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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쌍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4 08:29:35

방 안에는 한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그의 검은 머리카락 위로 희미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남자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채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그 남자를 바라본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이 남자는...뭔데 이렇게 잘 생겼어?'

또렷한 이목구비와 차갑게 내려앉은 눈매.

평민인 내가 평생 살면서 쉽게 볼 수 없을 것 같은 외모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집사에게 물었다.

"...저분이 카시안 백작님인가요?"

"예."

요리보고 저리보고 다시봐도,

너무 젊어!!

'내 나이 또래 같은데 백작이라니...'

카시안은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신성력을 사용할 줄 안다고 했나?"

"...네? 저 말씀이신가요?"

"그래, 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아니, 언제 봤다고 반말을 하세요? 나이도 딱히 많아 보이지도 않는구만."

"...말이 안통하는군. 보아하니 평민인거 같은데, 귀족에대한 예의도 안 배웠나?"

"......"

칫, 계급 사회다 이거지?

병 고쳐주러 온 사람에게 저런 태도를 보여도 되는 거야?

조금 전까지 잘생긴 얼굴에 감탄했던 내 자신을 속으로 반성했다.

잘생기면 뭐하나.

성격이 저 모양인데.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네까짓게 내 두통을 고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저 고약한 카시안의 말투에 슬그머니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제 신성력으로 백작님의 병을 고쳐 드리죠."

나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백작님께서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셔야 합니다."

"...뭐?"

카시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나는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신성한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성을 보여야 하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여기 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시라고요. 병을 고치고 싶으면."

"......"

카시안은 약간 난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꼭 무릎을 꿇어야 하나?"

"네. 안 그러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굳이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것은 카시안의 태도가 괘씸했기 때문이었다.

카시안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군말 없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세상 누구보다 불쾌해 보였다.

"이제 됐나?"

"이제 됐죠."

나 역시 카시안의 맞은편에 앉아 두 무릎을 바닥에 붙였다.

"만약 네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하! 별로 궁금 하진 않지만... 어, 어떻게 되죠?"

"귀족을 우롱한 죄. 그리고 신성 모독 죄. 결코 죄가 가볍지 않을거다."

"흥! 저랑은 상관 없는 일이네요."

난 성녀니까!

"그럼 이제부터 신성한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신이시여. 지금 제 앞에 있는 카시안 백작님의 병을 낫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기도가 끝나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카시안을 바라보았다.

"다 나았죠?"

"...지금 나랑 장난하나?"

"장난이라뇨? 전 진심으로 기도 했습니다."

카시안은 답답한 듯 눈을 질끈 감더니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너, 신성력을 사용해 본 적이 없지? 애초에 다 거짓말이었나?"

"네?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무 효과도 없는 거야?

카시안의 얼굴이 점점 싸늘하게 변했다.

"에드먼."

"예, 백작님."

"이 여자를 지하 창고에 가둬 놔. 내가 직접 죄를 심판하겠다."

"알겠습니다, 카시안님."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만요! 진짜에요! 제가 기도로 마리도 살렸고! 제 손가락도 치유 했다고요!"

카시안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끄러우니까 얼른 끌고 가."

나는 집사의 손을 뿌리치고 카시안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매달렸다.

"제발 제 말 좀 들어 보시라니까요?"

나는 열심히 카시안에게 매달렸고, 집사는 나를 끌어내내기 위해 잡아당겼다.

서로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다가 결국 내 발이 엉키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이봐! 지금 뭐하는...윽!"

"어? 어어?"

콰당!

순식간에 카시안의 몸이 뒤로 기울더니 내 몸이 앞으로 넘어졌다.

카시안 역시 나를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

"......"

나는 몇 초 동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시안 역시 그대로 굳어 있었다.

서로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아니,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입술이 닿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마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카시안 역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는 이상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뭐야, 이게!'

내 첫 키스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얼빠진 상태로 허공만 바라봤다.

"하아...진짜 정신나간 여자군."

카시안은 아무렇지 않은듯 가볍게 일어나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러다 순간 멈칫했다.

"잠깐...두통이...?"

"죄송합니다, 카시안님. 당장 가둬 놓겠습니다."

"... 그냥 보내줘."

"예? 그냥 돌려보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저런 미친여자 그냥 밖으로 쫓아버려."

"알겠습니다."

"...내 첫키스가...이럴리 없어...으어..."

나는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집사에게 끌려나와 저택 밖으로 쫒겨났다.

"아가씨, 백작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가십시오."

"...으어...내 첫 키스가..."

그 뒤로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기억 나는 것은.

모르는 남자에게 첫 키스를 잃었다는 것뿐...

하아,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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