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Author: 마루콩
“혼자 있기 좀 무서워서.”

강이주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백초아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심원후는 곧바로 손을 뻗어 백초아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왜 그래? 낯선 환경이라 불편한가?”

백초아는 말 없이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심원후는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같이 있을게. 겁내지 마.”

“미안해... 내가 혹시 너랑 이주 씨 시간을 방해한 거야?”

백초아의 시선이 그제야 강이주에게로 옮겨갔다.

마치 이제야 강이주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처럼.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이주 씨가 사실 저를 반기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저 때문에 두 분이 다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냥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심원후는 무의식적으로 강이주를 한 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이주는 그렇게 속이 좁은 사...”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이주는 몸을 돌려 일어나며 비웃듯 웃었다.

“백초아 씨, 조심히 가. 배웅은 못 해.”

강이주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백초아는 계속해서 화살을 강이주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무리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라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강이주는 원래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초아는 잠시 멍해진 표정을 지었다. 늘 참고 있던 강이주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내쫓을 거라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곧 눈가가 붉어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심원후를 올려다보았다.

백초아가 울먹이는 모습을 보자 심원후의 표정은 단번에 굳어졌다.

“이주야, 너무한 거 아니야? 초아는 내가 데려온 손님이야. 네가 무슨 권리로 사람을 내쫓아?”

“초아 우울증 있는 거 알잖아. 그렇게까지 몰아붙여야 해? 너 언제부터 이렇게 매정해졌어?”

그는 강이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려 백초아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이주가 너 괴롭히게 놔두지 않아.”

백초아는 조심스럽게 심원후의 품으로 몸을 기댔다.

“나를 걱정해 주는 거 알고 있어. 그래도 이주 씨가 네 약혼자인데, 내가 너무 민폐를 끼쳤어. 내가 너무 너한테 의지했어.”

“나도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너뿐이잖아. 누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제발 나 때문에 둘이 싸우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백초아는 강이주를 향해 슬쩍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분명하게 말했다.

“네가 졌어. 빨리 인정해. 넌 나를 못 이겨.”

강이주는 이미 자기 마음이 다 식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원후가 아무 망설임 없이 백초아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이 다시 아려왔다.

백초아의 도발에는 더 이상 반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강이주는 차갑게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 다 나가.”

분명한 퇴거 선언이었다.

심원후는 강이주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마주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심원후는 잘 알고 있었다. 강이주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여러 번 약속을 어기는 자신을 참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강이주는 조금만 달래주면 금세 풀렸다.

하지만 지금의 강이주는 달랐다.

심원후가 무언가 더 말하려는 사이, 품에 있던 백초아가 스스로 빠져나왔다.

백초아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강이주 앞에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주 씨, 아직 화났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사과할게요. 원후랑 싸우지 마세요.”

백초아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강이주는 반사적으로 손을 세게 뿌리쳤다.

백초아와 닿고 싶지 않았다.

그 자체가 역겨웠다.

강이주의 손짓에 백초아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대로 심원후 발치에 주저앉았다.

“초아야.”

심원후는 급히 몸을 낮춰 백초아를 안아 올렸다.

거의 동시에 백초아는 억울한 듯 울먹였다.

“원후야, 이주 씨 탓 아니야. 내가 이주 씨를 화나게 한 거야. 이주 씨가 화 풀려고 그런 거겠지. 제발 이주 씨 탓하지 마.”

몇 마디 말로 백초아는 자신이 넘어졌다는 사실의 책임을 모두 강이주에게 넘겼다.

강이주는 백초아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분명 심원후에게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강이주가 밀었다고.

예상대로 심원후는 분노한 눈빛으로 강이주를 노려보았다.

“적당히 해. 초아한테 사과하고.”

심원후는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백초아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강이주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 모습에 강이주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밀지 않았어. 내가 왜 사과해야 해? 심원후, 그 있으나 마나 한 눈은 필요한 사람한테 기증이라도 해.”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뒤집어쓰는 건, 강이주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이주의 태도에 심원후는 완전히 분노했다.

“강이주, 우리 정말 말이 안 통해.”

“참...”

강이주는 짧게 웃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이 문제로 심원후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백초아는 심원후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발목이 좀 삔 것 같아... 너무 아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초아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 눈물이 심원후의 마음을 그대로 흔들어 놓았다.

심원후는 이를 악문 채 강이주를 노려보았다.

“초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각오해야 할 거야.”

그 말을 남기고 심원후는 백초아를 안아 들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심원후의 다급하고 초조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이주는 눈이 시릴 정도로 쓰라림을 느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심원후가 백초아를 얼마나 아끼는지...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감싸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지금의 강이주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날카롭지 않은 통증.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건 감각이 무뎌진 공허함뿐이었다.

강이주는 한참 후에 정신을 추슬렀다.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심원후가 분노에 찬 얼굴로 자신을 몰아붙이던 모습만 떠올랐다.

그날 밤, 강이주는 거의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머리가 무겁고 속이 불편했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며 관자놀이가 은근히 욱신거렸다.

강이주는 자연스럽게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 같았으면, 이 시간에 강이주는 이미 주방에 있었을 것이다.

심원후를 위해 조심스럽게 좁쌀죽을 끓이면서.

심원후는 어릴 때부터 위장이 약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강이주가 하루 세 끼를 빠짐없이 챙겼다.

원래는 죽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심원후와 함께 몇 년이나 좁쌀죽을 먹어왔다.

쌀통을 열어 쌀을 씻으려던 여자의 손이 그제야 멈췄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네.’

강이주는 쌀을 다시 제자리에 넣고, 자신을 위한 간단한 서양식 아침을 준비했다.

잠시 후, 진한 블랙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만들어 식탁으로 가져왔다.

의자에 앉으려던 순간, 밝고 가벼운 기운의 그림자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백초아였다.

백초아는 쇄골이 훤히 드러나는 낮은 목선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목소리는 지나치게 경쾌했다.

“이주 씨, 아침부터 기분 좋아 보이네요. 어젯밤에 너무 상심해서 한숨도 못 잤을 줄 알았는데요.”

그 말과 함께 강이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백초아의 쇄골로 내려갔다.

그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몇 개의 흔적이 숨길 생각도 없이 드러나 있었다.

강이주의 시선을 알아챈 백초아는 일부러 고개를 치켜들며 웃었다.

“원후도 참... 어제는 살살하라고, 자국 남지 않게 하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듣더라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노골적인 악의였다.

“원후가 그러더라고요. 이주 씨는 너무 재미없어서 손대고 싶은 마음도 안 든대요. 이주 씨는 여자로서 인생 실패한 거 아닌가요? 제가 이주 씨였으면, 진작 벽에 머리 박고 끝냈을 거예요.”

백초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강이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일부러 강이주를 자극하려던 백초아는 전혀 반응 없는 강이주에게 눈에 띄게 실망했다.

마치 주먹으로 허공을 친 기분이었다.

백초아는 이를 악물며 강이주를 노려보았다.

그때, 백초아의 시야 한쪽에 계단을 내려오는 심원후의 모습이 들어왔다.

백초아는 곧바로 몇 걸음 만에 강이주 앞으로 다가섰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18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이주가 회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이 구호민 쪽에 들어갔다.마침 구호민 일가는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반찬을 집던 구희라의 손이 잠깐 멈췄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입원했다고?” 구호민은 믿지 않는다는 듯 비웃었다.구희도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구호민의 비서가 확인한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다. “택배 하나를 받았는데 그 안에 큰도련님께서 늘 지니던 물건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목격자가 많았는데, 강 대표가 상자를 끌어안은 채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병원에서는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 증세로 몸 상태가 악화됐다고 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정신과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병원 측에서 전달한 강이주의 상태는 그와 같았다.당분간 병원에 머물며 안정을 취해야 했다.구호민은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처음에는 구기빈에게 정말 사고가 났는지 의심했다.하지만 이제는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구호민이 보낸 사람들도 현장을 확인했고, 구기빈이 실제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게다가 강이주가 구기빈의 물건 하나를 보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면 연기라고 보기 어려웠다.구호민은 속으로 판단을 굳혔다.비서는 구호민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심명그룹의 심원후 대표가 강이주 대표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강 대표가 크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그 말을 듣자 구희라가 바로 관심을 보였다.구희라가 비웃었다. “그 쓰레기가 무슨 낯으로 강이주 앞에 나타난 거야?”심원후를 언급하는 구희라의 표정에는 숨김없는 조롱이 가득했다.구희라는 원래부터 심원후를 좋게 보지 않았다.구호민이 비서를 바라봤다. “심원후가 강이주를 왜 찾아갔지?”수저를 내려놓은 구호민의 표정에 불쾌감이 떠올랐다.비서는 구호민의 눈치를 보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그 모습을 본 구희도가 입을 열었다. “말하기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17화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임설을 본 강이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 인상 펴. 입이 잔뜩 삐죽 나왔잖아. 그런 인간들 때문에 화내다 네 몸 상하면 너만 손해야.”강이주는 가끔 임설의 이런 모습이 정말 귀엽다고 느꼈다.임설은 한 번 어떤 사람이나 일을 좋아하면 좀처럼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점을 설명하고 눈앞에 펼쳐 보여도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억지로 좋은 척 연기할 생각조차 없었다.강이주는 그런 임설의 솔직한 성격이 은근히 사랑스러웠다.심씨 집안 사람들을 생각하며 화내던 임설은 강이주의 말에 기분이 금세 풀렸다.표정을 가다듬은 임설이 강이주를 바라봤다.“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해요?”심씨 집안과 구씨 집안이 동시에 회사를 노리는 상황은 임설이 보기에도 지나치게 가혹했다.두 집안이 힘을 합쳐 한 회사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도 남들의 비난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물론 기업 사이 경쟁은 결국 실력 싸움이고, 먼저 차지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그렇다 해도 심씨 집안과 구씨 집안이 강씨 집안을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임설은 강이주가 이미 대응책을 세워 뒀으리라고 생각했다.오랫동안 곁에서 일해 온 만큼 강이주의 성격과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 질문한 것도 여러 상황을 따져 본 끝에 움직일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강이주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먼 곳에서 돌아온 뒤 계속 몸이 좋지 않았어. 그러다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피 묻은 택배 상자를 받고 크게 놀라 쓰러졌고, 응급실로 실려 간 거야.”“사랑하는 사람의 보호도 잃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가련한 환자가 돼 버린 거지. 누구도 만날 수 없고 회사 일에도 손댈 수 없어.”“그러니 네가 자리를 지키면서 달려드는 사람들을 막아 줘야겠어.”임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마를 짚고 탄식했다. “세상에, 제가 지금 여기서 바로 쓰러져도 될까요? 아니면 차라리 가벼운 사고라도 하나 내면 안 될까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16화

    ‘내가 후회한다고?’강이주는 그 말을 속으로 되뇌며 입가의 웃음을 짙게 만들었다.적어도 이번 일만큼은 자신이 내린 선택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후회할 리 없었다.심원후가 무슨 말을 하든 강이주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입술을 꾹 다문 강이주는 굳은 표정으로 심원후를 바라봤다.그 눈빛 한 번만으로도 심원후는 자신을 향한 강이주의 냉담함과 원망을 알아차렸다.심원후의 가슴이 세게 조여 왔다.강이주의 등을 바라보며 정말 강이주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한 번만 자신을 믿어 볼 수 없겠느냐고 간절히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답은 분명했다. 강이주는 믿지 않을 것이다.심원후와 완전히 틀어진 뒤 강이주의 삶은 더 이상 심원후를 중심으로 돌지 않았다.지금의 강이주는 자유롭고 행복했다. 사랑도 미움도 숨기지 않았고, 어떤 일도 피하지 않았다.그저 심원후가 하는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이유는 그것뿐이었다.생각을 정리한 강이주는 다시 감정을 가라앉혔다.등을 돌린 자세 그대로 비웃듯 받아쳤다. “나한테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이 있으면, 구씨 집안과 어떻게 손잡고 나를 상대할지나 잘 생각해.”그 말을 끝으로 강이주는 정말 자리를 떠났다.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갔다.통유리창 앞에 선 강이주는 팔짱을 낀 채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심원후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임설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강이주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강이주가 임설을 바라봤다. “어떻게 됐어?”조금 전 올라오는 길에 임설에게 심원후와 심명그룹의 최근 상황을 조사하라고 지시해 둔 참이었다.임설은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모두 전했다. “백초아 씨는 배 속 아이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양수 검사를 받았는데 아들이래요. 심순남 회장과 심원후 대표가 그 아이를 앞세워 심현목 어르신께 경영권을 넘기라고 압박했고, 어르신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셨다고 해요.”“아직 중환자실에 계시고 상태도 좋지 않대요. 게다가 심원후 대표 결혼식에는 백초아 씨가 나타나지 않아서 하객들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15화

    심원후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 너한테 비웃음이나 들으려고 온 게 아니야. 너에게 거래를 하나 제안하려고 왔어.”마침내 강이주를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강이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거래?”자신과 심원후 사이에 아직 주고받을 만한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심원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기빈의 보호도 사라졌고 회사도 이 지경이 됐잖아.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가 뒤에서 너를 노리는지 알고 있겠지.”“그래?” 강이주가 웃으며 되물었다. “너 혼자 정의로운 척하지 마. 마치 너희 집안은 아무 짓도 안 한 것처럼 말하네.”눈앞의 뻔뻔한 남자에게 그 사실만큼은 분명히 일깨워 줄 필요가 있었다.강중그룹이 지금의 위기에 몰린 데에는 심명그룹의 책임도 컸다. 절대 무관하거나 결백하지 않았다.심원후는 거듭되는 반박에 할 말을 잃고 치미는 화를 속으로 삼켰다.강이주는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이내 시선을 거두고 심원후를 지나쳐 회사로 들어가려 했다.“잠깐만.” 심원후가 떠나는 강이주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다.강이주는 닿기도 전에 손을 거칠게 쳐 내며 낮게 소리쳤다. “나한테 손대지 마.”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깊은 혐오가 묻어났다.심원후의 손길은 불쾌하고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강이주가 자기 손을 가차 없이 쳐 내자 심원후의 눈에도 짜증이 짙어졌다.심원후는 곧 얼굴을 굳혔다. “좋아. 좋게 말하려 했는데 네가 들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구씨 집안은 지금 너를 노리고 있어. 너 혼자서는 회사를 지킬 수 없어.”숨을 깊게 들이마신 심원후의 말투에 다시 강이주를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났다.강이주가 코웃음을 쳤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심원후는 잠깐 말이 막혔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나랑 상관없지. 내가 미련하게 너를 못 놓고 있는 거야. 나는 네가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회사가 사라지면 구씨 집안은 너까지 가만두지 않을 거야.”“너는 구호민을 이길 수 없어.” 심원후가 현재 상황을 짚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14화

    구기빈과 통화를 마친 강이주는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차가 회사 앞에 멈췄다.강이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심원후를 발견했다.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뻔했다.심원후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주야.”강이주가 못 본 척 지나가려는데 심원후가 곁눈질로 발견했다.심원후가 이름을 불렀다.강이주는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서지는 않았다.심원후는 절뚝거리며 강이주 앞으로 다가왔다.그날 밤 구기빈의 뜻을 받은 심순남에게 맞아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다.심원후는 그 일을 오래도록 마음에 아로새겼다. 구기빈을 향한 증오는 극에 달했다.이제 피하기에는 늦었다. 회사로 들어가려면 심원후가 서 있는 곳을 지나야 했다.심원후도 이미 강이주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임설이 나서서 심원후를 막으려 했다.심원후는 임설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강이주의 등을 바라봤다. “얘기 좀 하자.”강이주는 그 말을 듣고 몸을 돌려 마주 봤다.심원후가 곧바로 먼저 입을 열었다. “강중그룹 얘기야.”지금 강이주가 자신과 이야기할 만한 주제는 회사 문제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강이주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나는 너랑 할 얘기 없어. 우리 회사에 자금이 부족한 틈을 타 너희 쪽이 덤벼들었다고 해도, 지금 너희 집안 형편으로 강중그룹을 통째로 삼키기는 쉽지 않을 텐데?”심명그룹 역시 앞서 구기빈의 집중적인 압박을 받아 힘을 많이 잃었다.강이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심원후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맞아. 그래도 우리 집안에 너를 더 곤란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우리 아버지 수법이 어떤지는 너도 알잖아.”심원후가 경고하듯 말했다. “전에는 구기빈이 뒤를 봐주니까 심명그룹을 우습게 여길 수 있었지. 지금은?”“구기빈은 실종돼 행방도 모르고, 자기 목숨조차 지키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어. 너까지 챙길 여유가 어디 있겠어.”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뜻이었다.구기빈의 소식이 완전히 끊긴 지금은 예전처럼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13화

    강이주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한참 뒤에야 구희라에게 말했다. “강중그룹은 걱정하지 마. 때가 오면 강중그룹은 그때 버리면 돼. 전에 말했듯이 업종을 바꿔 새로 시작하면 그만이야. 나는 아직 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시간이 있으니까 겁나지 않아.”몇 차례 큰 위기를 겪으며 강중그룹은 이미 깊은 타격을 입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더라도 예전의 규모와 지위를 되찾기는 어려웠다.강이주는 그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구희라와 이런 연극을 벌이기로 했을 때부터 필요하다면 강중그룹을 포기할 각오까지 해 두었다.강중그룹에서 분리할 수 있는 사업은 이미 완전히 떼어 냈다. 분리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임설에게 적지 않은 자금을 맡겨 적절한 보상에 쓸 수 있도록 했다.직원들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일정 기간 출근하지 않아도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까지 준비했다.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면 새 법인을 세우고, 다시 함께하고 싶어 하는 직원들을 다시 채용할 계획이었다.이 계획은 강서규와도 진지하게 상의했다.강서규는 이야기를 들은 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자신은 이미 나이가 들었고 죽을 고비까지 겪고 나니 회사에 대한 욕심도 사라졌다며, 강이주가 정말 결정했다면 자신과 장숙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뜻대로 하라고 말했다.강이주는 조건 없이 자신을 지지해 주는 부모에게 깊이 감사했다.통화 너머의 구희라는 강이주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진 듯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강이주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너도 회사에서 조심해.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빠가 돌아온 다음에 움직여.”주선하까지 RG그룹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구호민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를 알아챌까 걱정됐다.주선하는 아직 대학생이었다. 아무리 구희라를 지키고 싶어도 실재하는 위험 앞에서는 힘이 부족할 수 있었다.노련하고 교활한 구호민을 구희라와 주선하 둘만으로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구희라가 가볍게 웃었다. [알았어. 조심할게.]구희라는 더 길게 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