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림은 입꼬리를 비틀며 콧방귀를 뀌었다.“한 번에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몇 개나 맡아서 제대로 감당이나 하겠어? 잘못하면 탈 나지.”그 말은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 오히려 질투와 신경질이 뒤섞인 것처럼 들렸다.사실 넥스 그룹이 그만큼 대형 프로젝트를 연달아 수주할 수 있다는 건, 기본적으로 그걸 소화할 역량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그런 손아림을 지켜보던 그녀의 아버지 손광운 역시 못내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최근 들어 엘리스 그룹이나 세인티 모두 기술 개발에서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있는 와중에, 넥스 그룹은 유
경민준이 별생각 없이 물었다.“시간 괜찮으면 같이 갈래?”임지유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망설였다.순간적으로 ‘시간 될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려다가 왠지 구질구질한 핑계처럼 느껴져 망설였다.‘싫다고 하기도 이상하고...’결국 입에 맴도는 말을 삼키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좋아.”대답을 마친 임지유는 소파 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문득 경민준 책상 위에 놓인 한 서류에 시선이 멈췄다. 서류 제목을 확인한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그 모습을 눈치챈 경민준이 말을 이었다.“회사에서 새로운 대형 모델을 개발할 계
연미혜가 회사 일을 마치고 연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경다솜은 집에 없었다. 경민준이 데려간 것이었다.노현숙의 상태가 여전히 불안한 탓에, 연미혜는 며칠째 아침마다 병원을 찾아 그녀의 안부를 확인했다.병원에 가면 어떤 날은 경민준이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심여정과 경민아가 있었다.심여정은 연미혜가 자기 며느리라는 사실이 내내 못마땅했지만, 병상에 누워계시는 할머니를 챙기러 온 연미혜에게만큼은 늘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경민아 역시 연미혜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두 사람이 곧 이혼할 사이라는 걸 알았기에 더 이상 불필
임지유는 혹시라도 이상하게 보일까 봐, 평소와 다름없이 경민준과 하승태, 정범규가 나누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며 최대한 밝은 척했다.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손아림과 박영순이 거실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임지유가 들어서자, 손아림이 수박을 한입 베어 문 채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언니, 경씨 가문 어르신은 좀 어떠시대? 아직 의식 못 찾으셨어?”임지유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답했다.“응. 아직이야.”“에이, 그럼 언제쯤 깨어날지도 모르는 거야?”임지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고 손아림과 임혜민의 얼굴에 걱
정범규는 뭔가 더 떠보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경다솜과 김영수가 곁에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 분위기가 적절치 않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경민준과 하승태는 각자 바쁜 일정이 있었기에 노현숙의 병실을 잠깐 들른 후 바로 자리를 떴다.그런데도 이렇게 셋이 얼굴을 마주한 것도 오랜만이었다.병원을 나서기 전에 정범규가 말했다.“저녁에 시간 비는 사람 있어? 우리 모처럼 모였으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좋아.”경민준과 하승태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날이 어두워지자, 하루 종일 병원에 묶여 있던 경민준은 심여정이 교대
연미혜가 무언가 대답하려는 찰나, 경민준이 먼저 끼어들었다.“엄마는 지금 바쁘셔. 괜히 방해하지 말고. 투정 부리지 마, 다솜아.”경다솜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서운한 얼굴로 연미혜를 올려다봤다.그 눈빛에 마음이 약해진 연미혜가 조심스레 설명했다.“회의 끝나자마자 다른 회사로 미팅하러 가야 해서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다솜아.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그 말을 들은 경다솜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흥... 알겠어요.”노현숙은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했고 허미숙과 경민준은 서로 딱히 나눌 말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