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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망원경 너머의 수상한 세계

Penulis: 요정리더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08 15:52:03

제 5화.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진홍빛 장막을 투과해 붉은 광침처럼 눈꺼풀을 찔러왔다. 

가민은 자단나무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탈출은 삼엄한 경비망 덕에 

물 건너갔고, 절세미녀의 육체는 거울을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며, 얼굴도 모르는 남편은 글씨체마저 유죄다. 이쯤 되니 대한민국에서 구르며 다져진 짠내인생  방구석 작가의 짬밥과 고질적인 직업병이 서서히 도지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무작정 들이받는 건 머리나쁜 하수나 하는 짓이지.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자. 독자들도 개연성 없는 멍청한 주인공 전개는 싫어하니까, 이 세계관의 스펙터클한 스케일부터 샅샅이 분석하는 게 순서야.’

가민의 시선이 책상 한구석, 부드러운 붉은 우단 천에 싸여 있는 기묘한 물건으로 향했다.

얼핏 보아도 이 시대의 순수한 동양적 기술력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한, 구리와 금박으로 장식된 원통형 기물이었다. 서역의 대무역상인 집안의 장남인 남편 태원이 바다 건너 이국땅에서 들여와 선물했다는 최고급 수입산 ‘망원경’이었다.

가민은 호기심 어린 손길로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겉면에 새겨진 정교한 태엽 문양을 만지작거리며 한쪽 눈을 감고 렌즈에 눈을 대자, 놋거울을 볼 때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광경이 망원경 너머로 펼쳐졌다.

“……와, 진짜 이건 뭐, 집이 아니라 거의 민속촌을 통째로 산 수준이네.”

연가의 본가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대륙풍의 웅장한 기와지붕과 조선식의 단아한 회랑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중정의 정원에는 청연국에서도 보기 드문 기이한 남방의 화초들이 만발해 있었다. 가민은 서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망원경의 초점을 조금 더 아래로, 서쪽 연무장 쪽으로 조심스럽게 돌렸다.

스각-. 파앗!

서슬 퍼런 검기가 망원경의 둥근 프레임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 저번 밤, 그녀의 눈물겨운 야반도주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빛의 속도로 막아섰던 미남 호위무사 중 한 명인 ‘유현’이었다. 유현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휘날리며 마치 한 편의 예술 같은 검술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청연국의 내로라하는 고수답게 그의 움직임은 선이 고우면서도 파괴적인 힘이 실려 있었다.

‘오…… 남주 후보 1번으로 손색이 없는 비주얼이네. 희긔한 남색머리에 무뚝뚝한 정석 검사라니, 수요가 없을 수가 없지.’

작가적 필터링을 거치며 흐뭇하게 렌즈를 옆으로 돌리자, 연무장 구석 그늘진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묵묵히 칼을 손질하고 있는 또 다른 미남 호위무사 ‘연호’가 잡혔다. 선이 굵고 눈매가 짙고, 묵직한 분위기의 사내였다. 유현의 검술을 가만히 지켜보던 연호가 숫돌에서 칼을 떼며 고개를 드는 순간, 망원경 너머로 그의 시선이 정확히 날아와 꽂혔다.

조각 같은 얼굴에 서린 그 날카롭고 서늘한 눈빛과 완벽하게 눈이 마주친 찰나, 가민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비명을 지르며 망원경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달그락!

“옴마! 깜짝이야! 무슨 눈미러링 성능이 최신형 스마트폰급이냐고!”

가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허겁지겁 바닥을 기어 망원경을 다시 주워 올렸다. 숨을 고르고 이번에는 반대쪽 동쪽 가옥과 후원 쪽으로 렌즈를 돌렸다. 망원경 너머로 바쁘게 물동이를 나르는 수많은 시녀와 큰 소리로 상단의 장부를 체크하는 가신들, 그리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가문의 인물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의 생생한 활력은 가민에게 이 세계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원경을 아주 멀리, 청연국 수도를 감싸고 있는 사방의 하늘 끝자락으로 향했을 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어라? ..저게 뭐지?”

가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망원경의 배율을 최대로 높여 바라본 먼 사방의 하늘 경계면이, 마치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묘하게 일렁거리며 공간 자체가 미세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세상의 끝이 거대한 연극 무대의 장막에 둘러싸인 듯한 기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거…… 이 세계관의 숨겨진 동양 판타지 설정인 건가? 지도찾기 비밀치트키??? 아니면 30대를 바라보는 스마트폰 중독으로인한 급격한 안구 노화증상인가?.... 영 알 수가 없네.”

머리가 더 복잡해진 가민은 결국 반쯤 포기하는 심정으로 망원경을 내려놓고 침상 주변의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평생 방구석에서 1,000원 단위로 가성비 아이템만 찾아 쓰던 그녀의 눈에 방 안의 세세한 일상 기물들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손만 대면 스르륵 흘러내리는 서역산 최고급 실크 천과 부드러운 양모 옷감들, 이국적인 장미 향을 풍기는 화장품 보틀, 그리고 자단나무 서랍을 가득 채운 보석이 촘촘히 박힌 정교한 비녀들까지. 은반지와 은장도는 기본이요, 귀한 서역산 보석이 박힌 귀걸이들이 서랍 칸마다 가득했다.

아침에 채담이 가져온 세숫물마저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은은한 매화 향이 나는 따스한 약탕수로 얼굴을 씻겨주며 채담은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이 방에 있는 사치스럽고 귀한 물건의 구할은 전부 남편 태원이 해외 무역을 나가며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보내온 선물들이라고.

정작 본인은 바다 건너 타지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고생하면서도, 본가의 어린 처에게는 청연국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만 쏟아붓는 남자. 가민은 화장대 위에 놓인 이국적인 유리 거울과 값비싼 연지를 만지작거리며 알 수 없는 기묘한 패배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태원이라는 이 남자…… 진짜 정체가 뭐야. 무슨 메가 히트 로판 남주 설정을 통째로 갈아 넣었잖아. 나 같이 짠내나는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스펙이 아닌데뭐…’

가민은 애써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남편이 보냈다는 서역산 간식인 듯한 말린 과일과 달콤한 향이 나는 다과가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무의식중에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쏙 넣자, 입안 가득 퍼지는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달콤함에 가민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하아…… 자본주의의 맛은 차원을 이동해도 여전히 달콤하네. 침대도 어떤 과학의 혼이 담긴 건지  진짜 진짜 푹신하고, 삼시 세끼 최고급 전복죽에 고기반찬이 나오니…… 어쩌면 야반도주 안 하길 잘한 걸지도?”

소심한 내향인 가민은 어느새 청연국 탑티어 재벌가 안주인의 안락한 일상생활에 아주 미세하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한편, 청연국에서 멀리 떨어진 서역 대륙의 거대한 무역 상방(商坊).

거센 파도를 넘어 날아온 붉은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된 청연국 본가의 서찰이 사내의 억센 손귀에 닿았다. 서찰을 뜯어내려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사내의 안색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 들어갔다. 거대한 선단을 이끌며 대륙의 까다로운 거상들을 단숨에 압도하던 청연국 최고의 대무역상, 연월린의 정실 남편 ‘태원’이었다.

서찰에는 의원 지은의 딱딱하고 우려 섞인 필체로 본가에 남겨진 아내의 기이한 증세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부인께서 높은 곳에서 낙상하신 후, 스스로를 스물 아홉살이라 칭하며 ‘알잘딱깔센’, ‘킹받네’, ‘누칼협’ 등 정체불명의 서역 상고 방언 혹은 악귀의 주문을 구사하시옵니다. 정신의 혼란이 극심하여 야반도주까지 감행하셨으나 무사들이 처소로 안전하게 송환하였사옵니다. 이마의 혹은 가라앉았으나 정신의 온전함이 염려되오니…….’

태원은 서찰을 쥔 손가락에 은근한 힘을 주었다. 빠드득, 소리를 내며 한지가 거칠게 구겨졌다. 단단하게 각진 그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고, 상방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스스로를 스물 아홉살이라 칭하며…… 야반도주라니. 부인, 내가 없는 사이에 대체 그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언제나 이성과 이익만을 계산하던 냉철한 무역상의 눈동자에, 오직 본가에 두고 온 어린 아내를 향한 지독한 걱정과 형용할 수 없는 집착 어린 애정이 거칠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태원은 상방의 가신들을 향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서슬 퍼런 명령을 내렸다.

“서역 상단과의 모든 잔여 계약을 당장 이번 주 내로 마무리 지어라. 이익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상관없다. 지체할 시간 없다. 청연국 본가로 최단 시간에 돌아갈 수 있는 쾌속 선단을 즉시 준비해라.”

바다 너머,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거물 장남의 거대한 시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정리더

동양풍 퓨전 세계관에 현대 사람이 훌쩍 떨어져 버린 빙의물인 만큼, 앞으로 전통적인 가문 속에서 가민이가 어떤 현대식 마이웨이 적응기를 보여줄지, 다음화도 기대해 주세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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