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쏟아지는 폭우 속, 진흙탕 바닥에 엎드린 채 오열하는 강지훈.
그는 연우의 바짓가단을 붙잡기 위해 처절하게 손을 뻗었지만, 연우는 그 흉한 손길이 닿기 직전 우아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나 진짜 반성 많이 했어…… 연우야, 네가 내 전부였는데 내가 미친놈이었어."
지훈은 빗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한테 다시 기회를 줘. 널 다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 우리 성진 어패럴 처음 키울 때처럼, 다시……!"
연우의 붉은 입술 사이로 아주 옅고 건조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자신이 빼앗긴 모든 것을 어떻게든 되찾기 위해, 과거의 추억이라는 알량한 포장지를 덮어씌우려는 이 구질구질한 수작.연우는 검은 장우산을 가볍게 받쳐 든 채, 지훈의 핏발 선 눈동자
스텔라 시티의 임시 행정 본부, 서연우의 대표 집무실.허공에 띄워진 스텔라 시티 메인 타워의 3D 홀로그램 설계도를 응시하던 연우의 미간이, 아주 불길하게 꿈틀거렸다."김 비서.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요?"연우의 서늘한 목소리에, 곁에 서 있던 김 비서가 사색이 된 얼굴로 덜덜 떨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아,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보고 계신 설계도가 맞습니다.""이 타워 꼭대기에 솟아 있는 흉측한 구조물은 뭐죠? 피뢰침이라고 하기엔 쓸데없이 거대한데."연우가 손가락을 튕겨 홀로그램의 꼭대기 층을 수십 배로 확대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연우의 맑은 눈동자가 경악으로 기괴하게 확장되었다.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150층짜리 초고층 타워의 꼭대기.그곳에는 오른손에 지구본을 들고, 왼손으로는 스텔라 시티를 굽어살피는 듯한 거대한 여신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문제는 그 여신상의 얼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연우 자신의 이목구비를 소름 돋도록 완벽하게 빼다 박았다는 것이고, 더 끔찍한 문제는 그 재질이었다."……순금인가요, 저거?""네, 넷! 회장님의 특별 지시로, 99.9퍼센트 순금 5백 톤을 녹여 주조할 예정인…… '서연우 여신상'입니다!""미치겠네, 정말."연우가 아찔해지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때였다.벌컥-!집무실 문이 열리며, 아주 만족스럽고도 당당한 걸음걸이로 차태경이 들어섰다."나의 여왕님! 타워의 최종 설계도는 확인하셨습니까."태경의 칠흑 같은 동공이 칭찬을 바라는 대형견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방금 막 스위스 은행에 보관 중이던 금괴들을 모조리 용광로로 보내는 결재에 사인을 마치고 오는 길
"당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5년이었어요."연우가 나른하게 미소 지으며 거울 너머로 태경과 시선을 맞췄다."태성중공업과 건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바다를 메우고, 어떤 태풍과 쓰나미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식하고 견고한 인공 대지를 깔아준 건 바로 당신이니까요.""나는 그저 내 아내가 거니실 정원의 흙바닥을 조금 다져놓은 것뿐입니다."태경이 연우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며 낮게 으르렁거렸다."오늘 저 밖에서 당신을 우러러보는 멍청한 늙은이들과 세상의 찌꺼기들에게, 이 제국의 진정한 지배자가 누구인지 똑똑히 각인시켜 주십시오. 그들의 얄팍한 상식과 권력이 당신 앞에서는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말입니다.""당연하죠. 나는 기꺼이 세상을 홀리는 여왕이 될 테니까."연우가 매혹적인 눈웃음을 치며 태경의 입술에 아주 짧고 짙게 입을 맞췄다.그녀가 태경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오르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웅성거리던 은우 광장의 소음이, 서연우의 모습이 거대한 메인 스크린에 잡히는 순간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멎었다.전 세계 수백 개국의 언론이 생중계로 송출하고 있는 개장식의 하이라이트.눈이 부시도록 고결하고 차가운 얼음 여왕이, 가장 우아한 걸음으로 단상 한가운데 섰다."환영합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연우의 맑고 서늘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거대한 돔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수천 명의 VIP들이 마치 여신을 영접하는 신도들처럼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입술만을 바라보았다."5년 전, 나는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낙원을 약속했습니다."연우의 투명한 눈동자가 광장을 가득 채운 세계의 거물들을 오만하게 굽어살폈다."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밟고 서 있는 이 대지가 바로 그 약속의 증명입니다. 스텔라 시
연우가 나른한 눈웃음을 지으며 도윤을 바라보았다.도윤은 흠칫 놀란 듯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뒷짐을 지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연우와 태경을 번갈아 보았다."어머니, 아버지. 두 분은 스텔라 시티라는 거대한 인류의 낙원을 창조하고, 그것을 통치하는 데 집중하십시오."도윤이 은우가 덮고 있는 포대기의 끝자락을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매만졌다.그의 투명한 눈동자에는, 어린아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묵직하고도 서늘한 책임감이 번뜩이고 있었다."저와 시아가 태성의 무력과 스텔라의 네트워크를 완벽하게 통제하여, 우리 막내 은우가 살아갈 이 세상을 그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게 지켜내겠습니다.""우리 형님이 벌써부터 동생의 완벽한 방패를 자처하는구나."태경이 기특하다는 듯 도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짐승 같은 실소를 흘렸다."나도! 시아도 은우 지켜주꼬야!"시아가 도윤의 옆에 찰싹 달라붙으며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누가 우리 복숭아 가튼 은우 괴로피면! 시아가 다 때찌 해버리꼬야! 나능 이제 눈나니까!""하하하핫!"태경이 시아의 그 당돌하고도 사랑스러운 선언에 참지 못하고 병실이 떠나가라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10살짜리 천재 해커 형과, 세상 무서울 것 없는 호랑이 같은 4살짜리 누나.그리고 그 모든 권력과 무력의 정점에 서 있는 황제와 여황제 부모까지."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인류 역사상 가장 무식하고도 무자비한 경호팀을 거느리게 되었군."태경이 연우의 뺨에 입을 맞추며 낮게 으르렁거렸다."이런 든든한 가족들이 버티고 있는데, 감히 우리 막내를 건드릴 간 큰 놈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겠습니까.""그러게나 말이에요."연우가 가장 따뜻하고 평화
태성 병원 최고급 VIP 특실.은은한 간접 조명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고요한 방 안.서연우가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쏟을 듯 붉게 충혈된 차태경의 칠흑 같은 동공이었다."연우야."태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이며, 연우의 하얀 손등에 자신의 뺨을 거칠게 비벼댔다."정신이 좀 듭니까. 어디 아픈 곳은? 진통제는 제대로 듣는 것 같습니까?""나 괜찮아요, 태경 씨."연우가 나른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단단한 뺨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당신 꼴을 보면 꼭, 나 대신 출산이라는 피 튀기는 전쟁이라도 치르고 온 사람 같네요. 넥타이는 다 풀어 헤치고, 눈은 맹수처럼 붉어지고.""전쟁보다 더 끔찍했습니다."태경이 연우의 손을 양손으로 꽉 쥔 채,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당신이 진통을 겪으며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내 심장이 수십 번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쥐고서도 당신의 그 고통 하나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미치도록 무력하고 끔찍한 기분인지."태경의 턱관절이 험악하게 꿈틀거렸다."더 이상의 출산은 절대 없습니다. 내 우주가 고통받는 꼴을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누가 들으면 내가 병이라도 걸린 줄 알겠어요."연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맑은 실소를 터뜨리며 태경의 턱 끝을 가볍게 꼬집었다.하지만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에는 자신을 향한 남편의 이 지독하고 맹목적인 순애에 대한 벅찬 만족감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똑똑.그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VIP 전담 수간호사가 포대기에 싸인 작은 생명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들어왔다."회장님,
"죄, 죄송합니다! 아침에 무심코 스킨을 발랐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사색이 된 재무총괄이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허리를 90도로 꺾었다."당장 문밖으로 나가서 복도 끝에 서 있어. 결재판은 거기 내려놓고."태경의 무자비한 호통에 재무총괄은 결재판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병실 밖으로 쫓겨났다.옆에 서 있던 건설 본부장은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날까 봐 넥타이를 틀어쥐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태경 씨. 사람을 왜 그렇게 잡아요. 난 향수 냄새 맡아도 아무렇지도 않은데."연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맑은 실소를 터뜨리며 소파에 우아하게 자리를 잡았다.태경은 탁자 위에 놓인 결재판을 집어 들고는, 아까와는 180도 다른 골든 리트리버 같은 얼굴로 연우에게 다가왔다."당신의 위장은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 안 됩니다."그리고 다음 순간.건설 본부장의 눈앞에서, 태성그룹 창사 이래 가장 기적적이고도 비현실적인 광경이 벌어졌다.태경이 연우가 앉은 소파 앞으로 다가가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그리고는 결재판을 펴서 연우의 무릎 위로 조심스럽게 올려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 안주머니에서 최고급 몽블랑 만년필을 꺼내어 공손하게 바치는 것이 아닌가.마치 제국의 기사가 여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검을 바치는 듯한, 완벽하고도 맹목적인 복종의 자세였다."여기 서명하시면 됩니다, 나의 여왕님."태경이 연우를 올려다보며, 가장 달콤하고도 지독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문밖에서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던 재무총괄과, 곁에 서 있던 건설 본부장의 입에서 동시에 헉, 하는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조금 전까지 스킨 냄새
태성 병원 VIP 특실.며칠째 이어진 강제 휴식에 지루함을 느낀 서연우가 침대에서 내려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간단한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병실 한쪽에 마련된 전용 드레스룸의 신발장 문을 연 순간이었다."……이게 다 뭐죠?"연우의 맑은 눈동자가 황당함으로 잘게 흔들렸다.항상 그녀의 발끝을 날카롭고 오만하게 장식해주던 수십 켤레의 크리스찬 루부탱, 지미추, 마놀로 블라닉 하이힐들이 모조리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대신 그 자리를 꽉 채우고 있는 것은.샤넬, 에르메스, 디올 등 최고급 명품 브랜드에서 한정판으로 제작한, 굽이 전혀 없는 새하얀 스니커즈와 부드러운 단화들이었다. 심지어 푹신한 쿠션감이 들어간 임산부 전용 맞춤 수제화까지 종류별로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마음에 듭니까, 연우야."드레스룸 입구에 삐딱하게 기대어 선 차태경이, 짐승처럼 짙고 만족스러운 눈웃음을 흘리고 있었다."내 하이힐들 다 어디로 빼돌렸어요?"연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붉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태성그룹 본사 지하의 프라이빗 금고에 아주 안전하게 봉인해 두었습니다."태경이 아주 당당하고도 오만한 걸음으로 다가왔다."우리 은우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니, 태어난 후에도 당분간 당신의 발끝에 그 위험천만한 흉기가 닿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아주 미세한 충격이라도 당신과 아이의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까요.""나 이제 고작 임신 6주 차예요. 벌써부터 환자 취급할 필요 없다고요."연우가 실소를 터뜨리며 항변했지만, 태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그는 자연스럽게 드레스룸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신발장 안에서 가장 부드러운 가죽으로 된 에르메스 스니커즈 한 켤레를 꺼내 들었다."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