다 남자다운 몸이었다. 

“일어나.”

이내 정신을 차린 에스더는 안간힘을 써서 허우적거리는 인협을 겨우 밀어내 그의 상체만 겨우 일으켰다. 

그러고는 재빨리 옆으로 굴러서 제 몸을 빼냈다. 

에스더는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고인 땀을 닦아냈다.

“어휴…. 더럽게 무겁네.”

“으으….”

상체만 겨우 침대에 얹고서 신음하는 인협을 본 에스더는 그의 다리를 들어서 그를 겨우 침대에 눕혀주었다. 

에스더를 위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며 겨우 눈을 뜬 인협을 본 그녀는 그의 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에스더는 손을 뻗어서 인협의 눈 위를 덮어주었다. 

“어서 자. 마음 놓고.”

인협이 손을 들어서 그녀의 손 위에 얹었다. 와닿은 체온이 뜨거웠다.

“고마워….”

토닥토닥. 

읊조리듯이 말하고는 에스더의 손을 연달아 부드럽게 두드린 인협은 잠이 들었다. 

스르륵, 하고 인협의 손이 침대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

에스더는 손을 옮겨서 인협의 이마를 짚었다. 아직 약기운이 안 돌았는지 이마는 불덩이였다. 

그 손은 조금 더 올라가 인협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기 시작했다. 

“잘 자.”

부디 꿈꿀 때만큼은 조금이라도 편안하기를. 

불과 몇 시간 전 엿들었던 인협과 그의 부모님과의 대화를 떠올린 에스더는 착잡한 표정으로 잠이 든 인협을 내려다보았다.

***

‘지금 네 실력으로 승급 테스트 중 며칠을 뺀다고?’

‘물어보는 것도 민폐다, 인협아.’

‘아직 어려서 뭘 모르나 보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인협아, 그 정도로 나약한 정신머리 가지고는 정식 선수 못 돼. 아니, 그냥 바로 퇴출이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적. 

열여섯의 인협이 밤새 고민하다가 겨우 꺼냈던 승급 테스트 중 며칠을 빼달라는 말에 정현 감독과 기태는 그를 대놓고 비웃었다. 

훈련생마다 가장 숨 막히는 경쟁을 해야 하는 승급 테스트 기간. 

약간의 성적 하락이 곧바로 퇴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평가의 기간이었다. 

하물며 테스트에 아예 참석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훈련생이 사활을 걸고서 참여하는 때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이미 충분히 병들어있던 팀 내 분위기였다. 

그러나 어렸던 인협은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고서, 별다른 반항도 하지 않고서 순순히 따랐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장례식쯤에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때는 선수 데뷔를 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온갖 대회에 긴장한 채로 매 게임에 출전할 때였으니까. 

어쩌면 팀의 분위기를 그때 알아봐야 했는지도 몰랐다. 조금만 더 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해서 하늘에 계신 조부모에게 효도하면 된다고. 그는 그렇게 되뇌며 버텼었다.

그러나, 효도는 산 사람에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묘소를 찾아도, 그곳에는 아무런 반응도 답도 없을 뿐이었다. 

고요함을 닮은 상실만 있을 뿐.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보다 더 사랑해 주었던 그들의 마지막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문득문득 서글펐다. 

특히나 소원리에 돌아왔을 때, 폐가에 가까운 상태였던 소원리 집의 모습은 그를 한층 더 슬프게 만들었다. 

이제는 결코 되찾을 수 없는 온기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이 가득했던 마음의 고향이었고. 

“할머니….”

‘너만 행복하면 된다, 우리 강아지.’

‘허허허, 우리 인협이. 뭘 해도 멋진 우리 손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음성이 귓가에 반복해서 울렸다. 

너무 따스해서 어른이 된 후에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눈물이 나는 음성이었다. 

어쩌면 사무치는 그리움인지도 몰랐다. 

“미안해….”

‘허허허, 뭐가 미안해! 우리 강아지만 괜찮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됐어!’

“보고 싶어….”

현실과 생생한 기억을 오가던 인협의 머리에 부드러운 손길이 와닿았다.

“괜찮아…. 괜찮아….”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몇 번 넘겨준 그 손길은 어느새 그의 어깨를 천천히 두드려주기 시작했다. 

뜨거운 눈물이 인협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그 감각에 인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곳에는 은은한 침대 맡 스탠드 불빛에 비친 에스더가 눈물 고인 채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스더…?”

천장으로 시선을 돌려서 지끈거리는 머리로 잠들기 전 상황을 떠올린 인협은 다시 에스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약기운이 돈 건지, 아직도 열 기운과 몸이 쳐지는 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정신은 조금 더 말똥했고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괜찮아? 꿈꾸면서 좀 힘들어하는 거 같길래.”

“아….”

힘들었던 걸까. 

그리우면서 달콤하면서도 괴로웠다. 이 복잡스러운 감정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인협은 멍한 눈빛으로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방울을 본 에스더는 인협의 가슴팍에 얹었던 손을 옮겨서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냈다. 

그 손길에 인협은 손을 들어 에스더의 손목을 약하게 붙들었다. 

“…….”

침묵 속에서 둘의 시선이 얽혔다. 

“사실 힘들었어.”

“…….”

“많이 힘들었어.”

아무렇지 않게 잘 견뎌왔다고, 목표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달려온 것뿐이라고. 

그렇게 그는 마음속에 벽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안에서 썩어가는 상처의 악취를 막아내기 위해 그것을 최선을 다해 외면하며. 

그러나, 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언젠가 곪아 터져 나오는 법이었다. 

마음속 벽을 지탱해 오던 힘을 잃고 나자마자, 곪아있던 상처는 일순간에 터져 나왔다.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그렇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승부조작 일로 이미 난도질당했던 인협을 곪아 터져버린 상처가 덮치고 말았다. 

울먹거리며 눈물을 흘린 인협을 지켜보던 에스더는 상체를 인협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몸을 내려서 그의 상체 위에 살포시 포개고 그의 목뒤에 팔을 두르고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지난번, 에스더의 집에서 그를 안았을 때도 느꼈지만 인협은 어떠한 위로의 말보다 온기가 필요해 보였다.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과거의 일쯤은 그냥 좀 토해내도 돼. 

계속 꺼내보고 조금 닳도록 만들어서 아주 조금은 무뎌질 때까지. 

그렇게 계속해서 꺼내보다가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내가 안아줄게. 

그런 마음을 담아 에스더는 눈을 감고서 떨려오는 인협의 몸을 더 꼭 안아주었다. 떨림도 모두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 많이 아팠어. 지금도 너무 아파. 사실 아무것도 괜찮지 않고 다 엉망이야….”

“응.”

“겉으로는 센 척하지만, 나약하기 짝이 없는 놈이야, 나. 겁쟁이라고.”

“응.”

“나는 쓰레기야. 날 사랑해 줬던 할머니 할아버지 마지막 길도 못 지켰어. 내가 성공해야만 했으니까.”

“그랬구나.”

인협은 고해성사하듯이 에스더의 어깨에 대고는 거칠고도 뜨거운 숨결을 쭉 내뱉었다. 

두서없는 고백에도 에스더는 담담히 답해주었다. 

쭉 이어지던 고백이 어느새 잦아들고, 인협의 몸의 떨림도 함께 잦아들자, 방안에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에스더는 천천히 인협을 놓아주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눈가가 젖어있었다. 

“나는 사실 네가 뭐가 됐든, 네가 어떤 사람이었든지 상관없어. 그건 모두 너니까. 그냥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나인협이 내게는 전부야.”

“…….”

“그리고 그 나인협은 조금은 가시를 세우고 있고 서툴긴 하지만, 괜찮아. 꽤 괜찮은 사람이야.”

“…….”

“너, 괜찮아. 그리고 아파해도 괜찮아. 충분히 안 괜찮고 아플 만한 일이야. 나는 네가 살아왔던 시간을 감히 다 알 수 없지만, 네가 그렇다면 그런 일인 거야.”

에스더의 차분한 음성에 인협의 두 눈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이 몇 방울 흘렀다. 

에스더는 또다시 손을 뻗어서 엄지손가락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 흘려. 그간 눈물 참느라 고생했겠네. 언제든지, 얼마든지 닦아줄게.”

“…….”

에스더는 입꼬리만 살짝 올려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듯해 보였다.

마치 제 눈에 비친 인협의 두 눈에 담긴 슬픔을 고스란히 전해 담은 듯이. 

인협은 조용히 팔을 옆으로 뻗어서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

“옆에 있어 주면 안 돼?”

어린아이 같은 인협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에스더는 이내 그의 옆으로 향했다. 인협은 몸을 옆으로 돌려서 최대한 벽 쪽으로 붙어서 자리를 내어주었다. 

한쪽 팔을 받치고서 옆으로 누운 채로 그를 응시하던 에스더는 이내 반대편 손을 뻗어서 중간에 놓여있던 인협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조금 전처럼 그의 손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편하게 자. 내가 옆에 있으니까 단잠 잘 거야.”

“응.”

에스더의 나지막한 음성에 인협이 눈을 살포시 감았다. 순순한 그 모습에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내가 좋은 꿈 보내줄 테니 꼭 좋은 꿈 꿔.”

“응.”

 

이내 인협의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에스더의 토닥이던 손길이 점점 잦아들었다. 

“잘 자, 나인협.”

그녀는 제 손보다 큰 손을 부드럽게 붙들며 인사를 했다. 곤히 잠이 든 인협의 얼굴은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랑끗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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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가기 싫다.”인협은 에스더가 지내는 방 안 침대에 누운 채로 칭얼거렸다. 그런 그의 옆에 마주 누운 채로 바라보던 에스더는 피식 웃고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어여 가.”“싫은데….”인협은 오히려 에스더에게로 거리를 좁혀올 뿐이었다. “어쭈?”“아니, 좀 아깝잖아.”“도대체 뭐가 아까운 거지?”늦은 저녁 시간. 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협은 이내 에스더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제 품 안에 꽉 가둬버렸다.“아, 나인협! 숨 막혀!”“이렇게 안고만 잘게.”“이거 놔라!”인협과 에스더의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이내 그의 등짝에 에스더의 매서운 손이 꽂혔다.짝! 그의 등짝에서 찰진 소리가 나며 인협은 에스더를 놓아주었다.“아으윽!”“그러게. 놓으라니까!”인협이 알싸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에스더는 재빠르게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너무해….”“은근슬쩍 이러는 네가 더 너무한데.”에스더의 반격에 인협은 입술을 내밀고 있다가 그대로 고개를 침대에 묻어버렸다. 팔짱을 끼고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스더는 그러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잠시 표정을 풀었다.“많이 아파?”“쪽팔려.”“뭐가?”침대에 고개에 묻은 채로 고개를 저은 인협이 고개를 다시 번쩍 들었다.“깜짝이야.”“본능 하나 어쩌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이러고 있는 내가 쪽팔려서 그래.”“…….”인협의 솔직한 고백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뻔한 에스더였다. 그러나 재빠르게 표정 관리를 하고서 무표정을 유지했다.“뭐, 그럴 수 있지. 내가 워낙 매력적이니까.”“응.”어라, 웃자고 한 소린데. 에스더의 말에 인협은 더 울상이 되고 말았다. “네가 너무 매력적인 게 문제야.”“…….”조금 전까지만 해도 멋있는 모습으로 기자회견에서 자기 이야기를 잘도 하더만. 화면 속에서는 그렇게 대단하고 커 보이던 사람이. 핸드폰 속 인협을 보며 에스더는 새삼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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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협 선수 부모님 빚투 건은 어느 정도 이렇게 넘어가지는 것 같네요.”“아직도 여론이 반반쯤 되는 것 같습니다. 한번 확 뒤집어줄 이슈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요.”“그러게요.”우겸과 변호사는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우겸은 잠시 생각에 깊이 잠긴 채로 앉아 있다가, 무언가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떴다.“인협 선수, 남동생이 있다고 했죠?”“네.”“그 동생을 한번 포섭해 볼까요? 그분이 목소리를 좀 내주면, 인협 선수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양날의 검이죠. 만에 하나 남동생 측이 인협 선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면 반대가 될 수도 있고요.”“아하…. 그러네요.”“숱한 케이스를 봐오며 느낀 건, 뭐든 저희가 생각하는 정상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고로, 인협 선수 동생도 일반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죠?”“네, 맞습니다.”“…….”변호사의 말에 우겸의 얼굴이 한결 진지해졌다. “너무 대놓고 접근하지 않고 적당히 떠볼 방법이 없으려나….”“글쎄요.”두 사람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 봉길 감독님을 한번 보내보죠.”“네? 곧 신생팀 감독을 맡게 되실 분이요?”우겸의 제안에 변호사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언론에 많이 노출도 안 되어서 적당히 인협 선수 지인인 것처럼 접근해서 떠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흐음….”“이 방법도 어느 정도의 리스크가 있긴 한데, 다른 방법보다는 좀 더 나을 거 같네요.”“그렇긴 하죠.”“그럼, 일단 이 방법으로 가볼게요.”우겸은 무언가 결심한 듯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정렬의 집 앞. 또다시 반찬을 들고 그곳을 찾은 지혜가 현관문에다가 노크를 하고 있었다. 초인종을 몇 번 눌렀음에도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똑똑똑.“계세요? 정결이 어머니-.”기탁의 아내 지혜의 두드림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정렬과 아이들이 그녀의 집에서 지내게 된 지는 벌써 두 주째. 며칠에 한 번씩

  • 웰컴 투 소원리   62. 천천히 함께 가보자

    작은 기자회견장. 그곳에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서 인협이 강대상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이곳은 우겸이 인맥을 동원해 깔아준 판이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케이비팀 소속이었던, 나인협 선수라고 합니다.”억울하게 누명을 쓴 직후에 이곳에 서는 걸 얼마나 꿈꿨던가. 인협은 제게 시선을 집중한 채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든 기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들은 특종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얼굴로 인협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저는 케이비팀 승부조작에 가담한 적이 없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직접 그 증거들을 보여드리려 합니다.”우겸이 미리 공수해 두었던, 케이비팀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이들과 원티드 스폰서 측에서 주고받았던 문자 캡처본, 태우를 통해 만들어둔 녹취록, 그리고 정현과 모비팀 감독이 멱살을 잡고서 실랑이를 벌이던 장면까지. 그 외에도 자잘한 증거들은 더 많았다.인협이 증거들을 공개할 때마다 기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네, 보시다시피 저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승부조작을 하는 이들로부터 배척받았었고요. 지속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었습니다.”인협이 차분하게 입장표명을 이어가자, 한 기자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네, 말씀하세요.”“그렇다면, 왜 이렇게 뒤늦게서야 이 모든 입장을 밝히고 증거들을 밝히시는 건가요? 지금 반년이 좀 넘게 지난 거로 알고 있는데요.”“그건….”인협이 컨펌을 받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은 우겸을 바라보자, 바로 옆자리에 앉은 변호사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눈 그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협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도 팀의 승부조작에 대해 심증만 있었을 뿐, 이렇다고 할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요.”“정확히 어떤 협박이 있었죠?”찰칵찰칵. 시간이 지나며 좀 잦아들었던 플래시 세례가 다시 시작되었다. “일단 공식적으로 어떠한 발언이라도 하면 소송을 걸

  • 웰컴 투 소원리   61. 너 놀리는 재미에 산다니까

    “여기가 나인협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이란 말이지.”모자를 푹 눌러쓴 기태는 경기도 어느 외곽에 위치한 식당 외관을 쭉 훑어보았다. 3층짜리 초대형 건물이었으나,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기태는 의아해하며 핸드폰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분명히 정현이 알려준 주소였다. “나 같으면 부모님 식당이나 집이라도 정리해서 소송이라도 제대로 걸었을 텐데. 미련한 놈….”기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현이 보내줬던 인협의 부모님에 대한 정보는 놀라웠다.족히 10억은 넘는 브랜드 아파트에,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이었다. 이 정도의 재력이 있는, 아니면 인협을 통해 부를 쌓았을 부모가 왜 인협이 궁지에 몰렸을 적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의아해진 그였다.보나 마나, 그 고지식한 놈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했겠지.세상 물정 하나 모르던 인협은 이전부터 늘 기태의 심기를 거슬렀다.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실력은 좋고 성실해서 알려진 것도 싫었고, 미련할 정도로 올곧은 게 보기가 싫었다. 꼭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인협은 묵묵하고 우직했다. 기태와는 다르게. 약간의 괴롭힘에 인협이 흔들렸다면, 기태는 그를 비웃고는 적당한 때 관뒀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고고하고 꼿꼿했던 인협의 모습은 기태의 승부욕을 건드리고 말았다.그의 올곧음은 굽은 기태에게 거슬리는 걸림돌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고고하게 굴 수 있나 보자. 그렇게 하면서 기태는 속으로 되뇌었다. 사실 승부조작으로 얻게 될 돈에도 솔깃했지만, 동시에 이런 나락으로 자빠뜨리면 잘난척하는 인협의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 있을까 싶은 호기심도 컸다. 결과적으로 그 호기심은 기태를 잡아먹고 말았지만 말이다.“나인협 그 자식이 적당히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왔을 텐데.”인협의 경우에 승부조작 이슈를 크게 키우지 않아 경찰에게까지 넘어가지는 않았었다. 수사가 진행되면 진실이 파헤쳐질 거라는 생각에 정현이 내린 조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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