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혼인신고를 하러 가기로 한 바로 그날, 폐쇄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강시후의 전 여자친구는 구불구불한 산길 벼랑 끝에서 내 차를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열두 번이나 거칠게 내 차를 들이받았다. 강시후가 경찰차를 뒤따라 도착했을 때, 소방대원들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운전석을 뜯어내 나를 간신히 꺼내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긁힌 자국조차 찾기 힘든 한정판 스포츠카로 걸어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서해원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대표님, 심유나 씨 이마에서 피가 납니다. 당장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꿰매야 해요.” 강시후는 나를 실은 들 것을 향해 걸어오다 멈춰 서서, 피투성이가 된 내 이마와 멍든 팔을 힐끗 쳐다보았다. “가벼운 상처일 뿐이야. 해원이는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이런 산골짜기에서는 상태가 더 위급해. 해원이를 먼저 병원으로 보내야 해.” 버려진 순간,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그의 바짓단을 죽어라 움켜쥐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 “해원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발작이 온 거라고. 넌 변호사면서 불가항력이라는 말도 몰라? 유치하게 왜 이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비서에게서 합의서 한 장을 건네받더니, 힘없이 축 늘어진 내 손목을 잡아채 그 위에 강제로 지문을 찍었다. “뒤에 다른 구급차가 올 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
View More얼마 지나지 않아 서해원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그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강시후가 손을 써둔 덕분에 서해원은 평생 차가운 감옥 안에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썩어 살게 될 터였다.하지만 그는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다.서해원의 최후가 여전히 너무 가벼운 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는 허은채를 찾아갔다.그녀가 세강 그룹에 입사해 일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허은채는 그를 한참 동안 묵묵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5년 뒤, 조현우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가게를 차렸고 허은채는 그 개업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나는 강시후의 곁에서 10년을 함께했고 허은채 역시 세강 그룹에서 10년 동안 일했다.그 긴 세월 동안 강시후는 미친 듯이 일에만 파묻혀 살았고 그와 한미애는 내 이름을 내건 자선기금을 각각 설립하기도 했다.그 10년 동안 그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텅 빈 신혼집을 지키며 나와 똑같이 유령처럼 살아갔다.내가 그를 향한 원망을 거두고 모든 걸 내려놓으며 마침내 무감해지기까지 걸린 시간도 딱 10년이었다.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그 사이 허은채는 눈부시게 성장해 업계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었고 세강 그룹의 법무팀 총괄 이사 자리에 올랐다.나는 예전에 작고 소심하기만 했던 그 어린 소녀가 이제는 누구를 상대하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으면서도 진심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다만 그녀는 강시후에게만큼은 늘 쌀쌀맞게 대했다.한때 허은채가 강시후의 약혼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그 소문은 이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강시후는 자신의 약혼녀는 오직 한 사람, 바로 심유나뿐이라고 말했고 허은채는 눈을 흘기며 그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일축했다.나중에 인터넷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만약 그녀가 당신에게 남긴 유물이 살아 숨 쉬는 사람이라면 어쩌지?]10년 동안, 허은채는 강시후가 내 무덤을 찾아오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매년 내 기
서해원은 꽁꽁 묶인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녀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강시후를 올려다보자 강시후는 그녀의 앞에 서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네가 나를 돌보고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네가 나를 구해준 거라고 착각했었지. 하지만 몰랐어, 그게 내 목걸이를 훔치려다 내가 깨어나자 간호하는 척 시늉을 한 것뿐이었다는 걸. 내가 바보였어….”그때 흉측하게 침을 흘리는 노숙자 몇 명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사내들의 탐욕스러운 눈빛은 당장이라도 서해원의 옷가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서해원은 공포에 사로잡혀 온몸을 파르르 떨며 악을 썼다.“강시후! 나한테 이럴 순 없어! 평생 사랑해 주겠다던 그 말 잊었어? 세상에서 제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했잖아!”그녀는 발버둥 치려 애썼지만, 의자에 묶인 손목에는 깊은 붉은 자국만 파고들 뿐이었다.강시후는 텅 빈 눈빛으로 그녀의 악쓰는 소리를 무시한 채, 냉랭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너를 사랑해? 성대한 결혼식?”그는 낮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는 끝없는 비참함과 후회가 가득 담겨 있었다.“심유나…. 그 여자야말로 내가 평생을 바쳐 사랑해야 할 사람이었어. 네가, 바로 네가 이 모든 걸 박살 낸 거야!”그는 공포로 일그러진 서해원의 얼굴을 훑어보며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내뱉었다.“너 폐소공포증 있다고 했지? 피해자 시늉하는 거 좋아하잖아? 오늘, 진정한 절망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겪게 해줄게.”그는 몸을 돌려 이제는 서해원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노숙자들을 향해 말했다.“저 여자는 너희들 마음대로 해. 단, 명심해. 절대 곱게 죽게 두지는 마.”노숙자들이 천박하게 낄낄거리면서 해원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서해원은 찢어질 듯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으나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나는 곁에 둥둥 떠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지만 통쾌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할 뿐이었다.강시후가 가장 극단적이고 잔인한 방
삶은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그저 내 영혼이라는 유령 하나가 더 늘었을 뿐.한미애가 출국한 이후, 서해원은 강시후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다만 무슨 속셈인지 강시후는 그 신혼집을 처분하지도 않았다.나도 차라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하지만 어째서인지 내 영혼은 강시후의 곁을 벗어날 수 없었다.그나마 다행인 건 강시후가 서해원과 이렇다 할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강시후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야근을 밥 먹듯이 하더니 서해원이 몸을 밀착해 오는 것조차 끔찍이 꺼렸다.서해원이 야한 옷을 걸치고 유혹할 때마다 그는 업무를 핑계로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그럴 때마다 서해원은 분통이 터져 발을 동동 굴렀다.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더 이상 허은채를 괴롭히지 않았다.강씨 가문의 막강한 세력을 생각하면 그가 마음만 먹었어도 허은채는 한경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아마 한경 밖으로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나는 계속 강시후의 곁에 머물렀다.그는 업무를 처리한 뒤 피곤에 지친 몸으로 소파에 기대어 창밖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하지만 액정 화면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다시 집어넣었다.차에서 내린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며 나는 그가 도우미에게 묻는 목소리를 들었다.“해원이 어디 있어요?”도우미는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대답했다.“해원 씨는 홈시어터룸에서 영화 보고 계세요.”강시후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아니, 해원이를 어떻게 거기에 들여보내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곧바로 홈시어터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새로 들어온 도우미는 서해원에게 폐쇄공포증이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강시후의 저택 지하에는 주차장뿐만 아니라 헬스장과 홈시어터룸도 있었다.비록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사방이 꽉 막힌 밀폐된 공간이었다.그는 서해원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덜컥 겁이 났다.하지만 홈시어터룸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안에서 들려오는 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강시후는 경호원들에게 허은채를 내려놓으라고 손짓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재수 없게 진짜. 연기도 이 정도면 진상이야, 연기 대상이라도 줘야겠네.”허은채는 차가운 바닥에 웅크린 채 강시후의 추궁에 쓴웃음을 지었다.“강시후 씨, 변호사님 진짜 죽었어요. 서랍에 화장 동의서에 서명한 것도 있어요. 장례식장에서 전화했는데 그쪽이 서해원이랑 놀아나느라 전화를 안 받아서... 결국 회장 사모님께서 직접 나서서 서명했어요. 안 믿기면 전화해서 물어보세요!”강시후의 안색이 험악해졌다.서해원은 교태를 부리며 코를 감싸 쥐었다.“어머, 어머님도 참. 어떻게 유나 언니랑 짜고 이런 짓을…. 어떻게든 시후 씨 마음 흔들려고….”“입 닥쳐!”강시후가 매섭게 서해원의 말을 잘랐다.처음으로 서해원의 붉어진 눈시울을 외면한 채, 그는 몇 년 만에 자발적으로 어머니 한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는 쏘아붙였다.“이렇게 판을 크게 벌인 이유가 결국 내 고집을 꺾고 심유나랑 결혼하게 만들려는 거잖아요. 그럼 심유나는 어디 있는데요?”강시후의 귀에 한미애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네 눈앞에 있잖아, 못 봤니?”강시후의 동공이 극도로 수축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유골함을 바라보았다.“거짓말 마세요...”한미애는 뭔가 웃기는 소리라도 들은 듯 비꼬는 투로 말했다.“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해? 그럴 필요도 없지.”“생각해 보면 나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았어. 멀쩡한 집안의 귀한 딸이 너한테 시달리다 결국 목숨까지 잃었으니 말이야.”강시후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그만 좀 해요! 엄마는 맨날 심유나가 엄마 목숨 살려줬다고 유세지만, 해원이도 나 살려줬다고요! 옛날에 엄마가 외국 나가 있을 때 내가 한경에서 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작은 방에 갇혀서 반쯤 죽을 뻔했을 때, 해원이가 내 앞에 나서서 나를 구해줬다고요!”“엄마가 우리 헤어지라고 닦달만 안 했어도 해원이가 납치당할 일도 없었고 폐쇄공포증 같은 거 생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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