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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 때문이라고? 내가 죽인 거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내가 얼마나 바라왔던 아기인데... 지금 이 남자는 도대체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걸까? 아이를 이용해 자작극을 벌일 만큼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걸까? 10년 동안 내가 사랑해 온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10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민지훈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조연아였다.

조연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이제 연기 그만할래. 난 당신 사랑도 신뢰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이런 꼴을 당하는 것도 전부 내가 자초한 일이지.”

두 눈을 질끈 감은 조연아는 투명한 눈물을 억지로 삼켜냈다. 한때 민지훈으로 인해 뜨겁게 불타는 심장이 똑같은 사람으로 인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깊은 심호흡을 한 조연아가 다시 눈을 떴다. 어떻게든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고 조연아는 침대 시트를 더 꽉 부여잡았다.

‘울면 안 돼... 여기서 울면 정말 비참해지는 거야.’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할게. 내 아기... 나 때문에 죽은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난 복수를 해야겠어.”

이불을 확 젖힌 조연아는 수액 바늘을 거칠게 뽑아내곤 미친 듯이 병실을 뛰쳐나갔다.

송진희...

‘내 아이...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절대 못 넘어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고통으로 비틀거렸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과 분노는 육체적 고통 따위가 누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거실에서 여유롭게 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송진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이는 기분이었다.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어!”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거칠게 내팽개친 조연아가 송진희의 멱살을 잡았다.

“얘가 미쳤나!”

평소 큰 소리 한번 낸 적 없던 며느리가 미친 여자처럼 달려드니 당황한 송진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혼하라고 해서 사인까지 했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랬어. 내 아이한테 왜 그랬냐고!”

한편, 잔뜩 겁먹은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민지아가 2층에서 내려오는 민지훈을 향해 소리쳤다.

“오빠, 새언니 좀 말려봐! 저러다 우리 엄마 죽겠어!”

“조연아,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성큼성큼 다가간 민지훈이 조연아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조연아를 부축해 주면서도 민지훈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이게 지금 무슨 행패야.”

‘행패? 하...’

“민지훈, 네가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고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어머니가 날 3층에서 밀어버린 거라고. 네 어머니가 우리 아이를 죽인 거라고! 그런데... 이게 행패야? 자식 잃은 엄마가 이 정도도 못해?”

항상 호수처럼 맑던 조연아의 눈동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망, 분노...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했다.

‘어머니가?’

순간, 민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편,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송진희가 바로 반박했다.

“얘가 이젠 입만 열면 거짓말이네.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널 죽이려고 하냐고! 지훈아, 쟤 지금 제정신 아니야. 설마 저 말 믿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엄마가 그런 끔찍한 짓을 벌일 리가 없잖아. 5년 전에 언니가 나한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잊었어? 연아 언니, 내가 싫으면 나한테 화를 내. 아무 죄 없는 엄마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여기서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사실 민지아는 민지훈의 친여동생이 아니라 민씨 가문의 양딸이다. 입양되기 전부터 민지훈과 소꿉친구처럼 지낸 민지아는 아주 오래전부터 명분뿐인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집안에서 민지아가 기댈 곳이라곤 그녀를 끔찍하게 아끼는 송진희뿐이니 앞뒤 안 재고 일단 엄마의 편부터 드는 게 당연했다.

“그래. 쟤가 지아를 얼마나 질투했는지 잊은 건 아니지? 쟤 때문에 우리 지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그때 감방에 처넣었어야 했는데 저 여우 같은 게 기어코 우리 집안 며느리로 들어와선... 어차피 너희 정략결혼이었잖아. 이제 엄마도 죽었겠다 추산그룹을 물려받을 가능성도 없을 것 같으니까 어떻게든 너한테 들러붙으려는 거야. 내 앞에선 고분고분 이혼할 것처럼 굴어놓고 이런 자작극을 벌여? 이런 일에 애까지 이용해야겠니? 왜? 애 핑계라도 대면 위자료 몇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 네가 그러고도 엄마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송진희가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리자 민지아가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

“엄마, 괜찮아? 아주머니, 여기 약 좀 가져다주세요.”

한편,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거짓말을 쏟아내는 송진희를 보고 있던 조연아는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5년 전에 그녀가 민지아를 해치려 했다는 말. 민지훈을 이용해 민하그룹을 손에 넣으려 했다는 말, 이혼이 두려워 자작극을 벌였다는 말, 위자료 몇 푼 더 받겠다고 아이를 이용했다는 말... 어느 것 하나 진실이 아니었기에 어디서부터 해명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안 돼.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눈물을 닦아낸 조연아가 민지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전히 따뜻한 그의 손, 그 온기가 오늘은 왜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뿐이라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야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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