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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서해원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그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강시후가 손을 써둔 덕분에 서해원은 평생 차가운 감옥 안에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썩어 살게 될 터였다.하지만 그는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다.서해원의 최후가 여전히 너무 가벼운 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는 허은채를 찾아갔다.그녀가 세강 그룹에 입사해 일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허은채는 그를 한참 동안 묵묵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5년 뒤, 조현우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가게를 차렸고 허은채는 그 개업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나는 강시후의 곁에서 10년을 함께했고 허은채 역시 세강 그룹에서 10년 동안 일했다.그 긴 세월 동안 강시후는 미친 듯이 일에만 파묻혀 살았고 그와 한미애는 내 이름을 내건 자선기금을 각각 설립하기도 했다.그 10년 동안 그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텅 빈 신혼집을 지키며 나와 똑같이 유령처럼 살아갔다.내가 그를 향한 원망을 거두고 모든 걸 내려놓으며 마침내 무감해지기까지 걸린 시간도 딱 10년이었다.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그 사이 허은채는 눈부시게 성장해 업계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었고 세강 그룹의 법무팀 총괄 이사 자리에 올랐다.나는 예전에 작고 소심하기만 했던 그 어린 소녀가 이제는 누구를 상대하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으면서도 진심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다만 그녀는 강시후에게만큼은 늘 쌀쌀맞게 대했다.한때 허은채가 강시후의 약혼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그 소문은 이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강시후는 자신의 약혼녀는 오직 한 사람, 바로 심유나뿐이라고 말했고 허은채는 눈을 흘기며 그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일축했다.나중에 인터넷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만약 그녀가 당신에게 남긴 유물이 살아 숨 쉬는 사람이라면 어쩌지?]10년 동안, 허은채는 강시후가 내 무덤을 찾아오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매년 내 기
서해원은 꽁꽁 묶인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녀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강시후를 올려다보자 강시후는 그녀의 앞에 서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네가 나를 돌보고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네가 나를 구해준 거라고 착각했었지. 하지만 몰랐어, 그게 내 목걸이를 훔치려다 내가 깨어나자 간호하는 척 시늉을 한 것뿐이었다는 걸. 내가 바보였어….”그때 흉측하게 침을 흘리는 노숙자 몇 명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사내들의 탐욕스러운 눈빛은 당장이라도 서해원의 옷가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서해원은 공포에 사로잡혀 온몸을 파르르 떨며 악을 썼다.“강시후! 나한테 이럴 순 없어! 평생 사랑해 주겠다던 그 말 잊었어? 세상에서 제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했잖아!”그녀는 발버둥 치려 애썼지만, 의자에 묶인 손목에는 깊은 붉은 자국만 파고들 뿐이었다.강시후는 텅 빈 눈빛으로 그녀의 악쓰는 소리를 무시한 채, 냉랭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너를 사랑해? 성대한 결혼식?”그는 낮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는 끝없는 비참함과 후회가 가득 담겨 있었다.“심유나…. 그 여자야말로 내가 평생을 바쳐 사랑해야 할 사람이었어. 네가, 바로 네가 이 모든 걸 박살 낸 거야!”그는 공포로 일그러진 서해원의 얼굴을 훑어보며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내뱉었다.“너 폐소공포증 있다고 했지? 피해자 시늉하는 거 좋아하잖아? 오늘, 진정한 절망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겪게 해줄게.”그는 몸을 돌려 이제는 서해원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노숙자들을 향해 말했다.“저 여자는 너희들 마음대로 해. 단, 명심해. 절대 곱게 죽게 두지는 마.”노숙자들이 천박하게 낄낄거리면서 해원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서해원은 찢어질 듯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으나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나는 곁에 둥둥 떠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지만 통쾌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할 뿐이었다.강시후가 가장 극단적이고 잔인한 방
삶은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그저 내 영혼이라는 유령 하나가 더 늘었을 뿐.한미애가 출국한 이후, 서해원은 강시후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다만 무슨 속셈인지 강시후는 그 신혼집을 처분하지도 않았다.나도 차라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하지만 어째서인지 내 영혼은 강시후의 곁을 벗어날 수 없었다.그나마 다행인 건 강시후가 서해원과 이렇다 할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강시후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야근을 밥 먹듯이 하더니 서해원이 몸을 밀착해 오는 것조차 끔찍이 꺼렸다.서해원이 야한 옷을 걸치고 유혹할 때마다 그는 업무를 핑계로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그럴 때마다 서해원은 분통이 터져 발을 동동 굴렀다.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더 이상 허은채를 괴롭히지 않았다.강씨 가문의 막강한 세력을 생각하면 그가 마음만 먹었어도 허은채는 한경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아마 한경 밖으로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나는 계속 강시후의 곁에 머물렀다.그는 업무를 처리한 뒤 피곤에 지친 몸으로 소파에 기대어 창밖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하지만 액정 화면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다시 집어넣었다.차에서 내린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며 나는 그가 도우미에게 묻는 목소리를 들었다.“해원이 어디 있어요?”도우미는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대답했다.“해원 씨는 홈시어터룸에서 영화 보고 계세요.”강시후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아니, 해원이를 어떻게 거기에 들여보내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곧바로 홈시어터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새로 들어온 도우미는 서해원에게 폐쇄공포증이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강시후의 저택 지하에는 주차장뿐만 아니라 헬스장과 홈시어터룸도 있었다.비록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사방이 꽉 막힌 밀폐된 공간이었다.그는 서해원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덜컥 겁이 났다.하지만 홈시어터룸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안에서 들려오는 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강시후는 경호원들에게 허은채를 내려놓으라고 손짓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재수 없게 진짜. 연기도 이 정도면 진상이야, 연기 대상이라도 줘야겠네.”허은채는 차가운 바닥에 웅크린 채 강시후의 추궁에 쓴웃음을 지었다.“강시후 씨, 변호사님 진짜 죽었어요. 서랍에 화장 동의서에 서명한 것도 있어요. 장례식장에서 전화했는데 그쪽이 서해원이랑 놀아나느라 전화를 안 받아서... 결국 회장 사모님께서 직접 나서서 서명했어요. 안 믿기면 전화해서 물어보세요!”강시후의 안색이 험악해졌다.서해원은 교태를 부리며 코를 감싸 쥐었다.“어머, 어머님도 참. 어떻게 유나 언니랑 짜고 이런 짓을…. 어떻게든 시후 씨 마음 흔들려고….”“입 닥쳐!”강시후가 매섭게 서해원의 말을 잘랐다.처음으로 서해원의 붉어진 눈시울을 외면한 채, 그는 몇 년 만에 자발적으로 어머니 한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는 쏘아붙였다.“이렇게 판을 크게 벌인 이유가 결국 내 고집을 꺾고 심유나랑 결혼하게 만들려는 거잖아요. 그럼 심유나는 어디 있는데요?”강시후의 귀에 한미애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네 눈앞에 있잖아, 못 봤니?”강시후의 동공이 극도로 수축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유골함을 바라보았다.“거짓말 마세요...”한미애는 뭔가 웃기는 소리라도 들은 듯 비꼬는 투로 말했다.“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해? 그럴 필요도 없지.”“생각해 보면 나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았어. 멀쩡한 집안의 귀한 딸이 너한테 시달리다 결국 목숨까지 잃었으니 말이야.”강시후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그만 좀 해요! 엄마는 맨날 심유나가 엄마 목숨 살려줬다고 유세지만, 해원이도 나 살려줬다고요! 옛날에 엄마가 외국 나가 있을 때 내가 한경에서 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작은 방에 갇혀서 반쯤 죽을 뻔했을 때, 해원이가 내 앞에 나서서 나를 구해줬다고요!”“엄마가 우리 헤어지라고 닦달만 안 했어도 해원이가 납치당할 일도 없었고 폐쇄공포증 같은 거 생기지도
나는 임신 중이었다.나는 평평한 아랫배를 쓸어내렸다. 그곳에는 하나의 생명이 싹트고 있었고 그 아이는 내가 강시후에게 안겨주고 싶었던 깜짝 선물이었다.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소리도 없이 바닥에 부딪혔다.한편 강시후는 떨리는 손으로 그 임신 진단서를 집어 들었다.그는 입술을 바짝 깨물었고 눈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이를 갈며 내뱉는 강시후의 목소리를 들었다.“심유나 비서니까 당연히 그년을 감싸겠지. 지금 죽은 척하는 거잖아? 그 난리를 쳐 가며 대단한 쇼를 벌인 게, 기껏 나랑 결혼하려고 한 짓 아니었어?”“허은채, 심유나랑 한통속으로 놀아나는 넌 한경대 다닐 자격도 없어. 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당장 심유나 기어 나와서 해원이한테 사과하라고 해. 안 그러면 퇴학당할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네 가족들이 널 애타게 찾는다던데, 눈물겨운 가족 상봉을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 나는 멍한 상태로 그 말을 곱씹었다.강시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를 잘 아는 나로서는, 그가 정말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그는 허은채에게 퇴학이 얼마나 큰 타격인지 모르는 걸까?허은채의 원래 이름이 허희남이었다는 걸, 그 등골을 빼먹는 가족들이 그녀의 발목만 잡을 뿐이며, 그녀를 찾는 이유도 오직 돈을 받고 팔아넘겨 남동생 뒷바라지할 밑천을 챙기려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걸까?게다가...허은채는 예전에 강시후에게 신장 하나를 기증한 적이 있었다.단지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강시후가 아팠을 때 두 사람의 조직이 일치하자 허은채는 망설임 없이 수술대에 올랐던 것이다.그런 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이건 허은채의 인생을 박살 내겠다는 소리였다.나는 너무 분통이 터져 눈이 빨개진 채 강시후에게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했지만, 내 손은 번번이 강시후의 몸을 통과해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허은채는 두려움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여전히 원망 가득한 눈으로 강
강시후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서해원의 여린 몸은 옥상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강시후의 동공이 순간 작게 수축했다.그는 극도로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해원아, 제발 이러지 마,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라고!”서해원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울부짖었다.“네티즌들이 전부 나를 욕해, 상간녀라고 욕하고 걸레라고 욕해. 시후 씨, 나 정말 더는 못 버티겠어. 유나 언니도 나를 저주했어. 내가 상간녀고 여우 같은 년이라고 ...”“하지만 언니를 원망하진 않아. 어차피 지금 시후 씨 진짜 약혼자는 언니고, 내 존재 자체가 죄악이니까.”나는 기가 막힌다는 듯한 눈으로 서해원을 바라보았다.나는 이미 죽었는데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했다는 거지.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써야 한다니.강시후는 굳은 표정으로 서해원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서해원이 보여준, 내가 그녀를 욕했다는 소위 그 ‘채팅 기록’을 바라보았다.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 ‘증거’들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수법이 너무 엉망이라 강시후가 믿을 리 없었다.하지만 나는 깜빡 잊고 있었다...강시후의 세계에서 나는 애초에 아무런 무게감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강시후는 서해원을 품에 안고 그녀의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준 뒤, 이마에 가볍지만 진중한 입맞춤을 남겼다.“해원아, 넌 상간녀가 아니야. 사랑에도 선착순이 있다면, 네가 훨씬 먼저 왔어. 나랑 심유나는 그저 걔가 내 어머니를 살려준 은혜를 빌미로 억지로 얻어낸 결혼일 뿐이야.”“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여자는 너 하나뿐이야. 내가 다 책임질 거고 성대하게 결혼식도 올려줄게.”서해원의 눈에 기쁨의 미소가 언뜻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불안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이렇게 하면 유나 언니한테 너무 불공평하지 않을까? 언니가 날 더 싫어할 텐데. 유나 언니는 대단한 변호사잖아. 만약 언니가 마음먹고 나를 공격하면 난 어쩌지?”그 말에 강시후는 코웃음을 쳤다.“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