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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Penulis: 디어파이어
칠흑 같은 어둠이 도시를 감쌌고 현란한 네온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연우는 말없이 심형빈의 뒤를 따라 유명한 일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심형빈이 문을 열자 은은한 차 향기와 맛있는 음식 냄새와 함께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예약 없이는 식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심형빈이 쉽게 예약할 수 있었던 건 이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블랙카드 덕분이었다.

“심 대표님, 오셨습니까? 전에 예약하신 북극 랍스터와 캐비아가 준비되었습니다. 오늘 바로 내어드릴까요?”

레스토랑 매니저는 깍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심형빈을 맞이했다.

그는 반듯한 검은색 양복을 입고 머리는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빗어 넘겼으며 구두는 윤이 반짝거렸다. 그의 모든 몸짓에서 능숙함과 정중함이 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이연우에게 향하자 부드럽던 미소는 찰나의 순간 굳어졌고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반응이 매우 빨라 거의 순간적으로 표정을 가다듬고 숙련된 미소를 지으며 이연우를 바라봤다.

이연우는 매니저의 이러한 미묘한 반응을 모두 눈에 담았다. 마음속에 씁쓸함이 일었다.

그의 반응을 보니 지난번에 심형빈과 함께 온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심형빈과 그 여자가 여기서 서로 속삭이며 음식을 나눠 먹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그녀의 위는 마치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마구 휘젓는 것처럼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이 밀려왔다.

“웩...”

이연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는 재빨리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갑작스런 소리에 매니저는 깜짝 놀라며 똑바로 서 있던 몸을 움찔하더니 반사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먼저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입을 막고 팔을 들어 올려 겨드랑이에 가까이 대고 힘껏 냄새를 맡았으며 눈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는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다.

‘오늘 아침 외출하기 전에 일부러 샤워를 하고 평소에 아껴 쓰던 향수까지 사용했는데, 손님은 왜 토하는 거지?’

심형빈은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시선을 이연우에게 고정했다.

그런 다음, 그의 시선은 이연우의 몸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이동했고 마침내 그녀의 배에 멈췄다.

한참을 말이 없다가 심형빈은 낮고 조심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임신했어?”

이연우는 그 말을 듣자 온몸이 굳어 버렸다. 구역질 때문에 미세하게 떨리던 몸도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잠시 침묵한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을 들어 올려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컵을 내려놓고 심형빈을 똑바로 쏘아보며 싸늘하게 되물었다.

“속이 안 좋으면 다 임신인가요?”

심형빈은 그녀의 말에 긴장을 풀었다.

그는 부드러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애 싫어하는 거 알잖아!”

“네, 그러니까 이제 당신에게 정관수술을 하라고 권해야겠네요.”

이연우는 갑작스럽게 말을 내뱉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묘하게 차갑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차분한 눈빛으로 심형빈을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심형빈과 고수영이 은밀하게 만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절제 없는 관계를 생각하면 피임이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쌍둥이라도 낳을 판이었다.

심형빈은 빙글빙글 돌리던 와인 잔을 멈추었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던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는 천천히 술잔을 내려놓고 비수 같은 눈빛으로 이연우를 쏘아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불만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 괜히 빈정대지 말고!”

“심 대표님, 오해하지 마세요. 전 정말 심 대표님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이연우는 태연하게 응수했다. 마치 날씨를 이야기하는 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당신은 매번 콘돔 쓰는 걸 싫어하잖아요. 여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아니겠죠...”

“이연우, 닥쳐!”

심형빈은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으며 두 손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식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연우는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면서 곧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옆에 있던 매니저가 웃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얼굴이 벌게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손을 옆에 딱 붙이고 있었는데 조금만 틈을 주면 꾹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연우는 속으로 저러다 내상을 입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심형빈이 물을 마시며 분노를 가라앉히려던 찰나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날카로운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형빈은 험악한 표정으로 전화기 화면을 확인하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이연우는 심형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전화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그분과 말해두었으니까.

2분 뒤 심형빈은 급하게 식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어.”

“저도 같이 갈까요?”

이연우는 고개를 들어 심형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심형빈의 아내이자 비서로서, 상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연히 따라가야 했지만, 그녀는 의자에 조용히 앉은 채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때, 종업원이 때마침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북극 랍스터와 정교하게 담아 놓은 캐비아를 들고 왔다.

탱탱하게 살이 오른 랍스터는 윤기가 흐르며 신선함을 드러냈고 캐비아는 흑진주처럼 빛나며 고유의 진하고 섬세한 풍미를 뿜어냈다.

입맛을 돋우는 완벽한 요리였지만 안타깝게도 심형빈은 맛볼 수 없게 되었다.

“됐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알아서 시켜. 집에 갈 때 선물 사 갈게.”

심형빈은 말을 하면서 이미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다급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또 보상이야.’

이연우는 마음속으로 되뇌며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숟가락으로 캐비아를 크게 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톡톡 터지는 캐비아는 원래는 향긋하고 짭짤해야 했지만, 지금은 입안에는 끝없는 씁쓸함만이 감돌았다.

목이 꽉 막히는 듯하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그녀는 억지로 삼키며 북받치는 눈물까지 함께 삼켰다.

‘누가 캐비아가 맛있다고 했지? 쓰기만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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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5. 12. 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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