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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국이 식기 전에

Author: 라온하제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4 11:32:16
"국 식기 전에 들어가도 될까요?"

문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구두 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쾌활했다. 길례가 숨을 멈췄다. 바리는 반사적으로 무장승 옆으로 한 발 붙었다. 인사팀 사무실 문이 열리자 김이 먼저 들어왔다. 뒤이어 커다란 은색 들통을 두 손으로 안은 사람이 어깨로 문을 밀며 들어섰다. 위생모에 앞치마 차림의 구내식당 영양사 팀장, 마옥분이었다.

"마 팀장님?"

"어머, 다들 여기 계셨네. 불 켜진 데를 찾다 보니 여기더라고요. 길례 팀장님 밤샘하시는 줄 알고 따끈한 거 가져왔는데."

"저는 지금..."

"알아요. 짐 싸고 계시죠."

마옥분은 들통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상자 옆에 놓인 명패를 흘끗 보더니 앞치마로 손을 닦았다. 웃고 있었지만 눈가가 젖어 있었다. 바리는 그 눈을 보고 불현듯 떠올렸다. 10관문 때 국물을 퍼 주던 손. 삼 년 만에 국자를 돌려받고 국솥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뒷모습.

"뚜껑 열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먼저 말씀드릴게요. 이 국, 오늘은
라온하제

국 식기 전에 들어가도 될까요? 구내식당 영양사 마옥분이 은색 들통을 안고 인사팀 문을 연다. 4장을 쓴 사람은 오백 년 전 눈 속에서 모든 것을 받아 적던 기록 담당이었다. 쓰러지는 아이를 보면서도 달려가지 못한 손이 지금은 국자를 쥐고 있다. 분실물 상자 속 짚신, 14관문 공지 아래 번진 손글씨까지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는 거래 제안자의 소맷부리에는 낚싯줄 같은 은빛 실이 달려 있었다. 얼굴을 가린 방문객이 정문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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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면, 선글라스, 마스크. 세 가지를 한꺼번에 쓰고 오시면 신원 확인이 안 됩니다, 손님."본부 정문 경비실에서 덕순이 방문자 기록부를 펼치며 말했다. 인사팀 사무실에서 바리와 무장승, 길례, 마옥분 모두가 정문까지 달려 내려온 참이었다. 경비실 유리창 너머에는 검은 도포를 입은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에는 검은 복면에 선글라스, 그 위에 흰 마스크까지 겹겹이 두르고 있었다. 눈동자는커녕 눈썹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성함이라도 말씀해 주세요.""....""말씀을 못 하시는 건가요?""...."남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유리창에 붙였다. 종이에는 굵은 붓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까 봐 얼굴을 가렸습니다.'바리가 입을 벌렸다. 무장승이 낮게 중얼거렸다."...12관문의 마지막 사자요.""흑태수 팀장님 동생분이요?"남자가 마스크 위로 손가락을 얹으며 끄덕였다. 그제야 바리는 알아차렸다. 오백 년 만에 국을 받고 울던 사자였다. 얼굴을 보여 주기 싫어서 세 겹으로 가린 것이었다. 덕순이 감격하며 두 손을 모았다."세상에, 그 일이 부끄러웠던 거죠?""....""괜찮아요! 사자님 눈물은 저희가 기록하지 않았어요!""...기록했소. 나는 보았소.""팀장님은 좀 닥쳐 주세요."경비실 안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복면 아래에서 사자의 어깨가 아주 조금 들썩였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옥분이 조용히 그의 손에 사탕 하나를 쥐여 주었다. 사자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헛기침을 했다. 사자가 품에서 서류 봉투를 하나 더 꺼냈다. 이번에는 말 대신 두 손으로 정중하게 길례에게 내밀었다. 길례가 봉투를 받아 열었다. 인쇄된 서류 맨 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17관문. 주제: 인력 유출 방지 면담. 대상: 인사팀장 길례. 담당: 무장승."...이게 뭐예요."길례의 목소리가 떨렸다. 바리와 무장승이 서류를 같이 들여다보았다. 서류 아랫부분에는 심사위원 서명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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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식기 전에 들어가도 될까요?"문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구두 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쾌활했다. 길례가 숨을 멈췄다. 바리는 반사적으로 무장승 옆으로 한 발 붙었다. 인사팀 사무실 문이 열리자 김이 먼저 들어왔다. 뒤이어 커다란 은색 들통을 두 손으로 안은 사람이 어깨로 문을 밀며 들어섰다. 위생모에 앞치마 차림의 구내식당 영양사 팀장, 마옥분이었다."마 팀장님?""어머, 다들 여기 계셨네. 불 켜진 데를 찾다 보니 여기더라고요. 길례 팀장님 밤샘하시는 줄 알고 따끈한 거 가져왔는데.""저는 지금...""알아요. 짐 싸고 계시죠."마옥분은 들통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상자 옆에 놓인 명패를 흘끗 보더니 앞치마로 손을 닦았다. 웃고 있었지만 눈가가 젖어 있었다. 바리는 그 눈을 보고 불현듯 떠올렸다. 10관문 때 국물을 퍼 주던 손. 삼 년 만에 국자를 돌려받고 국솥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뒷모습."뚜껑 열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먼저 말씀드릴게요. 이 국, 오늘은 맑은 어묵탕이에요. 생명수 두 모금째 마신 날부터 제가 매일 끓였어요.""매일이요?""네. 이 국물은 아무나 못 끓여요. 오백 년 전 눈 오는 날 한 아이가 들고 오던 국이 이 맛이거든요."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무장승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입술이 닫혔다 열렸다. 바리는 그의 팔을 가볍게 붙잡았다."마 팀장님은 그 국 맛을 어떻게 아세요?""제가 먹어 봤으니까요. 그날 밤에."마옥분은 위생모를 벗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은회색이 섞인 짧은 머리였다. 그녀는 모자를 손에 쥐고 오래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저는 관측 본부 삼 급 관측자였어요. 오백 년 전에는요. 강휘 팀장님과 해온 님이 같이 현장에 나갔을 때 저는 후방 기록 담당이었어요. 눈 속에 서서 모든 걸 받아 적는 일이었죠.""그럼 4장을 쓴 사람이...""저예요."바리의 숨이 멎었다. 무장승의 어깨가 굳었다. 길례의 손에서 도장이 미끄러졌다. 마옥분은 그 도장을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계속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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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째 공주, 저승 서방님을 길들이다   82화 16관문: 이인삼각은 규정에 있다

    "이인삼각은 규정에 있습니다. 규정 제삼십이 조 이항, 부서 대항 체육대회 종목 가운데 하나로요."덕순이 응원단 깃발을 휘두르며 외쳤다. 관리국 옥상 정원은 하루 만에 운동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닥에는 흰 석회로 트랙이 그려져 있었고, 국장실이 후원한 사탕 포장지가 만국기처럼 줄에 매달려 펄럭였다. 16관문의 제목은 '단합 행사 참여'. 무장승은 서류를 두 번 읽고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이인삼각이라는 종목은 처음 듣소.""두 사람이 다리 하나씩을 묶고 같이 달리는 거예요, 팀장님.""왜 묶는 것이오.""그게 종목이라서요.""묶지 않고 달리면 안 되오?""그럼 그냥 달리기죠.""그냥 달리기가 더 효율적이지 않소.""팀장님, 그게 이 종목의 핵심이에요!"덕순이 깃발 끝으로 땅바닥을 콕콕 찔렀다. 바리는 옆에서 운동복 소매를 걷고 있었다. 오늘은 관사에서 가져온 곰 인형도 벤치에 앉혀 놓았다. 어제 꿈에서 돌아온 뒤로 마음이 아직 어수선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일이 오히려 낫겠다 싶었다. 바리는 무장승 곁에 서서 속삭였다."팀장님, 그냥 하세요. 지는 것도 괜찮아요.""지면 단합 점수가 부족하여 관문 미통과이오.""그럼 이기면 돼요.""이길 방법이 있소?""저랑 발을 맞추면 돼요. 하나, 둘, 하나, 둘.""...그것을 어떻게 맞추오."바리는 대답 대신 허리를 굽혀 끈을 집어 들었다. 무장승의 오른발목과 자신의 왼발목을 천으로 묶었다. 매듭을 지을 때 손끝이 그의 복사뼈에 닿았다. 무장승이 숨을 아주 조금 멈추었다. 바리는 모른 척하고 일어섰다. 어깨가 맞닿았다. 무장승의 팔이 어색하게 바리의 허리 근처에서 멈춘 채 갈 곳을 몰랐다."팀장님, 팔을 어깨에 두르세요. 제 어깨요.""...규정상 허용되오?""종목 규칙이에요.""그렇다면."그의 팔이 바리의 어깨를 감쌌다. 닿는 순간 바리의 귀가 달아올랐다. 심판석에서 호루라기가 울렸다. 출발선에는 총 여섯 조가 서 있었다. 제3팀의 선희와 도윤 조, 총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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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면회 신청서는 사 부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원본 한 부, 사본 세 부, 본인 서명은 파란색 볼펜으로요."접수 창구의 직원이 서류 뭉치를 밀어 내며 말했다. 인사팀 옆 별관에 이런 창구가 있다는 것을 바리는 오늘 처음 알았다. 벽에는 '이승 가족 면회는 수면 중에 한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대기 의자에는 베개를 안은 영혼들이 졸린 눈으로 줄을 서 있었다. 바리는 서류를 받아 들고 무장승을 돌아보았다."팀장님, 이거 꿈에서 만나는 거래요.""...들었소.""아버지 병원에 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 꿈에 들어가는 거고요.""입원 중인 이의 의식이 수면 상태일 때 접속하는 방식이오. 접속 시간은 이십 분. 길례가 사유서를 올려 주었소.""길례 씨가요?""입회인이 직접 올리면 심사가 빠르다 하였소. 그리고...""그리고?""짚신을 직접 전달하지 않으면 15관문을 마칠 수 없다 하였소."짚신은 투명한 비닐봉투에 들어 있었다. 무장승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아흔아홉 개를 돌려주고 남은 한 개. 반납 단말기의 오류 메시지는 길례가 확인한 뒤 '정상'으로 판정했다. 주소가 이승 병원으로 나오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그럼 아버지가 정말 이 신발 주인이에요?""주인은 맞소. 그 외의 것은 가 보아야 아오."서류 작성에 한 시간이 걸렸다. 수속이 끝나자 직원이 두 사람을 접견용 침상이 놓인 방으로 안내했다. 하얀 이불이 덮인 침상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머리맡에는 은빛 향로가 놓여 있었다. 바리가 침상에 눕자 무장승이 옆 침상에 앉았다. 곰 인형이 필요하냐고 직원이 물었다가, 바리가 고개를 젓자 말없이 물러갔다."팀장님, 같이 가시는 거 맞죠?""입회인과 동행자는 같은 꿈에 들어갈 수 있소.""그럼 이상한 데 있으면 제 손 잡아 주세요.""...알겠소.""저 손 놓지 마세요.""놓지 않겠소."향이 피어올랐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바리는 어디선가 어묵 국물 냄새를 맡았다. 오구가 늘 밤 열 시에 끓여 먹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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