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피심의인 무장승. 본명을 말하십시오." 새벽의 대회의실, 얼굴을 가린 일곱 위원 앞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인연 질서'의 심판대에 섰다. 강휘의 논리는 서늘할 만큼 합리적이었다. 한 사람의 실이 굵어지면 수만 명의 실이 가늘어진다고. 바리는 되묻는다. "질서를 위해 모든 걸 끊는 분이, 왜 숟가락 하나를 그렇게 무서워하세요?" 표결은 3대 3. 마지막 한 표가 걸린 빈 의자 앞에서 문이 열렸다. 선희가 서류를 들고 외쳤다. "규정에 없는 일입니다. 제가 서명했습니다."
"아가씨는 또 누구요? 사위 전 여자친구요?"오구의 첫마디에 병실 문 앞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길례는 서류철을 가슴에 안은 채 우아한 미소를 유지했다. 미소의 근육이 일 초쯤 떨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리는 눈을 질끈 감았고, 무장승은 손에 든 참기름병을 떨어뜨릴 뻔했다."아빠, 이쪽은 인사팀장님이세요. 오늘 관문 감독관으로...""전 약혼자라고 하는 게 정확해요, 어르신."길례가 스스로 밝혔다. 오구의 눈이 동그래졌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신문을 반으로 접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걸레를 든 채 문턱에 멈춰 섰다. 바리는 병실이 이렇게 관객이 많은 곳인 줄 몰랐다."전, 이라고 하셨소?""네. 오래전에요. 지금은 감독관입니다.""그럼 사위 될 사람이, 약혼을 한 번 깼다는 거요?""깬 쪽은 제 쪽이에요.""잘하셨소.""네?""우리 사위는 서른 장짜리 인사말 쓰는 사람이오. 같이 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길례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웃었다.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은 바리도 처음 보았다. 눈가가 접히고 어깨가 들썩였다. 무장승은 그 모습을 곁눈으로 보더니 아주 조금 귀를 붉혔다. 서른 장이라는 숫자가 병실 밖으로까지 퍼진 것이 분했는지, 쑥스러웠는지 알 수 없었다."...사실이 아니오.""서른 장이었죠?""...압축하여 한 줄로 만들었소.""그건 인정해 드릴게요."오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안에서 귤 한 알을 꺼내 길례에게 내밀었다. 길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받아 들었다."먹어요. 병문안 온 사람은 뭐라도 먹고 가야지.""저는 업무 중이라...""업무는 귤 먹으면서 하는 거요."길례는 귤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바리는 그 손가락이 아주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기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도 평소에 귤을 먹을 틈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인사팀장의 책상 위에는 서류만 쌓여 있을 것이고."자, 그럼 관문을 시작할까요."길례가 귤 한 쪽을 입에 넣고 서류철을 펼쳤다. 병실 한가운데로 걸
"선 넘으셨습니다. 사탕 두 알 압수예요."새벽 여섯 시, 관사 문이 열리자마자 민 주임이 줄자를 들고 들어왔다. 바리는 이불 속에서 눈도 뜨지 못한 채 신음을 냈다. 베개가 분필선을 넘어 이십 센티미터 구역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팔은 한술 더 떴다. 선 너머로 쭉 뻗은 손끝이 곰 인형의 발을 움켜쥐고 있었다."저 잔 거 맞죠? 그럼 고의가 아니잖아요.""규정 24조 3항에는 고의 여부를 따지는 문구가 없어요.""그 조항도 주임님이 만드셨죠.""어젯밤에요. 침대에 누워서요."바리는 이불을 뒤집어쓰려다 반대편을 보고 멈췄다. 무장승은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정장 차림 그대로였다. 이불은 접힌 채 발치에 놓여 있었다. 눈 밑이 어제보다 검었다."팀장님, 안 주무셨어요?""...숨을 세다가 새벽 세 시에 그만두었소.""숨을 왜 세요.""당신의 숨소리와 박자를 맞추지 않으려면 계산이 필요했소.""그럼 더 이상하잖아요.""그래서 포기했소."민 주임이 줄자를 접으며 둘을 번갈아 보았다. 입술이 달싹이다가 결국 터져 나왔다."기록해도 되나요? '피관찰자 무, 수면 불이행'.""...하지 마시오.""그럼 사탕 한 알로 하죠."바리가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는데 문 밖에서 헛기침이 났다. 국장이 낚시 조끼 차림으로 서 있었다. 손에는 붉은 도장이 찍힌 공문이 들려 있었다."자네들, 자는 중에 미안한데 급한 용건이야.""국장님, 노크는요.""했지. 세 번이나. 자네들이 못 들은 거야."국장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곰 인형 두 마리를 일별하고 눈썹을 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공문을 펼쳐 탁자 위에 놓았다."어제 심의회 결정문 그대로야. 공동 관찰 유예 기간은 백 일. 그런데 세 번째 조항에 한 줄이 붙었어."바리가 목을 길게 빼고 읽었다.제3항. 유예 기간 중 피관찰자는 중단된 관문 심사를 재개하여야 한다. 불이행 시 유예는 취소된다."관문이요?""그래. 자네 쪽 정치가 하도 시끄러워서 우리도 잊고 있었지.
"공동 관찰 유예 관사 규칙 제1조. 두 피관찰자는 동일한 방에서 지낸다."선희가 서류를 읽는 목소리는 평소처럼 평평했다. 바리는 그 평평함이 오히려 불안했다. 관사 문 앞에 서 있던 무장승의 손이 문손잡이 위에서 굳었다. 대회의실의 일은 한나절 만에 정리되었다. 강휘가 처분안을 스스로 철회했고, 한 본부장이 공동 관찰 유예를 제안했고, 위원 여섯 명이 이견 없이 인장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인장을 올린 은빛 면사포의 위원은 고개를 숙이며 사탕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접었다."...같은 방이라는 것은 이 방을 말하는 것이오?""그렇습니다.""침대는 몇 개요.""하나입니다.""...""농담입니다.""선희 팀장이 농담을 했소?""제 개인 규정입니다. 서명 이후 하루 한 번 농담한다는."도윤이 뒤에서 작게 박수를 쳤다. 선희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도윤, 박수 금지.""죄송합니다. 습관입니다."선희는 서류를 넘겼다. 관사는 의외로 평범한 방이었다. 창문 하나, 책상 둘, 옷장 하나.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요가 매트 크기의 이불이 두 채 놓여 있었다. 이불 사이의 바닥에는 분필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선 옆에서 민 주임이 쪼그려 앉아 줄자를 대고 있었다."정확히 이십 센티미터요. 지금 막 쟀어요. 오차 일 밀리미터 이내.""이십 센티미터는 무슨 기준입니까.""규정 24조입니다. 공동 관찰 유예 대상자 사이의 최소 이격 거리.""그건 누가 정한 거예요?""제가요."민 주임이 천진난만하게 손을 들었다. 바리는 한숨을 쉬었다. 이 직장에서 규정의 절반은 누군가의 개인 규정이었다."이 줄을 넘으면 어떻게 돼요?""넘으면... 어, 어떻게 되는지는 안 정했어요.""정하세요.""네! 넘으면 사탕 한 알 압수예요!""그건 벌이 아니라 보상 같은데요.""그럼 두 알이요!"바리는 웃음을 참다가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무장승은 이불 두 채를 번갈아 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한 줄 흘렀다."...오늘 밤은 어떻게 하면
"휘야."해온의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오후 두 시, 대회의실 증인석에 반쯤 투명한 여자가 서 있었다. 회색 제복의 소매 끝이 빛에 녹듯 흐려져 있었다. 바리는 방청석 앞줄에서 엄마의 어깨 선이 이전보다 더 얇아졌다는 걸 알아챘다. 이십 년을 붙잡고 있던 실이 한 번 더 닳은 것이다.강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철을 든 손이 허공에서 굳어 있었다. 오 초쯤 지나서야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증인은 규정 순서에 따라 선서하십시오.""그래, 그건 해야지. 나 해온은 거짓 없이 진술하겠다. 이 자리에서 한 말은 모두 기록되어도 좋다.""선서 확인. 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휘야, 너 밥은 먹었니?""증인은 질문에만 답하십시오.""먹었니.""....""안 먹었구나. 너는 밥 안 먹으면 목소리가 낮아져. 이십 년 전에도 그랬어."강휘의 턱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방 안은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위원 여섯 명의 면사포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한 본부장만이 일곱 번째 의자에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눈을 감고 있었다."신문하겠습니다. 증인은 오백 년 전 장승이라는 대상자의 관측 일지를 작성한 사실이 있습니까.""있어.""그 기록의 제3장은 봉인되어 있습니다. 봉인자는 누구입니까.""나와 너."방청석이 술렁였다. 바리는 숨을 삼켰다. 무장승이 옆에서 의자 팔걸이를 붙잡았다."기록하십시오. 증인은 봉인자가 자신과 제1팀 강휘 팀장 두 사람이라고 진술했습니다.""맞아. 그날 밤 우리 둘이 같이 있었으니까.""그날 밤이라 하심은.""눈이 오던 밤. 오백 년 전 겨울."해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무장승에게 닿았다. 무장승은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장승. 이제 읽을 때가 됐어.""...하지만 3장은 두 사람이 함께 요청해야 열린다 하였소.""그래서 바리가 같이 있잖니."바리가 벌떡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장승 곁에 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얼음처
"국물은 끝까지! 국물은 끝까지!"방청석 두 번째 줄에서 현수막이 활짝 펼쳐졌다. 가로 삼 미터짜리 흰 천이었다. 덕순이 한쪽 끝을 잡고 서 있었고, 다른 쪽 끝은 도윤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붙들고 있었다. 현수막 한가운데에는 붉은 글씨로 구호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규정은 사람을 위해'가 덧붙어 있었다."방청석에서 현수막을 펼치지 마십시오."경비원이 달려왔다. 덕순은 현수막을 내리기는커녕 한 번 더 흔들었다."이건 현수막이 아니라 응원 천이에요!""천이든 현수막이든 규정에 어긋납니다.""규정 몇 조요?""...방청 규칙 4조입니다.""4조 몇 항요?""1항입니다.""1항은 소음 금지고, 현수막 금지는 2항인데 2항에는 '일정 크기 이상'이라고 되어 있어요. 이건 삼 미터라서 일정 크기 이하죠?"경비원이 서류철을 펼쳤다. 한참을 읽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기준이 오 미터입니다.""그럼 괜찮네요! 도윤 씨, 제가 말했죠!""저는 방금 처음 들었습니다.""그럼 지금부터 아세요!"방청석에서 낮은 웃음이 번졌다. 한 본부장이 일곱 번째 의자에 앉아 이 소란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들었다. 소리가 가라앉았다."규정에 맞는 현수막이라면 놔두세요. 저는 응원 구호를 좋아합니다.""본부장님!""그리고 구호가 마음에 듭니다. 국물은 끝까지. 오랜만에 맛있는 말을 들었네요."강휘의 눈썹이 일 밀리미터 올라갔다. 그는 서류철을 정리하고 숨을 고른 뒤 말했다."절차로 돌아가겠습니다. 증인 출석 요청서의 적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이유를 말씀하세요.""서명자인 선희 팀장은 제3팀 소속으로 관측 정지 처분 대상자의 출석을 요청할 권한이 없습니다. 또한 해당 요청서는 규정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사유란에 적혀 있습니다.""'규정에 없음. 서명자 개인의 판단.' 이것이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방청석이 술렁였다. 선희가 앞으로 나섰다. 흰 정장 소매 끝이 아주 조금 떨렸지만
"피심의인 무장승. 본명을 말하십시오."강휘의 목소리는 새벽의 대회의실 천장까지 곧게 올라갔다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반원형으로 놓인 긴 탁자 뒤에는 일곱 개의 의자가 있었고, 그중 여섯 개에 흰 면사포를 쓴 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심의 규정이었다. 맞은편 피심의인석에는 무장승과 바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리의 무릎 위에서 손이 서로를 꽉 쥐고 있었다."...무장승이오.""그것은 직책명입니다. 본명을 묻고 있습니다.""모르오.""모르는 것입니까, 말할 수 없는 것입니까.""모르는 것이오. 다만 어제 숟가락에서 읽은 이름이 하나 있소."무장승이 품에서 놋쇠 숟가락을 꺼냈다. 책상 위에 올려놓지는 않았다. 손바닥 위에 펼쳐 보였을 뿐이다. 새벽 조명 아래에서 숟가락은 둔하게 빛났다. 손잡이 끝의 두 글자를 보면서, 그가 낮게 말했다."장승. 그 이름만 읽혔소."강휘의 눈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바리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병원 전봇대 아래에서 서 있던 그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목 뒤의 근육이 팽팽했다. 말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한 올이 귀 뒤에서 어긋나 있었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그 숟가락을 증거물로 제출하십시오.""거부하오.""규정 12조에 따라 심의 대상 물품은 제출이 원칙입니다.""같은 12조 2항에 따라 소유자가 제출을 거부하면 위원회 표결로 결정하오. 이 숟가락은 내 것이오.""소유를 입증하실 수 있습니까.""손이 먼저 알았소.""그것은 입증이 아닙니다.""입증하지 못하는 것이 소유가 아니라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소."방 안이 조용해졌다. 의장석의 면사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숨을 삼킨 건지 웃음을 참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강휘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종이 소리가 정확하게 한 번 울렸다."좋습니다. 숟가락의 건은 표결로 넘기겠습니다. 다음으로 바리 씨.""네.""본부 검증실의 측정치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인연 지수, 측정 불가. 인쇄 범위 초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