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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오늘 시작한다

Autor: 케사르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09 14:27:59

“오늘 시작한다.”

솔의 손끝이 아주 조금 멈췄다.

“예언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오늘 바로요?”

준경이 고개를 들었다.

솔은 그 시선을 받은 순간 더 묻지 않았다.

“……예.”

준경은 계약서를 덮었다.

“준비해.”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두 사람은 서재를 나섰다.

준경이 먼저 걸었다.

솔은 두 걸음쯤 뒤에서 그를 따랐다.

긴 복도 벽에는 역대 하르젠 공작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솔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이상했다.

모두 젊었다.

흰머리가 성성한 사람도 없었고, 깊은 주름이 남은 얼굴도 없었다.

초상화 아래에는 이름과 사망 당시의 나이가 적혀 있었다.

스물아홉.

스물여덟.

스물아홉.

한 사람도 서른을 넘지 못했다.

앞서가던 준경이 멈췄다.

솔도 즉시 걸음을 멈췄다.

“뭘 보고 있지.”

“아닙니다.”

준경의 시선이 솔이 보고 있던 초상화로 향했다.

그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너무 오래 봐서 이제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첫 예언을 오늘 해야 할 만큼 급하신 겁니까.”

준경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경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계약 첫날이라고 죽음이 하루 미뤄지는 건 아니니까.”

낮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솔은 다시 그의 뒤를 따랐다.

복도 끝에서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한 층.

두 층.

내려갈수록 창문이 사라지고 공기가 차가워졌다.

마지막 철문 앞에서 준경이 멈췄다.

손을 대자 잠금장치가 낮은 소리를 내며 풀렸다.

문 너머로 푸른 촛불이 켜진 석실이 드러났다.

바닥 중앙에는 오래된 원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솔은 그 문양을 보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중앙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익숙한 자리였다.

준경은 원 밖에 섰다.

“일주일 뒤.”

그가 말했다.

“동부 협곡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솔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이기는 미래를 봐.”

질문은 아니었다.

솔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예.”

준경의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됐다.

“가능한 한 멀리.”

솔의 손끝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모였다.

그제야 조금 전의 말이 이해됐다.

계약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 남자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준경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시작해.”

솔은 눈을 감았다.

오른쪽 눈 아래의 문양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처음에는 열뿐이었다.

곧 소리가 밀려왔다.

말발굽.

쇠가 부딪치는 소리.

멀리서 터지는 비명.

차가운 안개 냄새와 젖은 흙의 감촉까지 한꺼번에 덮쳐왔다.

솔의 호흡이 느려졌다.

수많은 미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협곡을 빠져나오는 군대.

무너지는 깃발.

피로 젖은 진창.

승리하는 하르젠.

패배하는 하르젠.

솔은 그중 하나를 붙잡았다.

안개가 짙은 새벽.

적의 기병이 우측 협곡으로 몰렸다.

비어버린 좌측 진형.

그 틈을 하르젠의 기병이 파고들었다.

붉은 깃발 하나가 진흙 위로 쓰러졌다.

“새벽입니다.”

솔의 입술이 움직였다.

“안개가 낍니다.”

준경은 아무 말 없이 들었다.

“적의 주력은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그 전에 좌측 기병을 보내면 이깁니다.”

솔이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미래를 놓았다.

그런데 준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 봐.”

솔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미 필요한 건 말했다.

하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예.”

다시 미래를 붙잡았다.

조금 더 깊이.

안개 너머.

도망치는 병사들 사이로 적장이 보였다.

말 위에 앉은 남자가 무너진 진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솔의 문양이 더 뜨거워졌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머리가 울려야 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팠다.

분명히 몸 안에 빚이 쌓이고 있었다.

그런데 견딜 만했다.

오히려 미래가 더 선명해졌다.

솔의 숨이 멎었다.

적장의 손.

검.

뒤집히는 말.

그리고 협곡 위쪽 절벽.

“위에서.”

솔이 급하게 말했다.

“적이 퇴각할 때 절벽 위 병력을 움직입니다.”

준경의 눈빛이 달라졌다.

“매복?”

“예.”

“규모는.”

솔은 다시 보려 했다.

순간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문양이 뜨겁게 타올랐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제야 준경이 말했다.

“됐어.”

솔은 붙잡고 있던 미래를 놓았다.

전장의 소리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석실의 차가운 공기가 돌아왔다.

솔이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준경은 원 밖에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끝인가.”

“예.”

솔은 천천히 눈을 떴다.

오른쪽 눈 아래의 문양이 아직 붉게 빛나고 있었다.

준경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다.

“중급 예언자가 이 정도까지 보면 쓰러진다고 들었는데.”

솔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이 정도까지 보면 보통은 손끝부터 감각이 둔해졌다.

심하면 몇 시간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숨만 조금 가빴다.

솔은 제 손을 한번 내려다봤다.

“그런데.”

준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멀쩡하군.”

솔은 대답하지 못했다.

가장 이상하게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평소보다 깊게 들어갔다.

더 많은 미래를 붙잡았다.

그런데 아직 두 다리로 버틸 수 있었다.

준경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

솔의 문양이 순간 더 뜨거워졌다.

아주 짧게.

솔의 눈이 흔들렸다.

준경도 멈췄다.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대가부터 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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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19화. 이번엔 명령이야

    에드윈이 물었다.“그래도 위험합니다.”“알아.”“미래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그것도 알아.”준경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그래서 준비하는 거야.”그가 연회장 도면을 완전히 펼쳤다.“연회는 예정대로 한다.”솔의 시선이 도면에서 준경에게 올라갔다.에드윈이 다시 물었다.“예언자도 참석시키고요?”“그래.”“공작님.”이번에는 솔이 불렀다.준경이 그녀를 봤다.솔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제가 나오지 않으면 상대가 계획을 바꾼다는 건 이해했습니다.”“그런데.”“제가 나온다고 해서 예언대로 움직인다는 보장도 없습니다.”준경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겁이 나서 묻는 말이 아니었다.계획의 빈틈을 확인하는 질문이었다.준경이 대답했다.“없지.”솔은 기다렸다.“그래서 첫 번째 놈을 잡아도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고.”준경이 도면을 손가락으로 눌렀다.“예언에서 본 길만 막지도 않을 거야.”“…….”“미래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잡는다.”솔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준경이 물었다.“무서워?”에드윈과 경비대장이 있는 자리였다.솔은 곧바로 부정하지 않았다.자신을 죽이려고 오는 사람이 있다.이유도 모른다.어디에서 어떻게 계획이 바뀔지도 알 수 없다.“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준경은 그녀를 몇 초 바라봤다.“그래.”그게 전부였다.괜찮다고 하지 않았다.자기가 지켜주겠다고도 하지 않았다.대신 도면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내가 판단한다.“솔의 눈이 조금 움직였다.준경이 말했다.“어디 있을지.”도면 위 한 지점을 짚었다.“누가 네 옆에 있을지.”다른 지점.“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움직일지도.”마지막으로 솔을 바라봤다.“내가 정해.”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불확실한 선택지들이 하나씩 사라졌다.솔은 아직 도면 위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몰랐다.어떤 경비가 붙을지도 듣지 못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조금 전보다 숨쉬기가 편해졌다.준경은 이미 다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경비

  •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18화. 목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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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정복.낯선 얼굴은 아니었다.연회에 처음부터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로 섞였다.그의 손에는 반지가 없었다.목에도 문장이 없었다.아무것도 없었다.다만 두 손을 검은 장갑이 덮고 있었다.솔은 그를 봤다.남자는 첫 번째 자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준경도 보지 않았다.걸음을 옮겼다.빠르지 않았다.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갈 만큼만 정확했다.한 걸음.다시 한 걸음.솔은 그의 동선을 따라갔다.준경에게 가는 것이 아니었다.중앙으로도 가지 않았다.벽 쪽.자신이 서 있는 방향이었다.솔의 숨이 멎었다.남자가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마주쳤다.그 눈이 보고 있는 것은,자신이었다.⸻미래가 끊겼다.솔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숨이 한꺼번에 돌아왔다.“하아…….”준경의 손이 곧바로 의자 팔걸이를 짚었다.솔은 눈을 뜨려 했지만 시야가 잠시 흔들렸다.오른쪽 눈 아래가 뜨겁게 뛰었다.“솔.”준경의 목소리가 가까웠다.솔은 두 번 숨을 고른 뒤 눈을 떴다.준경이 바로 앞에 있었다.“뭘 봤어.”솔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면을 순서대로 붙잡았다.“연회가 열렸습니다.”목소리가 조금 거칠었다.“문장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인 복장이었습니다.”준경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자객?”“예.”솔이 고개를 끄덕였다.“반지가 발견돼 붙잡혔습니다. 칼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럼 문장이 맞았나.”솔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바닥을 굴렀던 반지가 떠올랐다.“아닙니다.”준경의 눈이 좁아졌다.“반지가 손가락에 맞지 않았습니다.”“뭐?”“너무 컸습니다. 안쪽에 실을 감아서 억지로 끼웠습니다.”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준경이 낮게 말했다.“보여주려고 낀 거군.”“그렇게 보입니다.”“첫 번째가 미끼야.”“예.”솔은 계속했다.“그 사람이 붙잡힌 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습니다.”눈앞에 다시 시계가 떠올랐다.“그다음 시계가 울렸습니다.”“몇 번.”“세 번입니다.”준경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여

  •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16화. 배후

    준경은 한동안 연회 준비 명단을 내려다봤다.왕실 사절단.가신과 기사들.각 가문의 수행원.공작가의 하인들까지.이틀 뒤면 평소에는 서로 다른 문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대연회장으로 모인다.그중 누가 적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준경이 명단을 내려놓았다.“솔.”“네, 공작님.““예언이 필요하다.“솔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책상 가운데 놓인 봉투로 내려갔다.“저 문장에 관한 예언입니까?”“정확히는 아니야.”준경이 붉은 밀랍 위의 문장을 손끝으로 돌렸다.세 갈래의 발톱.그 아래를 가로지르는 검.“저 가문이 배후인지 물어봐도 소용없어.”“왜 그렇습니까?”“배후라고 나오면 믿을 거야?”솔이 잠시 생각했다.“예언이 명확하다면요.”“난 아니야.”준경이 봉투를 내려놓았다.“누가 저 문장을 일부러 보여준 거라면, 우리가 거기에 매달리는 것까지 계획했을 수 있으니까.”솔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준경은 연회 참석자 명단을 그 옆에 놓았다.“그러니까 과거를 맞히려고 하지 말자.”“그러면 무엇을 보시려는 겁니까?”준경이 솔을 바라봤다.“미래.”그가 문장을 손가락으로 눌렀다.“우리가 이걸 진짜 배후의 표식이라고 믿었다고 치자.”솔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연회장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 저 문장을 가진 놈들부터 찾고.”“관련 가문도 경계하고.”“그래.”준경의 손끝이 명단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그렇게 했을 때.”움직이던 손이 멈췄다.“우리가 뭘 놓치는지 봐.”솔이 문장을 다시 바라봤다.범인을 찾는 질문이 아니었다.지금부터 내릴 판단이 틀렸을 때 어디에서 틈이 생기는지를 보는 질문이었다.“문장을 배후의 표식으로 단정하고.”솔이 천천히 말을 정리했다.“그 문장과 관련된 사람들만 경계했을 때.”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솔이 마지막까지 확인했다.“승전 연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는가.”“그래.”질문은 정해졌다.솔은 의자에서 일어났다.준경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석실로 가겠습니다.”“가자.“솔이

  •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15화. 뭘 놓치는지가 문제지

    에드윈이 돌아간 뒤에도 준경은 한동안 전투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병력 손실.포로 숫자.회수한 물자.퇴각로에서 발견된 시신과 장비 목록까지.솔은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연회 준비를 위해 집사가 몇 차례 드나들었지만, 준경은 필요한 말만 짧게 했다.그러다 보고서 마지막 장에서 손이 멈췄다.“이건 뭐지.”준경이 종이를 들어 올렸다.솔의 시선이 따라갔다.보고서 아래쪽에 별도의 기록이 붙어 있었다.적군 퇴각로 북쪽 숲에서 신원 불명의 시신 한 구 발견.군복 없음.신분을 확인할 만한 물건 없음.소지품은 작은 가죽 주머니 하나.그 안에서 봉인된 종이가 나왔다.준경이 종을 울렸다.잠시 뒤 경비대장이 작은 나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동부 협곡에서 함께 넘어온 물건입니다.”상자가 책상 위에 놓였다.준경이 뚜껑을 열었다.안에는 흰 천에 싸인 작은 봉투가 들어 있었다.붉은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다.솔의 시선이 그곳에 멈췄다.밀랍 위에 낯선 문장이 찍혀 있었다.세 갈래로 갈라진 짐승의 발톱.그 아래를 가로지르는 검.준경이 봉투를 집어 들었다.“아는 문장인가.”경비대장이 고개를 저었다.“공작가 기록실에 확인을 맡겼습니다.”“결과는.”“오래전에 몰락한 가문이라고 합니다.”준경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얼마나 오래됐지.”“백 년 가까이 됐습니다. 직계는 완전히 끊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솔이 문장을 바라봤다.선은 지나치게 선명했다.밀랍 역시 최근에 찍은 것이 분명했다.백 년 전에 사라진 가문의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새것이었다.준경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봉투를 뒤집어 살폈다.“안은.”“공작님께 보고한 뒤 개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준경이 봉인을 뜯었다.안에는 작은 종이 한 장뿐이었다.이름도 없었다.누구에게 보내는 것인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몇 개의 짧은 문장만 남아 있었다.준경이 첫 줄을 읽었다.“하르젠.”그 아래에는 시간을 뜻하는 듯한 숫자 몇 개가 있었다.마지막에는 짧은 문장

  • 저주받은 공작의 예언자   14화. 동부협곡

    동부 협곡에서 전령이 돌아온 것은 사흘 뒤였다.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준경의 서재 문이 열리고, 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군복 차림의 에드윈 로셀이 들어왔다.그는 준경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동부 협곡 전투가 끝났습니다.”준경이 책상에서 눈을 들었다.“결과는.”“국경을 넘어온 적군은 협곡 너머로 완전히 밀어냈습니다.”짧은 대답이었다.하지만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동시에 풀렸다.에드윈은 품에서 접어 둔 전투 보고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예상대로 안개가 걷히기 전에 적 주력이 움직였습니다.”준경이 보고서를 펼쳤다.“매복은.”“절벽 아래에 있었습니다. 규모는 예언에서 본 것보다 조금 컸습니다.”준경의 시선이 종이를 따라 내려갔다.“그래도 좌측 기병을 먼저 움직인 덕분에 진형이 무너지기 전에 끊었습니다.”에드윈이 말을 이었다.“주력이 빠진 뒤 협곡 입구를 막았고, 퇴로까지 확보했습니다. 피해도 예상보다 적습니다.”준경이 마지막 장까지 훑은 뒤 종이를 내려놓았다.“됐네.”그제야 에드윈의 시선이 서재 한쪽으로 향했다.솔이 그곳에 서 있었다.예전과 같은 검은 옷.오른쪽 눈 아래의 붉은 문양도 그대로였다.달라진 것이 있다면 에드윈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이었다.처음 만났을 때는 준경 곁에 선 중급 예언자를 확인하듯 봤었다.이번에는 아니었다.에드윈이 솔을 향해 몸을 돌렸다.“예언대로였습니다.”솔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병력 수는 달랐다고 들었습니다.”“그 정도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에드윈이 말했다.“중요한 건 전부 맞았습니다. 안개가 걷히는 시간도, 적이 움직인 방향도, 매복 위치도.”솔은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다행입니다.”기쁜 기색은 크지 않았다.자기가 본 미래가 맞았다는 사실보다, 그걸 이용해 사람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쪽이 더 중요한 듯한 얼굴이었다.에드윈이 그런 솔을 잠시 보다가 다시 준경 쪽으로 돌아섰다.“이번에는 제가 틀렸군요.”준경이 눈썹을 들었다.“뭐가.”“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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