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비밀 공조가 한창이던 중, 민 현 대공 측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두 사람의 낮 동안 펼치는 대립 연기 속에서 미세한 이상을 감지한 민 현 대공은,왕실 내부의 구태 잔당을 포섭해 밀실 접견실로 향하는 비밀 통로 곳곳에도청 장치들을 설치했다.그날 밤도 평소처럼 비밀 접견실에서 다음 단계 공작을 논의하던 두 사람."민 현 대공의 비자금 장부는 이미 확보했습니다. 다음 주 국회 본회의에서 폭로하면 그 약삭빠른 여우는 완전히 매장당합니다."구지혁 총리가 서류를 넘기며 차갑게 내뱉었다.그러나 그 순긴 민 설 여왕은 순간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벽면에 설치된 고전 촛대의 위치가 미세하게 비틀려 있었던 것이다."총리님, 잠시만요."민 설 여왕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구지혁 총리의 입을 손으로 가로막았다.갑작스러운 민 설 여왕의 촉촉하고 작은 손길에 구지혁 총리의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가녀린 촛불 불빛 아래, 민 설 여왕의 깊은 눈동자가구지혁 총리의 눈과 단 몇 센티미터 거리에서 교차했다.숨소리마저 닿을 듯한 거리에서 구지혁 총리의 심장은 무섭게 요동쳤다.민 설 여왕은 조용히 벽면으로 다가가 촛대 뒤에 은밀히 숨겨져 있던미세 도청 장치를 찾아 끄집어 꺼냈다.'도청…!'구지혁 총리의 눈에 순간 서슬 푸른 살기가 감돌았다.자신들의 밀실 공조가 민 현 대공에게 노출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그러나 민 설 여왕은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도청 장치에 대고 나지막이 소리쳤다."민 현 대공. 쥐새끼처럼 벽 뒤에 숨어 들을 생각 말고, 본회의장에서 당당히 맞서시지요. 그 정도 베짱은 있으시리라 믿겟습니다,"민 설 여왕의 지혜와 순발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버리는 순간이었다.구지혁 총리는 도청기를 발로 밟아 박살 내는 민 설 여왕의당차고 시원시원한 모습에, 또다시 가슴 깊은 곳에서 거대한 경탄과 매혹을 느꼈다."전하… 당신은 정말이지, 매 순간 내 예상을 완벽하게 뒤짚는 군요. 여왕 전하는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를 공 같습니다."구지혁
구지혁 총리의 파격적인 자금 투입으로 왕실 재정의 숨통이 트이자,두 사람의 관계는 완벽하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낮 동안의 국회와 언론 앞에서는 피 비린내 나는 연기가 펼쳐졌다.구지혁 총리는 보수 세력 앞에서 여왕의 무분별한 재정 행보를강하게 비판하며 엄격하게 날 선 총리 행세를 했고,민 설 여왕 역시 인터뷰를 통해 총리실의 지나친 행정 간섭을 지적하며 팽팽하게 대립했다.민 현 대공과 보수 야당은 두 사람의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며완벽하게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그러나 밤이 되면 여왕님과 총리, 두 사람의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경복궁 깊은 곳,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접견실.촛불만이 은은하게 빛나는 밀실 안에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민 현 대공이 금요일, 보수 언론사 간부들과 비밀 회동을 가집니다. 차기 탄핵안 발의를 위한 정지 작업입니다."안미소 실장이 가져온 정보에 구지혁 총리가 냉철한 미소를 지었다."좋아요. 낚싯바늘을 제대로 물었군요. 최 실장, 총리실 특사경 동원해서 그 회동 현장 계좌 추적 자료 확보해."민 설 여왕은 구지혁 총리가 써 내려가는 정국 분석표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숫자와 데이터로 판을 읽어내는 구지혁 총리의 천재성과,현장 민심과 법률의 허점을 찔러내는 민 설 여왕의 지혜가 결합하자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수의 판이 짜여지고 있었다."총리님, 낮에는 그렇게 무섭게 비꼬시고 맹렬히 질타하시더니 밤에는 아주 든든한 사냥개가 되어 주시는군요."민 설 여왕이 찻잔을 건네며 조용히 웃자, 서류를 검토하던 구지혁의 손길이 멈추었다.촛불 빛 아래 드러난 민 설 여왕의 고운 얼굴과 깊은 눈동자.밀실이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의 거리는 지나치게 가까웠다."사냥개라니… 말이 심하시군요, 전하. 전 그저 제가 투자한 500억의 가치를 지키는 것뿐입니다.""알겠습니다, 나의 물주, 총리님."민 설 여왕의 차분하고 달콤한 목소리에 구지혁 총리의 심장이갑자기 불규칙하게 뛰기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늦은 밤.총리실 집무실에서 홀로 야근을 하던 구지혁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수행원 없이 안미소 실장만을 대동한 채, 민 설 여왕이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수치심과 분노를 억누른 채 정갈한 한복 차림으로 들어선 민 설 여왕.구지혁은 나른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 늦은 시간에 예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전하? 성왕 놀이는 벌써 밑천이 다 드러나셨습니까?"지독하게 비꼬는 음성이었지만, 민 설 여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그녀는 차분하게 집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와 서류 한 뭉치를 내던졌다."대한제국 향후 10년 첨단 IT 산업 및 문화 자산 융합 국책 과제 보고서입니다. 총리께서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프로젝트지요.""그건... 그걸 왜 여기에 끌어들이시는 겁니까?""그 국책 과제의 핵심 부지가 이번에 가압류 걸린 왕실 소유 토지더군요. 부지가 법적 분쟁으로 묶이면 당신이 기획한 수조 원 대 국책 프로젝트 전체가 차질을 빚게 될 텐데요. 그 말은 총리님께도 상당한 손해인 거죠."구지혁 총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민 설 여왕은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자신의 작은 손을 꼭 쥐며,평생 해본 적 없는 힘겨운 말을 겨우 입밖으로 내뱉었다."제 자존심을 굽혀 드리겠습니다. 왕실 재정이 정상화될 때까지… 왕실 소유 토지 개발권 및 문화 사업 지분에 개인 투자를 요청합니다, 구지혁 총리님."자존심이라면 목숨보다 높았던 어린 여왕이,국민과 왕실을 지키기 위해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떨리는 손을 꼭 쥐고 있지만, 눈빛만큼은 타락하지 않은 그 올곧고 처연한 태도.쿵- 하고 구지혁의 가슴 밑바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세상을 돈과 계산으로 지배해 온 천재 총리의 머릿속이 순간 멈춰 섰다.단 한 번도 타인에게 경외감을 느껴본 적 없던 그가,자신 앞에 고개를 숙인 이 스물여섯살짜리 가난한 여왕의지독한 강인함 앞에 알 수 없는 패배감과 수치심,그리고 강렬한 독점욕을 동시에
구지혁 총리의 국고 보조금 전면 동결 조치에 이어,보수 야당의 거두 민 현 대공이 짠 가장 치졸한 법적 덫이 왕실을 덮쳤다."전하! 큰일 났습니다! 법원에서 왕실 소유 토지 전체에 대한 가압류 및 처분 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습니다!"안미소 실장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긴급 법원 통지서를 내밀었다.민 현 대공이 보수 기득권 법조계와 손을 잡고,과거 선왕 시절의 불투명한 토지 매매 계약을 문제 삼아 민사 소송을 제기해 버린 것이다."토지 임대 수익금이 전부 동결되었습니다. 국고 보조금도 묶인 마당에 토지 수익까지 묶였으니… 이러면 당장 다음 달 궁인들과 경호팀의 봉급조차 주지 못합니다."궁궐은 순식간에 파산 직전의 고립무원에 빠졌다.당장 밤에 궁궐 불을 밝힐 기름값조차 부족해질 판국이었다.민 현 대공과 보수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왕실 살림조차 운영하지 못하는 무능한 여왕이라며국회 탄핵안 발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민 설 여왕은 서늘하게 식어가는 찻잔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스스로 자립하려던 자신의 첫 걸음이,기득권의 거대한 금권과 법적 공작 앞에 무너질 위기였다.'구지혁 총리… 그 부르주아 도련님이 바란 그림이 결국 이것이었나.'같은 시각, 총리실 집무실."민 현 그 약아빠진 여우가 토지 가압류 카드로 여왕의 피를 말리려 하는군."구지혁 총리는 볼펜을 굴리며 보고서를 훑었다.최건우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총리님, 이대로 두면 여왕은 버티지 못합니다. 탄핵 국면으로 넘어가면 민 현 대공 세력이 국회 주도권을 쥐게 될 텐데요. 민 현 대공이 더 골치 아플텐데... 이 건은 손을 쓰셔야 하지 않습니까?"구지혁 총리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자신이 철저하게 계산해 놓은 국정 판 위에서,민 현이라는 불결하고 썩은 약삭빠른 여우가 민 설 여왕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었다.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구지혁 총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거대한 오기와 반발심을 치솟게 만들었다.청문회장에서 눈
총리실과 왕실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두 수장의 오른팔들인 안미소 비서실장과 최건우 비서실장 사이에도차갑고 살벌한 정면충돌이 일어났다.국회 로비, 취재진이 구름처럼 몰려든 혼란 속에서안미소 실장은 차가운 표정으로 왕실 예산 동결의 부당성을 알리는 긴급 브리핑을 마쳤다.수석 법관 출신다운 날카로운 논리와 오차 없는 단어 선택에기자들은 숨을 죽여 듣고 있었다.브리핑을 마치고 돌아서는 안미소 실장의 앞을 수트 차림의 최건우 비서실장이 가로막았다.행정고시 수석 출신의 엘리트이자 구지혁 총리의 충복인최건우 실장의 표정 역시 경직되어 있었다."안미소 실장님. 언론을 이용해 총리실을 무자비한 가해자로 프레임 씌우는 행위는 국정 혼란을 야기하는 법 위반 여지가 있습니다."최건우 실장이 서류 봉투를 툭 치며 압박하자,안미소 비서실장은 틀어 올린 머리를 가볍게 정돈하며 나지막이 실소를 흘렸다."법 위반이요? 무슨 법 위반이요? 수석 법관 출신인 제 앞에서 감히 법을 논하시는 겁니까, 최건우 실장님? 총리실발 찌라시 공작 경로를 추적하다 보니 나온 부산물을 언론에 공개했을 뿐입니다. 비서실장이라는 자리가 총리의 치졸한 부르주아적 언론 공작이나 뒷설거지나 해주는 자리인 줄 아셨습니까? 그건 아니지 아니지 않습니까?"최건우 실장의 미간이 좁혀졌다."말이 지나치시군요. 구 총리님은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법과 원칙대로 집행하고 계실 뿐입니다. 가난한 왕실을 살려두겠다고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릴 순 없지 않습니까?""가난한 왕실이라…"안미소 비서실장의 눈빛이 칼날처럼 서늘해졌다."그렇다면 왜 왕실이 가난할까요? 그 가난이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총리님이 모시는 재벌가 세력과 보수 기득권이 수십 년간 왕실 자산을 뜯어먹고 남은 찌꺼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엘리트 수석 행정관이신 최 실장님이, 세상을 숫자로만 평가하는 상전의 인성 파산까지 닮아가시는군요. 왕실이 이렇게 가난해질 때까지 총리실은 뭐하고 계셨습니까?총리실이 무능하지
청문회장은 생중계 카메라의 붉은 불빛만이 번뜩이는 정적 속에 휩싸여 있었다.전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 단상 위,스물여섯살의 방계 여왕 민 설은 총리실에서 작성된 왕실 사찰 정황 문건을서늘한 눈빛으로 집어 들었다."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총리실 특사경이 왕실의 사생활과 비상 예산 집행 내역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데이터와 숫자로만 지배하려는 구지혁 총리님, 이것이 당신이 말하던 완벽한 국정 통제입니까?"송곳 같은 질문이 국회 회의장에 꽂히는 순간,비상 대기실 대형 모니터로 이를 관전하던 구지혁 총리의 눈매가 칼날처럼 가늘어졌다.세상을 통계와 효율성으로 주물러온 재벌 3세 천재 정치가 구지혁 총리.그가 갓 서대문 단칸방을 벗어난 어린 방계 여왕에게전 국민 앞에서 제대로 일격을 맞은 순간이었다."총리님, 당장 여론 대응팀을 가동할까요?"최건우 비서실장이 사색이 되어 물었으나,구지혁 총리는 나른하게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피식-하고 실소를 흘렸다.오만함 속에 갇혀진 살기가 집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됐어. 불쌍한 척,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군, 어린 여왕님... 가난한 여대생이 하루아침에 어좌에 앉더니, 어설픈 성녀 놀음으로 국민을 선동해?"구지혁 총리의 눈에는 민 설 여왕이 그저 보수 기득권 세력과 야당의 꼬임에 넘어가,감성 팔이로 세력을 키우려는 정략적 사기꾼 애송이, 어린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청문회가 정회된 후, 총리 대기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민 설 여왕과 안미소 비서실장이 들어섰다.구지혁 총리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민 설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비꼬았다."감성 플레이가 제법이시더군요, 여왕 전하. 그런 수준급 동정표 구걸하는 솜씨는 어떤 정치학 책에서 배우셨습니까?""칭찬으로 듣지요. 총리님. 세상 고통이라곤 모르는 부잣집 막내 도련님이 짠 치졸한 판을 깨뜨리려면, 이 정도 수단은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총리님?!"민 설 여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민 설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