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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누몽
밖의 신경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조급해하는 배윤호와 달리 송청아는 지극히 침착했다. 저 뻔뻔한 남녀와 실랑이를 벌일 마음 따위는 없었다. 이들과는 더 이상 말을 섞는 것조차 입 아픈 일이었다.

“저는 향을 사러 왔으니, 두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말을 마친 송청아는 주 사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감송 두 돈, 정향 다섯 돈, 소합향 네 돈, 용연향 세 돈을 꺼내 주시겠어요?”

송청아가 아예 자신을 무시하자 배윤호는 체면을 구긴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말했다.

“향을 사러 나왔으니 은자는 넉넉히 챙겨 왔겠지. 네 몫까지 내가 치르지는 않겠다. 채리야, 갖고 싶은 향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 내가 사 주마.”

송채리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나 겉으로는 수줍은 기색을 지으며 물었다.

“정말요? 고마워요, 형부! 아버지와 어머니께 들었는데, 용연향은 고래의 뱃속에서 얻는 데다 가공 과정까지 몹시 복잡해서 아주 귀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용연향을 한번 구경해 봐도 될까요, 형부?”

배윤호가 호기롭게 대답했다.

“안 될 게 뭐 있느냐. 주인장, 용연향 한 근을 싸 주시오.”

그 말을 들은 주 사장의 낯빛이 묘하게 굳었다. 곁에 있던 송청아도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를 눈치챈 배윤호가 재촉했다.

“뭘 멍하니 있는 것이오? 어서 가서 가져오시오.”

주 사장은 난처한 얼굴로 두 손을 비볐다.

“그게…… 배 소장군, 정말 한 근을 원하시는 겁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소?”

“저…… 용연향은 시세가 워낙 높습니다. 한 냥에 은자 오백 냥이고, 한 근이면 오천 냥이지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다른 이들은 향약을 살 때 한 돈씩 달아 사는데, 누가 배추라도 사듯 한 근씩 달라고 한단 말인가.

배윤호와 송채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어붙었다.

한 냥에 은자 오백 냥이라니. 용연향이 이토록 값비싼 물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윤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번지자 송채리가 황급히 그의 체면을 세워 주려 했다.

“형부, 생각해 보니 제가 용연향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다른 향으로 고르는 게 어때요?”

그러나 배윤호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미 큰소리를 친 마당에 이제 와서 다른 향으로 바꾼다면, 제 손으로 제 뺨을 때리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궁리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다. 네게 용연향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사 주마. 다만 한 근은 확실히 너무 많으니, 우선 한 냥만 사는 게 어떻겠느냐?”

송채리가 감히 싫다고 할 리 없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주 사장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향이 준비되자 송청아는 자신이 산 향값부터 치렀다. 이제 남은 것은 배윤호가 어떤 꼴을 보일지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배윤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품속에서 구깃구깃한 은표 몇 장을 꺼냈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용연향 한 냥에 은자 오백 냥이라니. 그의 일 년 치 녹봉과 맞먹는 액수였다.

오늘 그는 그저 송채리와 함께 거리를 가볍게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송채리가 갑자기 향료점에 가 보고 싶다고 하더니, 하필 가장 비싼 용연향을 콕 집어 달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설마 일부러 제 주머니를 털어먹으려는 것인가?

배윤호가 꺼낸 은표는 보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주 사장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꾹 다물고 웃음을 참았고, 점원들은 이미 한쪽에서 몰래 키득거리고 있었다.

배윤호는 어쩔 수 없이 염치 불고하고 품속을 몇 번이나 더 뒤졌다. 그렇게 잔은까지 모조리 꺼내 놓았지만, 모두 합쳐도 고작 삼백팔십 냥이었다. 어느새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얇게 맺혔다.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부족한 은자를 어떻게 마련할지 고심하던 그의 눈에 마침 곁에 서 있던 송청아가 들어왔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오늘은 급히 나오느라 이것밖에 가져오지 못했다. 여윳돈이 있으면 우선 좀 빌려 주거라. 부로 돌아가면 바로 갚겠다.”

송청아는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 가느다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목소리에는 은근한 조롱이 배어 있었다.

“제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서방님께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향값 정도는 얼마든지 치러 주실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헌데 정작 은자가 모자라 제게 손을 벌리시다니요?”

배윤호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시 하얗게 질렸다. 옆구리에 늘어뜨린 두 주먹도 부들거릴 만큼 세게 움켜쥐었다.

“그래서 빌려 주겠다는 것이냐, 말겠다는 것이냐!”

송청아는 매끄러운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러자 희고 가느다란 목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도 향을 살 만큼의 은자만 챙겨 나와서 서방님께 빌려드릴 여윳돈이 없어요. 그러니 서방님께서 직접 방법을 찾아보세요.”

배윤호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고, 송채리의 안색 또한 보기 흉하게 굳었다.

“질투도 정도껏 해야지. 송청아, 꼭 남들 앞에서 네 서방님의 체면을 깎아내려야겠느냐?”

하지만 송청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려 주 사장에게 향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주 사장이 향을 포장하는 사이, 점원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주 사장이 멋쩍게 웃으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잊고 있었군요. 며칠 전 조정에서 새 규정이 내려왔습니다. 용연향의 생산량이 해마다 줄어드는 탓에, 앞으로는 일품 대신, 황족과 고위 귀족에게만 판매하도록 했지요. 그러니 일품 대신, 황족이나 고위 귀족의 인장이 없으면 용연향을 판매해 드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가게 안에 있던 송청아와 두 사람은 모두 뜻밖이라는 듯 멈칫했다. 그런 새 규정이 생겼을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송채리는 불안한 눈으로 배윤호를 바라보았다.

“형부, 그렇다면 그냥 사지 말아요. 다른 가게에 가 보는 것도 좋잖아요…….”

그러나 뜻밖에도 배윤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마침내 구겨진 체면을 되찾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소용장군부의 인장을 꺼내 거만하게 내밀었다.

“소용장군부의 인장이 여기 있소. 그 용연향을 싸 주시오. 부족한 은자 백이십 냥은 우선 외상으로 달아 두면, 내가 부로 돌아간 뒤 사람을 시켜 보내겠소.”

다행히 나올 때 인장을 챙겨 온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송청아에게는 죽어도 용연향을 사 주고 싶지 않았다.

감히 조금 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짓밟았으니, 그녀에게도 똑같이 망신당하는 기분을 맛보게 할 작정이었다. 그래야 앞으로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주 사장은 그 인장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배 소장군, 분명 일품 대신, 황족과 고위 귀족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소용장군부는……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에 배윤호와 송채리는 누군가에게 뺨이라도 얻어맞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변에서 바쁜 척하던 점원들은 평생 겪었던 가장 슬픈 일들을 모조리 떠올리고서야 간신히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송청아도 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입꼬리가 휘어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배윤호는 더욱 분노했다.

“너는 소용장군부의 큰며느리이면서 어찌 외인들과 함께 제 서방님을 비웃는 것이냐? 내가 아니면 네가 저 용연향을 살 수 있기라도 한 줄 아느냐?”

바로 그때, 안쪽 별실에 앉아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사내가 곁에 선 검은 무복 차림의 남자에게 눈짓을 보냈다.

“청인.”

청인이라 불린 호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쪽으로 돌아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밖에서는 배윤호가 여전히 노기등등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세상에 너처럼 제 서방님을 우습게 여기는 여인이 또 어디 있겠느냐! 그렇게 잘났으면 네 힘으로 용연향을 사 보아라. 우리 장군부를 떠나면 너는 은자 한 냥조차 벌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화미가 갑자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큰부인, 방금 어떤 분이 이것을 전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송청아가 건네받아 살펴보니, 은은한 불수감 향이 배어 있는 최상품 선지 한 장이었다.

종이에는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용연향 세 돈을 구입할 것.’

그리고 그 글귀 아래에는 용무늬가 새겨진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송청아는 이것이 대체 무엇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눈썰미 좋은 주 사장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배씨 부인께서 인장을 가지고 계셨군요! 이리 주십시오. 제가 당장 용연향을 싸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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