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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아내의 조용한 심판
유령 아내의 조용한 심판
Author: 낮잠요정

제1화

Author: 낮잠요정
어릴 적부터 난 집안에서 늘 찬밥 신세였다.

다쳐도 참았고 아파도 꾹 참았다.

푹 자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내 육신은 이미 폐차가 된 자동차 곁에 누워 있었고 비서 허은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심스럽게 티슈를 꺼내 내 이마의 상처를 틀어막으며 흘러나오는 피를 멈추려 애쓰고 있었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 나를 애타게 불렀다.

“변호사님, 정신 차려요... 조금만 더 버텨요, 잠들지 말고.”

나는 허은채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을 뻗은 순간, 내 손가락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그대로 통과했다.

바닥에 쓰러진 채 파리하게 질려 숨이 끊어진 내 몸을 내려다보며,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난 죽었구나.’

허은채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 깊은 죄책감이 일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생으로 버텨내던 아이였다.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곱게 자랐을 텐데, 참혹한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도 모자라 내 시체와 단둘이 남게 되었으니.

그녀는 두려움에 손끝까지 벌벌 떨고 있었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던 차에 무려 열두 번이나 치였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무사할 리 없었다.

그러나 강시후의 온 신경은 오직 서해원에게만 쏠려 있었다.

그는 내가 나중에 서해원에게 보복해 그녀가 다치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봐 두려웠던 것인지 내 몸이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억지로 내 손가락을 붙잡아 지장을 찍게 했다.

나는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다.

강시후에게 서해원은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심지어 한 사람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허은채도 그 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변호사님, 구급차가 왔어요, 구급차가 왔다고요...”

구급차의 불빛이 짙은 안개를 뚫고 다가와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고 곧 의사와 간호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둘러 달려왔다.

허은채는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 얌전히 한쪽으로 비켜 서 있었다.

내 몸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십자가를 그었다가 다시 합장하며 입속으로 쉴 새 없이 웅얼거렸다.

“하나님, 성모 마리아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관세음보살님...”

동서고금의 신이란 신은 모조리 불러 모으는 중이었다.

“제발 우리 변호사님 좀 살려주세요. 무사히 깨어나게만 해주시면 일 년 동안 채식할게요...”

의사의 다급한 외침이 이어지는 가운데, 허은채의 눈물도 다시 뚝뚝 떨어졌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조수석에 덩그러니 놓인 내 가방에 멈췄다.

“어, 이게 뭐지...”

그 시각 구급차 안에서는 간호사가 필사적으로 응급 처치를 이어갔지만, 차갑게 식어가는 내 심장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간호사는 붉어진 눈으로 내게 애원하듯 말했다.

“조금만 더 힘내요, 병원이 코앞이에요.”

의사는 곧바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환자 상태가 위독합니다. 당장 수술해야 하니 응급실에 연락해서 서둘러 준비하라고 하세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의사의 시선이 차창 밖으로 향했다.

눈앞의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차량들을 보자 그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교통경찰한테 연락해서 앞쪽 통로 좀 터 달라고 해.”

간호사는 전화를 끊고는 분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앞에서 세강 그룹 대표님이 길을 막고 있대요. 친구한테 특별한 이벤트를 해준다고 거창하게 꽃밭을 꾸며 놓는 바람에 도로가 완전히 막혔대요.”

“경찰이 지금 그쪽과 얘기하고 있긴 한데, 치우려면... 한참 걸릴 거래요.”

“정말 어이가 없네! 여기가 얼마나 복잡한 도로인데, 어떻게 멋대로 차도를 막을 수가 있어!”

간호사의 눈시울이 더 붉어졌다.

“환자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구급차 안은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전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탓인지 많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간호사와 의사의 대화를 듣고서야 비로소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사실 오늘은 혼인 신고를 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강시후는 서해원을 위해나를 바람맞혔다.

그뿐만 아니라 서해원을 기쁘게 해 주겠다며 꽃밭까지 꾸며 놓았다.

나는 화가 난 나머지 파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서해원은 내게 해명하겠다는 핑계로 나를 구불구불한 산길에 가둔 뒤, 차로 치어 끔찍하게 살해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 영혼은 제멋대로 차 밖으로 둥둥 떠올라 인파를 뚫고 강시후의 곁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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