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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일비당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이마의 잔머리를 쓸어 올리고 고개를 들어, 지붕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거만한 투로 말했다.

“듣자 하니 진왕께선 처와 자식을 죽이는 운명이라더구나. 하지만 나는 신세대 재녀로서, 지덕체를 골고루 갖춘 인재이지. 천문을 알고, 지리를 알며, 문무를 겸비하여 스스로 설 수 있는, 하늘에 올라 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절세풍화의 여인이다. 사내는 그저 내 지능을 방해하고 돈 버는 속도를 저해할 뿐이야. 그런 내게 한 남자에게 목을 매라니?”

그녀는 장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속이 터져서 말이 안 나온다.”

장주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저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휘와 연기준도 그녀를, 괴물을 보듯 쳐다보았다. 특히나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을 꽉 움켜쥔 연기준의 잘생긴 얼굴은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나와의 혼인을 속 터지는 일이라고 하다니. 게다가 절세풍화의 여인? 결국 나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물이라고 욕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살면서 이처럼 뻔뻔하게 자신을 하늘 끝까지 치켜세우는 여인은 처음 본다.

살기를 느낀 그녀는 살기의 근원지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눈을 감고 있던 사내의 표정이 극도로 험악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혹 중독이라도 된 거예요?”

“커헉! 커헉!”

정신을 차린 장주는 자기 침에 사레들릴 뻔했다.

진왕께서 사람을 죽일듯한 분노로 보이자, 그는 기침을 진정시키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아마, 아마 아까 드신 약이 너무 써서, 지금 속이 메스꺼우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소매 속에서 청자두 두 알을 꺼내 연기준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쓴맛을 가라앉혀요.”

연기준은 두 주먹을 꽉 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장주는 황급히 청자두를 받아 들고는, 은근슬쩍 연기준 앞에 가로막으며 싱긋 웃었다.

“아가씨, 이리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희 주인님께서 상처를 얼마나 더 치료해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날 찾지 마. 우선 너희 주인님 상처부터 잘 치료하고, 이후의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아가씨,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상처가 당장 완쾌되지는 않겠지만, 저와 우휘가 간호할 터이니 괜찮습니다.”

장주는 서둘러 자기 뜻을 밝혔다.

진왕의 청혼을 승낙한 그녀가 이대로 도망쳐 버린다면 진왕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됐어, 이만 돌아가겠다.”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은 그들에게 자신이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미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너무 놀라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과 그의 계약에 관해서는, 지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나간 후, 우휘가 중얼거렸다.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군. 감히 진왕 전하께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다니! 저렇게 거만한 사람은 난생처음이네!”

장주는 그를 흘겨보더니, 연기준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웃으며 말했다.

“전하, 마음에 너무 두지 마십시오. 아가씨께서 전하의 신분을 모르시니, 조금 편견을 가지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연기준은 얼굴을 굳힌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 여인을 철저히 감시하라!”

‘감히 날 무시해? 내가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아? 망할 것! 상처가 회복되기만 하면 당장 목 졸라 죽여버리겠다!’

장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우휘에게 눈짓했다.

“네가 남아서 전하를 모셔라. 난 아가씨를 감시하러 갈 테니.”

우휘는 등골이 오싹해,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다.

“네가 전하를 모셔, 내가 아가씨에게 갈 테니!”

그러나 장주는 그보다 빠르게 방을 빠져나가더니, 문까지 닫았다.

우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우선 휴식을 취하십시오. 약을 달여 오겠습니다.”

우휘는 말을 마치고, 문을 열고 쏜살같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편, 그녀가 막 잠을 청하려던 때, 홍이가 갑자기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

그녀는 문을 열고 무표정하게 물었다.

“아가씨, 밖에 대방지라 자칭하는 분이 뵙고자 합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의 눈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고 왜 절에 왔지?’

“안으로 모시거라.”

“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키의 몸이 마른 중년 남성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홍이를 바로 돌려보내고 문을 닫은 후 물었다.

“학당에서 수업 중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아가씨, 안이 일행이 사라졌습니다!”

대방지는 무릎을 꿇고 애타게 소리쳤다.

“뭐라고요?”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어제 안이가 사라졌는데, 그저 놀러 나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사람을 찾아보려던 참에, 총이와 해우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총이와 해우는 어젯밤에 같이 잤답니다. 언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근처에서 총이의 신발 한 짝을 발견했습니다.”

대방지는 울먹이며 말하다가, 소매에서 검은 천 신발 한 짝을 꺼냈다.

“관아에 신고하려 했으나, 관아 사람들은 낭인이라 찾을 수 없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아가씨를 찾아온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굳은 얼굴로,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함께 경성으로 돌아가요!”

그녀는 소소 학당이라는 작은 학당을 만들었다.

학당에는 총 여덟 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들은 고아거나, 거지였고, 심지어는 어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몸을 팔려던 아이도 있었다.

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난 그녀는 작은 별채를 사고 그곳에 정착시켰다.

당시 그녀는 도박장과의 사업으로 천 냥 이상의 은자를 벌어들여, 기분이 한껏 들떠있었고, 충동적으로 수재인 대방지를 교사로 고용했다.

평소 대방지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고, 그의 부인이 아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졌다.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자신이 외운 당나라 시, 송나라 사, 원나라 곡 등 일련의 시가를 며칠 밤낮으로, 서책으로 엮었고, 그렇게 소소 학당을 개설했다.

그랬던 아이들이 사라졌으니, 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대방지가 절을 나서려던 그때, 대문 밖의 사람들에게 가로막혔다.

“아가씨, 잠시 멈춰 주십시오.”

그들을 막아선 사람들은 장군부의 호위들로, 유정우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특별히 보낸 자들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호위병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가씨, 장군님의 분부가 없이는 절을 나설 수 없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흘겨보고는 발을 들어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두 호위병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즉시 손을 뻗어 막아섰다.

하지만 그녀는 겁먹지 않고 바로 손발을 사용했다. 한 명은 때려 넘어뜨리고, 다른 한 명은 걷어차 쓰러뜨렸다. 몸놀림은 민첩하고 깔끔했다.

그들이 다시 막아서기도 전에, 그녀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살생을 시작하고 싶지 않으니, 죽고 싶지 않다면 물러서!”

평소 그녀는 밤에 남몰래 절을 빠져나갔기 때문에 이 호위병들과 정면으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큰길로 하산하여 경성으로 가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나, 오솔길로 가면 최소한 두 배는 더 걸린다.

그녀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녀의 반격에 두 호위병은 약간 당황했다.

“따라와요!”

유경서는 뒤를 한 번 흘겨본 후, 대방지와 함께 산 아래로 달려갔다.

한편, 장주의 보고를 들은 연기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요 며칠 그녀가 밤늦게 나가 아침 일찍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밖에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몰랐다. 매번 물을 때마다 그녀는 대답을 회피하며, 그저 상처가 회복되면 함께 가자고만 했다.

그녀가 장군부 호위병에게 맞서며, 밤에 몰래 나가는 대신 대놓고 정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급히 하산하는 것을 보며 사안이 범상치 않다고 여겼다.

“장주, 너는 즉시 하산하여 그녀를 바짝 쫓아라. 필요하면 그녀를 도와라.”

“네.”

장주는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우휘는 장주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가씨께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요?”

우휘는 그가 그녀에게 마음을 품은 것에 대해 더는 의문을 품지 않았지만, 그녀의 행적에 깊은 의문이 들었다.

진국장군부의 적녀라면 마땅히 사리 분별을 하고 온화하며 현숙한 규수여야 했다. 하지만 요 며칠 동안 봐온 유경서는 규수다운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언행과 태도는 다른 규수들과 비교하면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우휘, 방으로 가서 그녀의 물건을 전부 가져오너라. 곧 경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연기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돌아가시는 겁니까? 상처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습니다!”

우휘는 조바심 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력은 아직 요양이 필요하지만, 다른 것은 괜찮다.”

연기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경서가 그에게 사용한 약이 어떤 명약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에 그가 사용했던 어떤 약보다도 효과가 뛰어났다. 불과 며칠 만에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조심한다면 겉으로 티 나지 않을 것이다.

우휘는 그가 결심한 것을 보고 재빨리 옆방으로 향했다.

한편, 소소 학당 안에서 몇몇 아이들이 책을 외우고 있었고, 대방지의 부인 추씨가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

조용하고 평온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부부는 세 아이가 몰래 놀러 나갔다고만 말했고, 돌아오면 벌로 책을 베껴 쓰게 할 것이라고 했다.

유경서는 창밖에서 남은 다섯 아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거두었을 때와 달리, 아이들은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었고, 머리를 흔들며 열심히 당나라 시를 외우고 있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대방지에게 눈짓하여 대문 밖에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세 아이는 내가 어떻게든 찾아볼 테니, 두 분은 이곳을 지키면서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힘쓰세요.”

아이들은 모두 갈 곳 없는 고아들이다. 먹을 것, 입을 것, 배울 것이 있는 곳을 쉽게 떠났을 리 없다고 여겼다.

다시 말해, 안이, 총이, 해우 실종에 문제가 있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아이들을 잘 지켜보겠습니다. 다시는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대방지는 연신 고개를 숙여 약속했고, 애통해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유경서는 위로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세요.”

대방지는 그녀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소매로 얼굴의 땀을 닦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벽에 기대어 대방지가 주워 온 신발을 보고 또 보았다.

‘어떤 상황이었기에 신발도 못 주웠을까?’

세 아이에게는 분명히 어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고아였고, 부모도, 돈도, 세력도 없었다. 그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게 열 살밖에 되지 않은 해우였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들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일까?’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당했다고 하기에는 가능성이 낮았다. 이 시대에도 인신매매가 존재하고 공공연하게 사람을 사고팔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부릴 수도 없었기에 인신매매범들이 눈독을 들일 리 없었다. 만약 눈독을 들였다면, 거리에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가씨.”

그녀는 황급히 신발을 숨기고는 다가오는 사람을 확인했고, 즉시 안심했다.

“어떻게 온 거야?”

장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아가씨를 모시고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일을 보러 나오셨으니, 당연히 따라야지요.”

그녀는 말없이 장주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정말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아가씨,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장주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옆 대문을 올려다봤다.

희한하게도, 이 별원에 편액이 걸려 있었다. 게다가 소소 학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

“아가씨, 물어보신다니 황송합니다. 이제 아가씨께서 저희의 주인이시니, 분부만 내리십시오.”

장주는 급히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관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그들이 도와주려 하지 않아. 내 비록 장군부 사람이라지만 아버지가 엄히 통제하여 신분을 노출할 수 없어. 어떻게 관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유경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정우는 분명 그녀를 다시 잡아들일 것이다. 지금 관아에 얼굴을 내밀면 더 빨리 잡힐 뿐이었다.

그녀의 속셈은 장주가 그녀 대신 나서서 은자를 가지고 관아에 가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돈으로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데, 은자로 관아 사람들을 다루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장주는 그녀의 속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장주는 잠시 고민하더니, 웃으며 제안했다.

“아가씨, 장군부 사람들을 쓸 수 없다면, 진왕부에서 사람을 빌리십시오! 아가씨께서는 진왕 전하의 청혼을 승낙하지 않으셨습니까? 아가씨께서 진왕 전하를 뵈러 가신다면, 분명 아가씨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녀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진왕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라고? 진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걸!’

그녀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묘책이 떠올랐다!

“부탁할 일이 하나 있다.”

마음을 정한 그녀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장주를 바라봤다.

“아가씨, 분부하십시오.”

그녀는 곧장 그를 외진 구석으로 끌고 가 세 아이가 이유 없이 실종된 일을 그에게 설명했다.

“나 대신 여기를 지켜줘. 만약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때려죽이든 다치게 하든 어떻게든 잡아둬.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오늘 밤 진왕부에 잠시 들렀다가, 일을 마치는 대로 여기에 합류할 테니.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장주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일을 마친다고요? 진왕부에 가서 무엇을 하시려고요?”

‘설마 오늘 밤에 전하를 차지할 생각인가? 비록 전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상처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는데,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전하께서 버틸 수 있을까?’

유경서는 장주가 이해 못 한 듯해 보이자, 목소리를 낮춰 설명했다.

“진왕부에 가서 물건 하나를 훔쳐 올 작정이야. 그리고 진왕 전하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찾는 거지.”

상상도 못 한 계획에 장주는 입을 쩍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폭풍이 몸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완전히 넋이 나갔다.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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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대위에 오르기 전에, 연기준에게 주어진 것은 두 선택뿐이다. 죽거나, 황조부께서 남긴 보물을 내놓거나! 한편, 유경서는 외딴 작은 촌락에 도착했다. 유경서는 앉아 있는 방 안을 둘러보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물었다. “돈을 내고 집까지 빌린 건데, 왜 좀 더 넓은 곳으로 빌리지 않은 거예요?”이곳이 나빠서 불평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방 하나짜리 집은 한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그가 은자 한 덩이를 주자, 기뻐하며 아들 내외의 집으로 옮겨갔다. 주인의 며느리 삼이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가져다 주었고, 방 안의 베개와 이불도 새것으로 갈아두었다.그들이 여기에 머물게 된 것은, 경성을 나서자마자 누군가에게 추적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쫓는 사람들을 따돌리기 위해, 몰래 마차에서 내려 북쪽으로 도망쳤고, 장주와 우휘는 마차를 계속 몰아 남쪽으로 향했다.연기준을 상처를 입었던 탓에, 그녀는 임시방편으로 이 마을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이곳에서 요양하면서, 장주와 우휘를 기다리기로 했다. 은자 한 덩이를 지불하고도 이토록 협소한 집을 얻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바깥에 붙은 측간까지 더해 보아도 겨우 십여 평방 남짓할뿐, 바닥에 이불 한 채 펼 자리조차 없었다!연기준은 무심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작을수록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쉽지 않지.” “여기서 자지 말고, 아무 데나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서 자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요?”연기준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그녀의 밥그릇에 놓았다.“백 년 뒤면 결국 한 구덩이 무덤에서 함께 누울 터인데, 무엇이 그리 급하단 말인가?”“당신.” 유경서는 하마터면 그의 얼굴에 피를 토할 뻔했다.“많이 먹어두게.” 연기준은 그녀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지 못한 듯, 턱으로 그녀 앞의 밥그릇을 가리키며 그녀의 몸을 훑었다. “몸에 살집이 없더군.”유경서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슴을 내밀고 허리에 손을 얹

  • 음흉한 진왕의 덫에 걸리다   제26화

    유경서는 생각지도 못한 도움에 크게 감동했다. “장주, 고마워.”장주는 연기준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아가씨, 모두 주인님께서 시키신 일입니다. 감사할 거면 주인님께 하셔야죠.”유경서는 맞은편 남자를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쪽이 이렇게까지 세심히 배려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연기준은 싸늘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우리는 이미 부부의 정을 나눴고, 그대 일은 곧 나의 일이다.”유경서는 너무 어색한 나머지 쥐구멍으로라도 숨고 싶었다.가능하다면, 정말 그와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고 싶었다. 서로 맞지 않다고.그녀의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히 두 사람의 성격만 봐도 맞지 않았다. 하물며 습관, 가치관, 인생 목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혼인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시집갈 생각은 없었다. 종일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그녀가 전생에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보였다. 저런 사람과 같이 지내면 얼마나 답답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소위 말하는 달콤하고, 웃음 넘치고, 행복한 생활은 그녀와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 동궁.첩자가 가져온 소식에 연용화는 매우 놀랐다. “경성을 나섰다고? 혼자 나가더냐?”첩자는 말했다. “분명 혼자 경성을 나섰습니다.”연용화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이것은 분명 유인하려는 계책이다! 그렇지 않다면, 필시 다른 음모가 있는 것이다!”늘 행방이 묘연하던 진왕이 대놓고 경성을 나서는 것은, 그의 행동 방식에 어긋났다.게다가 그는 이미 진왕과 유경서가 한 객잔에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다. 두 사람은 분명 마음을 나눴을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진왕은 혼사 준비에 힘써야 마땅했다. ‘이런 시기에 유경서를 내버려두고 경성을 떠나다니? 무슨 속셈이지?’무언가 생각난 듯, 연용화는 첩자에게 물었다. “유 가문은 무슨 움직임이 있느냐? 유정우가 유경서를 잡아들였느냐?”첩자가 답했다. “여전히 거리에서 아가씨를 찾고

  • 음흉한 진왕의 덫에 걸리다   제25화

    혜씨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은 채 조용히 탁자 위 그릇들을 거두었다.결국 유경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뒷문에 이르자, 정말로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칠게 수염을 기른 마부 둘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변장하고 뭐 하려는 거야?”장주는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일단 마차에 타시죠. 가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유경서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날려 마차에 올라탔다.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싸늘한 눈빛을 지닌 그와 시선이 맞부딪혔다. 깊고 어두운 그 눈은 마치 어떤 것도 통과시키지 않을 심연 같았다.그녀는 좀처럼 담담하지 못했다. 그와 피부를 맞댄 후에는, 겉으로는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마음속은 혼란스러웠다.“그, 상처는 좀 어때요?” 그녀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걱정하는 척 물었지만, 속으로는 그가 자초한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면모와 절제력이 있었더라면, 상처가 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괜찮다.” 연기준은 차갑게 답했다.유경서는 갑자기 그의 차가운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입술은 왜 그래요? 입이 헌 거예요?”그녀가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연기준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개한테 물렸다!”유경서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어쩌다가 개한테 물린 거예요?”누가 들어도 그녀의 웃음은 장난스러운 놀림이 분명했다.하지만 그 방자한 웃음소리가 연기준의 귀에 꽂히는 순간, 그는 설명하기 어려운 수치와 분노가 뒤섞여 치밀어 올랐다.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험한 기운을 느낀 유경서는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왜 그래요? 내가 문 것도 아니잖아요!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왜 나한테 그래요!”연기준은 주먹을 꽉 쥐었고, 손가락 마디에서 소리가 났다.그는 화가 난 듯 고개를 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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