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닷새째 되는 날, 강 건너편 둑에 낯선 말 한 필이 올라섰다.말에서 내린 사내가 고삐를 수하에게 넘기고 둑을 걸어 내려왔다. 털을 댄 겉옷에 남쪽 비단을 두른 차림이었다. 그가 그대로 얼음 위로 올라섰다. 발밑을 살피는 걸음이 아니라, 몇 번 건너 본 사람의 걸음이었다.“부인.”진서헌이 웃으며 예를 갖췄다.“먼 길에 발이 묶여 뵙지 못했습니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오셨습니까. 수레가 관문에서 돌아섰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부터 사과드려야겠습니다.”“부인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지요.”그가 강 쪽으로 눈을 돌렸다.“제 곡식이 강을 건너고 있다는 말을 듣고 와 봤습니다.”“관문이 막혔으니 강으로 건넜습니다.”“문서 없이요?”“강을 건너는 데 문서를 떼라는 법은 없습니다.”진서헌이 웃음을 터뜨렸다. 얼음 위에서 웃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졌다.“부인.”“예.”“관아가 이걸 알면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막을 법이 없으니 다른 것을 걸겠지요.”“그 다른 것이 무엇일지도 세어 두셨습니까?”예령은 답하지 않았다. 진서헌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얼음은 관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 마을 사람들은 관아 호적에 올라 있지요.”“그래서요?”“겨울에도 관아가 사람을 부르면 가야 합니다. 성을 고치라 하든 길을 치우라 하든요. 강을 건널 사람이 다 불려 가면, 얼음이 한 자가 되어도 짐은 건너지 못합니다.”예령은 강 건너를 보았다.지난 사흘 동안 저 마을에서 넷이 나왔고, 오늘은 여섯이 나왔다. 관아가 부르면 그들이 먼저 불려 간다. 짐을 지는 사람이 없으면 얼음이 아무리 두꺼워도 강은 길이 되지 못했다.관문을 피해 강으로 왔더니, 이제는 사람을 걸겠다는 것이었다.“막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예령이 물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관아가 사람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부를 사람이 없으면 못 부르지요.”“무슨 말씀이십니까?”“부역은 집집마다 사람을 셉니다. 스무 집이면 스무 사람이지요.
아침상은 조용했다.예령은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이미 앉아 있었다. 마주 앉고 보니 눈 밑이 어제와 같았다. 제 얼굴도 그러할 것이었다.어젯밤 이야기를 꺼낼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기도 어려웠다. 예령은 국그릇만 들여다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방은 괜찮으셨습니까?”“화로를 들여 주셨더군.”“기름도 채워 두었습니다.”“알고 있소.”그러고 나서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났다.“오늘 강에 나가 보겠습니다.”“장호를 데려가시오.”“예.”“얼음은 사람이 먼저 딛지 마시오. 장대로 짚어 보고, 그다음에 장호가 딛고, 그다음이 그대요.”“그리하겠습니다.”그것으로 끝이었다. 무겸이 먼저 일어섰고, 문턱을 넘기 전에 한 번 멈췄다가 그냥 나갔다.강은 군영에서 서쪽으로 스무 리였다.강마을은 스물세 집이었고, 마을 어귀에 이미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만씨가 사흘 전에 미리 말을 넣어 둔 덕이었다.“서씨 상단에서 오셨다지요.”마을에서 제일 나이 든 사내가 나섰다.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얼음을 보러 왔습니다.”“보시지요. 다만 올해는 좀 늦게 얼었습니다.”강폭은 오십 보쯤이었다. 눈이 덮여 있어 언뜻 보면 그냥 들판 같았다.사내가 도끼로 얼음을 깼다. 서너 번 내리치자 물이 비쳤다. 그가 깨진 자리에 손을 넣어 두께를 재고는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한 뼘입니다.”“사람은 건너도 되겠습니까?”“됩니다. 열 사람이 줄지어 건너도 안 깨집니다.”“썰매는요?”사내가 고개를 저었다.“한 자는 되어야 짐 실은 썰매를 끕니다. 지금은 빈 썰매나 끌지요.”예령은 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걸었다. 장호가 장대로 앞을 짚으며 앞서 걸었다.“부인, 여기까지만 오십시오.”“조금만 더 가 보겠습니다.”“장군께서 순서를 정해 주셨습니다.”예령은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장호가 먼저 얼음을 딛고, 두 걸음을 옮기고, 그러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이백 보쯤 올라가자 물살이 느려지는
“오늘 밤부터는…… 따로 주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말해 놓고 예령은 젓가락을 든 채 가만히 있었다. 국은 이미 식어 있었다.무겸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화로에서 숯이 내려앉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예령은 제가 한 말을 물릴 수도 없어 손끝만 보고 있었다.“그리 말할 줄 알았소.”놀란 기색 없이 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대는 셈하는 사람이니, 나흘을 세어 보고 답을 냈겠지.”“……예.”“그리고 그 답에는 그대 탓이 들어 있을 거요.”예령이 고개를 들었다.“아닙니까?”무겸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창 앞에 가서 섰다. 담장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오늘 나가면 그대는 평생 그리 알 거요. 제가 옆에 있어서 장군이 상했다고.”“그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한참 말이 없었다. 담장 위의 눈이 바람에 한 번 날렸다.“나는 사내요.”예령은 처음에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한 자리에 누운 사람이 그대인데, 내가 편히 잠들 도리가 없소.”방 안이 아주 조용해졌다.닷새 전 밤의 일이 떠올랐다. 손이 차다며 그가 제 손을 감싸 쥐고 가슴께에 가져다 두었을 때, 옷 한 겹 아래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제 것과 같다고만 생각했다.예령의 얼굴이 뜨거워지는 데는 숨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귀 끝부터 달아올랐고, 손에 쥔 것이 없는데도 손바닥에 땀이 찼다.“혼례를 치렀으니 아무도 막지 않소.”무겸이 창을 본 채로 말했다.“그래서 내가 막았소.”“……어찌하여요.”“이 방에 그대가 이부자리를 한 채만 깔라 한 날, 그대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했는지 나는 아오.”무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추울까 봐 그리한 것이지, 나를 들이겠다는 뜻이 아니었소.”예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우리는 삼 년을 약조했소.”그 말에 예령의 숨이 한 번 걸렸다.“삼 년 뒤에 그대가 떠나고자 하면 떠날 수 있어야 하오. 나는 그 약조를 받고 그대와 혼인했소.”무겸이
그날 밤 무겸은 방에 있었다.누운 뒤로 한참 뒤척이는 기척이 났고, 이불이 들렸다가 도로 덮였다. 예령은 자는 척을 했다. 깨어 있다고 하면 그가 또 일어날 것 같았다.새벽에 눈을 떴을 때 그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장군.”“더 자시오.”“몇 시진이나 깨어 계셨습니까?”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노 씨와 만씨가 관사로 왔다.예령은 북방 지도를 마루에 펴 놓았다. 군영에서 쓰는 지도라 관문과 큰길은 굵게 그려져 있었고, 그 사이 마을들은 점으로만 찍혀 있었다.“이 지도에 없는 길을 여쭙겠습니다.”노 씨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짚었다.“여기 강이 있습니다.”“다리는 관문 쪽뿐인 줄 압니다만.”“다리로 안 건넙니다.”노 씨가 손가락을 그대로 둔 채 말했다.“동짓달부터 정월까지는 얼음이 사람을 받습니다. 그냥 걸어서 건너지요. 강 저쪽이 바로 백운상회 뒷마을입니다.”예령은 그 자리를 손끝으로 눌러 보았다. 관문에서 이십 리쯤 위였다.“수레는 어떻습니까?”“수레는 못 갑니다. 얼음이 아무리 두꺼워도 바퀴가 한 자리를 오래 누르면 깨집니다. 사람이 지고 걸으면 무게가 흩어져서 괜찮고요.”“짐을 실은 썰매는요?”노 씨가 잠깐 멈칫했다.“……썰매라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은 못 해 봤습니다.”“얼음 위로 썰매를 끌어 본 사람이 이 근방에 있습니까?”“강마을 사람들이 겨울에 나무를 그렇게 나릅니다.”만씨가 대답했다.“사람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밉니다. 나무 대신 자루를 싣지 못할 까닭은 없지요.”“강마을 사람들은 몇이나 됩니까?”“스무 집쯤 됩니다. 겨울에는 손이 남아돌고요.”장부에 적어야 할 이름이 또 늘었다.예령은 장부를 펴고 셈을 시작했다.썰매 한 대에 쌀 열 말. 사람 넷이 한 대를 끌면, 등짐으로는 여덟 말을 나를 인원이 열 말을 나른다. 얼음이 녹기까지 남은 날은 사십 일 남짓. 사흘에 한 번씩 건넌다면 열세 번.붓이 멈춘 곳에서 숫자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예령은 알지 못했다.눈을 떴을 때 손은 비어 있었고, 옆자리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마루 쪽에서 무겸이 갑옷 끈을 조이는 소리가 났다.“장군.”“깨웠소?”“아닙니다. 저도 일어나려던 참이었습니다.”예령이 몸을 일으켰다.“오늘 첫 등짐이 나갑니다.”“몇이오?”“넷입니다. 한꺼번에 열넷이 관문에 몰리면 눈에 띈다고 해서요.”“곽진의 사람은 붙였소?”“둘을 붙였습니다. 군복은 벗기고 칼도 두고 가라 했습니다.”“잘하셨소.”문이 닫혔다. 예령은 그 자리에 잠깐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넷을 한 번에 보내지도 않았다. 아침에 둘, 해가 기울 무렵에 둘. 지고 갈 짐도 쌀 두 말씩으로만 맞췄다. 모두 노 씨가 일러 준 대로였다.붙잡혔다면 저녁 전에 소식이 올 것이고, 소식이 없으면 넘은 것이었다. 예령은 장부를 펴 놓고 앉았다가 같은 줄만 세 번 읽고 덮었다.넷이 돌아온 것은 그날 밤이었다.쌀 여덟 말. 진가상회 수레 한 대에 실리는 양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멍석 위에 내려놓은 자루를 보는 동안 예령은 숨을 한 번 길게 쉬었다.“아전이 뭐라 하지 않았습니까?”“묻긴 물었습니다.”노 씨가 손을 비비며 답했다.“겨울에 웬 등짐이냐고요.”“뭐라 하셨습니까?”“읍내에 장이 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루를 한 번 만져 보고는 가라 하더군요.”만씨가 옆에서 덧붙였다.“아전이 쌀자루를 못 알아봤겠습니까. 등짐까지 붙잡기 시작하면 그날로 장이 안 섭니다. 읍내 사람들이 먼저 들고일어나지요.”이튿날은 여덟을 보냈고, 사흘째는 열넷을 다 보냈다.사흘 동안 쌀 예순두 말이 관문을 넘었다. 예령은 장부에 이름과 날짜와 양을 한 줄씩 적었다. 만씨, 쌀 두 말. 노 씨, 쌀 두 말. 그 아래로 열두 줄.값은 지기 전에 치렀다. 관사 마당에서 돈을 받아 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세어 보고, 세 번 세는 이도 있었다.곽진이 곁에서 낮게 말했다.“이 사람들이 부인 이름을 대고 다닙니다.”“대라고 했습
이튿날 아침, 예령은 곽진에게 명단을 다시 가져오게 했다.겨울 동안 북방에 남은 작은 상인 스물세 명. 비단 두어 필을 지고 다니는 자, 소금 반 섬을 나르는 자, 약재를 말려 파는 자.“이 사람들을 관사로 부르면 오겠습니까?”“오기야 오겠지요. 다만 부인께서 무엇을 시키시든 겁부터 낼 겁니다.”“겁낼 만한 일을 시킬 참입니다.”그날 오후, 관사 마당에 스물세 명 가운데 열일곱이 왔다.솜이 비어 가는 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등이 굽은 노인도 있었고, 아이를 업고 온 여인도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면서 모자를 벗고, 누구도 먼저 앉으려 하지 않았다.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힌 뒤, 예령은 먼저 물었다.“여러분은 관문을 넘을 때 문서를 뗍니까?”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등짐 장수 노 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수레에 실으면 뗍니다. 등에 지고 넘으면 묻지 않습니다.”“한 사람이 얼마나 집니까?”“쌀로 치면 두 말쯤 됩니다. 젊은 사람은 서 말도 집니다. 그 이상은 등이 먼저 상합니다.”“관문에서는 무엇을 봅니까?”“수레와 짐칸을 봅니다. 등짐은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걸 다 세자면 관문이 하루 종일 막히니까요.”예령은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두 말씩 열일곱이면 서른 말이 넘는다. 진가상회 수레 한 대에 실리는 양에는 못 미치지만, 하루에 한 번이 아니라 사흘에 두 번씩 오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그 짐을 서씨 상단이 사겠습니다.”마당이 술렁였다.“진가상회 곡식이 관문 저쪽에 쌓여 있습니다. 수레로는 못 넘습니다. 그러니 등으로 넘기겠습니다.”“값은 관문 이쪽에서 받는 값으로 치겠습니다. 물건이 상하거나 눈에 묻혀도 값은 드립니다.”소금 반 섬을 지고 다닌다는 만씨가 손을 들었다. 나이가 마흔은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부인. 저희가 그 짐을 못 져서 안 지는 게 아닙니다.”“압니다.”“관아에서 알면 저희부터 잡아갑니다. 큰 상회야 문을 닫고 겨울을 나면 그만이지만, 저희는 등짐 한 번이 식구들 사나흘 식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