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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Auteur: 홍피코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25 17:12:18

토요일 오후, 서인은 드레스룸 거울 앞에서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했다.

아이보리색 실크 블라우스에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작은 귀걸이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평소에도 자주 입는 차림이었지만, 오늘따라 너무 차려입은 것은 아닌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공식적인 행사라면 오히려 편했을 것이다. 정해진 격식에 맞춰 입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재하의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결혼한 지 삼 년이 넘도록 제대로 어울려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다시 정리하고 있을 때 재하가 드레스룸 문을 열었다.

“아직 준비 중이에요?”

“거의 다 했어요.”

재하는 검은 셔츠에 짙은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보던 것보다 편안한 차림이었다.

“어때요?”

“좋은데요.”

“너무 차려입은 것 같진 않아요?”

“그렇지는 않아요.”

서인은 거울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가방을 챙겼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재하가 거실에서 서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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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전 금욕주의   121화

    서인은 다시 샴페인 잔을 들었다. 지아는 어느새 수희와 신혼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혼 준비 때문에 미뤄뒀던 여행을 뒤늦게 다녀왔다는 수희의 말에 지아가 부럽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마지막으로 여행 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너는 맨날 바쁘냐?” 재욱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이번 주말도 출근해야 돼?” “응. 내일도 나가야 돼. 오늘도 퇴근하고 온 거야.” “그렇게 살면 연애는 언제 하냐?” “연애할 시간이 어딨겠니, 내가.” 서준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사람이 없는 거 아니야?” “그것도 맞지.” 지아가 태연하게 인정하자 재욱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대학 때도 그런 소문 있었잖아.” “무슨 소문?” “네가 재하 좋아해서 다른 남자는 눈에도 안 들어온다고.” 서인은 잔을 입술에 가져가려다 멈췄다. “야, 그 얘길 여기서 왜 해.” 지아가 재욱을 쳐다봤다. “아니, 옛날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재욱은 웃으며 대답하다가 뒤늦게 서인을 돌아봤다. “아, 형수님. 죄송합니다. 괜한 얘기를 했네요.” “괜찮아요.” 서인은 가볍게 웃었다. “취했으면 그만 마셔.” 지아가 핀잔을 주자 재욱은 잔을 내려놓았다. 서준이 다른 화제를 꺼내면서 대화는 곧 넘어갔다. 서인은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지아는 수희가 가져온 디저트를 살펴보고 있었고, 재하도 별다른 반응 없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뒤 지아가 재하에게 물었다. “너 이번 동문 모임 나올 거야?” “시간 봐서.” “좀 나와. 다들 너 궁금해해.” “생각해 볼게.” 지아는 더 권하지 않고 재욱에게도 참석할 거냐고 물었다. 서인은 맞은편에 앉은 지아를 바라봤다. 지아는 재욱의 대답을 듣다가 웃었고, 재하도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가끔 말을 보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인은 문득 재하와 눈이 마주쳤다. 재하가 몸을 조금 기울였다. “신경 쓰여요?” “뭐가요?” “아까부터 저쪽만 보길래

  • 이혼 전 금욕주의   120화

    토요일 오후, 서인은 드레스룸 거울 앞에서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했다. 아이보리색 실크 블라우스에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작은 귀걸이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평소에도 자주 입는 차림이었지만, 오늘따라 너무 차려입은 것은 아닌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공식적인 행사라면 오히려 편했을 것이다. 정해진 격식에 맞춰 입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재하의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결혼한 지 삼 년이 넘도록 제대로 어울려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다시 정리하고 있을 때 재하가 드레스룸 문을 열었다. “아직 준비 중이에요?” “거의 다 했어요.” 재하는 검은 셔츠에 짙은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보던 것보다 편안한 차림이었다. “어때요?” “좋은데요.” “너무 차려입은 것 같진 않아요?” “그렇지는 않아요.” 서인은 거울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가방을 챙겼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재하가 거실에서 서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전날 여러 차례 토해 두 사람을 놀라게 했던 서리는 아침부터 평소처럼 사료를 먹고 돌아다녔다. 추가로 토한 흔적도 없었다. “서리는 괜찮아요?” “네. 아까도 밥 잘 먹었어요.” 서인은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서리의 등을 쓰다듬었다. “엄마 갔다 올게. 아프지 말고.” 서리는 귀만 한 번 움직였다. 두 사람이 현관을 나서자 기사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재하가 서인이 먼저 타도록 기다렸다가 뒤따라 올랐다. “가죠.” 차가 출발하자 서인은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집들이를 주최한 서준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레지던스에 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조용한 복도가 이어졌다. 재하가 초인종을 누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왔냐?” 문을 연 남자는 재하를 보자마자 반갑게 웃었다. 키가 크고 인상이 시원한 남자로, 결혼식에서도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서인에게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 재하가 짧게 인사했

  • 이혼 전 금욕주의   119화

    한성은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다. 한정호가 직접 나선 협상 끝에 은행과 채권단의 단기 유예 협의가 진전됐고, 일부 협력업체와도 지급 일정이 조율됐다. 중단됐던 현장 중 한 곳은 작업을 재개했다. 물론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음 달 만기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매각 대금이 남아 있었고, 공사대금 가압류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어느 한쪽에서라도 약속한 일정이 어긋나면 상황은 다시 나빠질 수 있었다. 서인은 보고서 마지막 장을 확인하고 덮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사흘째였다. 출근을 재개한 뒤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야근할 이유가 없었다. 책상 위 시계는 금요일 오후 다섯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재하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모처럼 정시에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인은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어 한성 본사를 나섰다. 지난 며칠 동안 사무실에 남아 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시간에 회사를 나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달랐다. 집에 도착했을 때 재하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현관에서 구두를 벗던 서인은 거실 바닥에 낯선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리야?” 바닥에 털 뭉치가 섞인 토사물이 있었다. 서인은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소파 옆에도 하나, 복도 쪽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서리야. 어디 있어?” 이름을 부르자 소파 아래에서 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인은 쪼그려 앉아 서리를 살폈다. 서리는 평소처럼 다가와 그녀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어디 아파? 왜 이렇게 토했어.” 서리는 대답 대신 꼬리를 세우고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서인은 뒤따라가 사료 그릇을 확인했다. 아침에 채워둔 사료가 제법 줄어 있었고, 물도 마신 흔적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인은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서리가 여러 군데 토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평소처럼 움직이고 사료도 먹었다는 말을 덧붙이자, 병원에서는 상태를 살펴보되 구토

  • 이혼 전 금욕주의   118화

    재하는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많이 놀랐어요?” “네.” 서인은 그를 올려다봤다. 평소라면 사무실에 있을 시간이었고, 오늘도 일정이 적지 않을 터였다. “재하 씨, 바쁘지 않아요?” “바쁘죠.” “그런데 여기 있어도 돼요?” “지금 이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서인은 더 묻지 않았다. 재하가 수액 줄을 한번 살펴보더니 물었다. “검사 결과는요. 나왔어요?” “아직 전부는 안나왔어요. 근데 지금까지는 별문제 없대요. 과로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셨고.”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는 거네요.” “그렇긴 한데…….” “담당의 오면 다시 얘기하죠.” 마침 병실 문이 열리고 비서가 들어왔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하가 비서에게 물었다. “쓰러졌을 때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자료를 가지러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상무님이 책상 옆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바로 119에 신고했고요. 구급대원분들이 오셨을 때는 의식이 돌아오셨습니다.” “다친 곳은 없었습니까?” “그건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네, 대표님. 상무님, 필요한 일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고마워요.” 비서가 나간 뒤 재하는 재킷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담당의가 병실에 들어온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의사는 현재까지 나온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혈압과 심전도 등에서 크게 우려할 만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실신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추가 검사와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최근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잠도 부족하셨다고요.” “네. 일이 좀 많아서요.” “그런 상황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다른 원인이 없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 오늘은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서인이 물었다. “꼭 입원해야

  • 이혼 전 금욕주의   117화

    서인은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초쯤 지나서야 자신이 재하의 침실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재하가 일어난 지 꽤 됐는지 이불도 정리되어 있었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니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출근 준비에는 지장이 없었다.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는데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서인은 침대에서 내려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재하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던 그가 서인을 발견하고 화면을 껐다. “일어났어요?” “네.” “좀 더 쉬지 그래요.” “출근해야죠.” 서인은 맞은편에 앉았다. 식탁에는 토스트와 과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서인은 입맛이 없어 토스트만 집어 들었다. “오늘도 늦겠네요.” “아마요. 은행 쪽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고, 건설 쪽도 아직 정리가 안 돼서.”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은 토스트를 반쯤 먹다가 내려놓았다. “그게 다예요?” “아침엔 원래 많이 안 먹잖아요.” “어제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을 거 아니에요.” “점심은 잘 챙겨 먹을게요.” 재하는 더 권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서인 씨.” “네?” “데려다줄까요?” “괜찮아요. 기사님 와 계세요.” 재하는 서인이 차에 오르기 전 한마디 덧붙였다. “무리하지 마요.” “그럴게요.” 서인은 평소처럼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한성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서인은 전날 채권단 회의에서 추가로 요구받은 자료부터 검토했다. 은행에서는 아직 대출 연장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고, 한성건설의 일부 현장은 공사가 재개됐지만 다른 현장에서는 협력업체와의 협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전날 급하게 제출했던 자금 계획에서도 수정할 부분이 발견돼 재무팀이 아침부터 다시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오전 회의가 끝나자 주거래은행에서 건설 계열사의

  • 이혼 전 금욕주의   116화

    서인은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찬물로 손을 씻었다. 거울 속 얼굴이 평소보다 창백했다. 밤새 회사에 있었으니 당연했다. 화장을 고치려고 파우치를 꺼냈다가 다시 가방에 넣었다. 지금 와서 화장을 조금 고친다고 피곤한 얼굴까지 감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상무님, 채권단 측 참석자들 도착했습니다.” “네. 바로 갈게요.” 서인은 손을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회의실에는 주거래은행을 비롯한 주요 채권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성 측에서는 한정호 회장과 재무 담당 임원들이 참석했다. 서인은 전날 밤부터 여러 번 수정한 자료를 앞에 놓았다. 회의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에 가압류 결정까지 났는데, 어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본사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겁니까?” “건설 계열사에서 보고를 누락했습니다. 현재 전체 현장의 미지급 내역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계열사에서도 같은 일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합니까?” 서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다른 계열사에도 같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은행 측 관계자가 자료를 덮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조건대로 대출을 연장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정호가 입을 열었다. “어렵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한성하고 거래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금 와서 전부 회수하겠다는 겁니까?” “회장님, 저희도 내부 심사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라는 거, 지금까지는 없었습니까?” 한정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서인이 자료를 앞으로 밀었다. “이번 주 만기 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인은 가압류된 공사대금 30억 원을 제외하고, 대출 연장이 지연되는 경우까지 반영한 수정 자금 계획을 설명했다. 주거래은행 담당자가 자료의 한 부분을 짚었다. “이 부족분은 어떻게 충당하실 계획입니까?” “계열사별 가용 자금과 회수 예정 채권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단기 조달이 가능한 금융기관과도 협의 중이고요.” “아직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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