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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Author: 홍피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9 15:33:57

“부탁드려요.”

“잘 챙겨볼게요.”

도윤이 펜을 들었다.

“권재하 씨도 이혼에는 동의하셨고요?”

“네.”

“협의이혼으로 진행하시고.”

“네.”

“재산 분할은 혼전계약서대로. 위자료 청구도 없고요.”

“맞아요.”

“공동명의 재산은요?”

“없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각자 관리했어요.”

“현재 거주 중인 집은 권재하 씨 명의고요.”

“네.”

펜 끝이 움직였다.

도윤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정리가 잘돼 있네요.”

“그렇죠?”

“두 분 사이에 따로 다툴 만한 부분도 거의 없고요.”

서인이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사이가 좋아서요.”

도윤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그 말은 조금 의외네요.”

“왜요?”

“이혼 상담하면서 자주 듣는 말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사실인데요.”

“그렇겠죠.”

“안 믿어요?”

“아뇨.”

도윤이 웃었다.

“서인 씨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죠.”

그는 이유를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서류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잘 끝내고 싶은 거죠?”

“뭐를요?”

“결혼이요.”

도윤의 말투는 가벼웠다.

“싸우지 않고, 서로 곤란해지는 일도 없이.”

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인 씨답네요.”

“제가 원래 그렇게 평화주의자였어요?”

“평화주의자라기보다는.”

도윤이 웃었다.

“끝낼 때까지 책임지는 편이었죠.”

서인은 별다른 대답 없이 카페라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발표는 두 달 뒤로 미루는 거고요?”

“네.”

“법적인 절차와 대외 발표는 별개라 문제는 없어요. 그사이에 내용이 새어나가지 않게 양쪽에서만 조심하시면 되고요.”

“그건 재하 씨랑 얘기 끝났어요.”

“당분간 같은 집에서 지내신다고 했죠?”

“두 달 동안은요. 제가 갑자기 나오면 기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그렇겠네요.”

도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 일정도 그대로 소화할 거예요.”

“두 분이 함께 참석하는 일정도요?”

“네.”

“알겠어요.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진행할게요.”

도윤이 몇 장의 서류를 서인 쪽으로 돌려놓았다.

“절차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권재하 씨하고 합의도 끝났고 조건에도 문제가 없어서요.”

“그럼 진행해주세요.”

“네.”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제가 준비할게요.”

“다음에는 재하 씨도 같이 와야 해요?”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제가 따로 연락드려도 되고요.”

“그럼 도윤 씨가 해주세요.”

“그럴게요. 서인 씨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정리해둘게요.”

“고마워요.”

도윤이 작게 웃었다.

“이럴 때 쓰라고 변호사 있는 거잖아요.”

서인은 가방을 챙겼다.

“저 이제 가볼게요. 회사 들어가야 해서.”

도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바로 들어가요?”

“네.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요.”

“한성 쪽이죠?”

“뉴스 봤어요?”

“네.”

“요즘 그 기사밖에 없긴 해요. 그렇죠?”

도윤이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 시끄럽긴 하더라고요.”

“조금이요?”

“제가 너무 점잖게 말했나요?”

“많이요.”

“그럼 굉장히 시끄럽네요.”

서인이 피식 웃었다.

“그 정도면 맞아요.”

도윤은 서류를 봉투에 넣어 건넸다.

“그럼 얼른 보내드려야겠네요.”

“네.”

“점심은 챙겨요. 오후 일정 길 것 같은데.”

가볍게 덧붙인 말이었다.

서인도 별생각 없이 받아쳤다.

“도윤 씨도요.”

“저는 잘 챙겨 먹어요.”

“왠지 그럴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이미지 관리는 잘했나 봐요.”

도윤이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조심히 가요.”

“연락 주세요.”

“네. 제가 연락할게요.”

서인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도윤의 웃음이 조금 옅어졌다.

손에는 아직 서인의 이혼 서류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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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전 금욕주의   15화

    금요일 오후. 서인은 사무실에서 마지막 메일을 보내고 노트북을 덮었다. 시계는 5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비서가 가져다 놓은 검은색 드레스 커버가 걸려 있었다. 오늘 저녁 일정은 우진문화재단 후원 행사였다. 한성의 자구안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오래전부터 잡혀 있던 공식 일정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행사장은 청담동의 작은 갤러리였다. 정식 만찬보다는 후원자와 재단 관계자들이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 규모는 크지 않았다. 서인이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검은 드레스 위로 얇은 숄을 걸친 채 몇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한 전무님.” 재단 이사가 반갑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나는 똑같죠. 그런데 권 대표는?” “회사에서 바로 온다고 했어요.” “웬일이래. 오늘은 따로 오나 봐요?” 서인이 웃었다. “오늘 타이밍이 좀 안 맞았네요.” “그래도 금방 오겠죠?” “네. 거의 다 왔다고 했어요.” 그때 입구 쪽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서인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권재하였다. 짙은 네이비 슈트에 넥타이는 없었다. 셔츠 단추를 하나 풀어놓은 탓에 평소보다 목선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조명 아래로 걸어 들어오는 얼굴은 멀리서도 선이 또렷했다. 이마에서 곧게 떨어지는 높은 콧대와 그 아래 단정하게 다물린 입술, 사람을 볼 때마다 느슨하게 휘어지는 긴 눈매까지. 반듯한 차림을 하고 있으면 차가워 보이는 얼굴인데, 오늘은 셔츠 깃이 조금 풀어진 것만으로 인상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보던 단정한 모습보다 한결 느슨했다. 재하는 입구에서 재단 관계자와 악수하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지나가던 여자 둘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한 명은 걸음을 늦추며 한 번 더 돌아보기까지 했다. 서인은 다시 잔을 들었다.

  • 이혼 전 금욕주의   14화

    식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갈비찜은 적당히 데워져 있었고, 와인은 한 병을 다 비우지 않았다. 서인은 한성의 자구안 이야기를 조금 했다. 오전에 회신한 자료에서 매각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는 얘기였다. 재하는 들으면서 필요한 말만 했다. “그쪽은 매수자 있어요?” “두 군데요. 아직 조건 보는 중이고.” “급하게 팔면 가격 많이 빠질 텐데.” “알아요. 그래도 현금화 순서는 앞쪽이에요.” “그럼 경쟁 붙이는 게 낫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화는 그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서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올라갈게요.” “네.” 빈 잔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서인이 주방을 나갔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차츰 멀어졌다. 재하는 식탁에 남아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잔 가장자리에 묻은 와인이 입술을 적셨다. 삼키고 나서도 이상하게 입안이 말랐다. 재하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욕실에 들어온 재하는 샤워기를 틀었다. 뜨거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하루 종일 굳어 있던 목덜미와 어깨가 물을 맞으며 느슨하게 풀렸다. 재하는 눈을 감은 채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내일 오전에 확인해야 할 인수안과 월요일 투자심의위원회, 아직 넘어오지 않은 현지 법무법인의 수정 계약서까지. 머릿속에는 평소처럼 일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그 사이로 전혀 상관없는 향 하나가 스며들었다. 달고 서늘한 향. 재하는 눈을 감은 채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켰다. 욕실의 습기와 물 냄새뿐이었다. 그런데 코끝에는 조금 전 맡았던 향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냉장고 앞에서 서인의 뒤로 몸을 숙였을 때였다. 열린 문 안쪽에서는 찬 공기가 흘러나오는데, 바로 앞에 닿은 몸만 따뜻했다. 얇은 가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등에 맞닿았던 가슴. 고개를 돌린 순간에는 젖은 머리카락 몇 올이 턱 아래를 스쳤다. 목덜미 가까이에서 막 씻은 피부의 깨끗한 향이 났다. 샴푸인지 바디워시인지. 구분할 생각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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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전 금욕주의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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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전 금욕주의   11화

    서인은 그대로 방으로 올라갔다.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서로 얼굴을 제대로 볼 시간조차 없었다.둘 다 아침 일찍 나갔고 늦게 들어왔다. 같은 집에 살아도 하루 종일 마주치지 않는 날이 있었고, 운이 좋으면 아침 식탁에서 십 분 남짓 얼굴을 보는 게 전부였다.금욕을 시작한 뒤 두 번째 주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금요일에는 서인이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던 재하가 현관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일찍 왔네요.”“저녁 약속이 취소됐어요.”“왜요?”“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대요.”재하가 다시 화면을 보며 물었다.“누가요?”“도윤 씨요.”트랙패드를 움직이던 손이 잠깐 멈췄다.“차도윤 변호사랑 저녁도 먹는 사이가 됐습니까?”서인은 구두를 벗다 말고 재하를 봤다.“사적인 약속 아니었어요.”“저녁 약속이 사적인 게 아니면 뭡니까?”“이혼 서류 때문에 따로 확인할 게 있었어요. 겸사겸사 저녁 먹기로 한 거고.”재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건 사무실에서도 볼 수 있지 않나.“서인이 그를 잠깐 바라봤다.“재하 씨.”“네.”“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잠깐 조용해졌다.재하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알겠습니다.”대답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노트북 화면을 한 번 넘긴 뒤 재하가 덧붙였다.“그래도 조심해요.”“뭘요?”“우리 아직 발표 안 했잖아요. 괜히 둘이 있는 사진이라도 찍히면 설명하기 귀찮아집니다.”맞는 말이었다.앞으로 두 달 동안은 밖에서 정상적인 부부로 보여야 했다. 이혼을 맡은 변호사와 단둘이 저녁을 먹는 사진은 쓸데없는 추측을 만들기에 충분했다.“그건 그렇네요.”“네.”“앞으로 조심할게요.”서인은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밥은요?”“아직요.”“저녁 먹을래요? 간단하게.”재하가 노트북에서 눈을 들었다.“그래요.”서인이 냉장고를 열었다.“와인도 하나 있는데.”“뭔데요?”“선물 받은

  • 이혼 전 금욕주의   10화

    월요일 오전 8시 10분.서인이 주방으로 내려왔을 때 재하는 이미 아침을 먹고 있었다.흰 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재킷은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었고, 한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일찍 일어났네요.”“오늘 회의가 좀 빨라서요.”서인은 맞은편에 앉아 커피부터 한 모금 마셨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차도윤에게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오늘 오후에 법원 쪽 일정 확인해서 연락드릴게요.]짧게 답장을 보내는 사이 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먼저 갑니다.”“네. 다녀와요.”재하가 재킷을 집어 들고 지나가려던 순간, 서인이 문득 그를 불렀다.“잠깐만요.”“왜요?”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하의 앞으로 다가갔다.넥타이가 조금 틀어져 있었다.별생각 없이 손을 뻗어 매듭을 바로잡았다. 넥타이를 가볍게 당긴 뒤 흐트러진 셔츠 깃까지 정리하는 동안 재하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됐어요.”서인이 손을 떼려던 순간 재하가 고개를 숙였다.시선이 마주쳤다.가까웠다.재하의 시선이 잠시 서인의 얼굴에 머물렀다.서인이 먼저 손을 내렸다.“이제 가도 돼요.”“네.”재하는 아무렇지 않게 재킷을 걸쳤다. 현관으로 향하면서 방금 서인이 바로잡아준 넥타이를 손끝으로 한 번 쓸어내린 뒤 그대로 집을 나섰다.***오후에는 도윤에게 연락이 왔다.예상했던 대로 절차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의 이혼 의사가 확실한 데다 재산 문제까지 이미 정리되어 있어 복잡하게 끌 것도 없었다.“그럼 다음 주에 법원에서 봐요.”“네.”“제가 시간 확정되면 다시 연락할게요.”“고마워요.”통화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도윤이 서인을 불렀다.“서인 씨.”“네?”“요즘도 점심 거르면서 일해요?”뜬금없는 질문에 서인이 웃었다.“그건 갑자기 왜 물어요?”“지난번에 챙겨 먹으라고 했는데 왠지 안 들었을 것 같아서요.”“저 그렇게 말 안 듣는 사람 아니에요.”“그럼 오늘은 먹었어요?”서인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오늘 점심은 회의실에서 커피 한 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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