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윤 팀장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붉어진 뺨을 숨겼다.
"단단히 미치신 게 확실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케일로 직원들 데이트를 강제하다니요."
"죄, 죄송합니다, 윤 팀장님. 제가 회장님 표정 관리라도 똑바로 했어야 했는데!"
김 실장이 사색이 되어 사과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손을 잡기 전엔 해고라지 않습니까."
윤 팀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아주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테이블 맞은편의 의자를 당겨 앉았다.
"비싼 코스 요리가 나올 테니,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회장님 부부의 큐피트 작전을 굳이 무용지물로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네, 넷!"
김 실장 역시 얼굴을 붉힌 채 허둥지둥 자리에 앉았다.
텅 빈 최고급 레스토랑의 한가운데서 시작된, 세상에서 가장 당황스럽고도 사치스러운 저녁 식사.
처음스텔라 시티 한가운데 우뚝 솟은 7성급 스텔라 호텔, 그랜드 볼룸.수만 송이의 새하얀 은방울꽃과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는 대연회장 로비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VVIP 하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다."어후, 넥타이가 왜 이렇게 조이지."신랑 측 축의금 접수대 옆에 선 김민준 실장이, 바짝 마른입술을 축이며 턱시도 옷깃을 만지작거렸다.수조 원대 M&A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도 손 한 번 떨지 않던 베테랑 비서실장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김 실장. 오늘 아주 봐줄 만하군."그때, 로비의 웅성거림을 단숨에 갈라버리며 아주 서늘하고도 오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회, 회장님! 대표님!"김 실장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90도로 꺾었다.완벽하게 재단된 칠흑 같은 턱시도를 입은 차태경과, 우아한 샴페인 골드 실크 드레스를 걸친 서연우가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다가오고 있었다."축하해요, 김 실장님. 아니, 이제 신랑이라고 불러야 하나요?"연우가 나른하고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감사합니다, 대표님! 두 분께서 직접 와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내 비서실장이 장가를 간다는데,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나."태경이 짐승처럼 짙은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얇고 빳빳한 서류 봉투 하나를 툭 꺼내어 김 실장의 가슴팍에 안겨주었다."축의금이다. 열어 봐.""아, 회장님. 뭘 이런 걸 다……."김 실장이 멋쩍게 웃으며 봉투를 열어 속지를 꺼냈다.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기괴하게 확장되었다.봉투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흔한 수표나 현금이 아니었다.
윤 팀장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붉어진 뺨을 숨겼다."단단히 미치신 게 확실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케일로 직원들 데이트를 강제하다니요.""죄, 죄송합니다, 윤 팀장님. 제가 회장님 표정 관리라도 똑바로 했어야 했는데!"김 실장이 사색이 되어 사과했다."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손을 잡기 전엔 해고라지 않습니까."윤 팀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아주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테이블 맞은편의 의자를 당겨 앉았다."비싼 코스 요리가 나올 테니,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회장님 부부의 큐피트 작전을 굳이 무용지물로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네, 넷!"김 실장 역시 얼굴을 붉힌 채 허둥지둥 자리에 앉았다.텅 빈 최고급 레스토랑의 한가운데서 시작된, 세상에서 가장 당황스럽고도 사치스러운 저녁 식사.처음에는 회장님 부부의 끔찍한 감시가 신경 쓰여 덜그럭거리며 나이프를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최고급 와인이 들어가자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공기는 금세 부드러운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회장님은 정말 구제 불능이십니다. 어제는 사모님 동상이 세워질 타워 꼭대기의 다이아몬드 광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시공사를 갈아엎으려 하셨습니다.""대표님도 만만치 않으십니다. 회장님이 그렇게 난동을 피우시는 걸 아시면서도, '우리 강아지 힘도 좋네'라며 은근슬쩍 부추기시니까요."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살벌한 지배자 부부의 실체를 공유할 수 있는 동지.서로의 상사 뒷담화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십수 년간 서로를 묵묵히 지켜봐 왔던 따뜻한 시선과 은밀한 호감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고 있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달콤한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비워낸 두 사람이,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였다."식사는
스텔라 시티 메인 타워 140층, 회장 집무실.서류를 검토하던 차태경이 미간을 팍 구기며 펜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연우야. 김 실장 저 녀석, 요새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습니다."태경이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시던 서연우를 향해 불만스레 으르렁거렸다."어제는 내가 결재판을 던졌는데도 피실피실 웃질 않나, 오늘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더군. 내 살벌한 비서실 군기가 완벽하게 빠져버렸어.""모른 척 좀 해줘요. 20년 넘게 당신의 그 지독한 변덕을 견뎌낸 불쌍한 사람인데."연우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아주 매혹적이고도 나른한 눈웃음을 흘렸다."얼음장 같던 120층 재단 수석 팀장님과, 당신 밑에서 고통받던 140층 비서실장님 사이에 드디어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잖아요.""뭐라고?"태경의 칠흑 같은 동공이 놀라움으로 커졌다."윤지수 팀장 말입니까? 당신을 쏙 빼닮아서 피도 눈물도 없이 원칙만 따지던 그 얼음 마녀가, 내 밑에서 위장약이나 씹어먹던 놈이랑 연애를 한다고?""아직 연애는 아니고, 아주 풋풋하게 썸을 타는 중이죠. 서로 서류 핑계로 층을 오르내리면서 은근슬쩍 차도 마시고 하던걸요."연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으며 태경을 바라보았다."당신은 명색이 제국의 황제라는 사람이, 자기 최측근들 연애 기류 하나 눈치채지 못하고 뭐 했어요?""……하!"태경이 헛바람을 들이켜더니, 이내 아주 짐승 같고도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내 아내 다음으로 이 차태경의 곁을 가장 오래 견뎌낸 위대한 남자입니다! 그런 충신의 연애 사업이 고작 서류 핑계로 차나 마시는 수준에서 머물게 둘 수는 없지!"태경이 당장이라도 인터폰을 부술 기세로 다가갔다.
"회장님께 전하십시오. 아내를 돕고 싶다면 그따위 유치한 돈세탁 놀이는 그만두시고, 정식으로 이사회 안건을 거쳐서 투명하게 태성그룹 명의로 기부하시라고요."그 서릿발 같은 단호함.논리와 이성으로 완벽하게 무장한 채, 절대 권력자 앞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태도.그것은 놀랍도록 서연우 대표의 그 고결하고 차가운 카리스마를 쏙 빼닮아 있었다.'……멋있다.'순간, 김 실장의 머릿속에 아주 생뚱맞고도 강렬한 감상이 스치고 지나갔다.늘 살얼음판을 걷듯 차태경의 변덕에 맞춰 살아온 그에게, 원칙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선을 긋는 윤 팀장의 모습은 묘한 안도감과 찌릿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김 실장님."윤 팀장의 차가운 목소리에, 넋을 잃고 있던 김 실장이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아, 네! 팀장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십니다. 제가 다시 올라가서 회장님을 목숨 걸고 설득해 보겠습니다."김 실장이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챙겨 들고 돌아서려던 찰나였다."잠깐만요."윤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작은 쇼핑백을 들어 김 실장에게 내밀었다."……이게 뭡니까?""독일제 최고급 위장약과 수면 유도제입니다.""네?"김 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 팀장을 바라보았다.언제나 로봇처럼 차갑게 일만 하던 그녀의 서늘한 눈매가, 아주 미세하게, 그리고 놀랍도록 다정하게 휘어져 있었다."아까부터 계속 명치끝을 꾹꾹 누르고 계시더군요. 다크서클도 턱 밑까지 내려왔고요."윤 팀장의 목소리가 평소의 얼음장 같은 톤에서 조금 벗어나, 묘하게 부드러운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그 무자비하고 통제 불능인 회장님 밑에서
스텔라 시티 메인 타워 140층, 회장 집무실.평화로운 오후의 정적을 깨고, 당장이라도 건물을 무너뜨릴 듯한 맹수의 포효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김 비서! 아니, 김 실장!""네, 넷! 회장님!"태성그룹 비서실장, 김민준이 사색이 된 얼굴로 결재판을 품에 안은 채 뛰어 들어왔다."방금 내 아내가, 스텔라 재단의 아동 병원 증축 예산이 조금 빠듯하다고 지나가듯 말하는 걸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차태경이 최고급 마호가니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치며 서늘하게 으르렁거렸다."당장 내 개인 자산에서 1조 원을 빼서 스텔라 재단 계좌로 송금해! 우리 여왕님께서 예산 문제로 단 1초라도 신경을 쓰시게 만들다니, 재단 예산팀 놈들 목을 모조리 뽑아버릴까!""회, 회장님! 진정하십시오!"김 실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을 치켜들며 다급하게 외쳤다."어제 서 대표님께서 회장님의 개인 자금 무단 기부를 엄격하게 금지하셨습니다! 정당한 절차 없이 1조 원이라는 거액이 재단에 꽂히면, 대표님께서 또 회장님을 집무실 밖으로 내쫓으실 겁니다!""……."그 서릿발 같은 아내의 경고가 떠오른 듯, 흉흉하게 날뛰던 태경의 턱관절이 일순간 멈칫했다.하지만 이내 태경의 칠흑 같은 동공에서 아주 교활하고도 맹목적인 집착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그럼 몰래 넣으면 될 것 아니냐. 기부자 명단은 철저하게 익명으로 처리하고, 자금 출처는 스위스 페이퍼 컴퍼니를 세 번 정도 우회해서 세탁해라.""네?! 1조 원을 돈세탁해서 아내분 재단에 몰래 기부하시겠다고요?!""내 돈을 내 아내를 위해 쓰겠다는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당장 스텔라 재단 수석 팀장한테 내려가서, 이 기부금 수령서에 서명받아 와! 못 받아오면 네 목
"당신의 손을 잡기 훨씬 전부터, 나는 환풍구 너머로 들려오던 당신의 목소리를 숨이 막힐 만큼 선명하게 기억합니다."태경이 연우의 하얀 손등에 자신의 거칠고 뜨거운 뺨을 부비며 낮게 으르렁거렸다."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던 지하실이었죠.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을 증오하며, 저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태경의 목소리가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을 훑고 지나가며 미세하게 떨려왔다."아버지는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가뒀고, 나는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쓰러져 가면서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죠."태경이 고개를 들어 연우의 투명한 눈동자를 깊게 마주 보았다."그때 환풍구 너머로 당신의 손전등 불빛이 들어왔지."어린 서연우.자신 역시 아버지의 외도와 새어머니의 학대를 피해 어둠 속 산길을 헤매던 상처투성이의 소녀.그런데도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낯선 소년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울지 마. 내가 여기 있어.'"태경이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듯 천천히 그 말을 되뇌었다."그리고 찌그러진 초콜릿 한 조각을 밀어 넣어줬습니다."그는 연우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왼쪽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미친 듯이 박동하는 심장 위에 얹었다."그때 당신이 밀어 넣어준 초콜릿 한 조각과, 울지 말라고 건넨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태경의 붉어진 눈시울이 미세하게 떨렸다."나는 그 지하실을 빠져나온 뒤에도 평생 그 어둠 속에 갇힌 인간으로 남았을 겁니다.""하지만 당신은 결국 그 어둠에서 나왔잖아요."연우가 태경의 가슴 위로 전해지는 묵직한 심장 박동을 느끼며, 아주 매혹적이고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다른 한 손이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