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임예빈은 주방에서 나와 따뜻한 물 두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어민경을 바라봤다.어민경이 말했다.“예빈아, 네 방 침구 아직 안 깔았지?”“응. 지금 바로 깔게!”임예빈은 대답한 뒤 어냥이를 안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거실에는 조용한 정적이 내려앉았다.어민경은 소파 위 담요를 돌돌 말아 한쪽에 치워두고 변영준에게 앉으라고 눈짓했다.변영준은 다가와 몸을 숙여 소파에 앉았고, 어민경은 그와 두 자리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았다.순간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았다.어민경은 물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따뜻
“아, 아니에요! 오해예요!”계찬호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제 친구는 남자예요! 남자!”“그럼 이상하군요.”변영준은 일부러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매달 오늘 월세 받으러 오는데 남자를 본 적은 없어요.”“월, 월세 받으러...”계찬호는 그 말에 순간 혼란스러워졌다.그 말대로라면 어민경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이 집은 정말 어민경 소유가 아니었다.‘하지만 섭정수는 분명 어민경이 이 집을 샀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변영준은 속으로 계산하느라 정신없는 계찬호를 차갑게 바라며 눈빛에 조롱이 어렸
‘계찬호가 왜 여기 온 거지?’어민경은 임수영과 계찬호의 본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집을 샀다는 사실도 지금까지 숨겨왔고, 임수영이 물어봤을 때도 친구와 함께 월세 사는 집이라고만 둘러댔다.주소 역시 알려준 적이 없었다. 계찬호한테는 더더욱.물론 계찬호가 정말 마음먹고 조사하면 찾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만, 이 단지는 입주민 허락 없이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설마 계찬호도 이 단지에 집이 있는 건가?’어민경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문밖에서 계찬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민경, 너 안에 있는 거
임예빈은 다른 생각을 전부 잊고 안쓰럽다는 듯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다 내 탓이야. 같이 돌아왔어야 했는데. 넌 겨울마다 몸만 차가워지면 꼭 아프잖아. 이번엔 내가 정신이 나갔는지 그걸 까먹었네.”“그게 왜 네 탓이야! 나 어젯밤 그냥 바닥에서 잠들어버린 거뿐이야.”“죽 먹을래?”임예빈이 말했다.“우선 쌀죽부터 끓여줄게. 죽 먹고 약 먹어야 위 안 상해.”“좋아.”“그럼 먼저 누워 있어. 다 되면 깨울게.”“나 거실에 나가서 누워 있을래. 네가 보여야 마음이 놓여.”임예빈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
“괜찮아요. 제 친구가 곧 올 거예요. 종일 이미 많이 폐 끼쳤는데 더 번거롭게 해드리기 죄송해요.”그 말을 들은 변영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막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누군가 밖에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임예빈이 캐리어를 끌고, 고양이 가방을 멘 채 집 안으로 들어왔다.“민경아! 우리 자기, 나 돌아왔어!”작고 발랄한 목소리가 집 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침실 안에서 어민경과 변영준은 서로를 바라봤다.어민경은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제 친구가 좀 활발한 성격이라서요...”“좋네요.”변영준은
어쨌든 그녀는 감히 변영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시선을 내리깔고 컵을 받아들었다.“고마워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고는 컵 속 따뜻한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따갑고 붓고 간질거리던 목이 순식간에 한결 편해졌다.“더 마실래요?”“네?”어민경은 고개를 들다가 변영준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쳤다.얼굴이 이유 없이 뜨거워진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아, 아니에요.”변영준은 그녀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어민경의 머리가 또 순간 멈췄다.“네?”변영준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옅게 웃었다.“컵
심지우는 입맛이 없었기에 고개를 저었다.변승현은 심지우의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면서도 병 때문에 식욕이 없다는 걸 알기에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간호사가 해야 할 일은 변승현이 다 하고 있었기에 간호사는 수액만 갈아주고 몇 마디 주의를 남긴 뒤 조용히 나갔다.병실 안은 곧 고요해졌다.변승현은 침대 곁에 앉아 말없이 심지우를 바라보았다.심지우는 그가 이렇게 가만히 응시하자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고 어딘가 어색한 공기가 방 안을 채웠다.심지우는 살짝 기침하며 입을 열었다.“나 얼마나 잔 거야?”변승현은
결국 심지우는 그 목걸이를 착용했다.목걸이를 목에 걸자 허전했던 자리가 채워졌고 도드라졌던 쇄골도 조금은 덜 눈에 띄었다.고은미는 심지우를 거울 앞에 세워두고 말했다.“어때? 예쁘지?”심지우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목걸이를 살짝 만졌다.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심지우는 고은미를 힐끗 째려봤다.그러자 고은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안 놀릴게. 변승현이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 알아. 그런데 걱정하지 마. 변승현은 지
제야의 날, 안강 별장은 등불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축제 분위기가 가득했다.윤영과 영준은 변승현이 사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덕분에 훨씬 생기가 넘쳤으며 마치 TV 속의 귀여운 인형과 똑 닮았다.심지우의 옷은 고은미가 준비했다.모두 붉은색 위주였다.올해의 설날은 어느 해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은미와 진태현은 진순영과 함께 진씨 가문 본가로 가서 가족과 함께 모였다. 그래서 아침 일찍 두 아이에게 세뱃돈을 주고는 곧바로 떠났다.심지우도 진순영에게 세뱃돈을 주었다.떠나기 전, 심지우는 고은미를 옆으로 불러
변승현은 하루 종일 외출했고 돌아왔을 땐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여자 간병인은 문밖을 지키고 있다가 변승현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말했다.“심지우 씨가 오후에 잠깐 깼었어요. 진 선생님이 와서 진료하고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들었어요.”변승현은 손을 들어 미간을 살짝 눌렀다.“고생했어요. 제가 지킬게요. 조금 쉬세요, 필요하면 부를게요.”“네.”변승현은 이 며칠 동안은 계속 심지우의 곁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침실 안은 아주 고요했다.변승현은 침대 옆에 앉았다.따스한 주황빛 조명이 심지우의 얼굴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