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카시안 백작의 저택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나는 카시안의 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식재료를 하나씩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야채는 이 정도면 됐고...고기랑 과일만 사면 되겠다." 나는 바구니 안을 확인하며 시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와하하하!" 콰당-! 갑자기 어린 남자아이가 내 옆을 쌩 달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앙!!" 아이가 넘어져 울고 있었지만, 시장 사람들은 누구 하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가 한 번씩 힐끔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 광경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흐어엉...아파요..." 아이의 무릎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누나가 안 아프게 해줄게." 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앉힌 후,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손바닥에 침을 뱉고 아이의 무릎에 올렸다. 그 다음, 아이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한 손을 허공에서 요란하게 움직였다. "짜라라라란~ 슈우우우욱! 호롤라이유!!" 잠시 후, 조금 전까지 아이의 무릎에 선명하게 남아 있던 상처가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아이는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 안 아파요!" 나는 슬쩍 손을 거두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잘 됐다. 이제 혼자 일어날 수 있겠지?" 아이는 씩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누나 고마워요!" "그래. 이제 뛰어다닐 때 조심해." "네!" 아이는 해맑게 대답한 뒤,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 저러다 또 넘어지면 어쩌려고." 나는 아이가 여자에게 달려가 손을 붙잡는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고기부터 사러 가 볼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시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고기를 파는 가게는 시장 안쪽에 있었다. 평소에도 몇 번 찾아갔던 곳이었기에, 나는 익숙한 길을 따라 골목 사이로 걸어갔다. "음, 오늘 점심은 어떤 요리를 해볼까나."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골목 모퉁이에 들어선 순간, 꽝! "...어?" 무언가가 내 머리에 세게 부딪혔다. 정확히 무엇에 부딪힌 것인지 확인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띵해지며 눈 앞이 흐려졌다. "으으..." 낯선 남자들의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난 바닥에 쓰러졌다. --------------- "...으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눈앞이 흐릿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낯선 천장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긴?" 나는 멍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시장에 있었다. 카시안의 저녁 식사에 필요한 고기를 사러 가던 중이었고, 골목 모퉁이를 돌았을 때 머리에 강한 충격이 있었던 것까지는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보는 낯선 건물 안에 누워 있었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고, 굳게 닫힌 창문 사이로는 햇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에는 낡은 나무 상자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정교하게 쌓여 있었다. '...창고?'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팔에 힘을 주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으윽?" 두 손이 등 뒤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놀란 나는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상황은 손목뿐만이 아니었다. 두 다리까지 움직이지 못하도록 밧줄로 묶여 있었고, 아무리 힘을 줘도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고 손목을 움직여 보았지만, 밧줄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조여져 있었다. '서, 설마...납치당한 거야?' 갑자기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왜? 대체 누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을 다시 살폈다. 혹시라도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까 싶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무 상자들과 닫힌 창문뿐이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이익. 낡은 문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문밖에서 몇 명의 남자가 차례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남자들은 험악해 보이는 외모에 하나같이 무표정하거나 인상을 쓰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누, 누구세요? 저,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내가 다급하게 묻자 남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중,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까 시장에서 어린아이를 치료 했다고 들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분명히 봤어." 뒤에 있던 한 남자가 나를 가리키며 앞으로 나왔다. "이 여자가 만지니까 피를 흘리던 아이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완전 대박이지?" 그 말에 남자들은 좋다고 낄낄 거렸다. 그건 마치 나를 비싼 값에 어딘가로 팔아 넘기려는 악당들의 웃음소리였다. 나는 점점 창백해지는 얼굴로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오, 오해를 하신게 아닐까요? 전 그저 평범한 여자에요!" 남자는 내 표정을 보더니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제대로 찾은 것 같군."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니, 오해라니까요! 오해인지 아닌지 제가 상처를 만져보면 알겠네요? 상처 있으신 분? 제가 손으로 어루만져 보겠습니다! 그럼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죠?" "시끄러워! 한마디만 더 하면 그 입을 막아버리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흐음~그나저나 얼굴이 꽤 예쁘장하군. 흐흐." 순간 남자 한명이 비열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 잠깐만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나는 크게 발버둥 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하지 마...윽...차가워?" 차가운 무언가가 내 얼굴에 닿았다. 슬쩍 눈을 떠보니 그 남자는 내 얼굴에 팩을 바르고 있었다. "이게 요즘 나온 신상인데, 예쁜 얼굴 관리하려면 이게 필수야. 주름 개선에 기미, 잡티까지 없애준다고. 어때? 관심있으면 싸게 해주지." "아...관심 없어요." "그래? 아쉽네." "그보다 저를 왜 납치한 거예요?" 남자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팩을 바르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도련님께 상처가 있어." "...도련님?" "그래." "그게 저를 납치한 거랑 무슨 상관이죠?" "혹시 네가 우리 도련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데려온 거다." "그런 이유라면 정중히 데려오셔야죠! 이렇게 사람 기절시켜서 납치하는 건 범죄라고요!" "그건...미안하군. 우린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택했을 뿐이야." "이거나 풀어줘요! 그리고 그 도련님은 어딨는데요? 상처는 어느정도죠?" 그때였다. 문밖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방 안에 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험악하게 변했다. 나는 묶인 채로 굳어 버린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문 쪽을 바라보았다. 곧, 문이 쾅! 박살나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접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레오넬은 이에노스에 가겠다는 말을 꼭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녀가 다가와 레오넬과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오스틴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에노스에 가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오스틴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다시 썼다.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건지부터 말해." "......" 나는 찻잔에 코를 박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쩌려고요, 황자님!! "자네 다리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황궁의 의원들이 줄줄이 다녀가는 것도, 신관들이 기도하는 것도 옆에서 다 봤으니까." 오스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탁자 모서리를 꾹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휠체어에 앉아 있던 사람이, 지금은 잘도 걷는군." "......" "설명해 주게, 레오넬." 레오넬은 오스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몹시 놀란 얼굴이군, 오스틴." "당연하지." "오스틴, 자네는 기적을 믿나?" "...기적?" 오스틴은 한참동안 레오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나에게로. "......" 나는 얼른 고개를 들고 자연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 그냥 차 마시는 중이에요. 쳐다보지 마세요. 꿀꺽. "아, 뜨거! 켈록, 켈록." "......" 카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잡한 얼굴로 찻잔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레오넬은 기적이라 하고, 오스틴은 의아해하고, 카시안은 입을 다물고, 나는 혀를 데었다. 셋 다, 아니 넷 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침묵이었다. "...기적이라." 이윽고 오스틴이 작게 중얼거렸다. "...뭔가 있긴 있군. 일단 그렇다고 해 두지." 오스틴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다시 안경을 고쳐 썼다. 레오넬은 작게 헛기침을 한 후
"...황자님.""예.""그럼 다리가 움직이면, 에단님을 도와주실 수 있는 거예요?""......"레오넬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물론입니다."그리고 담요 위에 놓인 두 손을 모았다."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너무 진지한 목소리였다. 장난처럼 넘길 틈도 없이."그, 그럼 시작하겠습니다..."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휠체어 앞으로 다가갔다.'으... 괜히 긴장되네...'지난번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때는 진흙탕 한가운데였고, 등 뒤에서 함성이 들렸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햇빛이 쏟아지는 조용한 방이었다.창밖의 새소리까지 다 들렸다. 내 심장 소리도.나는 휠체어 앞에 쪼그려 앉아 레오넬과 눈높이를 맞췄다.레오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촉하지도,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준비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그 눈이 너무 가까워서, 결국 내가 먼저 눈을 질끈 감았다.쪽.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천천히 눈을 뜨자, 레오넬이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붉어진 얼굴로.그때, 레오넬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구두 끝이 바닥을 더듬듯 움직였다.레오넬은 팔걸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담요가 바닥으로 스르르 미끄러졌다.그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햇빛이 고인 바닥 위에 멈춰 섰다."......"레오넬은 한동안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일어섰던 그날처럼, 아주 신기한 것을 보는 얼굴로."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나는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들고, 괜히 코끝을 문질렀다.레오넬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고맙습니다, 영애. 이제 오스틴에게 가 봐야겠습니다."--------------같은 시각, 응접실."그래서 반란군의 병력은 얼마나 되던가?""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로웬을 함락할 만큼은 됐겠지요.""흠. 로웬이라."오스틴은 안경을 고쳐 쓰고, 탁자 위에 펼쳐 둔 지도를 손가
해가 중천에 걸릴 무렵,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백작님." 마부가 문을 열었다. 나는 카시안의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리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와." 반듯하게 깎인 정원수.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깔린 돌길. 창문마다 똑같은 높이로 걷힌 커튼. 그 정교함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군, 카시안 백작." 현관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콧등에 걸친 둥근 안경.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셔츠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오랜만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오스틴이 내민 손을 카시안이 부드럽게 잡으며 악수를 나눴다. "서신이 무례했지? 사정이 급해서 그리 썼으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괜찮습니다." 그리고 오스틴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 왔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나를 차분히 훑었다. 머리부터, 드레스, 그리고 손끝까지. "이분이 사촌 동생인가?" "아, 안녕하세요." 나는 최대한 우아하게 치마 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연회 때 수십 번 연습했던 그 인사였다. "반갑습니다, 영애. 오스틴 레브란트라고 합니다." "아, 아이린입니다!" 오스틴은 내 인사에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사람, 웃고 있는데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선한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 보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지." 나와 카시안은 오스틴을 따라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택 안 응접실로 안내받은 우리는 고급스러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책장의 책들은 키 순서대로 꽂혀 있었고, 탁자 위의 꽃병은 정확히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음, 이 저택에서 일하는 건 굉장히 피곤할 것 같아. 그때, 하녀가 소리 없이 차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은은한 꽃향기가 김을 타고 피어올랐다. "레브란트에서 나는 찻잎일세.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향이 좋네요." 나는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새끼
루텐부르크 영지, 칼튼 상단의 집무실. 사각, 사각. 에단은 서류 더미 사이에서 펜을 굴리고 있었다. "후... 지루하네." 에단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카르디아 영지 쪽 하늘이었다. '누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벌컥! 순간, 집무실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도, 도련님!" 상단 직원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손에는 서신이 들려 있었다. "...노크하는 법도 잊어버린 건가?" "죄,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건이라..." "뭔데 그러지?" "그, 그게 이에노스에서..." "이에노스?"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병에 걸린 이에노스 사람들이... 몸이 굳어서 쓰러지고 있답니다. 팔이며 다리며, 하룻밤 새 수십 명이..." "역병이 그런 병이었나?" "아닙니다. 다들... 성수를 마셨답니다." "...성수?" "예. 칼튼 상단 깃발을 단 마차에서 샀다고 합니다." 집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우린 이에노스에 그런 걸 보낸 적 없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내밀었다. "버려진 병마다, 저희 인장이 찍혀 있었답니다. 벌써 황도에도 소문이..." 에단은 서신을 받아 들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표정이 지워졌다. 상단 인장. 성수. 이에노스. 쾅! 에단은 한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런, 젠장. 당했어." 에단의 머릿속에 연회장에서 이에노스 이야기를 꺼내던 아르덴 공작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 뭘 말입니까?" "아니야." 에단은 서신을 신경질적으로 구겼다. 다그닥, 다그닥. 그때, 창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칫, 벌써 온 건가." 쿵, 쿵, 쿵.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도, 도련님.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손님 맞을 준비해야지." 에단은 구겨진 서신을 서랍에 밀어 넣고,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했다. 벌컥. 이번에도 노크는 없었다. 황실 문장을
동이 틀 무렵, 크로이츠는 병사들과 함께 진영으로 돌아왔다. 검 끝에 묻은 피는 이미 검게 굳어 있었다."...후, 토벌군도 꽤 하는군."카시안이 이끄는 토벌군은 결국 퇴각했다. 기습은 날카로웠지만, 적은 병력으로 반란군을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다."크로이츠 님."부관이 굳은 얼굴로 크로이츠에게 다가왔다."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황자가... 사라졌습니다."크로이츠의 걸음이 멈췄다."...뭐?""천막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격리해 두었던 그 여자도 보이지 않습니다.""...보초병은 뭘 하고 있었지?""여기 데려왔습니다."병사 둘이 한 남자를 끌고 왔다. 황자의 천막을 지키던 보초였다. 그는 크로이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말해. 무슨 일이 있었지?""그, 그게... 습격이 시작되자 황자가 도망치려 해서 붙잡았습니다... 그, 근데 갑자기 역병에 걸린 그 여자가 나타났습니다.""......""기침을 막 하면서... 크로이츠 님께서 이쪽으로 가라고 하셨다고... 그래서 저는 역병이 옮을까 봐, 그만...""내가?"크로이츠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내가 언제 그런 명령을 내렸지?"보초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크로이츠는 말없이 황자의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진흙탕 한가운데에 텅 빈 휠체어 한 대가 기우뚱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진흙 위로, 숲을 향해 나란히 찍힌 두 줄의 발자국.하나는 작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틀거리며 끌리듯 찍힌 남자의 발자국이었다."......"걸을 수 없는 황자가, 휠체어를 두고 사라졌다.길을 잃었다던 여자. 식량을 훔치려 했다던 여자. 역병 환자 흉내를 내던 여자. 오빠를 찾으러 왔다던 여자.그 여자가, 자신의 이름까지 팔았다.뿌드득.크로이츠가 쥐고 있던 검 손잡이에서 소리가 났다."...감히 날 속였구나.""예?""그 여자를 찾아라. 제국을 다 뒤져서라도 내 앞에 데려와!"---------------
"물 온도는 어떻습니까?""아주 좋아. 역시 대부호 상단의 후계자라 그런지, 저택에 이만한 온천이 있다니. 대단하군."레오넬과 에단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에 앉아 피로를 풀고 있었다.정확히는 탕의 양쪽 끝에,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과찬이십니다. 상단 일로 지친 몸을 풀려고 만든 곳이죠.""그대도 지칠 때가 있나 보군.""요즘은 꽤 자주 지칩니다. 누나 덕분에.""......"온천물 흐르는 소리만 졸졸 울렸다.레오넬은 물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발끝이, 무릎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다.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각이었다.에단의 시선이 그 움직임을 조용히 따라갔다."...정말 다리가 나으셨군요.""그래, 정말 믿기지 않는군.""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에단이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김 사이로 드러난 왼쪽 뺨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 대신 매끄러운 피부만 남아 있었다.레오넬의 눈이 그 뺨에 잠시 머물렀다.에단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제 왼쪽 뺨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어떤 의원도 고치지 못했죠.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습니다.""...설마 영애가?""예. 그래서 잘 압니다. 누나가 가진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에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 힘이 알려지는 순간, 누나는 더 이상 평범하게 살 수 없을 겁니다. 아르덴 공작은 성수를 만든 자를 찾고 있고, 반란군도 마찬가지예요.""알고 있네.""그럼 묻겠습니다. 황궁으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아니."레오넬의 대답은 짧았다."황궁으로 돌아간다면, 다들 묻겠지. 어떻게 반란군 진영에서 도망쳤는지.""......""그 질문의 끝에는 영애와 자네가 있을 거고."에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영애가 나를 구하려고 무엇을 감수했는지 알고 있네. 그러니 내가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어.""...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에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당분간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