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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나의 시작
이별은 나의 시작
Author: 용용자

1 화

Author: 용용자
심지우와 변승현은 결혼한 사실을 숨긴 지 5년이 되어갔다.

그들은 겉으로는 부부였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심지우만이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새해 전야, 화려한 도시엔 눈이 소복이 쌓이고 거리마다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넓디넓은 남호 팰리스엔 심지우 혼자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간단히 국수 한 그릇을 끓였지만 젓가락은 들지도 않았다.

식탁 위 핸드폰에선 인스타그램 속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 속 남자의 손은 길고 날렵했는데 그 손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 여자의 가느다란 약지에 끼워주고 있었다.

여자의 나긋한 목소리가 곧 뒤따랐다.

“앞으로 잘 부탁해.”

심지우는 영상 속 남자의 시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전 세계 한정판인 그 시계는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가슴 속에서 말 못 할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자학하듯 영상을 반복하여 재생하며 확인했다.

반년 전, 그 여자가 먼저 심지우의 계정을 팔로우했고 그 이후로 그녀의 인스타에 심지우의 남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사실을 숨긴 지 5년이 되어서야 심지우는 자신의 남편이 그렇게 다정하고 로맨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방금까지 김이 모락모락 나던 국수는 이제 완전히 식어버렸다.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그녀는 젓가락을 들려고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이 결혼처럼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심지우는 눈을 감자 눈물이 흘렸다.

그녀는 일어나 세안하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깊은 밤, 따뜻한 침실에 옷 벗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다.

옆으로 누워있던 심지우는 변승현이 돌아온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곧 침대가 무겁게 꺼지며 커다란 몸이 그녀 위로 덮쳤다.

심지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순간 잠옷 자락이 들춰지고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의 피부를 덮었다.

깜짝 놀란 심지우가 눈을 뜨자 높고 뚜렷한 콧날과 얇은 은테 안경을 쓴 남자의 선명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어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이 그의 안경 위로 부드럽게 비췄다.

그의 눈동자는 욕망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왜 갑자기 돌아왔어요?”

심지우는 부드럽고 가녀린 목소리를 타고났다.

변승현은 그녀의 붉어진 눈매를 바라보며 매섭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반갑지 않은가 봐?”

심지우는 그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그냥 생각지 못해서요.”

남자의 따뜻하지만 건조한 손이 백옥같은 그녀의 피부를 살며시 쓸었다.

변승현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경 벗어.”

심지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는 동안 심지우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봤던 영상이 자꾸 떠올랐다.

...

늘 그의 기분을 맞춰주던 그녀는 처음으로 차가운 표정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저 몸이 안 좋아요.”

“생리 기간이야?”

“아니요, 그냥...”

“그럼 기분 잡치게 하지 마.”

그는 싸늘한 말투로 그녀의 말을 끊고 어둠처럼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심지우는 이 남자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걸 알았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참는 쪽은 언제나 그녀였다.

가슴이 시큰해진 심지우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변승현은 그녀의 안경을 벗겨 침대 옆에 툭 던지고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발목을 움켜쥐었다.

스탠드 조명까지 꺼버리자 방 안은 깜깜한 어둠에 잠기며 감각은 더 날카로워졌다.

한 달 만의 만남에 변승현은 여느 때보다 거칠게 행동했다.

심지우는 저항했지만 소용없었고 그저 이를 악물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밖에선 눈이 점점 더 세차게 내렸고 바람도 매섭게 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지우의 몸은 흠뻑 젖었고 배에 불편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문득 한 달 넘게 오지 않은 생리가 떠올랐다.

“승현 씨, 저...”

그녀가 다른 곳에 정신을 팔자 변승현은 불만스러운 듯 더욱 거칠게 몸을 움직였고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는 그의 욕망 어린 키스에 삼켜졌다.

한바탕 정사가 끝났을 때 동은 아직 트지 않았다.

지쳐버린 심지우는 정신이 아득했고 배는 계속 묵직하게 아파왔다.

강한 통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핸드폰 벨 소리에 그녀는 간신히 눈을 떴다.

희미한 시야 속, 변승현은 창가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방 안이 너무 조용했던 탓에 그녀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애교 섞인 여자의 목소리까지도 또렷이 들렸다.

변승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기 너머의 그 여자를 달랬지만 같은 침대에서 잠든 아내에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창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오며 그렇게 변승현은 떠났다.

...

다음 날 아침, 옆자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심지우는 몸을 돌려 아랫배를 짚었다.

이젠 아프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변승현의 어머니인 진숙희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지금 당장 집으로 와.”

싸늘한 말투에 그녀가 거절할 여지는 없었다.

“네.”

심지우가 담담히 답하자 진숙희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지난 5년 동안 시어머니 진숙희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존중한 적이 없었고 그녀도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변씨 가문은 북성 4대 재벌 가문 중에서도 제일이었다.

비록 심지우도 심씨 가문의 딸이었지만 사랑받지 못해 집안에서 버림받은 자식이었다.

이 결혼은 거래로 시작된 관계였다.

5년 전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 폭력에 맞서다가 실수로 아버지를 죽이게 되었고 그녀의 동생과 할머니 그리고 심씨 가문의 모든 가족이 그녀의 어머니를 고소하며 사형을 요구했다.

어머니의 친정인 강씨 가문도 북성의 재벌가였지만 사건이 터지자마자 인연을 끊었다.

심지우는 어머니를 두둔하여 심씨 가문과 강씨 가문의 보복을 받았고 벼랑 끝에 섰을 때 지도교수의 소개로 변승현을 찾아가게 되었다.

권력으로만 보면 강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힘을 합쳐도 변씨 가문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법적으로만 봐도 변승현은 단 한 번도 패소한 적이 없었다.

결국 변승현은 심지우 어머니의 형량을 5년으로 줄여주었고 그 대가로 심지우는 그와 결혼했다.

변승현의 말에 따르면 양자 변현민은 친구의 자식으로 친구 부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 그를 거둬 키우게 된 것이라 했다.

이제 5년이 지나고 한 달 뒤 어머니가 출소를 앞두고 있었다.

처음부터 감정 없는 계약 결혼이었기에 심지우는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끝이 정해져 있던 이 결혼에서 그녀는 결국 변승현에게 마음을 주고 말았다.

심지우는 생각을 떨치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샤워 중 아랫배에 또다시 묵직한 통증이 밀려오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들은 늘 피임했지만 한 달 전 변승현이 술에 취해 실수한 그날 밤만은 예외였다.

다음 날 약을 복용하긴 했지만, 100% 확실한 건 아니었다.

혹시 몰라 심지우는 변씨 가문 본가로 향하는 길에 약국 앞에 잠시 멈춰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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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5. 12. 12. AM.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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