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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Penulis: 락희
성탁수는 소원희의 지시를 따라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고선 스피커 폰을 켰다.

수차례 전화를 걸고서야 통화가 연결됐는데 성유준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사님, 안녕하세요. 저 성일입니다. 대표님이 지금 바쁘셔서 제가 대신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참, 한밤중에 전화하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대표님께서 전해달라 하십니다.”

소원희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고 당장이라도 탁자를 뒤엎을 기세였다.

당황한 건 성탁수도 마찬가지였기에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쭤볼 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방금 부동산 프로젝트 담당자 쪽에서 전화가 왔는데...”

성일은 성유준 옆에 너무 오래 붙어 있었는지 말투까지 닮아있었고 여유롭게 상대의 말을 끊는 모습은 똑같았다.

“저희 대표님이 하신 게 맞습니다.”

성탁수와 소원희는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아니라고 발뺌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뻔뻔하게 인정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부하직원 주제에 말투가 건방진 성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원희의 날카로운 눈빛에 기세가 꺾인 성탁수는 곧바로 다시 물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별 뜻 없습니다.”

성일의 말투는 여전했다.

“대표님이 어떤 성격인지 잘 아시잖습니까. 당한 건 꼭 그대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시거든요. 아참, 다른 건물에도 폭탄을 설치했으니 참고해 두세요. 타이머가 작동되었을 겁니다.”

성일은 배려심 깊은 척 연기하며 말했다.

“차라리 다 폭파시키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 게 어때요? 괜히 인명 피해 나면 일이 귀찮아지잖아요.”

“뭐라고?”

더는 참다못한 소원희가 버럭 소리쳤다.

“당장 성유준한테 물어봐.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모든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 프로젝트는 완전히 끝이다.

그동안의 계획이 물거품 되는 건 물론이고 수천억의 손해까지 발생할 수 있다.

“아까도 말했듯이 대표님이 지금 바쁘셔서 통화가 불가능합니다.”

휴대폰 저편에서 희미하게 카드 치는 소리가 들렸고 성일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대표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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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채아는 성유준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고 살짝 몸을 피했다.“왜요? 대표님이 소개해 주시려고요?”“못 해줄 것도 없지.”성유준은 어깨와 등이 넓어 몸을 조금만 숙이기만 해도 온채아를 온전히 감싸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어떤 스타일을 원하는데?”기세 넘치게 대답했던 터라 이제 와서 물러서면 또 비웃음을 살 게 뻔했기에 온채아는 차라리 진지하게 기준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예전 그녀의 이상형은 주율천 같은 사람이었다. 점잖고 온화하며 젠틀한 스타일.하지만 지금 제일 극혐하는 타입이다.당장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싫어하는 건 분명했다.“일단 점잖고 온화한 스타일은 별로예요. 그 반대라면 딱이겠네요. 주씨 가문을 안 두려워하는 사람이면 더 좋고요.”“아가씨, 그 반대라면 단호하고 차가운 타입이네요?”성이가 웃으며 받아쳤다.“그럼 우리 대표님이네요. 경성에서 주씨 가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대표님밖에 없는데요?”온채아는 그 말에 머릿속이 하얘진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솔직히 그녀가 말한 기준은 딱 성유준 그 자체였기에 성이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하지만 간이 부은 게 아닌 이상 성유준과의 그런 관계는 꿈꿔서도 안 된다.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거리의 불빛이 깜빡이며 성유준의 얼굴 위로 스쳤다.그는 조금 더 가까이 온채아에게 다가가며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냈는데 마치 언제부터 그렇게 간 큰 생각을 하게 된 거냐고 묻는듯한 느낌이었다.순간 심장이 두근거린 온채아는 뭔가 해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보다 먼저 성유준의 낮고 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픈 마이드가 아니라 금기의 관계를 원했던 거야?”9년간 남매로 지낸 그들은 가족으로 보는 게 맞다.어릴 때부터 맡아온 은은한 침향목 향기가 온채아를 감쌌고 그 향기는 마치 그녀의 생각이 얼마나 불순한지를 알려주는 듯했다.온채아는 얼굴뿐만 아니라 귀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걸 느끼며 눈앞의 성유준을 확 밀어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무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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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준은 확답을 피한 채 입을 열었다.“왜? 벌써 가려고?”“응. 볼 일이 있어서.”같은 업계를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온채아는 속일 수 있어도 성유준을 속이기는 어렵다.주율천은 차라리 솔직하게 말했다.“조카가 갑자기 고열이 나서 잠깐 들러보려고.”그러고는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혹시라도 채아 마주치면 그냥 모르는척해 줘. 괜히 쓸데없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성유준은 담배를 받아들며 알겠다는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래. 알았어.”온채아는 고서화를 현관 수납장 위에 대충 올려두고 엘리베이터 쪽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다가 아무런 인기척이 들려오지 않는 확신이 생겼을 때 집 문을 나서서 밖으로 나왔다.아파트 출입구 앞은 텅 비어 있었고 검은색 벤틀리는 아까 그 자리에 없었다.그럼에도 온채아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성유준은 원래도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 아니거니와 그녀가 갑자기 약속을 깨버렸으니 기다리지 않고 떠난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지금 성유준에게 밥 한 끼 하자고 줄 선 사람만 해도 진안로 한 블록은 넘을 텐데 굳이 여기서 온채아를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집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익숙한 벤틀리 차량이 천천히 다가왔다.곧이어 성이가 내려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아가씨, 주차 자리에 마땅치 않아서 좀 멀리 세웠어요.”순간 멈칫한 온채아는 장난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성유준을 발견했다.“얼른 타. 배고프다.”온채아는 몸을 숙여 뒷좌석에 앉았다.그런데 어딘가 분위기가 묘했다.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언짢아 보이던 남자가 지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웃고 있었다.성유준이 말했다.“방금 주율천 만났어.”온채아는 별 반응이 없었다.“그래요?”감정 없는 담담한 말투에 실망도 화도 없었다.성유준은 주율천이 떠나기 전 했던 말을 떠올리며 눈빛을 거두었다.“형수 만나러 갔대.”운전 중이던 상이는 그 말을 듣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주 대표님이 아까 분명히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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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채아는 조금 의외였다.예전 같았으면 겁먹은 채 감지덕지하면서 바로 물러섰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주율천을 마주한 그녀는 가식조차 피곤했다.“이제 그만하라는 뜻인가요? 밥 한 끼 차려줄 테니 심서정 씨가 날 해치려고 했던 일을 잊으라는 건가요?”주율천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그토록 고귀한 몸을 굽혀가며 밥까지 했으니 이제 좀 눈치껏 굴어야 한다고 여기는 게 틀림없다.주율천은 흠칫했다. 본능적으로 부정하려고 했지만 문득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주율천은 눈을 내리깔고 온채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날 네가 정말 다쳤다면 당연히 네 편에 섰을 거야. 하지만 다친 건 아니잖아? 너도 알다시피, 서정이는 그냥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졌을 뿐이야.”“이게 다친 게 아니라고요?”옷을 걷어 올리자 팔에 선명하게 남은 시퍼런 멍 자국이 드러났다.온채아는 싸늘하게 말했다.“정말 성폭행이라도 당해야 다쳤다고 인정할 거예요?”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조용히 주율천을 응시했고 그 시선에 괜히 찔리는 기분이 드는지 주율천은 멍이 든 팔을 보며 중얼거렸다.“그날 호텔에서는 왜 말 안 했어?”“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온채아는 짜증이 가득한 냉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물어보긴 했어요?”“미안...”“됐어요.”온채아는 더 이상 말 섞기 싫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할 일 있으니까 이제 그만 가세요.”그 말을 끝으로 온채아는 집에 그림만 내려놓고 바로 나갈 생각이었다.그런데, 그녀의 등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주율천이 뒤에서 허리를 안으며 부드럽게 달랬다.“채아야, 화내지 마. 서정이 이사 준비하고 있어. 서정이 나가면 다시 들어와야지.”순간 온몸이 얼어붙은 온채아는 주율천을 확 밀어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 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어요. 당신이 심서정 씨랑 어떻게 되든 이제 나랑 상관없다고요. 필요하면 부부인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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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채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지금은 일 때문에 못 갈 것 같아요.”그러자 주율천은 별생각 없이 웃으며 물었다.“그럼 그냥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온채아가 집을 나가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아내인 건 변함이 없기에 심서정만 잘 정리하면 화를 가라앉히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믿고 있었다.그러니 온채아가 사는 집에 들어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의상 먼저 의견을 물었다.온채아는 그제야 이사한 뒤에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괜히 짜증이 치밀었고 무의식적으로 제지했다.“아니요. 지금 바로 갈게요.”청연원을 나온 이후도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예 주율천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집은 정말 가까운 사람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 여겼던 온채아는 주율천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서는 게 매우 불쾌했다.어떤 방어선이 무너진 듯한 느낌이랄까?통화를 마친 후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들자 여유로운 태도로 바라보고 있던 성유준과 두 눈이 마주쳤다.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그 얼굴엔 또 약속 안 지킬 거냐는 말이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듯했다. 온채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경원 아파트에 잠깐 들렀다가 가도 될까요? 수령해야 하는 물건이 도착해서요.”성이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비꼬듯이 말했다.“그 물건이 주율천 씨는 아니겠죠?”“그럴 리가요.”주율천을 집에 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수령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성이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그럼 일단 아가씨를 연애하러 보내드려야겠네요.” 온채아는 그 말을 들었지만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성이는 그녀가 주율천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여자라고 믿고 있었다.그 편견을 깨려면 이혼 증명서를 주율천에게 던지는 수밖에 없지만 정작 이혼 증명서를 손에 쥘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온채아는 억울하면서도 수치스러웠지만 차마 반박할 수가 없어 가만히 시트에 기대었다. 그리고 그 모습엔 마치 공격을 준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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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준의 그 말에 온채아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매장 직원에게 키랑 몸무게를 말해주면 대충 사이즈를 알 거예요. 다들 전문가라서...”“그래?”성유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온채아에게 다가오더니 바로 앞에 서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내 키랑 몸무게를 알아?”“그건...”낯설고 어색한 감정이 다시금 온채아의 마음속에서 치밀어 올랐다.무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남처럼 지내온 그들은 인생의 3분의 1을 서로와 무관한 삶을 살아온 셈이다.성유준에게 선물을 준 것도, 옷을 사준 것도 아주 오래전 일이라 키와 몸무게를 알 리가 없다.8년, 코코가 살아있었다면 성견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그러니 성유준도 8년 전보다 어깨와 등이 많이 넓어졌다.온채아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말을 꺼냈다.“그건 대표님이 알려주면 알게 되겠죠.”“싫어.”성유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정장은 직접 입어봐야지. 키랑 몸무게에 맞춰서 산 옷이 사이즈가 나한테 딱 맞을까?”그렇긴 했다.오늘 날의 성유준은 권세를 손에 쥔 사람이기에 맞춤 정장을 입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솔직히 백화점에서 새로 사 오라고 지시한 건 이미 대단한 배려였다.온채아는 도무지 그의 의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만약 맞춤 정장을 사 오라는 뜻이라면 예산을 훌쩍 초과한 일이다.성유준이 평소 입는 정장은 기본이 여덟 자리 이상이었기에 그날 밤 온채아가 잠깐 걸쳤던 재킷의 값은 더 말할 것도 없다.값비싼 옷을 온채아 때문에 버린 셈이니 반드시 돌려줘야 했다.“그럼 어떡하죠?”온채아는 괜히 지기 싫어 이를 악물고 말했다.“평소 정장은 어떤 곳에서 맞춤 제작하세요? 제가 그쪽으로...”성유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백화점에는 언제 갈 건데?”“네?”큰돈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온채아는 눈을 반짝이며 급히 대답했다.“아직 모르겠어요. 일단 한의원 진료 일정부터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그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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