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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보루비
종업원이 쇼핑백을 받아 들자 진윤슬이 한마디 덧붙였다.

“이 드레스 2억이 넘는 거라 중고로 팔아도 1억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원하면 집에 가져가도 돼요.”

종업원은 흥분한 나머지 두 눈이 다 반짝였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진윤슬의 마음이 바뀔까 봐 쇼핑백을 꽉 쥐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1억은 종업원에게 있어서 반평생을 모아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진세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았다.

진윤슬이 종업원에게 드레스를 주면서 중고라고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참을 수 없었던 진세린은 눈물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숙인 채 뛰쳐나갔다.

“세린아.”

문강찬은 진윤슬을 싸늘하게 쏘아보고는 바로 뒤쫓아갔다.

진윤슬은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윤슬아.”

임청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팔짱을 꼈다.

오늘 일이 금세 소문이 퍼질 것이다. 진세린이 망신당하긴 했지만 문강찬이 진세린을 뒤쫓아간 것 또한 진윤슬에게는 매우 굴욕적인 일이었다.

“괜찮아. 가자.”

진윤슬은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걸어 나갔다.

호텔 문 앞으로 나온 후 진윤슬은 임청아에게 사과했다. 임청아가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드레스를 버린 건 그녀의 마음을 짓밟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드레스를 다시 가져가기에는 마음이 찜찜했다.

“그런 말 하지 마, 윤슬아. 예전에 네가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어.”

임청아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옷이 아니라 내 목숨도 너한테 줄 수 있어.”

“무슨 헛소리야, 그게.”

진윤슬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 같이 잘 살아야지.”

임청아는 기어이 진윤슬을 병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출발하기도 전에 검은색 벤틀리가 문 앞에 멈춰 섰다.

누군가 다짜고짜 진윤슬의 손목을 붙잡은 바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더니 문강찬이었다.

진윤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세린이를 쫓아간 거 아니었어?’

문강찬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병원까지 데려다줄게.”

임청아는 진윤슬의 다른 한쪽 손을 꽉 잡은 채 비꼬듯 말했다.

“우리 윤슬이는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대표님은 다른 여자한테나 가봐요.”

문강찬이 아무 말 없이 그저 슬쩍 쳐다봤을 뿐인데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임청아가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없이 나서서 한마디 하려던 그때 진윤슬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청아야, 나 괜찮으니까 먼저 가.”

진윤슬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임청아를 달랬다.

임청아가 그녀 때문에 문강찬과 다투는 걸 원치 않았다. 게다가 오늘 대회에 임청아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왔다. 이 기회를 놓치면 무척이나 아쉬워할 것이다.

“윤슬아.”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임청아가 문강찬을 노려보자 진윤슬이 안심시켰다.

“우리 아직 부부야. 나한테 뭐 어쩌진 않을 거야.”

임청아가 뭐라 더 말하려 하자 진윤슬은 그녀의 손을 놓고 웃으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 봐.”

임청아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한 후 문강찬을 경고하듯 노려보고는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진윤슬은 문강찬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 탔다. 문강찬이 옆자리에 앉았고 차 문이 닫혔다.

잔잔한 음악이 차 안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었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사람의 마음속 불안감을 잠재우는 듯했다.

차가 신호등 앞에 멈춰 섰고 문강찬의 얼굴 절반이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나랑 세린이는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야. 너도 알잖아. 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

문강찬이 해명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꼬리를 내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진세린이 귀국한 이후 처음으로 하는 해명이기도 했다.

창밖을 내다보던 진윤슬은 씁쓸한 마음이 물밀 듯이 밀려와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가 계속 소란을 피워 진세린을 곤란하게 할까 봐 이렇게 구차하게 해명하는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진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는 네가 잘못했어. 세린이한테 사과해.”

문강찬이 아내에게 요구했다.

해명 속에 진세린을 감싸는 마음과 억지를 부리는 아내를 나무라는 뜻이 다분했다.

진윤슬은 고개를 돌려 문강찬을 쳐다보았다. 그토록 익숙했던 얼굴이 지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강찬 씨한테 난 대체 뭐야?”

“세린이는 내 오랜 친구이자 너의 여동생이야.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국내로 돌아와 발전하겠다는데 우리가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문강찬의 말투가 매우 단호했다. 그는 아내가 여동생에게 유독 모질게 군다고 생각했다.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전에 세린이를 좋아했던 적이 있어서 걱정돼서 이러는 거라면 안심해도 돼. 난 이미 너랑 결혼했고 바람피우는 일은 절대 없어. 네가 우리 관계를 오해했어.”

진윤슬은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 한 손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진윤슬이 코웃음을 쳤다.

“강찬 씨도 세린이도 다 역겨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강찬이 진윤슬의 손목을 잡았다.

그는 힘을 주어 그녀를 잡아당기면서 분노 가득한 두 눈으로 쳐다보았다.

“역겨워?”

‘부부로 3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역겹다고?’

진윤슬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그럼 내가 강찬 씨의 맹목적인 순애보에 박수라도 쳐줘야 한다는 거야?”

“진윤슬.”

문강찬이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납치당했을 때 강찬 씨는 세린이 생일 파티에 함께 있었고 내가 유산해서 병원에 누워있을 땐 세린이랑 같이 향수 대회에 참석했어. 당신 마음속에 난 대체 뭐야? 합법적인 잠자리 상대? 아니면 아이 낳는 도구?”

진윤슬은 문강찬의 손아귀에서 손목을 조금씩 빼냈다. 동작이 느렸지만 단호했다.

문강찬은 손아귀 힘을 풀었다가 다시 꽉 쥐었다. 뜨거운 체온이 벗어날 수 없는 쇠사슬처럼 느껴졌다.

가뜩이나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진윤슬은 순간 짜증이 확 났고 혐오감조차 숨기지 않았다.

“강찬 씨, 난 방금 당신의 아이를 잃었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제발 나 좀 귀찮게 하지 마.”

문강찬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손도 놓아주지 않았다.

진윤슬은 속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잠시 후 차가 병원에 도착했다. 문강찬이 그제야 힘을 약간 풀자 진윤슬은 곧바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두 걸음도 채 걷지 못했는데 문강찬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진윤슬이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

“이거 놔.”

문강찬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

진윤슬은 입을 꾹 다물었다. 비를 잔뜩 맞으면서 유산한 데다가 향수 대회까지 참석하여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문강찬이 안고 올라가겠다면 딱히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병실에 도착해 침대에 눕자마자 닥터 김해인이 왔다.

진찰을 마친 김해인이 완곡하게 말했다.

“사모님 몸이 많이 약해지셨으니 푹 쉬시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셔야 합니다.”

누가 봐도 진윤슬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유산하면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푹 쉬어야 하는데...

“감사합니다.”

진윤슬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모두 그녀가 쉬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편만 빼고.

아니,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뿐이었다.

김해인이 떠난 후 진윤슬은 링거를 맞으면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뜻밖에도 문강찬이 아직 옆에 있었다.

멀지 않은 소파에 앉아 잘생긴 얼굴을 찌푸린 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입술을 굳게 다문 걸 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듯했다.

진윤슬이 팔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려 하자 인기척을 들은 문강찬이 서류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진윤슬의 허리를 부축하며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

“좀 괜찮아?”

“응.”

진윤슬이 시선을 늘어뜨리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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