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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현실은 응급실 뺑뺑이, 영혼의 조난

Author: 요정리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9 14:19:46

제 6화

요란한 소음이 귓가를 잔인하게 찢어발겼다. 그것은 청연국의 평화로운 바람 소리도, 

본가 가신들의 활기찬 웅성거림도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귀로 직접 들어본 적 없으나, 

뇌리에 낙인처럼 강렬하게 박혀 있는 날카롭고 기계적인 비명이었다.

삐이이이-.

2026년 7월, 대한민국 OO.

아스팔트 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여름 밤공기를 사정없이 헤집는 시빨간 경광등이 난잡하게 점멸했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자동차 경적과 사람들의 다급한 비명이 뒤엉켜 지옥도를 연출하고 있었다.

“환자 바이탈 계속 떨어집니다! 심박수 급하강, 의식 소실! 빨리 받아주는 병원 알아보라고, 제발!”

구급대원의 목이 쉰 고함이 무전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지직거리는 잡음과 섞여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로 한복판에는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꺾이고 부서진 전동 킥보드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짓겨진 선혈이 검은 아스팔트를 붉게 물들이며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시속 3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내달리던 중학생 두 명과, 고된 마감을 마치고 지친 걸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던 가민이 정면으로 충돌한 대가는 너무도 잔인했다. 

그저 겁도 없이 무모한 질주의 끝은 절벽이었다. 킥보드 뒤편에 매달려 타며 낙하 가속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학생 한 명은 구급차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뼈가 으스러진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만 열다섯, 아직 피지도 못한 어린 목숨이 한순간의 철없는 일탈과 장난으로 인해 허망하게 바스러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비극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OO 쪽 대학병원 세 곳 다 전화를 안 받습니다! 응급실 베드가 아예 풀(Full)이랍니다!”

“그럼 차선책으로 인근 구 중앙병원은?”

“거기도 지금 야간 수술실 인력이 부족해서 정형외과랑 신경외과 어레인지가 안 된다고 거부했습니다! 아, 진짜 미치겠다, 지금 사람 죽어가는데!”

의료 공백과 응급실 병상 부족이 낳은 현대 대한민국의 잔인한 현실. 이른바 뉴스에서나 보던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었다. 만 28세의 여성, 최가민의 육체는 서서히 식어가는 피를 아스팔트 바닥과 것에 연신 쏟아내며, 구급차라는 좁고 답답한 철장 안에 갇힌 채  복잡한 도로 위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다.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절대적인 골든타임이었으나,

그 어디에도 그녀의 부서진 몸뚱이를 받아줄 수 있는 안식처는 존재하지 않았다. 

구급차가 도로의 방지턱을 넘으며 크게 덜컹거릴 때마다, 가민의 얕은 호흡은 가늘게 끊어질 듯 꺾였다.

그 시각, 지상파 뉴스의 화면 하단에는 긴급 속보를 알리는 자막이 붉게 점멸하며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속보] 경북 OO시 OO사거리인근 도로에서 전동 킥보드 인도 돌진 충돌 사고 발생… 1명 사망, 2명 중태.

[속보] 킥보드와 충돌한 20대 여성 최모 씨, 인근 병원 응급실 병상 부족으로 이송 지연 중.

 SNS와 실시간 지역 커뮤니티의 사정은 달랐다. ‘실시간 OO OO 사거리 도로 참변 현장’이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사고 현장을 멀리서 찍은 모자이크 사진들과 피해자의 대략적인 신상이 댓글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방금 지나가는데 피 진짜 많이 흘리더라... 20대 후반 편의점 알바생이라던데 ㅠㅠ

-킥보드 급식들 때문에 엄한 사람이 가네... 병원 자리 없어서 구급차 계속 서 있더라.

늘 가민이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침을 열던 그 골목길 모퉁이의 작은 편의점.

손님이 없어 적막하기만 한 카운터 안에서, 편의점 사장님은 턱을 괸 채  스마트폰으로 지역 커뮤니티 앱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메인 피드에 올라온 사고 소식과 상세한 사고 위치, 그리고 댓글에 적힌 ‘편의점 오전 알바생 최가민’이라는 실명이 화면에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어? 가민이? ..설마 ..최가민?”

사장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지진이 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오후 교대하러 출근하면

불평 한마디 없이 성실하게 삼각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손님이 없는 텀에는 피곤한 기색으로 스마트폰 메모장을 터치하며 에피소드를 쓰던 착한 처자.

오늘 점심에 교대하러갔을 때까지만 해도  무언가 급히 할일이 생각난듯 달려나가던 모습이  벼락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툭-.

사장의 손에서 거짓말처럼 힘이 완전히 빠지며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타일 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액정이 산산조각이 나며 지직거리는 화면 너머로, ‘최가민 씨, 골든타임 위기’라는 커뮤니티의 글자만이 잔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사장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편의점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같은 시간, 차원 너머 청연국 연가 본가.

“아아아악……!”

조금 전까지 남편 태원이 멀리 서역에서 보내온 최고급 다과를 먹으며 ‘자본주의의 맛이 최고’라며 한량마냥 베시시 웃고 있던 가민의 입에서 핏빛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몸이 스르륵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가민은 제 왼쪽 가슴팍의 고운 비단옷을 손톱이 하얗게 뜯어져 나갈 정도로 부들부들 떨며 꽉 움켜쥐었다. 가슴뼈 안쪽 깊은 곳에서 거대한 덤프트럭이 심장을 통째로 으스러뜨리고 지나가는 것만 같은, 생전 경험해 본 적 없는 지독하고 압도적인 통증이었다.

“아씨! 아씨, 왜 그러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의원님! 지은 의원님을 당장 모셔오너라!!”

방 안의 장신구를 정리하던 시녀 채담이 경악하며 단숨에 가민을 붙잡아 안았으나, 가민의 귀에는 채담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마치 깊은 수중에서 들리는 것처럼 먹먹하고 아스라하게 멀어질 뿐이었다.

-둑흔 ! 두근. 두근. 두구구구구구-.

심장이 미친 듯이 제멋대로 날뛰다, 이내 순간적으로 뚝 멎어버리는 기괴한 감각. 그것은 단순한 영혼이나 육체의 통증이 아니었다. 시공간을 완전히 넘어 연결되어 있는 본래의 진짜 육체, 대한민국 OO의 한 차가운 도로 위에서 구급차의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죽어가고 있는 ‘최가민’의 심장박동과 바이탈 신호가 이곳 청연국의 ‘연월린’에게 그대로 동기화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구급차가 방지턱을 넘으며 도로 위에서 덜컹거릴 때마다, 저쪽 세계에서 심정지 경보음이 삐익, 하고 길게 울릴 때마다 청연국에 앉아 있는 가민의 입술은 순식간에 핏기를 잃고 새파랗게 질려갔다.

“허억…아… 윽!..숨..숨이…… 안, 쉬어…… 져…….”

눈물과 차가운 식은땀으로 순식간에 범벅이 된 가민의 시야가 격렬하게 회전했다. 

아까 망원경으로 보았던 사방 하늘 끝자락의 그 일렁이던 기이한 아지랑이가, 이제는 방 안의 공기마저 통째로 집어삼킬 듯 일그러지며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의 경계가, 이 세계관의 벽이 깨어지고 있었다. 영혼이 양쪽 세계의 거대한 틈바구니에 끼어 사방으로 갈갈이 찢겨나가는 듯한 극심한 조난의 고통에 가민은 손가락을 까딱할 수조차 없었다.

“아씨, 정신 차리십시오! 제발 눈을 뜨셔야 합니다!맥을…… 맥을 잡아야 하는데 맥이 뛰지 않습니다!”

허겁지겁 문을 부수듯 방으로 뛰어 들어온 의원 지은이 가민의 손목을 잡자마자, 안색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몸에 그 어떤 외상도 없고, 독을 마신 흔적도 없는데 처소에 얌전히 요양하고 있던 가문의 가장 귀한 장녀의 숨통이 실시간으로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온 방 안이 순식간에 하인들의 비명과 눈물로 가득 차며 집단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바닥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가민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처절하게 생각했다.

‘나…… 진짜로 죽는구나. 저쪽 세계의 대한민국 최가민이 죽으면, 이 세계의 연월린도 그냥 끝나는 거였어. 링크가 걸려 있었던 거야.’

바다 건너에서 거대한 군대를 움직이듯 선단을 이끌고 분노하며 오고 있다는 그 유죄 인간 남편 태원의 얼굴조차 아직 한 번 보지 못했는데, 이 화려하고 안락한 세계의 맛을 이제 겨우 알아버렸는데. 현실 세계의 무정한 가위질이 그녀의 가냘픈 영혼을 통째로 오려내어 소멸시키려 하고 있었다.

“서방…… 님…….”

가민의 입술 틈새로 저도 모르게 서찰 속 사내의 이름이 애절한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그리고 청연국의 화려하고 웅장한 자단나무 천장이 암전되듯 새까맣게 꺼져갔다. 

가민의 의식은 다시 한번 깊고 어두운 심연의 바닥 속으로 추락했다. 대한민국 OO의 구급차 안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하이톤의 기계음만이 그녀의 영혼을 잔인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요정리더

​현실의 팍팍하고 긴박한 상황들과 대비되면서 더 몰입감이 느껴지시나요? 응급실 대란이나 꽉 막힌 의료 현장 같은 문제점들은 정말 볼 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에 담아내지만, 앞으로 일반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하고 아플 때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방안들이 현실에서도 꼭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보게 되네요. ​오늘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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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8화 청가(靑家) 의 초대청연국의 산맥은 늘 푸른 안개에 잠겨 있다.그중에서도 청가의 본가는 세상과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듯 서늘하고 고고한 기운을 내뿜었다. 4대 귀족 중 가장 오래된 뿌리를 가진 청가는 예법이 까다롭고, 지붕 하나를 올릴 때도 지맥의 흐름을 읊으며 풍수적 배치를 완벽히 계산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묘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연가'만을 조용히 초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4대 귀족의 서열 안에서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였음을 세상에 알리는 강력한 선언이었다.​연가의 대문 앞, 타국에서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월린의 부모영인과 연진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딸을 보자마자 가주라는 체면도 잊은 채 달려와 으스러지게 껴안았다.​"아이고, 우리 월린! 이 어미 없이 가주 노릇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 내 새끼!"​영인의 진한 애정 공세에 월린은 뺨을 부비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은 그 뒤에 묵묵히 서 있는 두 사내, 연호와 유현을 보았다. 과거 딸의 목숨을 지키던 전속 호위무사가 이제는 딸의 침소와 안살림을 짊어진 남첩이 되었다는 사실에 복잡한 심경이 교차했으나 연가의 기틀을 다져준 그들에게 정중한 목례를 건네며 완벽하게 예우했다.​청가 본가에 도착하자, 청가의 가주 청설과 그의 부인이 입구에 서 있었다. 그 엄숙한 가주들도 월린을 보자마자 눈가에 부드러운 주름을 잡았다.​"어서 오시오, 월린. 그간 강녕했는가."​청설의 목소리는 낮고 무게감이 있었다. 사랑채에 들어서자 네 명의 어른은 차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했다. 청설의 정실 남편 기원이 월린의 손을 다정하게 덮어주며 나직이 말했다.​"월린아, 우리끼리 나라의 시사나 가문의 복잡한 살림 이야기를 나누면 너도 지루할 게다. 우린 오랜만에 밀린 이야기나 할 테니, 정원이나 구경하고 오렴. 청가 정원이 오늘따라 절경이니."​월린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연호와 유현을 대동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가의 정원은 그 자체가 거대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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