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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가장 완벽한 결혼 기념일의 지옥(2)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0 17:16:27

넓은 킹사이즈 침대 위.

하얀 시트 위에서 짐승처럼 뒤엉켜 있던 두 남녀의 움직임이 일순간 뚝 멎었다.

침대 시트를 황급히 끌어당기며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유아라였다.

아라는 문가에 서 있는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 찰나의 순간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완벽한 승리자의 조소였다.

그러나 아라는 이내 시트를 가슴 끝까지 끌어올리며 과장되게 비명을 질렀다.

"꺄악! 어, 언니…!"

아라의 가증스러운 비명에, 강지훈이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아내에게 외도 현장을 들킨 남편의 당혹감이나 뼈저린 죄책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창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아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짜증이었다.

"너…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

강지훈이 침대 헤드에 기대앉으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연우는 대답 대신, 손에 쥐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협탁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쿵, 하고 상자가 내려앉는 소리만이 적막한 방 안을 서늘하게 울렸다.

"내 결혼기념일에, 내 남편 이름으로 예약된 스위트룸인데."

연우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내가 오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보지?"

그녀의 냉정한 태도에 강지훈은 잠시 흠칫했지만, 이내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침대 옆에 벗어둔 가운을 집어 걸치며 거칠게 콧방귀를 꼈다.

"하, 눈치가 없으면 타이밍이라도 잘 맞추든가. 기분 다 망치게."

"기분을 망친 건 나일 텐데, 강지훈."

연우의 시선이 지훈의 어깨너머, 시트 뒤에 숨어 벌벌 떠는 척 연기하는 유아라에게 향했다.

흔들림 없는 연우의 차가운 눈빛에 아라의 눈동자가 잠시 불안하게 흔들렸다.

"유아라. 내 물건 주워 쓰는 더러운 버릇, 아직도 못 고쳤니?"

"언, 언니… 그게 아니라…."

유아라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가련한 표정으로 지훈의 팔에 단단히 매달렸다.

"오해하지 마, 언니. 형부가 평소에 너무 외로워하셔서… 내가 잠깐 위로해 드리려다가 그만…."

"위로?"

연우의 붉은 입술 사이로 차가운 실소가 터져 나왔다.

"네 위로는 옷을 다 벗고 다리를 벌려야만 할 수 있는 건가 보지? 길거리 창녀도 너보단 상도덕이 있을 텐데."

"서연우!"

강지훈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말조심해! 아라한테 그게 무슨 천박한 말버릇이야!"

아내의 앞에서도 당당하게 내연녀를 감싸고 도는 꼴이라니.

연우는 자신의 지난 3년이 얼마나 처참하고 무가치하게 무너져 내렸는지 완벽하게 실감했다.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비참함조차 아까웠다.

그저 구더기를 보는 듯한 차가운 혐오감만이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천박한 건 너희 두 사람의 짐승 같은 짓거리겠지."

"뭐?"

"내 눈앞에서 벌거벗고 뒹군 주제에, 고상한 척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연우의 날 선 독설에 강지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의 기억 속 서연우는 항상 시어머니의 호통에 고개를 숙이고, 자신에게 순종하며, 집안일에 치여 피곤한 기색만 보이던 무색무취의 아내였다.

이렇게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붙이는 서연우의 모습은 그에게 너무나 낯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훈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거실에 놓인 자신의 서류 가방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달칵, 가방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갈색 서류 봉투 하나를 거칠게 꺼내 들었다.

"그래, 차라리 잘됐네. 어차피 오늘 저녁에 주려고 했던 거니까."

지훈은 협탁 위로 서류 봉투를 툭 던졌다.

미끄러진 봉투에서 하얀 종이 뭉치가 삐져나왔다.

가장 윗장에 굵은 명조체로 적힌 단어가 연우의 시야에 박혔다.

[이혼 합의서]

"이혼해, 우리."

강지훈이 팔짱을 끼며 오만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마치 큰 자비라도 베푸는 듯한 건방진 태도였다.

연우는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이혼 합의서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내연녀와 알몸으로 뒹구는 현장을 들키자마자 당당하게 내미는 이혼 서류.

삼류 아침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할 끔찍한 코미디였다.

"사과와 변명은커녕, 이혼부터 요구하시겠다?"

연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지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내가 순순히 도장을 찍어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질척거리면서 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리게?"

강지훈이 조소하며 연우의 촌스러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너랑 사는 3년 내내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 화장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에, 맨날 헐렁한 옷이나 주워 입고. 여자가 아니라 무슨 감정 없는 청소 기계랑 사는 것 같았으니까."

그 청소 기계가 네 회사의 썩어빠진 뒤처리를 전부 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멍청한 발언이었다.

지훈의 빚을 메꾸고 회사를 살리느라 자신을 꾸밀 돈과 시간조차 없었던 연우의 헌신을, 그는 이토록 가볍고 잔인하게 짓밟았다.

"이제 내 회사 성진 어패럴도 업계 탑이야. 더 이상 네 그 알량한 내조 따위는 필요 없다고."

강지훈이 가슴을 쫙 펴며 거드름을 피웠다.

"난 이제 나한테 걸맞은 수준의 여자를 만날 자격이 있어. 아라처럼 밖에서 나를 빛내줄 수 있는, 진짜 우아한 여자 말이야."

침대에 앉아 있던 유아라가 그 말에 뺨을 붉히며 수줍게 웃었다.

시트를 몸에 감은 채 일어난 아라가 지훈의 등 뒤로 다가와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턱이 지훈의 어깨에 닿자, 연우를 향해 노골적인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해, 언니. 하지만 오빠 말대로 언닌 오빠한테 너무 안 어울렸잖아. 우리 사랑, 그냥 쿨하게 축복해 주면 안 될까?"

역겨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능력도, 뇌도 없는 남편을 뒤에서 조종하며 회사를 키워놓은 대가가 이것이라니.

연우는 자신의 어리석었던 지난 3년을 향해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진짜 가족을 원했다.

그래서 자신의 진짜 정체인,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천재 투자자 '스텔라'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숨겨가며 평범한 아내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쓰레기들에게 자비를 베푼 결과는 처참한 배신과 멸시뿐이었다.

"축복?"

연우의 붉은 입술이 느릿하게 호선을 그렸다.

아름답지만,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차갑고 자비 없는 미소였다.

그녀는 협탁 위로 손을 뻗어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었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펜트하우스의 적막을 갈랐다.

"그래. 기꺼이 해줄게, 그 축복."

"…뭐?"

절망하며 매달릴 줄 알았던 연우의 입에서 너무나도 쉬운 허락이 떨어지자, 강지훈이 오히려 당황한 듯 미간을 좁혔다.

"네 말대로야, 강지훈. 너 같은 쓰레기한테 난 처음부터 너무 과분한 사람이었지."

연우는 이혼 합의서를 손에 쥔 채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았다.

더 이상 이 더러운 방에 머물며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서연우! 너 지금 말이 짧다?! 내가 참아주니까 끝까지!"

지훈이 뒤통수에 대고 화를 내며 소리쳤지만, 연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은 연우가 고개를 살짝 돌려, 어깨너머로 두 사람을 서늘하게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배신당한 아내의 것이 아니었다.

가장 가치 없는 깡통 주식을 상장 폐지시키기 직전의, 오만하고 무자비한 '스텔라'의 눈빛이었다.

"이 서류, 내가 가져가지."

연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허공에 날카롭게 박혔다.

"하지만 강지훈. 나한테 이 서류를 던진 오늘을, 넌 머지않아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될 거야."

"하! 허세 부리지 마! 너 같이 무능하고 촌스러운 여자 버리는 걸 후회할 리가 있나!"

지훈의 악에 받친 고함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쾅-.

연우는 대답 대신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문 밖으로 나온 연우는 차가운 복도 벽에 기대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손에 쥐어진 이혼 합의서가 구겨질 만큼 강한 힘이 들어갔다.

'무능한 여자를 버리는 걸 후회할 리가 없다고?'

연우의 붉은 입술 사이로 다시 한번 짙은 조소가 터져 나왔다.

네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그 회사.

네가 잘나서 올라선 줄 아는 그 잘난 업계 1위의 자리.

그 모든 기적이 누구의 머리와 자본에서 탄생했는지, 이제 똑똑히 보여줄 차례였다.

"기대해, 강지훈. 그리고 유아라."

연우의 서늘한 속삭임이 텅 빈 복도에 무겁게 깔렸다.

"너희가 가진 모든 걸, 가장 비참하고 완벽하게 짓밟아 부숴줄 테니까."

자비 없는 참교육과 복수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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