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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누몽
책상 앞에 서 있던 송청아는 진작 배윤호가 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별채 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다가오자, 송청아는 고개를 숙인 채 향 반죽을 주무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서방님께서는 장군부를 떠나 계신 이 년 동안 기본적인 예법마저 잊으셨습니까? 방에 들어오실 때 사람을 시켜 미리 알리거나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도 모르십니까?”

배윤호는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뒤로 다가가 한동안 조용히 지켜보다가, 슬며시 손을 잡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송청아에게 들키고 말았다.

아무래도 조금 전 내력을 거두지 않은 탓에 기척을 들킨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와 나는 엄연한 부부다. 내가 제 부인의 방에 들 때도 미리 알리고 문까지 두드려야 하느냐?”

그사이 송청아는 몸을 돌려 배윤호를 바라보았다. 싸늘하게 굳은 단정한 얼굴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고, 담담한 목소리에도 온기라곤 없었다.

“서방님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배윤호는 순식간에 흥이 식었다. 그녀의 냉담한 말투와 추궁하듯 바라보는 눈빛에 심기가 거슬린 탓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볼일이 없으면 오지도 못하느냐?”

배윤호는 말을 마치고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송청아가 조금 전 빚어 놓은 향환 하나를 집어 손끝에서 굴리더니, 무심코 내뱉었다.

“너는 고작 이런 여자들이나 만드는 쓸모없는 물건밖에 만들 줄 모르는구나.”

그 한마디로 송청아의 솜씨와 노고를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깎아내렸다.

배윤호가 보기에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일이었고, 농사를 짓고 베를 짜는 것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장인이 집을 짓는 것 역시 백성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사치들은 오직 이익을 좇아 살아가며, 그들이 파는 물건은 하나같이 사람을 유흥에 빠뜨리고 나태하게 만드는 사악한 물건일 뿐이었다.

송씨 가문이 하는 제향업도 그의 눈에는 여자들이 치장하고 즐기는 데 쓰는 물건을 만드는 장사에 지나지 않았다.

전생에도 배윤호는 제향업을 한두 번 깎아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향료점이 장군부에 가져다주는 부귀와 체면은 당연하다는 듯 누렸다.

송청아는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그의 역겨운 낯짝에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그녀는 배윤호의 손에서 향환을 빼앗으며 차갑게 말했다.

“서방님께서는 모르셨나 봅니다. 소용장군부의 살림 대부분이 제가 만든 향약에서 나온다는 것을요.”

배윤호는 반박할 말이 없어 머쓱해졌다.

배윤호와 그의 아버지, 서제까지 모두 군영이나 도성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지만, 결국 정해진 녹봉을 받는 처지였다. 한 달에 고작 수십 냥으로는 장군부 식솔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의 의식주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과거 배윤호의 아버지가 송씨 가문과 혼인을 맺기로 한 데에는 송씨 가문이 넉넉한 혼수를 마련해 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송청아는 장군부를 위해 향을 조제하고 향료점까지 관리할 수 있었다.

배씨 가문의 계산대로 송청아가 시집온 뒤, 장군부의 살림은 눈에 띄게 넉넉해졌다.

고씨가 끼니마다 산해진미를 즐기고 온몸에 촉금을 두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군부가 송청아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윤호가 인정할 리는 없었다.

결국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별채 안을 한 바퀴 훑어보던 배윤호는 문득 안쪽 방에 침상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즘 여기서 자느냐?”

배윤호가 돌아서서 물었다.

송청아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윤호는 더욱 의아해졌고, 영문 모를 화까지 치밀었다.

“멀쩡한 안채를 두고 왜 여기서 지내는 것이냐?”

송청아가 눈을 내리깔고 담담히 대답했다.

“서방님께서 돌아오셨으니 당연히 넓고 편안한 곳에서 지내셔야지요. 제가 안채에 머물면 서방님의 휴식을 방해할까 염려되었습니다. 어차피 저도 대부분의 시간을 별채에서 보내니, 아예 이곳으로 옮겨 오는 편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야 서방님께서도 편히 쉬실 수 있을 테니까요.”

송청아는 자신이 제법 현숙하고 사려 깊게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윤호는 또다시 화를 냈다.

“송청아, 지금 나와 기 싸움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그날 밤에는 채리가 고열에 시달려서 내가 송씨 가문에서 하룻밤 곁을 지킨 것뿐이라고 이미 설명하지 않았더냐. 대체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냐?”

배윤호는 마치 말도 통하지 않는 미치광이를 보듯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날 보였던 관대하고 의젓한 태도는 역시 전부 거짓이었던 모양이다.

제 앞에서는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더니, 돌아서자마자 안채에서 나가 버리다니.

대체 누구 보라고 이렇게 토라진 티를 낸단 말인가?

“정실이라면 마땅히 너그럽고 대범해야 한다. 내가 채리를 조금 더 챙겼다고 이렇게 심술을 부리다니, 너무 속이 좁은 것 아니냐?”

송청아는 어처구니가 없어 입꼬리를 비틀었다.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자신이 먼저 안채까지 내어 주었건만, 배윤호는 도리어 그녀를 속 좁은 여자라고 몰아세웠다.

대체 어떻게 해야 너그럽고 대범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제가 토라졌다고 생각하고 싶으시다면,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송청아는 더 이상 그와 말다툼할 마음이 없었다.

전생에도 해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송청아가 아무리 설명해도 배윤호는 귀를 닫고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녀를 더욱 혐오했다.

나중에야 송청아는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사람은 오직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을.

배윤호가 이미 사실이라고 단정한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없었다.

말을 마친 송청아는 몸을 돌려 물건을 정리했다.

“서방님께서 다른 용무가 없으시다면 그만 돌아가십시오. 저도 이제 쉬어야겠습니다.”

배윤호는 실망스럽고 기가 막힌다는 듯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토라져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고작 내가 송채리의 곁에서 하룻밤을 보냈거나, 네 두약을 뽑았다는 이유로 이러는 것이냐? 송청아, 나와 함께 안채로 돌아가자.”

배윤호는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단호한 어조로 명령하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송청아가 황급히 손을 빼냈지만, 소매는 배윤호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가 손에 살짝 힘을 주는 순간, 천이 찢어지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송청아의 옷깃이 조금 벌어지면서 가슴께의 희고 부드러운 살결과 얕은 굴곡이 드러났다.

배윤호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곳에 못 박혔다.

저 부드러운 살결을 손안에 움켜쥔다면 얼마나 향긋하고 보드라울까…….

“아!”

송청아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다급히 옷깃을 끌어 올리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배윤호는 그녀가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성큼 다가가 송청아의 팔을 붙잡았다.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도 그녀는 그대로 벽 쪽으로 밀려났고, 곧이어 배윤호가 바짝 다가서며 앞을 가로막았다.

“놓으세요! 이거 놓으라고요!”

송청아는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눈앞에 있는 배윤호의 얼굴이 전생에 수없이 자신을 폭행하던 얼굴과 겹쳐 보이자,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들었다.

배윤호는 그녀가 이토록 두려워하며 완강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자, 조금 전까지 품었던 은밀한 욕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송청아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붙잡아 머리 위로 눌렀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갑자기 발광하는 것이냐! 이제는 내가 너를 건드리지도 못한다는 것이냐? 나는 네 부군이다. 오늘 밤 이 자리에서 너를 품는다 해도 당연한 일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송청아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래. 두 사람은 아직 화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배윤호의 부인이었고,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이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다가는 틀림없이 배윤호를 격분시킬 터였다.

아무 탈 없이 장군부를 떠나려면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생각한 송청아는 깊이 숨을 몇 차례 들이쉬며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배윤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배윤호, 우리 화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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