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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디어파이어
강문수는 그 말을 듣자 앞으로 내딛던 발을 멈추더니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무심결에 이연우를 올려다본 그는 입꼬리를 살짝 씰룩이며 약간 난처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흥분해서 말씀하실 필요는 없어요.”

두 사람은 고층으로 향했다.

강문수는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문이 서서히 열리자 이연우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엉망진창인 광경을 기대하며 긴장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무실 전체가 유리창처럼 깨끗했고 책상과 의자는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서류는 흐트러짐 없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고 바닥에는 먼지 한 점 없었다.

“강 비서님, 대표님이 화내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연우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강문수에게 바싹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네, 엄청 화내셨어요!”

강문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잔뜩 잡힌 주름이 그의 심란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런데 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하진 않으셨대요?”

이연우는 의아한 듯 눈을 굴리며 작게 속삭였다.

심형빈이 분노할 때마다 사무실이 아수라장이 되던 끔찍한 광경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찢긴 서류들이 눈발처럼 휘날리고 책상 위의 책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그녀는 속으로 묵묵히 감탄했다.

‘비교하니까 괜히 더 상처받잖아! 방 대표님 좀 봐, 감정 컨트롤 얼마나 잘하시는지!’

“화가 나면 물건을 던져야 하나요?”

바로 그 순간, 묵직하고 매력적인 저음이 두 사람의 귓가를 강타했다.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이 강문수와 이연우는 주문에 걸린 것처럼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 버렸다.

강문수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연우는 더욱 놀라 숨을 들이켰고 심장이 귓가에 닿을 듯 맹렬하게 고동쳤다.

“방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심성 그룹의 대표 비서 이연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미안하면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죠.”

멀지 않은 곳에서 그는 우뚝 선 자세로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냉랭한 어조로 이연우의 말을 잘라냈다.

그러고는 모델처럼 매끄러운 걸음걸이로 몸을 돌려 사무실 책상으로 향했다.

훤칠한 키에 쭉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연우는 입가를 씰룩거리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역시 화내는 방식이 다르네. 저 사람은 물건을 던지는 대신, 가장 돈이 안 드는 말로 사람을 잡는구나!’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낼 수 없었기에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얼굴 근육이 경직될 정도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방 대표님, 농담도 잘하시네요. 계약 건은 저희 회사 문제이니 하루만 말미를 주시면 내일 만족스러운 계약서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녀는 말하면서도 방현준의 반응을 살피며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 비서, 나는 사업가예요. 내 시간을 하루 낭비하게 하면 얼마나 큰 손해를 보는지 아세요?”

방현준은 책상 앞에 서서 손으로 책상을 짚고 몸을 약간 숙인 채 매의 눈으로 이연우를 훑어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여 이연우는 자신이 마치 현미경 아래 놓인 것처럼 느껴져 온몸이 불편했다.

“방 대표님, 어떤 요구든 말씀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맞춰드리겠습니다.”

이연우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심호흡하며 침착하고 단호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어떻게든 회사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좋았다.

비록 그녀가 앞으로 심성 그룹에 계속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3팀 직원들이 이 계약을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야근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번 실수 때문에 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면 너무나 안타까울 것이다.

“이 비서가 심형빈의 결정을 좌우할 수 있나요?”

방현준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비꼬듯 말했다.

그는 의자에 기대앉아 팔짱을 끼고 마치 진열된 상품을 감상하듯 그녀를 훑어보았다.

“제 능력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제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연우는 단호하게 방현준의 시선을 마주하며 머릿속으로 회사의 마지노선을 빠르게 계산했다.

그녀는 이 계약에 심성 측의 이윤이 20%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이윤의 절반인 10%를 양보할 수도 있었다. 이 협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허허...”

방현준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 조용한 사무실에 싸늘한 냉소가 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손을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이연우를 쏘아보며 말했다.

“심성 그룹도 이제 끝인가 보네요. 겨우 어린 계집을 보내서 나를 상대하려는 걸 보니!”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심형빈더러 직접 와서 얘기하라고 하세요!”

“방 대표님, 저희 혹시...”

이연우는 다급하게 한 발짝 내디뎠지만 방현준의 날카로운 눈빛에 압도되어 다시 물러섰다. 뒷말도 목구멍에 걸려 더이상 잇지 못했다.

“내일 정오까지가 마지막 기회예요. 그렇지 않으면 심성 그룹의 모든 이익을 빼앗을 겁니다.”

방현준은 싸늘하게 말하고는 의자에 앉아 서류를 집어 들고 이연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의 말은 마치 심성 그룹에 내리는 최후 통첩과 같았다.

단 한마디로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연우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런데 문을 나서려는 순간, 방현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연우 씨는 앞으로 외출 전에 거울부터 보는 게 좋겠네요.”

이연우는 무심결에 머리를 만졌다가 깜짝 놀랐다. 딸기 머리띠가 만져진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급하게 나오느라 벗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에서 나오자 이연우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보니 그제야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전 사무실에서의 교전을 떠올렸다. 방현준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는 듯했다.

그녀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도 상대방은 빈틈없이 반박했다.

이연우는 뛰어난 말솜씨를 자랑하며 그동안 뛰어난 언변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오늘 방현준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강자를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연우는 휴대폰을 꺼내 심형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뚜뚜...”

전화는 오랫동안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마침내 전화기에서는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이연우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휴대폰 화면을 향해 이를 갈며 욕설을 내뱉었다.

“심형빈, 이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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