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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Author: 홍피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10:22:38

“그 정도는 돼요.”

서인은 손을 잡고 일어났다.

몸을 세우자 아직 남아 있던 어지럼증에 중심이 잠깐 흔들렸다. 재하가 곧바로 팔을 붙잡았지만 서인이 제대로 선 것을 확인한 뒤에는 별말 없이 손을 놓았다.

두 사람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렸다.

안에는 네댓 명이 타고 있었다.

서인은 별생각 없이 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대로 서 있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혔다.

재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닫힌 문을 한번 보고는 옆에 있는 비상계단 표지로 시선을 옮겼다.

“계단으로 가죠.”

서인이 그를 봤다.

“여기 4층이에요.”

“알아요.”

“나 멀쩡해요.”

재하는 이미 비상계단 문을 열고 있었다.

“천천히 가면 됩니다.”

서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뒤따라 들어갔다.

재하가 먼저 한 계단을 내려가 몸을 돌렸다.

“와요.”

“혼자 내려갈 수 있어요.”

“압니다.”

그러면서도 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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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 뒤로는 지난달 행사에서 정 회장 사모가 또 며느리 자랑을 했다는 이야기며, 얼마 전 귀국했다는 태성가 막내아들 이야기가 오갔다.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비슷한 자리에서 몇 번씩 얼굴을 마주친 사람들이었고, 양가 부모를 통해 한두 다리만 건너면 대부분 연결되는 이름들이었다. “태성 막내는 아예 들어온 거래요?” “그런가 봐요. 본사 들어간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이번에는 오래 있으려나.” “글쎄요. 지난번에도 석 달 있다 갔잖아요.” 그 정도였다. 대화가 잠깐 끊겨도 어느 쪽도 다음 말을 서두르지 않았다. 직원이 접시를 바꾸고 나가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됐고, 다시 조용해지면 그대로 식사를 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도윤이 물잔을 내려놓았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두 분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죠?” 서인의 젓가락이 잠깐 멈췄다. “누구요?” “남편분.” “아.” 권재하. “안 나빠요.” “그렇죠?” “왜요?” “몇 번 뵀는데 그렇게는 안 보여서.” 도윤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보통 이혼하는 부부하고는 좀 달라 보여요.” “어떻게 다른데요?”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욕을 안 해요.” 서인이 웃었다. “누구 욕을요?” “배우자 욕.” “아.” “상담하다 보면 대부분 그것부터 하거든요.” “재하 씨는 욕할 게 별로 없는데.” 말하고 나서도 별생각은 없었다. 도윤은 그런 서인을 잠깐 바라봤다. “좋은 남편인가 보네요.” 이번에는 서인이 잠시 생각했다. 좋은 남편. 재하를 그런 식으로 분류해본 적은 없었다. “나쁘지는 않아요.” 도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코스가 끝날 무렵 직원이 작은 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식후주입니다.” 투명한 술이 잔의 절반쯤 차 있었다. 직원이 나간 뒤에도 둘 다 손을 대지 않았다. 도윤이 제 앞에 놓인 잔을 한번 내려다봤다. “술 좋아해요?” “가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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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전 금욕주의   22화

    “그 정도는 돼요.”서인은 손을 잡고 일어났다.몸을 세우자 아직 남아 있던 어지럼증에 중심이 잠깐 흔들렸다. 재하가 곧바로 팔을 붙잡았지만 서인이 제대로 선 것을 확인한 뒤에는 별말 없이 손을 놓았다.두 사람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렸다.안에는 네댓 명이 타고 있었다.서인은 별생각 없이 발을 내딛으려 했다.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아주 잠깐이었다.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대로 서 있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혔다.재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닫힌 문을 한번 보고는 옆에 있는 비상계단 표지로 시선을 옮겼다.“계단으로 가죠.”서인이 그를 봤다.“여기 4층이에요.”“알아요.”“나 멀쩡해요.”재하는 이미 비상계단 문을 열고 있었다.“천천히 가면 됩니다.”서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뒤따라 들어갔다.재하가 먼저 한 계단을 내려가 몸을 돌렸다.“와요.”“혼자 내려갈 수 있어요.”“압니다.”그러면서도 재하는 서인보다 한 계단 아래에서 내려갔다.서인이 난간을 짚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결국 이혼 신청은 하지 못했다.재하가 이미 병원에 연락까지 해둔 탓에 더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기본적인 검사를 받고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이번에도 큰 이상은 없었다.과로하지 말 것.당분간 비슷한 증상이 반복되는지 지켜볼 것.필요하다면 추가 검사를 받아볼 것.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다.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서인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내려왔다.테이블 위에는 법원에서 그대로 들고 돌아온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오후 내내 가방 안에 있었던 탓인지 한쪽 모서리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서인은 손끝으로 그 부분을 눌러 폈다.맞은편 소파에는 재하가 앉아 있었다.“회사 안 나가요?”재하가 휴대폰에서 시선을 들었다.“오늘 일정 정리했습니다.”“나 이제 멀쩡해요.”“알아요.”“알면서 왜 안 가요.”재하가 잠시 서인

  • 이혼 전 금욕주의   21화

    서인은 고개를 들었다.어느새 돌아선 재하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네.”재하의 시선이 서인의 얼굴에 머물렀다.“왜 그래요?”서인은 대답하려 했지만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재하의 표정이 굳었다.그는 더 묻지 않고 곧바로 다음 층 버튼을 눌렀다.“잠깐만요. 내릴게요.”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공간이 좁아 바로 움직이지 못하자 재하가 몸을 틀어 서인 앞의 공간부터 만들었다.“다음 층에서 내릴 거예요.”서인은 대답하지 못했다.시야 가장자리부터 흐려지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멈췄다.문이 열렸지만 앞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내립니다. 잠깐 비켜주세요.”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사람들이 조금씩 몸을 틀어 길을 만들었다. 재하는 서인의 팔을 잡은 채 천천히 밖으로 이끌었다.첫발은 괜찮았다.두 번째 발을 내딛다가 발을 헛디뎠다. 손에서 가방이 떨어지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재하가 그대로 받아냈다.“한서인 씨.”서인은 반사적으로 재하의 재킷을 움켜쥐었다.바닥이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숨을 쉬려고 할수록 호흡은 더 엉켰고, 눈앞의 윤곽이 자꾸 흐려졌다.“잠깐…….”재하가 몸을 낮췄다.“나 봐요.”서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한서인 씨.”손등 위로 재하의 손이 덮였다.잠시 뒤 낮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나 보라고.”짧은 말이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들렸다.서인은 겨우 고개를 들었다.흐릿한 시야 안으로 재하의 얼굴이 들어왔다.“숨 쉬어요. 천천히.”서인은 그의 목소리를 따라 숨을 들이마셨다.한 번.다시 한 번.처음에는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몇 차례 반복하자 짧게 끊기던 호흡이 조금씩 길어졌다.재하는 서인을 복도 한쪽 의자까지 데려가 앉혔다. 떨어진 가방을 주워 옆에 내려놓고는 서인 앞에 몸을 낮췄다.“그대로 있어요.”서인은 눈을 감았다.귓속을 채우던 이명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차갑게 식었던 손끝에도 감각이 돌아왔고, 멀리서 지나가는 발소리와 안내 방송이 다시 들리기

  • 이혼 전 금욕주의   20화

    수요일 오후.서인은 약속한 시간보다 십 분 먼저 법원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기 전 가방 안을 한 번 확인했다. 신분증과 미리 준비해둔 서류가 차례로 들어 있었고, 도윤이 전날 보내준 확인 사항도 빠짐없이 챙겼다.입구 근처에는 재하가 먼저 와 있었다.“왔어요?”“일찍 왔네요.”“나도 방금.”재하는 혼자였다. 서인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다 물었다.“비서실은요?”“차에 있어요.”“웬일이에요.”재하가 법원 건물을 한번 올려다봤다.“이혼하는 것도 구경시켜야 합니까?”서인의 입가에 짧게 웃음이 걸렸다.맞는 말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 오후인데도 건물 안은 제법 붐볐다. 서류봉투를 든 사람들이 민원실과 복도를 오갔고, 안내판 앞에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층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서인은 걸음을 옮기며 휴대폰을 꺼냈다.도윤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도착하셨어요?][네. 지금 들어왔어요.][서류 확인하시고 문제 있으면 연락 주세요.][알겠어요.]답장을 보내고 화면을 끄자 옆에서 재하가 물었다.“차도윤?”“네.”“오늘도 친절하시네.”“담당 변호사니까요.”“그러네요.”그게 끝이었다.재하는 더 묻지도 않았고 서인의 휴대폰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다.엘리베이터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여럿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자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갔고, 서인도 그 틈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재하가 마지막으로 타자 문 앞까지 사람이 찼다.서인은 안쪽 벽에 가까이 섰고 재하는 자연스럽게 그 앞에 자리했다. 한 손에는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한 층 위에서 몇 사람이 내렸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앞에 선 남자의 어깨가 서인 쪽으로 밀려오자 재하는 별말 없이 몸을 비스듬히 틀었다. 넓은 등이 사람들과 서인 사이를 가렸다.서인은 잠깐 그 등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아직 여유가 있었다.화면을 끄고 가방에 넣었다.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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