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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Autor: 케사르

1화. 새 예언자

Autor: 케사르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9 14:24:50

이 저택에서 공작이 서른을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올해 스물넷.

준경 하르젠에게 남은 시간은 여섯 해였다.

그리고 지금.

그 여섯 해를 벌기 위해 그의 앞에 한 명의 예언자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

마른 몸을 감싼 검은 옷.

오른쪽 눈 아래에는 신탁청 등록 예언자에게만 나타나는 붉은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준경은 책상에 앉은 채 그녀를 한 번 훑어봤다.

“이름.”

“솔입니다.”

“등급.”

“중급 예언자입니다.”

목소리는 조용했다.

긴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두 손이 몸 앞에서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손끝에 들어간 힘이 조금 강했다.

그래도 시선을 바닥에 처박지는 않았다.

준경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

“가까이 와.”

솔은 움직였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책상 앞까지 다가와 멈추자 준경이 그녀를 올려다봤다.

“더.”

솔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이제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준경의 시선이 오른쪽 눈 아래에 머물렀다.

“고개 들어.”

“예.”

솔이 턱을 조금 들었다.

준경은 손을 뻗었다.

두 손가락이 솔의 턱 아래에 닿았다.

그대로 얼굴을 들어 올리고 조금 옆으로 돌렸다.

솔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그러나 물러나지는 않았다.

준경은 가까이 드러난 문양을 살폈다.

붉은 선 몇 개가 눈 아래에서 가느다랗게 얽혀 있었다.

“예언할 때 변하나.”

“예. 빛이 강해집니다.”

“통증은.”

“있습니다.”

“견딜 만하고?”

“예.”

준경은 대답을 들은 뒤에도 손을 바로 떼지 않았다.

문양을 확인하는 데는 이미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손에 얼굴을 맡기고 있는 예언자.

명령하면 움직이고.

멈추라 하면 멈출 것 같은 여자.

준경은 그 생각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필요해서 불렀다.

그러니 필요한 만큼 확인하면 그뿐이었다.

그가 손을 놓았다.

솔의 얼굴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준경은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를 그녀 앞으로 밀었다.

“읽어.”

솔이 두 손으로 계약서를 받았다.

“다 읽으면 서명하고.”

명령은 짧았다.

솔은 아무 말 없이 첫 장을 넘겼다.

준경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여섯 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 그것뿐이라면,

이번에는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쓸 생각이었다.

예언도.

대가도.

그리고 눈앞의 예언자도.

준경의 손이 떨어진 뒤에도 솔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턱 아래에 닿았던 감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손을 대지는 않았다.

준경이 밀어놓은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앉아.”

“예.”

솔은 책상 맞은편에 앉았다.

첫 장에는 계약 기간과 예언 횟수가 적혀 있었다.

신탁청 등록 예언자 임대 계약서.

낯설지 않았다.

세 번째 가문.

네 번째 계약이었다.

처음 계약했을 때는 한 줄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지금은 달랐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솔의 손이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준경은 기다렸다.

재촉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

세 번째 장에서 솔의 손이 잠시 멈췄다.

예언에는 대가가 따른다.

피.

기억.

시간.

접촉.

그리고 필요할 경우, 계약자는 그 방식을 직접 정할 수 있었다.

솔은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준경이 물었다.

“문제 있나.”

“아닙니다.”

“그럼 마저 읽어.”

“예.”

마지막 장까지 확인한 솔이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준경의 시선이 빈칸 하나에 머물렀다.

“보통 뭘 쓰지.”

솔은 질문의 뜻을 알아들었다.

“피를 씁니다.”

준경의 눈이 그녀의 손으로 내려갔다.

“왜.”

솔은 잠시 생각했다.

좋아서 고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른 것보다 나았다.

“잃는 게 보이니까요.”

준경의 시선이 다시 올라왔다.

솔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기억은 사라지고 나면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시간은 나중에야 대가를 알게 되고.”

솔이 잠시 말을 멈췄다.

“접촉은 혼자 치르는 대가가 아닙니다.”

준경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무슨 뜻이지.”

“예언의 반동을 계약자와 나눕니다.”

솔은 익숙한 설명을 이어갔다.

“예언이 깊을수록 통증이나 후유증도 커집니다. 접촉하는 동안 그 일부가 상대에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안 쓰나.”

“대부분의 계약자가 원하지 않습니다.”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예언자의 대가를 굳이 같이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준경은 몇 초 동안 솔을 바라봤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솔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피는 제가 혼자 감당하면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한 번 내려다봤다.

“적어도 무엇을 잃고 있는지는 보이고요.”

준경의 시선이 그 손목에 잠깐 머물렀다.

“그래.”

그뿐이었다.

위로도 감탄도 없었다.

준경이 깃펜을 집어 솔 쪽으로 돌렸다.

“서명해.”

솔은 펜을 받았다.

빈칸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솔.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준경이 계약서를 가져갔다.

그가 마지막 장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준경 하르젠.

그리고 펜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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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70화. 두번 넘어면 내가 끊어

    밤공기가 차가웠다.말에 올라탄 뒤에야 솔은 머리를 묶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리본은 아직 집무실 바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다시 가지러 갈 시간은 없었다.준경이 앞에서 말을 몰았다. 셔츠는 제대로 여몄지만 겉옷은 걸치기만 한 채였다. 에드윈과 기사 넷이 그 뒤를 따랐다.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말발굽 소리만 돌길 위로 울렸다.신탁청의 옛 보관소는 성 동쪽 끝에 있었다. 낮에도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곳이었다.골목 하나를 남겨두고 준경이 손을 들었다.모두 멈췄다.말에서 내려 벽을 따라 걸었다. 모퉁이 너머로 불빛이 보였다.뒷마당이었다.수레 세 대가 서 있었다. 그 위로 상자들이 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단단히 봉해져 있었고, 옆면에는 신탁청 문장이 찍혀 있었다.사람은 여섯쯤 됐다.다섯은 상자를 날랐다.나머지 한 사람은 등을 들고 수레 사이를 오가며 손에 든 종이와 상자를 하나씩 맞춰보고 있었다. 마르고 키가 큰 남자였다. 움직임이 빨랐다. 서두르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상자 하나를 확인할 때마다 고개를 들어 골목 쪽을 살폈다.솔은 그 남자를 봤다.준경은 상자를 봤다."저거야."준경의 목소리가 낮았다."백 년 전 거면 저 안에 있겠지."에드윈이 고개를 끄덕였다."마지막 수레에 거의 다 실었습니다. 곧 떠날 겁니다."준경이 뒤에 선 기사들을 돌아봤다."다 세워."기사들이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그 순간 솔이 준경의 소매를 잡았다."잠시만요."준경이 돌아봤다."왜."

  •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69화. 가실 거잖아요

    준경이 움직였다.한 걸음에 거리가 사라졌다. 허리를 감아 끌어당기는 팔에 망설임이 없었다. 솔의 맨가슴이 그의 셔츠에 짓눌렸다. 입술이 부딪쳤다. 키스가 아니라 삼키는 것에 가까웠다.솔이 숨을 쉬려고 고개를 틀자 그가 목덜미를 물었다."너."목소리가 낮게 갈라져 있었다."오늘 끝까지 이럴 거야?""……규칙 안 지켰다고 혼내실 겁니까?"준경이 숨을 들이켰다.대답 대신 솔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책상 위에 앉혔다. 서류가 밀려 바닥으로 쏟아졌다.그가 솔의 무릎 사이에 섰다.마지막 남은 속옷을 손가락으로 걸었다.아주 천천히 끌어내렸다. 허벅지를 지나 무릎을 지나 발끝까지. 솔이 하라고 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오래 걸렸다.솔은 그동안 한 번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준경이 몸을 숙였다.입술이 솔의 무릎 안쪽에 닿았다. 허벅지를 따라 올라갔다. 솔이 숨을 삼키며 책상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그가 가장 안쪽에 닿기 직전 멈췄다.솔이 내려다봤다.준경이 올려다봤다."벌은 이따가."그리고 입을 묻었다.솔의 허리가 책상 위에서 튀었다. 혀가 젖은 곳을 가르고, 위로 쓸어 올리고, 가장 예민한 곳을 감쌌다. 솔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밀어내려는 손인지 끌어당기는 손인지 솔 자신도 몰랐다.준경은 알았다.끌어당기는 쪽이었다.그는 거기서 떨어지지 않았다. 솔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해도, 숨이 끊어지는 소리가 나와도. 솔이 한계에 닿는 순간까지 정확히 같은 리듬을 지켰다.솔이 무너졌다.허벅지가 그의 어깨를 조이고, 목에서 끊어진 소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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