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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9월 12일, 면류관을 쓴 단칸방 여대생

Author: yey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21:25:06

9월 12일, 경복궁 근정전.

가을 하늘이 드높게 청명한 가운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여왕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가난한 단칸방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법전을 읽던 민 설.

그녀는 이제 화려하고 웅장한 적의(翟衣)를 입고,

머리 위에는 순금으로 세공된 무거운 면류관을 쓴 채 어좌에 앉아 있었다.

수많은 외빈과 국민들이 그녀를 향해 환호하고 있었지만,

민 설의 가슴 한구석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왕관의 무게라... 생각보다 더 무겁고, 생각보다 더 썩어있군.'

즉위식이 끝난 직후, 민 설이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화려한 연회가 아닌

왕실의 재정 장부였다.

그리고 비서실이 벌벌 떨며 올려보낸 장부를 확인한 민 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적자... 적자... 죄다 붉은 글씨뿐이군요."

전전 선왕대의 낭비와 구태 원로들의 사리사욕,

그리고 불투명한 사적 재단 운영으로 인해 왕실 재정은 말 그대로 파산 직전이었다.

화려한 궁궐의 외벽 뒤에는 썩어가는 기둥만이 남아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민 설은 놀라지 않았다.

고아로 자라며 매달 통장 잔고 0원을 확인하던 그녀에게 이런 결핍은

너무나도 익숙한 현실이었다.

바로 그때, 접견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훤칠한 키, 완벽하게 떨어지는 맞춤 수트핏,

그리고 상대를 한참 아래로 깔아보는 서늘한 눈빛.

대한민국 최연소 총리, 구지혁이었다.

관례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채 민 설의 찻상 앞에 다가선 그가 피식 웃었다.

"소문대로군요. 면류관을 쓴 단칸방 여대생이라."

"생각보다 더 예의가 없으시군요, 구지혁 총리님."

민 설이 장부를 덮으며 덤덤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지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민 설이 보고 있던 재정 장부를 툭툭 쳤다.

"어린 여대생께서 동화 속 여왕놀이에 몰입해 계신 것 같아서 현실을 알려주러 왔습니다.

 보시다시피 왕실은 거지꼴입니다.

 그리고 그 깡통 차기 직전인 왕실에 목숨줄을 대줄 수 있는 건 오직 제 행정부뿐이죠."

지혁은 민 설에게 바짝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지독하게 잘생긴 얼굴에 짙은 독설이 실려 나왔다.

"온 나라가 선덕여왕의 환생이라며 띄워주니 진짜 뭐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착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저 정치판의 구태를 덮기 위해

 국민들이 잠시 선택한 쇼윈도 마스코트에 불과합니다.

 세상을 책으로만 배운 애송이가 감히 국정을 논하고 권력을 탐하려 들다간,

 그 무거운 왕관에 목뼈가 먼저 부러질 겁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을 하며 쏟아붓는 명백한 도발.

보통의 26살이라면 수치심과 공포에 떨었을 터였다.

그러나 민 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맑은 눈동자로 지혁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목뼈가 부러질지, 아니면 그 왕관으로 총리님의 그 잘난 머리를 조롱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요."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강렬하게 충돌했다.

불꽃 튀는 혐오와 경멸, 그리고 이상하게 피어오르는 강렬한 긴장감 속에서

두 사람의 잔혹한 혐관의 전쟁이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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