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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사내라서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2 10:05:37

“오늘 밤부터는…… 따로 주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해 놓고 예령은 젓가락을 든 채 가만히 있었다. 국은 이미 식어 있었다.

무겸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로에서 숯이 내려앉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예령은 제가 한 말을 물릴 수도 없어 손끝만 보고 있었다.

“그리 말할 줄 알았소.”

놀란 기색 없이 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셈하는 사람이니, 나흘을 세어 보고 답을 냈겠지.”

“……예.”

“그리고 그 답에는 그대 탓이 들어 있을 거요.”

예령이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까?”

무겸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창 앞에 가서 섰다. 담장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오늘 나가면 그대는 평생 그리 알 거요. 제가 옆에 있어서 장군이 상했다고.”

“그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한참 말이 없었다. 담장 위의 눈이 바람에 한 번 날렸다.

“나는 사내요.”

예령은 처음에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 자리에 누운 사람이 그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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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7화. 패

    말이 두 발을 바로 세우고 그대로 걸었다.“잘하셨소.”예령이 돌아보니 무겸이 열 걸음 뒤에 서 있었다. 거기서부터 뛰어올 자세로 서 있던 사람의 어깨였다. 아침 연무장에는 그 둘과 말 한 필뿐이었다.“다섯 바퀴를 혼자 돌면 강까지 타고 가도 되오.”“오늘 돌겠습니다.”“오늘은 세 바퀴요.”“왜요?”“처음에 많이 타면 다음 날 못 걷소.”예령은 세 바퀴를 돌고 내렸다. 내리고 나서야 허벅지가 떨리는 것을 알았다. 해는 아직 낮았다.무겸이 말의 목을 두드리고 고삐를 끌었다.“내일도 이 시각에 나오시오.”“예.”“그리고 그 말은 계속 생각해 보시오.”예령은 연무장을 나오면서 그 말이 무엇이었을지를 또 생각했다.관사 마당에 들어서는데 연화가 빨래를 안고 나오다 걸음을 멈췄다.“마님. 왜 그렇게 걸으십니까?”“말을 탔다.”“말을요?”“장군께서 가르쳐 주셨다.”연화가 빨래를 안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예령이 그 앞을 지나가고 나서야 뒤에서 소리가 났다.“마님. 저녁에 물을 데워 올리겠습니다.”“물은 왜?”“다리를 담그시면 내일이 좀 낫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말 끌고 오신 날에는 늘 그러셨습니다.”연무장에서 돌아온 뒤로 예령은 장부를 세 번 펴고 세 번 덮었다.강마을에서 올라온 셈을 적다가 숫자가 한 줄 밀렸고, 그것을 고치다가 또 한 줄이 밀렸다. 붓을 놓고 손으로 이마를 눌렀다.“연화야.”“예, 마님.”“어젯밤에 내가 무슨 말을 하더냐?”연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제가 그걸 어찌 압니까. 상을 물리고 나서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는걸요.”“……그렇구나.”“무슨 말씀을 하셨는데요?”“모른다.”“모르시는데 어찌 여쭤보십니까?”“그러니까 묻는 것이 아니냐.”연화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다. 예령은 붓을 다시 들었다.해가 기울 무렵 곽진이 강에서 돌아왔다.“오늘은 스물여섯이 건넜습니다. 쉰두 말입니다.”“얼음은요?”“한 뼘 반에서 조금 더 두꺼워졌습니다. 엿새쯤 뒤면 썰매를 올려도 될 듯합니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6화. 기억나지 않는 말

    무겸이 상을 물리라 이를 무렵에는 예령의 말이 조금 느려져 있었다.“장군.”“말하시오.”“저는 오늘 장부를 못 적겠습니다.”“내일 적으시오.”“내일 적으면 오늘 것을 잊습니다.”“잊을 만한 하루였소?”예령이 고개를 저었다. 저었다가, 그 김에 고개가 그대로 옆으로 기울었다.무겸이 손을 뻗어 그 어깨를 받쳤다.“연화를 부르리까?”“……부르지 마십시오. 연화가 놀립니다.”“놀릴 만하오.”무겸이 그녀를 부축해 이불 위에 앉혔다. 예령은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했다.“장군.”“말하시오.”“오늘은 저기 가서 주무십니까?”무겸이 대답하지 않았다.예령은 그 대답을 기다리다가 먼저 잠이 들었다.예령이 눈을 뜬 것은 날이 새기 전이었다.머리가 무거웠다. 목이 말라 몸을 일으키려다가, 머리맡에 놓인 물그릇을 먼저 보았다. 뚜껑이 덮여 있었다. 손을 대 보니 아직 미지근했다.방 안이 어둡지 않았다. 등잔 심지가 아주 낮게 내려가 있었다.화로 옆에 무겸이 앉아 있었다.벽에 등을 대고 무릎을 세운 자세였다. 겉옷은 벗지 않았고, 칼은 손이 닿는 자리에 눕혀 두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예령은 한동안 숨을 죽였다.“깼소?”감은 눈 그대로 나온 말이었다.“……안 주무셨습니까?”“잤소.”“앉아서요?”“앉아서 자는 것은 십 년을 했소.”무겸이 눈을 떴다. 예령은 물그릇 쪽으로 눈을 돌렸다.“이건 장군께서 가져다 두셨습니까?”“연화에게 이르려다 말았소. 그 아이가 이 방을 들여다보면 그대가 아침에 곤란할 것 같아서.”예령은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 물그릇을 들었다. 한 모금을 삼키고 나니 속이 조금 가라앉았다.“몇 시진이나 되었습니까?”“두 시진쯤 되었소.”“그동안 여기 계셨습니까?”“그대가 돌아누울 때마다 이불이 자꾸 흘러서.”예령은 물그릇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무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더 자시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소.”“장군은요?”“나는 새벽에 순찰을 도오.”문을 열자 찬 기운이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5화. 한 잔

    강가에 남은 예령은 그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강 이쪽 언덕 위에 말 한 필이 서 있었다.그 옆에 선 사람이 무겸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예령이 눈을 밟으며 언덕을 걸어 오르는 동안 그는 고삐를 쥔 채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군영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얼음을 보러 왔소.”“얼음은 저쪽입니다.”“보았소.”예령은 더 묻지 않았다. 언덕에서는 강 전체가 보였고, 얼음 위에 서 있던 두 사람도 보였을 것이었다.“강마을 스물세 집과 건너편 마을 스물한 집을 진가상회 장부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관아가 부역으로 그 사람들을 빼 가지 못하게요.”“품삯은 그대가 치르는 것이오?”“예. 겨울 동안은 제가 냅니다.”“그런데 장부에 오르는 이름은 진가상회요?”“예. 그래야 관아가 함부로 사람을 부르지 못한다 합니다.”무겸이 고삐를 끌어당겼다.“타시오. 여기서 군영까지 걸으면 해가 넘어가오.”“저는 눈길에서는 말이 서툽니다.”“알고 있소.”무겸이 등자를 잡아 주었다.“오늘은 오르기만 하시오. 고삐는 내가 잡겠소.”예령이 안장에 오르자 무겸이 뒤에 올랐다. 등 뒤에서 팔이 넘어와 고삐를 쥐었다.“그대는 겨울 내내 강에 나갈 사람이오.”“예.”“평지에서 타는 것과 눈길에서 타는 것은 다르오. 얼어붙은 비탈에서 말이 미끄러지면 고삐 쥐는 법부터 달라야 하오. 내일부터 연무장에서 한 시진씩 가르쳐 드리겠소.”“제가 배울 수 있겠습니까?”“이미 타는 사람이니 익히기만 하면 되오.”말이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하고 나서야 그가 한 박자 늦게 물었다.“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고 갔소?”예령은 잠깐 대답을 골랐다.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겨울이 끝나면 술을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장사 이야기 말고요.”무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은 그 뒤로 천천히 걸었다. 군영이 보일 때까지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관사 문 앞에 이르러 무겸이 먼저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예령이 내리는 것을 받쳐 준 뒤에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4화. 이름을 올리다

    닷새째 되는 날, 강 건너편 둑에 낯선 말 한 필이 올라섰다.말에서 내린 사내가 고삐를 수하에게 넘기고 둑을 걸어 내려왔다. 털을 댄 겉옷에 남쪽 비단을 두른 차림이었다. 그가 그대로 얼음 위로 올라섰다. 발밑을 살피는 걸음이 아니라, 몇 번 건너 본 사람의 걸음이었다.“부인.”진서헌이 웃으며 예를 갖췄다.“먼 길에 발이 묶여 뵙지 못했습니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오셨습니까. 수레가 관문에서 돌아섰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부터 사과드려야겠습니다.”“부인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지요.”그가 강 쪽으로 눈을 돌렸다.“제 곡식이 강을 건너고 있다는 말을 듣고 와 봤습니다.”“관문이 막혔으니 강으로 건넜습니다.”“문서 없이요?”“강을 건너는 데 문서를 떼라는 법은 없습니다.”진서헌이 웃음을 터뜨렸다. 얼음 위에서 웃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졌다.“부인.”“예.”“관아가 이걸 알면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막을 법이 없으니 다른 것을 걸겠지요.”“그 다른 것이 무엇일지도 세어 두셨습니까?”예령은 답하지 않았다. 진서헌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얼음은 관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 마을 사람들은 관아 호적에 올라 있지요.”“그래서요?”“겨울에도 관아가 사람을 부르면 가야 합니다. 성을 고치라 하든 길을 치우라 하든요. 강을 건널 사람이 다 불려 가면, 얼음이 한 자가 되어도 짐은 건너지 못합니다.”예령은 강 건너를 보았다.지난 사흘 동안 저 마을에서 넷이 나왔고, 오늘은 여섯이 나왔다. 관아가 부르면 그들이 먼저 불려 간다. 짐을 지는 사람이 없으면 얼음이 아무리 두꺼워도 강은 길이 되지 못했다.관문을 피해 강으로 왔더니, 이제는 사람을 걸겠다는 것이었다.“막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예령이 물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관아가 사람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부를 사람이 없으면 못 부르지요.”“무슨 말씀이십니까?”“부역은 집집마다 사람을 셉니다. 스무 집이면 스무 사람이지요.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3화. 얼음을 재다

    아침상은 조용했다.예령은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이미 앉아 있었다. 마주 앉고 보니 눈 밑이 어제와 같았다. 제 얼굴도 그러할 것이었다.어젯밤 이야기를 꺼낼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기도 어려웠다. 예령은 국그릇만 들여다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방은 괜찮으셨습니까?”“화로를 들여 주셨더군.”“기름도 채워 두었습니다.”“알고 있소.”그러고 나서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났다.“오늘 강에 나가 보겠습니다.”“장호를 데려가시오.”“예.”“얼음은 사람이 먼저 딛지 마시오. 장대로 짚어 보고, 그다음에 장호가 딛고, 그다음이 그대요.”“그리하겠습니다.”그것으로 끝이었다. 무겸이 먼저 일어섰고, 문턱을 넘기 전에 한 번 멈췄다가 그냥 나갔다.강은 군영에서 서쪽으로 스무 리였다.강마을은 스물세 집이었고, 마을 어귀에 이미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만씨가 사흘 전에 미리 말을 넣어 둔 덕이었다.“서씨 상단에서 오셨다지요.”마을에서 제일 나이 든 사내가 나섰다.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얼음을 보러 왔습니다.”“보시지요. 다만 올해는 좀 늦게 얼었습니다.”강폭은 오십 보쯤이었다. 눈이 덮여 있어 언뜻 보면 그냥 들판 같았다.사내가 도끼로 얼음을 깼다. 서너 번 내리치자 물이 비쳤다. 그가 깨진 자리에 손을 넣어 두께를 재고는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한 뼘입니다.”“사람은 건너도 되겠습니까?”“됩니다. 열 사람이 줄지어 건너도 안 깨집니다.”“썰매는요?”사내가 고개를 저었다.“한 자는 되어야 짐 실은 썰매를 끕니다. 지금은 빈 썰매나 끌지요.”예령은 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걸었다. 장호가 장대로 앞을 짚으며 앞서 걸었다.“부인, 여기까지만 오십시오.”“조금만 더 가 보겠습니다.”“장군께서 순서를 정해 주셨습니다.”예령은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장호가 먼저 얼음을 딛고, 두 걸음을 옮기고, 그러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이백 보쯤 올라가자 물살이 느려지는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2화. 사내라서

    “오늘 밤부터는…… 따로 주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말해 놓고 예령은 젓가락을 든 채 가만히 있었다. 국은 이미 식어 있었다.무겸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화로에서 숯이 내려앉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예령은 제가 한 말을 물릴 수도 없어 손끝만 보고 있었다.“그리 말할 줄 알았소.”놀란 기색 없이 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대는 셈하는 사람이니, 나흘을 세어 보고 답을 냈겠지.”“……예.”“그리고 그 답에는 그대 탓이 들어 있을 거요.”예령이 고개를 들었다.“아닙니까?”무겸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창 앞에 가서 섰다. 담장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오늘 나가면 그대는 평생 그리 알 거요. 제가 옆에 있어서 장군이 상했다고.”“그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한참 말이 없었다. 담장 위의 눈이 바람에 한 번 날렸다.“나는 사내요.”예령은 처음에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한 자리에 누운 사람이 그대인데, 내가 편히 잠들 도리가 없소.”방 안이 아주 조용해졌다.닷새 전 밤의 일이 떠올랐다. 손이 차다며 그가 제 손을 감싸 쥐고 가슴께에 가져다 두었을 때, 옷 한 겹 아래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제 것과 같다고만 생각했다.예령의 얼굴이 뜨거워지는 데는 숨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귀 끝부터 달아올랐고, 손에 쥔 것이 없는데도 손바닥에 땀이 찼다.“혼례를 치렀으니 아무도 막지 않소.”무겸이 창을 본 채로 말했다.“그래서 내가 막았소.”“……어찌하여요.”“이 방에 그대가 이부자리를 한 채만 깔라 한 날, 그대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했는지 나는 아오.”무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추울까 봐 그리한 것이지, 나를 들이겠다는 뜻이 아니었소.”예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우리는 삼 년을 약조했소.”그 말에 예령의 숨이 한 번 걸렸다.“삼 년 뒤에 그대가 떠나고자 하면 떠날 수 있어야 하오. 나는 그 약조를 받고 그대와 혼인했소.”무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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