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유부녀지만 남첩을 더 들일거야: Bab 1 - Bab 10

35 Bab

제 1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제1화“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은 무슨?억까 당해도 절대 안 들키는 표정 관리다. 옘병.”올해 29살 최가민은 바코드 스캐너를 고사리만한 손으로 꽉 쥔 채 속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155센티미터에 45킬로그램. 편의점 카운터 아래에 서 있으면 간신히 머리통만 내밀고 있는 것 같은 이 작은 체구의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방어기제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민은 눈앞의 인간을 향해 영혼을 완벽히 소거한 동태눈과 투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손님, 증정품은 교환이 불가능하십니다.” -최가민(주)“아니, 씨 아니 ,이사람아 내가 2플러스1 상품을 너한테 샀잖아! 근데 난 딸기맛은 존나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이 증정품 딸기우유를 저기 있는 바나나우유로 바꿔 달라는 게 왜 안 된다는 거야? 진짜 일머리가 없네 …그러니까 여기서 알바나 하지! 답답하니까 너말고 대신 사장 나오라그래!”오전 9시 52분. 출근길의 전쟁터가 한 차례 휩쓸고 간 편의점 내부에는 이른 아침부터 당 수치가 한계치까지 떨어진 게 분명한 ‘증정품 빌런’이 불결한 침을 튀기고 있었다. 육안으로 봐도 쉰 고개를 훌쩍 넘긴 배만 불쑥 나온 지저분한 잠옷차림,남자는 가민의 작은 체구를 만만하게 본 것이 분명했다. 목청을 돋우며 카운터를 탁탁 두드리는 손가락에는 손톱에 때가 거뭇하게 껴 있었다.극단적인 내향인(I)인 가민은 타인과 대치하는 매 순간마다 수명이 5분씩 단축되는 기분을 느꼈다. 심장이 서늘하게 가라앉았고, 당장이라도 카운터 아래로 기어 들어가 갈등을 어떻게든 숨고 싶다는 회피형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예전의 가민이었다면 그저 입술을 깨물며 타인의 화난 표정에 멘탈이 털려 눈시울을 붉혔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가민은 2026년을 살아가는 어엿한 자린고비 프로페셔널이자, 플랫폼 단독 계약으로 데뷔작을 연재하기 시작한 신인 웹소설 작가였다.가민은 남자의 이목구비, 짓이겨진 운동화 뒤축, 억지를 부릴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왼쪽 눈썹의 움직임을 뇌내 메모장에 정밀하게 박제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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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갑분 킥보드라니? 엔딩요정은 바로 나 

제 2화“2만 7천 원입니다.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오전 11시 50분. 알바 교대 시간을 딱 10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가민은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찍다 말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카운터 너머에 서 있는 사내를 본 순간, 작가적 영혼이 번쩍 눈을 떴다.육안으로도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 될거 같고, 베이지 색 셔츠를 소매까지 단정하게 걷어 올린 남자였다. 아침부터 들짐승처럼 들이닥치던 무지성 진상들과는 다른 범접할 수 없는 백마탄 신사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물건을 고를 때도 매대를 어지럽히지 않고 조용히 정돈하며 고르더니, 계산대 앞에서도 정중하게 지갑을 열었다. 가민에게 살짝 눈인사를 건네는 그의 미소 한 자락에는 은은한 예의와 친절함이 묻어났다.“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가민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빅뱅이 일어났다.‘잠깐만. 저 비주얼, 저 아우라…… 야…이거다. 내 차기작 남주 스킨은 무조건 저거야!’남자가 남기고 간 잔상이 가민의 뇌 세포를 사정없이 자극하기 시작했다. 가민은 포스기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요즘 가민의 최대 고민은 ‘다음 작품’이었다. 현재 연재 중인 현대 로맨스 판타지는 전체 분량의 중간 정도인 60화 고지를 넘어서며 슬슬 중반부 타이밍에 접어들고 있었다. 스토리의 뼈대는 다 짜두었으니 매일 밤 성실하게 타이핑만 하면 완결까지는 무리가 없겠지만, 출판사없이 나홀로 전업 작가의 삶을 유지하려면 물이 들어올 때 세차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이었다. 지금부터 차기작의 소재를 고민해 두지 않으면 완결 후 공백 기간만 길어질 터였다.‘지금 쓰고 있는 연애는 이제 독자들도 좀 식상해하는 것 같고……감성BL은? 아냐..’‘이 순간 막다른 길에 새로운 인풋이 필요해. 그래, 장르를 완전히 틀어보자. 이세계물!, 나도 이젠 동양 퓨전사극으로 가자.’방금 다녀간 친절한 훈남 손님의 잔상 위로 장르적 상상력이 덧입혀졌다.‘그냥 평범한 무협은 뻔하니까, 무협에 로맨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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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네? 제가 '부인'이라고요? 

제 3화. “……가민아, 아유..우리 귀여운 똥강아지.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맨날 그렇게 모니터만 보고 밤을 새우니까 몸이 축나지.어여 일어나”멀리서 들려오는 다정하고 투박한 목소리. 분명 외할머니였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가 저승 입구에서 손녀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죽음은 생각보다 무덤덤했고, 사후 세계는 전설속 이야기보단 훨씬 따뜻했다. 가민은 습관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며 서러움을 토로했다.“할머니…… 나 이번에 웹소설 유료 연재 중이었단 말이야. 이제 겨우 60화 고지 넘어서 완결까지 성실하게 타이핑만 하면 됐는데, 그거 마무리도 못 짓고 와서 어떡해. 안 그래도 조회수 미적지근해서 독자들한테 미안해 죽겠는데…… 나 능력없어서 지옥 가려나 봐.”그런데 이상했다. 외할머니의 목소리는 분명 세월의 무게가 서린 묵직한 음성이어야 했는데,지금 귓가에 사정없이 꽂히는 소리는 맑고 청아하다 못해 앳된 10대의 얇은 음색이었다.“아씨! 아씨, 정신이 드시옵니까? 제발 눈 좀 떠보시옵소서! 이대로 영영 안 깨어나시는 줄 알고 이 채담이의 수명이 십 년은 단축되는 줄 알았사옵니다!”‘아씨? ..채담? 그건 또 무슨 삼류 고전 소설 같은 이름인데…….’가민은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는 어둠을 헤치고 번쩍 눈을 떴다.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대신, 은은한 침향 냄새가 깊게 배어든 화려한 진홍빛 비단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자 대륙의 황궁에서나 볼 법한 거대하고 화려한 자단나무 침상과 조선의 서원처럼 단정하게 짜인 문창살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금박 실로 정교하게 백호랑이가 수놓아진 대형 케노피 장막까지, 그야말로 대륙과 조선의 미감이 화려하게 섞인 독특한 공간이었다.“미친…이거…… 실화냐? …나 지금 퓨전 사극 세트장까지 날라간거임..?”가민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였다. 그녀가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침상 옆에서 눈이 퉁퉁 부은 채 울먹이던 시녀 채담이 기겁하며 가민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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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탈출은 지능 순……이 아니었네

제 4화. “자, 임(壬), 계(癸), 축(丑), 인(寅)…… 아, 옘병. 이순서가 아닌가?”침상 안쪽, 두꺼운 황금빛 비단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가민은 희고 가녀린 손가락을 바쁘게 꼬며 헛손질을 해댔다. 과거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 골방 작가 생활에 이르기까지, 온갖 액션 판타지 만화와 연재 소설을 섭렵했던 유서 깊은 오타쿠로서의 이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차원 이동이나 영혼 빙의 같은 장르소설 속 진부한 설정이 아니라 엄청난 내공을 가진 무림 고수가 자신에게 걸어버린 지독한 환술이나 흑마술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남았던 탓이다.“파병(破兵)! 해(解)!육체의 영혼이 명한다 해체!이것도 아닌가?왜 인술이 안 풀리냐고, 왜!”어릴 적 화면으로 보며 밤새 따라 하던 고전 닌자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마디마디 관절이 뚝뚝 꺾이도록 야무지게 인(印)을 맺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슬그머니 이불을 걷어냈을 때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화려함 극치를 달리는 대륙풍 자단나무 침상과 조선의 선비 방처럼 정갈하게 짜인 문창살이었다. 환술 브레이크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가민은 제 처지가 너무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이불 속에서 허탈하게 헛웃음을 연신 터뜨렸다. 대한민국에서 스물 아홉해를 버티며 진상들과 싸워온 차가운 이성은 이제 잔인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꿈도 아니고 연출도 아니며 백 퍼센트 순도의 현실이었다.“아씨! 또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묘한 수신호를 하시며 흐느끼시면 어찌합니까!지은 의원님이 낙상으로 인해 뇌수가 세차게 흔들려 그러는 것이니, 무조건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사옵니다!”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불을 홱 걷어낸 전담 시녀 채담은 얼이 빠져 있는 가민—아니, 이제는 연월린이 된 그녀를 향해 속사포 같은 잔소리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채담은 주인의 머리가 아주 깨끗하게 포맷되었다고 굳게 믿는지, 빗질을 해주는 내내 가문의 계보와 청연국의 정세를 쉴 새 없이 귀에 주입했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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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망원경 너머의 수상한 세계

제 5화.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진홍빛 장막을 투과해 붉은 광침처럼 눈꺼풀을 찔러왔다. 가민은 자단나무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탈출은 삼엄한 경비망 덕에 물 건너갔고, 절세미녀의 육체는 거울을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며, 얼굴도 모르는 남편은 글씨체마저 유죄다. 이쯤 되니 대한민국에서 구르며 다져진 짠내인생 방구석 작가의 짬밥과 고질적인 직업병이 서서히 도지기 시작했다.‘안 되겠다. 무작정 들이받는 건 머리나쁜 하수나 하는 짓이지.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자. 독자들도 개연성 없는 멍청한 주인공 전개는 싫어하니까, 이 세계관의 스펙터클한 스케일부터 샅샅이 분석하는 게 순서야.’가민의 시선이 책상 한구석, 부드러운 붉은 우단 천에 싸여 있는 기묘한 물건으로 향했다.얼핏 보아도 이 시대의 순수한 동양적 기술력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한, 구리와 금박으로 장식된 원통형 기물이었다. 서역의 대무역상인 집안의 장남인 남편 태원이 바다 건너 이국땅에서 들여와 선물했다는 최고급 수입산 ‘망원경’이었다.가민은 호기심 어린 손길로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겉면에 새겨진 정교한 태엽 문양을 만지작거리며 한쪽 눈을 감고 렌즈에 눈을 대자, 놋거울을 볼 때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광경이 망원경 너머로 펼쳐졌다.“……와, 진짜 이건 뭐, 집이 아니라 거의 민속촌을 통째로 산 수준이네.”연가의 본가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대륙풍의 웅장한 기와지붕과 조선식의 단아한 회랑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중정의 정원에는 청연국에서도 보기 드문 기이한 남방의 화초들이 만발해 있었다. 가민은 서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망원경의 초점을 조금 더 아래로, 서쪽 연무장 쪽으로 조심스럽게 돌렸다.스각-. 파앗!서슬 퍼런 검기가 망원경의 둥근 프레임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 저번 밤, 그녀의 눈물겨운 야반도주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빛의 속도로 막아섰던 미남 호위무사 중 한 명인 ‘유현’이었다. 유현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휘날리며 마치 한 편의 예술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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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현실은 응급실 뺑뺑이, 영혼의 조난

제 6화요란한 소음이 귓가를 잔인하게 찢어발겼다. 그것은 청연국의 평화로운 바람 소리도, 본가 가신들의 활기찬 웅성거림도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귀로 직접 들어본 적 없으나, 뇌리에 낙인처럼 강렬하게 박혀 있는 날카롭고 기계적인 비명이었다. 삐이이이-.2026년 7월, 대한민국 OO.아스팔트 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여름 밤공기를 사정없이 헤집는 시빨간 경광등이 난잡하게 점멸했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자동차 경적과 사람들의 다급한 비명이 뒤엉켜 지옥도를 연출하고 있었다. “환자 바이탈 계속 떨어집니다! 심박수 급하강, 의식 소실! 빨리 받아주는 병원 알아보라고, 제발!”구급대원의 목이 쉰 고함이 무전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지직거리는 잡음과 섞여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로 한복판에는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꺾이고 부서진 전동 킥보드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짓겨진 선혈이 검은 아스팔트를 붉게 물들이며 길게 늘어져 있었다.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시속 3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내달리던 중학생 두 명과, 고된 마감을 마치고 지친 걸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던 가민이 정면으로 충돌한 대가는 너무도 잔인했다. 그저 겁도 없이 무모한 질주의 끝은 절벽이었다. 킥보드 뒤편에 매달려 타며 낙하 가속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학생 한 명은 구급차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뼈가 으스러진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만 열다섯, 아직 피지도 못한 어린 목숨이 한순간의 철없는 일탈과 장난으로 인해 허망하게 바스러진 순간이었다.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비극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OO 쪽 대학병원 세 곳 다 전화를 안 받습니다! 응급실 베드가 아예 풀(Full)이랍니다!”“그럼 차선책으로 인근 구 중앙병원은?”“거기도 지금 야간 수술실 인력이 부족해서 정형외과랑 신경외과 어레인지가 안 된다고 거부했습니다! 아, 진짜 미치겠다, 지금 사람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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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외톨이 작가의 유일한 끈

제 7화 어둠은 깊고도 고요했다. 청연국의 화려한 비단 향도, 비린내 나는 아스팔트 냄새도 닿지 않는 완벽한 암전(暗轉).그 칠흑 같은 심연의 한가운데서 가민은 아주 오래된 기억의 조각을 마주하고 있었다.다섯 살의 여름은 유난히도 축축하고 더웠다. 철이 들기도 전, 부모라는 존재는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긴 채 요란하게 갈라섰다. 서로 가민을 맡지 않겠다며 법원 앞에서 악을 쓰며 싸우던 그들의 뒷모습이 가민이 기억하는 부모의 마지막 잔상이었다.덩그러니 세상에 버려진 다섯 살 어린아이를 거두어 준 것은 같은 지방의 골목길 홀로 식당을 운영하는 외할머니였다.거칠고 투박하지만 숭늉처럼 구수한 냄새가 나던 할머니의 품 안에서 가민은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주름진 손으로 매번 눌러 담아주던 밥과 가만히 등을 쓸어내려 주던 온기가 가민이 가진 유일한 세상의 전부였다.하지만 신은 가민에게 그리 다정하지 않았다. 정확히 3년 전 겨울, 유일한 버팀목이자 세상의 전부였던 외할머니마저 오랜 지병 끝에 가민의 손을 잡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민아, 우리 귀여운 강아지…… 혼자 냄겨두고 가가꼬 미안해서 어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날, 가민은 울지 않았다. 울음조차 사치일 만큼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겨졌다는 지독한 고독과현실의 무게가 서른 살의 목을 옥죄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가민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벽을세우고 방구석이라는 가장 안전한 공간에 들어가 오직 글자로만이루어진 세계에 집착하게 된 것은. 글 속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고, 누구도 죽지 않았으니까.그런 고독의 성벽을 부수고 가끔씩 무례하게 쳐들어오던 유일한 혈육이 있었다.바로 외할머니의 막내딸이자 가민의 이모인 ‘미자’였다.“야, 최가민! 너 또 삼각김밥으로 때우지? 반찬 해왔으니까 당장 문 열어!”이모는 늘 그랬다. 말은 거칠고 퉁명스러웠지만 부모 없는 조카가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던 츤데레였다. 가민이 웹소설을 쓴답시고 방구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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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이모의 목소리, 그리고 기적적인 맥박

제 8 화 웅- 웅-.귀가 먹먹해지는 수중의 음향 속에서, 갈라지고 터진 목소리 하나가 암전된 가민의 영혼을 끊임없이 뒤흔들었다.차가운 기계 부속품 같은 병실의 공기를 뚫고, 오직 피붙이의 절규만이 차원의 두꺼운 벽을 서서히 균열 내고 있었다.2026년 7월 19일 새벽, 대학병원 중환자실.독한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중환자실의 차가운 침대 위. 가민의 육체는 온갖 기계 장치와 호스에 연명한 채 위태롭게 누워 있었다. 그 곁에서 가민의 핏기 없는 손을 두 손으로 꼭 맞잡은 이모 미자는 머리를 짓찧으며 오열하고 있었다.“가민아…… 이지지배, 제발 살자. 이모가 미안해. 내가 너 바쁘다고 더 자주 못 들여다봐서 그래. 어? 제발 이모 두고 가지 마라, 가민아…….”미자의 눈앞으로 가민의 서글픈 인생 궤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섯 살, 부모에게 버림받고 가방 하나 달랑 멘 채 눈치를 보던 조그맣던 아이. 할머니 뒤꽁무니만 졸졸 따르며 세상이 무서워 늘 제 방구석으로만 숨어들던 사춘기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남에게 빚 한번 안 지겠다고 편의점 오전 알바를 뛰며, 휑한 모니터 앞에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웹소설을 타이핑하던 기특하고도 안쓰러운 조카의 모습이 미자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발겼다.“가민아, 살아야 해…… 살아야 한다, 내 새끼…….”창자가 끊어질 듯한 이모의 간절한 목소리는 기적처럼 영혼의 끈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시공간의 뒤틀림을 넘어, 청연국 연가 본가 침상에 쓰러져 있는 연월린의 귓가에 희미한 메아리가 되어 부딪쳤다.같은 시간, 청연국 연가 본가 처소.“하늘이…… 하늘이 무너지고 있도다!”바깥을 감시하던 가신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가민이 망원경으로 목격했던 청연국 사방 끝자락의 그 기이한 아지랑이가, 이제는 하늘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시커먼 장막이 되어 밀려오고 있었다. 세상의 경계면이 픽셀처럼 바스러지며 좁혀 드는 풍경은, 이 세계 자체가 영원히 닫히기 직전이라는 지독한 전조였다. 차원의 벽이 닫혀갈수록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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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세상을 뜬 흔적과 남겨진 자의 전쟁

제 9화삐이이이-.기계의 단조로운 비명 끝에 찾아온 것은 기만적일 정도로 고요한 침묵이었다. 가민의 육체 위로 하얀 시트가 덮이는 순간, 대학병원 응급실 앞 복도는 또 다른 의미의 격정적인 전쟁터로 변모해 있었다.“아니, 그러니까! 우리 애도 지금 죽어서 영안실에 누워있다고요! 그쪽 조카만 죽었어요? 왜 사람 멱살을 잡고 행패야, 행패가!”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뻔뻔하게 고개를 쳐드는 인간의 민낯은 추악했다. 숨진 중학생 가해자 중 한 명의 어머니는 제 자식의 영정사진을 방패 삼아 치졸한 회피를 시전하고 있었다. 헬멧도 없이, 면허도 없는 중딩 둘이 킥보드 한 대에 엉겨 타 보도를 전속력으로 돌진했으니 누가 봐도 100% 킥보드 과실이건만,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가관이었다.“솔직히 그쪽 조카도 살펴보지도 않고 뛰어 갔으니 1도 잘못 안 한 건 아니잖아요! 젊은 애가 앞을 잘 보고 알아서 피했으면 됐을 거 아냐! 우리가 그러라고 고사 지냈어? 왜 애지중지 키운 내 아들 살려내라고 소리쳐도 모자랄 판에 난리야! 나중에 얘기해요, 나중에!”“뭐? 1도 잘못 안 한 게 아니라고? 진짜 사상이 또라이아냐 ? 자식둔 애미가 할소리냐 이 미친년이 주둥이를 확 그냥 찢어발겨 버릴라!”- 가민이모그 뻔뻔하고 적반하장인 논리에 이모 미자의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피붙이를 잃은 고통은 순식간에 거대한 분노가 되어 폭발했다. 미자는 악에 받친 고함과 함께 그대로 중딩 엄마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내 조카는 정당하게 제 돈 내고 세금 내며 퇴근길 인도 위를 걸어가고 있었어, 이 뇌를 어디다 두고 온 년들아! 니들이 자식 간수 못 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킥보드 태워 내보내는 바람에, 서른도 안 된 내 새끼가 길바닥에서 피를 쏟고 죽었어! 어디서 가해자가 피해자 탓을 해, 어디서! 네 자식이 죽은 건 천벌 받은 거고, 어디서 적반하장이야?!”“아악! 이 여자가 미쳤나 봐! 언니, 이것 좀 말려봐!”옆에 있던 또 다른 중딩의 엄마가 삿대질을 하며 가세하려 들자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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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귀족 딸 연월린의 백수 라이프

제10화.“아씨, 서역산 어린양의 안심을 약재와 함께 고아낸 탕이옵니다. 한 방울도 남기지 마시고 드셔야 기혈이 보충됩니다.”“이건 남방 대륙에서 얼음을 채워 공수해 온 용안 열매이옵니다. 입가심으로 드시지요.”수저를 들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녀 채담을 비롯한 서너 명의 시녀가 침상 주변을 둥글게 에워싸고 거의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다시피 하고 있었다. 접시마다 담긴 음식들은 얼핏 보아도 대한민국에서는 최고급 오마카세나 5성급 호텔 부페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법한 영양 가득한 진수성찬이었다.가민—아니, 이제는 연월린이 된 그녀는 기계적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이 세계에는 학교라는 개념이 없는 건가?...나년은 언제까지 이런생활을…?..아니면 내가 저번에 피를 토하고 실신한 역대급 대형 사고를 쳐서 홈스쿨링도 중단된 건가.’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하루 일과가 지나치게 무료다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혹시라도 안주인이 다시 쓰러질까 봐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염려하던 전담 의원 지은의 ‘절대 안정, 침상 이탈 금지’라는 소견 때문에, 월린은 처소 방 안을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합법적이고 사치스러운 가택연금이었다.월린은 시녀들을 물리고 자단나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구리 망원경을 다시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렌즈에 한쪽 눈을 대고 청연국 수도 사방의 먼 하늘 끝자락을 샅샅이 둘러보았다.“……어라? 분명히 이쯤이 맞는데 지금은 깨끗하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간을 깨부술 것처럼 시커멓게 일렁이던 기이한 아지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푸르다 못해 시린 청연국의 가을 하늘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29년 차 모태 오타쿠이자 밤낮으로 뇌내 망상을 굴리던 웹소설 작가의 직감이 이 기현상의 정답을 정확히 도출해 냈다.‘호..완전히 닫혔네, 닫혔어. 저쪽 세계의 최가민이 완전히 사망하면서 로그인 통로가 영원히 끊긴 거야. 난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이 세계에 완전히 갇힌 거지.’돌아갈 다리가 끊겼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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