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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데려온다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6 09:26:21

무겸이 예령을 돌아보았다.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는 얼굴이었다.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는 것을 둘 다 알았다.

병사들이 흩어졌다. 예령이 그 뒤를 따르려 하자 장호가 앞을 막았다.

“여기 계셔야 합니다.”

“그 사람 이름을 아는 건 나뿐입니다. 저 눈밭에서 누가 곽삼인지, 병사들은 모릅니다.”

예령은 말허리를 돌렸다. 장호가 욕을 삼키며 따라붙었다.

비탈을 내려가는 여든 기의 소리는 처음엔 땅울림 같았다. 눈이 얕게 덮인 비탈이라 말발굽이 미끄러지고, 그때마다 흙덩이가 튀었다.

울란족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가죽옷의 사내가 짧게 외치자, 말 곁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안장에 뛰어올랐다. 골짜기 끝은 이미 코앞이었다. 저 능선만 넘으면 변경이었다.

“말고삐를 끊어라! 사람부터 떼어 내라!”

무겸의 외침이 바람을 갈랐다. 삼 년 만에 그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있었다. 대오가 저절로 조여들었다.

선두가 부딪혔다. 창이 부러지고 말이 울었다. 눈보라가 아니라 말발굽이 일으킨 눈가루가 골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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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6화. 이름을 부르는 사람

    곽삼은 그날 밤 열이 올랐다.두 달을 눈길에서 자루를 진 몸이었다. 손목은 헐고 발은 얼어 있었고, 갈비뼈 쪽에는 오래된 멍이 검게 남아 있었다.야영지 천막 안에서 예령은 그의 이마에 젖은 천을 얹었다. 손목의 헐은 자리에는 위량이 가져온 약을 발랐다. 곽삼은 자다 깨다 하면서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자루가 무겁습니다. 아직 스무 개 남았습니다.”“이제 안 지셔도 됩니다.”“……아가씨한테 말하면 안 된다고, 그자들이…….”“말해도 됩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곽삼은 그 말에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잠들었다.천막 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무겸이 들어왔다. 손에 물그릇을 들고 있었다. 병사에게 시키지 않고 제 손으로 들고 온 물이었다.“번을 바꾸시오. 내가 보겠소.”“제가 보겠습니다.”“그대는 어젯밤도 새웠소. 오늘도 새우면 내일은 말에 오르지도 못하오.”“그래도 제가 보겠습니다.”무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물그릇을 내려놓고 예령의 옆에 앉았다. 천막 밖에서 병사들이 교대하는 소리가 들렸다.한참 뒤에 그가 물었다.“짐꾼 하나 때문에 화살 앞에 서는 상인은 처음 보았소.”“짐꾼 하나가 아닙니다.”예령은 젖은 천을 다시 짰다.“이름이 있는 사람입니다.”예령은 젖은 천을 다시 짰다.“곽삼입니다. 열여섯에 우리 상단에 들어와 수레를 배웠고, 북방 길을 여덟 번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있고, 아이가 둘입니다. 큰애가 올해 여섯이라고, 떠나기 전에 자랑을 했습니다.”“……그렇군.”“그리고.”예령은 잠시 망설였다.“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두고 돌아선 적이 있습니다.”무겸이 그녀를 보았다. 예령은 곽삼의 이마만 보고 있었다.전생이었다.옥에 갇혀 있던 마지막 며칠, 문밖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상단 사람이었는지 연화였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그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고 여겼다.그 목소리는 지금도 꿈에 나왔다. 이름을 부르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꿈이었다.“두 번은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5화. 데려온다

    무겸이 예령을 돌아보았다.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는 얼굴이었다.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는 것을 둘 다 알았다.병사들이 흩어졌다. 예령이 그 뒤를 따르려 하자 장호가 앞을 막았다.“여기 계셔야 합니다.”“그 사람 이름을 아는 건 나뿐입니다. 저 눈밭에서 누가 곽삼인지, 병사들은 모릅니다.”예령은 말허리를 돌렸다. 장호가 욕을 삼키며 따라붙었다.비탈을 내려가는 여든 기의 소리는 처음엔 땅울림 같았다. 눈이 얕게 덮인 비탈이라 말발굽이 미끄러지고, 그때마다 흙덩이가 튀었다.울란족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가죽옷의 사내가 짧게 외치자, 말 곁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안장에 뛰어올랐다. 골짜기 끝은 이미 코앞이었다. 저 능선만 넘으면 변경이었다.“말고삐를 끊어라! 사람부터 떼어 내라!”무겸의 외침이 바람을 갈랐다. 삼 년 만에 그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있었다. 대오가 저절로 조여들었다.선두가 부딪혔다. 창이 부러지고 말이 울었다. 눈보라가 아니라 말발굽이 일으킨 눈가루가 골짜기를 하얗게 덮었다.곽삼을 실은 말이 먼저 움직였다. 고삐를 쥔 자가 능선 쪽으로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 옆에서 달려든 말과 뒤엉켜 앞다리를 들었다.무겸의 칼이 그 사이로 들어갔다. 고삐가 끊어지고, 배를 걸친 채 얹혀 있던 곽삼이 눈 위로 굴러떨어졌다.“곽삼!”예령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눈 속에 무릎이 박혔다. 그녀는 그대로 기어가 손목을 묶은 밧줄을 더듬었다.밧줄이 얼어 있었다. 손끝이 미끄러졌다.“아가씨…….”곽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말하지 마세요. 이제 곧 끝납니다.”곽삼의 손목은 살이 헐어 진물이 나 있었다.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는지 알 만했다. 두 달 전 수레를 몰던 손이었다.예령은 허리춤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흥정하다 손톱을 다듬거나 장부 끈을 자를 때 쓰던 칼이었다. 그 칼로 언 밧줄을 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밧줄이 끊어졌다.그때 등 뒤에서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예령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무겸이었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4화. 열하나

    위량이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품에서 주먹만 한 천 뭉치를 꺼내 예령 앞에 내려놓았다. 소금을 한 줌 싸서 묶어 온 것이었다.예령이 천을 펼치자 흰 알갱이가 드러났다.예령은 손끝으로 알갱이를 집어 비벼 보았다. 고르고 반듯했다. 굵기도, 물기도 마당에서 밟은 것과 같았다.“같습니다.”이제 저 창고와 태성상단의 마당은 한 줄로 이어졌다. 관의 소금이 저 문으로 나가 황기문의 마당에 밟히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능선 아래에서 짐꾼들이 다시 자루를 지고 서기 시작했다. 빈 수레가 남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곽삼은 그 줄에 없었다.예령은 눈으로 다시 셌다. 한 번, 두 번. 열하나였다.초소 문이 닫히고 있었다.“곽삼이 저 안에 남았습니다.”예령이 말했다. 무겸이 위량을 돌아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은 하나였다.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 오라는 것이었다.위량은 대답 대신 활을 내려놓고 비탈을 기어 내려갔다. 눈 위에 몸을 붙인 채 바위와 마른 덤불 사이로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은 능선 그늘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돌아온 것은 한 식경쯤 지나서였다. 소매 끝에 흙이 묻어 있었고, 손등에는 새로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짐꾼들을 부리던 자를 하나 붙잡아 물었소.”위량은 어떻게 붙잡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짐꾼 하나가 어젯밤부터 따로 묶여 있다 하오. 어제 창고 마당에서 서씨 상단 부인을 보고 입을 열 뻔한 자라고. 상단주가 직접 일렀답디다.”무겸의 목소리가 낮았다. 예령은 손끝이 서늘해졌다. 모른 척한 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곽삼은 쓸모보다 위험이 큰 사람이 되어 있었다.빈 수레 여섯 대가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짐꾼 열하나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법을 잊은 걸음이었다.예령은 닫힌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지금 저 문을 치면 어찌 됩니까.”“저 안에는 곽삼과 함께 창 든 자가 여섯이오. 우리가 문을 부수는 동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3화. 염창

    수레는 밤새 북으로 올라갔다.길이 아닌 길이었다. 마른 개울 바닥을 따라가다 능선을 넘고, 다시 골짜기로 내려섰다. 눈이 얼어붙어 바퀴 자국이 남지 않는 자리만 골라 가는 길이었다. 한두 번 다녀 본 자들의 걸음이 아니었다.무겸이 데려온 군사 백 명은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뒤를 밟았다. 횃불은 하나도 켜지 않았다. 맨 앞에서 위량이 길을 살피고, 맨 뒤에서 장호가 눈 위에 남은 자국을 지웠다.말 위에서 예령은 손끝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눈보라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칼 같았다. 졸음이 쏟아졌다가 추위에 깨기를 되풀이했다.그때마다 등 뒤의 팔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밤새 한 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새벽녘, 수레가 멈춘 곳은 골짜기 끝의 낡은 초소 앞이었다.“저건 봉수대였던 자리요.”위량이 엎드린 채 말했다.“전쟁 때는 변경 소식을 황도까지 올리던 곳이오. 전쟁이 끝난 뒤로 불을 올리지 않으니, 지키는 자도 없다고 들었는데.”지키는 자가 없다던 초소 앞에는 창을 든 사내 여섯이 서 있었다.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드러났다. 산처럼 쌓인 소금 자루였다.예령은 숨을 삼켰다.창고 하나를 채울 양이 아니었다. 변경 수비군 전체가 한 해를 쓰고도 남을 양이었다.“관의 염창[(鹽倉)나라에서 소금을 거두어 쟁여 두는 창고]이오.”무겸의 목소리가 낮았다.“변경의 군이 쓰는 소금은 관에서 내려보내 저런 창고에 쟁여 두오. 저 창고가 비면 겨울을 못 나오.”“그 창고의 소금이 지금 밖으로 나가고 있군요.”“그렇소.”예령은 머릿속으로 자루를 셌다. 한 수레에 스무 자루, 여섯 대면 백스물. 황도 시세로 치면 은자 이백 냥이 넘었다. 이 짓을 겨울마다 했다면 액수는 헤아릴 필요도 없었다.수레에서 자루를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초소 안에서 자루를 꺼내 수레에 싣고 있었다. 짐꾼 열둘이 오가며 자루를 날랐다. 그중 하나가 곽삼이었다.예령은 그 등을 눈으로 좇았다. 자루를 지고 초소를 나설 때마다 곽삼은 한 번씩 능선 쪽을 올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2화. 모르는 얼굴

    마당에 있던 모든 눈이 예령에게 쏠렸다.곽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쏟아진 소금 위로 그의 발이 그대로였고, 벌어진 입은 다음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예령은 아주 짧은 순간에 셈을 끝냈다.지금 저 사람을 안다고 말하면, 황기문은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북방에서 사람을 사서 부리는 일은 흔했다. 증거도 문서도 없었다. 대신 오늘 밤 곽삼은 이 창고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머지 둘도 함께.예령은 곽삼을 정면으로 보았다. 그리고 낯선 사람을 보듯 눈을 깜박였다.“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곽삼의 얼굴이 굳었다. 예령은 그대로 시선을 거두었다. 처음 보는 짐꾼에게서 눈을 떼듯이.황기문이 옆에서 웃었다. 그러나 눈은 예령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아는 얼굴입니까?”“글쎄요. 저희 상단 사람이었다면 저렇게 등이 굽지는 않았을 겁니다.”예령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황기문이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웃음을 풀었다.“하긴, 짐 지는 자들 얼굴이야 다 그렇지요.”그가 손짓하자 사내들이 다시 자루를 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곽삼은 한참 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다가, 뒤에 선 감독의 손짓에 떠밀려 쏟아진 소금을 쓸어 담았다.예령은 돌아섰다. 정문까지 스무남짓 걸음이었다.그 걸음을 걷는 동안, 등 뒤에서 소금을 쓸어 담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한 번만 돌아보면 될 것 같았다. 예령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장호가 반걸음 뒤에서 낮게 말했다.“곽삼입니다.”“압니다.”“……예.”장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문이 열리고 닫혔다.언덕을 내려오자 무겸이 바위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그 뒤로 군사 백이 소리 없이 일어섰다. 예령의 얼굴을 본 무겸의 눈빛이 달라졌다.“무슨 일이 있었소.”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반 시진을 문밖에서 헤아리며 서 있던 사람의 목소리였다.“……찾았습니다.”예령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곽삼이었습니다. 수레를 제일 잘 다루던 사람입니다. 지난가을에는 등이 곧았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1화. 소금은 다루지 않습니다

    창고 마당은 밖에서 본 것보다 넓었다.짐을 지고 오가는 자가 스물은 넘었고, 한쪽에서는 수레에 덮개를 씌우는 중이었다. 모두 예령을 한 번씩 보았다가 서둘러 눈을 돌렸다. 손님이 드나드는 창고의 공기가 아니었다.“서씨 상단의 부인께서 이 먼 데까지 오셨습니까.”황기문이 마당까지 나와 그녀를 맞았다. 황도의 서씨 상단 회관에서 보았을 때와 같은 차림이었다. 비단 겉옷에 패옥을 늘어뜨리고, 서른 중반의 얼굴에 웃음을 얹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만은 웃지 않았다.“북방 거래처를 돌아보는 길입니다. 태성상단 창고가 있다 하여 인사나 드리려고요.”황기문이 과장스럽게 손을 저었다.“인사라니, 과분합니다. 관문에서 저희 사람이 실수를 저질렀다 들었습니다. 사람을 잘못 쓴 제 불찰이지요.”황기문이 차를 내밀었다. 예령은 잔을 받되 입에 대지 않았다.“북방 물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남의 집에서 차를 마시면, 셈이 흐려지더군요.”황기문이 소리 내어 웃었다. 마당 한쪽에서 짐을 나르던 자들이 그 웃음에 곁눈질을 했다.마당을 가로지르며 예령은 발밑부터 보았다. 다져진 흙에 희끗한 알갱이가 박혀 있었다. 소금이었다.그 위로 난 수레바퀴 자국은 곡식 수레보다 좁고 깊었다. 무거운 것을 조금씩, 자주 실어 나른 바퀴였다.뒤채에서는 편자 박는 쇳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창고 한 채가 부릴 말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창고는 셋이었다. 문이 열린 것은 하나뿐, 나머지 둘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창고를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북방 곡식 시세를 보고 가려고요.”“오늘은 곤란합니다. 짐을 옮기는 날이라서요.”짐을 옮기는 날이라면 창고 문이 열려 있어야 했다. 자물쇠가 걸린 쪽은 오늘 아무것도 들이지도, 내지도 않는다는 뜻이었다. 예령은 그 말을 삼켰다.“그리고 진가상회로 가신다 하셨지요. 헛걸음이실 겁니다. 그쪽은 며칠 전에 저희와 문서를 맞췄습니다.”“그럼 제가 가서 확인하면 되겠군요. 상인은 남의 입보다 제 눈을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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