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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Author: 탄산요정

제1화

Author: 탄산요정
“입관 시간이 됐습니다. 아이 아버님과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요?”

낮게 깔린 장송곡 사이로, 검은 정장을 입은 장례지도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고은희는 멍하니 부어오른 눈을 들어 입관실 안에 누워 있는 딸을 바라보았다.

하얀 천 위에 놓인 작은 몸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조용했다.

온기는 온데간데 없이 차갑고, 또 하얬다.

몇 번이고 눌렀던 통화 버튼은 여전히 같은 안내 멘트만 들려주고 있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은희는 힘없이 앞으로 가서 아이의 작은 얼굴을 손끝으로 쓸었다.

“보미야, 우리 이제 그만 기다리자.”

수많은 마지막을 지켜본 장례지도사마저 목이 메는 듯했다.

“그래도 마지막 얼굴도 못 보시면, 아버님께서도 평생 한으로 남으실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는 게...”

“평생 한으로 남는다고요?”

은희가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찢어진 상처 밖으로 숨이 새어 나오는 소리에 가까웠다.

“우리 딸이 수술대 위에서 아빠의 조혈모세포를 기다리다가 죽었어요.”

은희의 목소리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첫사랑의 딸을 위해 유리 궁전 같은 파티장을 꾸미고 있었죠. 강변 밤하늘에 불꽃놀이를 쏘아 올리면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고요.”

장례지도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희는 다시 보미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눈물이 흘러내려, 이미 차갑게 식은 아이의 볼 위로 떨어졌다.

은희는 놀라 손등으로 황급히 닦아 냈다.

보미는 이 생에서 너무 많이 아팠다.

마지막 길까지 엄마의 눈물에 젖은 채 보낼 수는 없었다.

은희는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어루만진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관 진행해 주세요.”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더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

은희는 딸을 위해 가장 예쁜 눈꽃 공주 유골함을 골랐다.

직접 작은 꽃무늬까지 정성스레 그려 넣었다.

보미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장례식장에서 건네준 검은 보자기를 덮는 대신, 은희는 제 외투를 벗어 유골함을 감쌌다.

초겨울 바람이 칼날처럼 살을 에고 지나갔다.

그러나 은희는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택시를 불러 뒷좌석에 올라탄 그녀는... 낮게 목적지를 말했다.

차는 한적한 외곽 도로를 지나 이내 소란스러운 도심으로 들어섰다.

눈앞에는 번쩍이는 번화가가 펼쳐졌지만, 은희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처참하게만 보였다.

부모님도 떠났고, 딸도 떠났다.

이제 이 세상에 붙잡을 것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바로 그때.

펑!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강렬한 빛이 눈을 찔렀다.

은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거리 양옆에 늘어선 대형 전광판들이 일제히 같은 영상을 내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생일 축하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는 수정 성처럼 꾸며진 궁전이 있었다.

마치 동화 속 무도회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하얀 공주 드레스를 입은 소맑음은 값비싼 다이아 왕관을 쓴 채, 호박마차를 타고 레드카펫 위로 등장했다.

하진그룹 대표 하남우는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을 대하듯 눈에 애정을 가득 담고, 기꺼이 마부가 되어 허리를 숙였다.

그는 맑음의 손을 잡아 마차에서 내리게 한 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던 소영은에게 데려갔다.

열 단짜리 맞춤 케이크 앞에서 세 사람은 함께 촛불을 밝혔다.

소원을 빈 뒤, 맑음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볼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화면 밖으로 흘러넘칠 만큼 달콤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펑!

펑!

다시 불꽃이 연달아 터져 올랐다.

찬란한 빛이 밤하늘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물들였다.

택시기사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사람 팔자 참 다르네요. 저런 집 딸로 태어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은희의 눈시울이 붉게 번졌다. 품속의 유골함을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았다.

“기사님, 큰길 말고 안쪽 길로 가 주세요.”

은희의 목소리는 다 갈라져 있었다. 애원에 가까웠다.

기사는 그제야 손님을 태운 곳이 화장장 앞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시끄럽게 축하하는 분위기는 지금 그녀에게 너무 잔인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기사는 곧장 방향을 틀었다. 큰길을 피해 이면도로로 들어갔다.

길은 울퉁불퉁했지만 더는 전광판이 보이지 않았다.

...

한 시간 뒤, 택시는 스카이힐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멈췄다.

은희는 감사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새하얀 가로등 아래에 서서, 6년 동안 살았던 집을 바라보았다.

3층 피아노실에서는 아직도 딸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보미는 언제나 열심이었다. 몸이 아파서 조금만 연습해도 온몸에 식은땀이 났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 내가 국제 콩쿠르에서 대상 받으면 아빠가 보미를 좋아해 줄까?”

은희는 코끝이 찡해졌다. 무겁게 굳은 다리를 끌고 피아노실로 올라갔다.

유골함을 피아노 옆 의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손끝이 건반을 눌렀다.

맑은 소리가 방 안을 채웠고, 그 소리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피투성이가 된 지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로 은희는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그건 은희의 오래된 상처였다.

하지만 오늘 보미에게만은 들려주고 싶었다.

보미가 대회에서 연주하려던 곡을 은희는 몇 번이고 반복했다.

손가락이 굳어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밤새 앉아 있다가, 다음 날 아침 은희는 유령처럼 창백한 몰골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

아침 햇살은 지나치게 밝았다.

현관 쪽에서 키 크고 단정한 남자가 빛을 등지고 들어왔다.

검은 코트에는 바깥의 찬 공기가 묻어 있었다.

하남우였다.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은희를 보지도 않은 채 코트를 벗어 걸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보미 아직 안 일어났어?”

은희는 비웃듯 웃었다.

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다른 여자 곁에서 실컷 웃고 떠들고 나니, 자신을 기다리던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쓰레기!!’

남우는 아내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시선을 들었다.

은희의 얼굴을 본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곧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지?’

‘착한 척이 안 통하니, 이제 불쌍한 척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전 회의 미루고 온 거야. 보미 깨워. 피아노 레슨 데려다줄 테니까.”

‘피아노 레슨’이라는 말에 은희의 몸이 휘청였다.

보미는 일주일에 세 번, 오전 9시에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평일에는 아빠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 토요일만 골라 조심스럽게 한 번 묻곤 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늘 거절이었다.

보미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레슨은 주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었다.

이식 일정 전 마지막 레슨 날, 남우는 처음으로 보미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보미는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가장 예쁜 하얀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남우가 보낸 수행 차량에 올라탔다.

은희는 아이가 행복한 오전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9시 반, 피아노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희가 달려갔을 때, 보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때야 알았다.

남우는 약속을 어겼고, 비서는 보미를 레슨실이 있는 건물 앞에 내려만 준 뒤 올라가 보지도 않고 떠났다는 것을.

남우는 평생 모를 것이다.

보미가 그토록 끈질기게 졸랐던 이유가, 다른 아이들에게 아빠가 없다고 놀림받아서였다는 걸.

보미는 그저 아빠가 한 번만 나타나 주길 바랐다.

단 한 번이어도 좋았다.

하지만 남우는 피아노 레슨에도 오지 않았다.

병원 무균실에서 아빠가 자신을 살려주길 기다릴 때도, 끝내 오지 않았다.

그 어린아이가 마지막 숨을 삼킬 때 얼마나 서러웠을까?

은희는 핏발 선 눈으로 남우를 노려보았다. 목소리에는 짙은 증오가 배어 있었다.

“필요 없어. 이제 영원히 필요 없어.”

“무슨 뜻이야?”

남우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나도 그날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고!’

‘이 여자... 또 그 일로 또 유세라도 부리려고?’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내려오라고 해.”

은희는 더 버티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죽었어! 보미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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