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유부녀지만 남첩을 더 들일거야: Chapter 1 - Chapter 5

5 Chapters

제 1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제1화“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은 무슨?억까 당해도 절대 안 들키는 표정 관리다. 옘병.”올해 29살 최가민은 바코드 스캐너를 고사리만한 손으로 꽉 쥔 채 속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155센티미터에 45킬로그램. 편의점 카운터 아래에 서 있으면 간신히 머리통만 내밀고 있는 것 같은 이 작은 체구의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방어기제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민은 눈앞의 인간을 향해 영혼을 완벽히 소거한 동태눈과 투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손님, 증정품은 교환이 불가능하십니다.” -최가민(주)“아니, 씨 아니 ,이사람아 내가 2플러스1 상품을 너한테 샀잖아! 근데 난 딸기맛은 존나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이 증정품 딸기우유를 저기 있는 바나나우유로 바꿔 달라는 게 왜 안 된다는 거야? 진짜 일머리가 없네 …그러니까 여기서 알바나 하지! 답답하니까 너말고 대신 사장 나오라그래!”오전 9시 52분. 출근길의 전쟁터가 한 차례 휩쓸고 간 편의점 내부에는 이른 아침부터 당 수치가 한계치까지 떨어진 게 분명한 ‘증정품 빌런’이 불결한 침을 튀기고 있었다. 육안으로 봐도 쉰 고개를 훌쩍 넘긴 배만 불쑥 나온 지저분한 잠옷차림,남자는 가민의 작은 체구를 만만하게 본 것이 분명했다. 목청을 돋우며 카운터를 탁탁 두드리는 손가락에는 손톱에 때가 거뭇하게 껴 있었다.극단적인 내향인(I)인 가민은 타인과 대치하는 매 순간마다 수명이 5분씩 단축되는 기분을 느꼈다. 심장이 서늘하게 가라앉았고, 당장이라도 카운터 아래로 기어 들어가 갈등을 어떻게든 숨고 싶다는 회피형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예전의 가민이었다면 그저 입술을 깨물며 타인의 화난 표정에 멘탈이 털려 눈시울을 붉혔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가민은 2026년을 살아가는 어엿한 자린고비 프로페셔널이자, 플랫폼 단독 계약으로 데뷔작을 연재하기 시작한 신인 웹소설 작가였다.가민은 남자의 이목구비, 짓이겨진 운동화 뒤축, 억지를 부릴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왼쪽 눈썹의 움직임을 뇌내 메모장에 정밀하게 박제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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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갑분 킥보드라니? 엔딩요정은 바로 나 

제 2화“2만 7천 원입니다.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오전 11시 50분. 알바 교대 시간을 딱 10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가민은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찍다 말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카운터 너머에 서 있는 사내를 본 순간, 소멸해 가던 가민의 동태 눈깔에서 작가적 영혼이 번쩍 눈을 떴다.육안으로도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 될거 같고, 베이지 색 셔츠를 소매까지 단정하게 걷어 올린 남자였다. 아침부터 들짐승처럼 들이닥치던 무지성 진상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범접할 수 없는 단아한 백마탄 신사같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물건을 고를 때도 매대를 어지럽히지 않고 조용히 정돈하며 고르더니, 계산대 앞에서도 정중하게 지갑을 열었다. 가민에게 살짝 눈인사를 건네는 그의 미소 한 자락에는 은은한 예의와 친절함이 묻어났다.“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가민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빅뱅이 일어났다.‘잠깐만. 저 비주얼, 저 아우라…… 야…이거다. 내 차기작 남주 스킨은 무조건 저거야!’남자가 남기고 간 잔상이 가민의 뇌 세포를 사정없이 자극하기 시작했다. 가민은 포스기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요즘 가민의 최대 고민은 ‘다음 작품’이었다. 현재 연재 중인 현대 로맨스 판타지는 전체 분량의 중간 정도인 60화 고지를 넘어서며 슬슬 중반부 타이밍에 접어들고 있었다. 스토리의 뼈대는 다 짜두었으니 매일 밤 성실하게 타이핑만 하면 완결까지는 무리가 없겠지만, 출판사없이 나홀로 전업 작가의 삶을 유지하려면 물이 들어올 때 세차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이었다. 지금부터 차기작의 소재와 장르를 치열하게 고민해 두지 않으면 완결 후 공백 기간만길어질 터였다.‘지금 쓰고 있는 오피스연애는이제 독자들도 좀 식상해하는 것 같고……감성BL은? 아냐..’‘이 순간 막다른 길에 새로운 인풋이 필요해. 그래, 장르를 완전히 틀어보자. 이세계물!, 나도 이젠 동양 퓨전사극으로 가자.’방금 다녀간 친절한 훈남 손님의 잔상 위로 장르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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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네? 제가 '부인'이라고요? 

제 3화. 네? 제가 '부인'이라고요? “……가민아, 아유..우리 귀여운 똥강아지.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맨날 그렇게 모니터만 보고 밤을 새우니까 몸이 축나지.어여 일어나”멀리서 들려오는 다정하고 투박한 목소리. 분명 외할머니였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가 저승 입구에서 손녀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죽음은 생각보다 무덤덤했고, 사후 세계는 전설속 이야기보단 훨씬 따뜻했다. 가민은 눈을 뜨기도 전에 습관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며 서러움을 토로했다.“할머니…… 나 이번에 현대물 연애 웹소설 유료 연재 중이었단 말이야. 이제 겨우 중반부인 60화 고지 넘어서 완결까지 성실하게 타이핑만 하면 됐는데, 그거 마무리도 못 짓고 와서 어떡해. 안 그래도 조회수 미적지근해서 독자들한테 미안해 죽겠는데…… 나 능력없어서 지옥 가려나 봐.”그런데 이상했다. 외할머니의 목소리는 분명 세월의 무게가 서린 묵직한 음성이어야 했는데,지금 귓가에 사정없이 꽂히는 소리는 맑고 청아하다 못해 앳된 10대의 얇은 음색이었다.“아씨! 아씨, 정신이 드시옵니까? 제발 눈 좀 떠보시옵소서! 이대로 영영 안 깨어나시는 줄 알고 이 채담이의 수명이 십 년은 단축되는 줄 알았사옵니다!”‘아씨? ..채담? 그건 또 무슨 삼류 고전 소설 같은 이름인데…….’가민은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는 어둠을 헤치고 번쩍 눈을 떴다.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대신, 은은한 침향 냄새가 깊게 배어든 화려한 진홍빛 비단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자 대륙의 황궁에서나 볼 법한 거대하고 화려한 자단나무 침상과 조선의 서원처럼 단정하게 짜인 문창살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금박 실로 정교하게 백호랑이가 수놓아진 대형 케노피 장막까지, 그야말로 대륙과 조선의 미감이 화려하게 섞인 독특한 공간이었다.“미친…이거…… 실화냐? …나 지금 퓨전 사극 세트장까지 날라간거임..?”가민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였다. 그녀가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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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탈출은 지능 순……이 아니었네

제 4화. “자, 임(壬), 계(癸), 축(丑), 인(寅)…… 아, 옘병. 이순서가 아닌가?”침상 안쪽, 두꺼운 황금빛 비단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가민은 희고 가녀린 손가락을 바쁘게 꼬며 헛손질을 해댔다. 과거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 골방 작가 생활에 이르기까지, 온갖 액션 판타지 만화와 연재 소설을 섭렵했던 유서 깊은 오타쿠로서의 이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차원 이동이나 영혼 빙의 같은 장르소설 속 진부한 설정이 아니라 엄청난 내공을 가진 무림 고수가 자신에게 걸어버린 지독한 환술이나 흑마술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남았던 탓이다.“파병(破兵)! 해(解)!육체의 영혼이 명한다 해체!이것도 아닌가?왜 인술이 안 풀리냐고, 왜!”어릴 적 화면으로 보며 밤새 따라 하던 고전 닌자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마디마디 관절이 뚝뚝 꺾이도록 야무지게 인(印)을 맺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슬그머니 이불을 걷어냈을 때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화려함 극치를 달리는 대륙풍 자단나무 침상과 조선의 선비 방처럼 정갈하게 짜인 문창살이었다. 환술 브레이크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가민은 제 처지가 너무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이불 속에서 허탈하게 헛웃음을 연신 터뜨렸다. 대한민국에서 스물 아홉해를 버티며 진상들과 싸워온 차가운 이성은 이제 잔인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꿈도 아니고 연출도 아니며 백 퍼센트 순도의 현실이었다.“아씨! 또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묘한 수신호를 하시며 흐느끼시면 어찌합니까!지은 의원님이 낙상으로 인해 뇌수가 세차게 흔들려 그러는 것이니, 무조건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사옵니다!”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불을 홱 걷어낸 전담 시녀 채담은 얼이 빠져 있는 가민—아니, 이제는 연월린이 된 그녀를 향해 속사포 같은 잔소리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채담은 주인의 머리가 아주 깨끗하게 포맷되었다고 굳게 믿는지, 빗질을 해주는 내내 가문의 계보와 청연국의 정세를 쉴 새 없이 귀에 주입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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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망원경 너머의 수상한 세계

제 5화.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진홍빛 장막을 투과해 붉은 광침처럼 눈꺼풀을 찔러왔다. 가민은 자단나무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탈출은 삼엄한 경비망 덕에 물 건너갔고, 절세미녀의 육체는 거울을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며, 얼굴도 모르는 남편은 글씨체마저 유죄다. 이쯤 되니 대한민국에서 구르며 다져진 짠내인생 방구석 작가의 짬밥과 고질적인 직업병이 서서히 도지기 시작했다.‘안 되겠다. 무작정 들이받는 건 머리나쁜 하수나 하는 짓이지.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자. 독자들도 개연성 없는 멍청한 주인공 전개는 싫어하니까, 이 세계관의 스펙터클한 스케일부터 샅샅이 분석하는 게 순서야.’가민의 시선이 책상 한구석, 부드러운 붉은 우단 천에 싸여 있는 기묘한 물건으로 향했다.얼핏 보아도 이 시대의 순수한 동양적 기술력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한, 구리와 금박으로 장식된 원통형 기물이었다. 서역의 대무역상인 집안의 장남인 남편 태원이 바다 건너 이국땅에서 들여와 선물했다는 최고급 수입산 ‘망원경’이었다.가민은 호기심 어린 손길로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겉면에 새겨진 정교한 태엽 문양을 만지작거리며 한쪽 눈을 감고 렌즈에 눈을 대자, 놋거울을 볼 때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광경이 망원경 너머로 펼쳐졌다.“……와, 진짜 이건 뭐, 집이 아니라 거의 민속촌을 통째로 산 수준이네.”연가의 본가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대륙풍의 웅장한 기와지붕과 조선식의 단아한 회랑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중정의 정원에는 청연국에서도 보기 드문 기이한 남방의 화초들이 만발해 있었다. 가민은 서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망원경의 초점을 조금 더 아래로, 서쪽 연무장 쪽으로 조심스럽게 돌렸다.스각-. 파앗!서슬 퍼런 검기가 망원경의 둥근 프레임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 저번 밤, 그녀의 눈물겨운 야반도주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빛의 속도로 막아섰던 미남 호위무사 중 한 명인 ‘유현’이었다. 유현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휘날리며 마치 한 편의 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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