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잠깐.”배수자가 외투를 집어 경서의 어깨에 바로 걸쳐 줬다.경서는 마음이 따뜻해져서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배수자도 호텔로 돌아가 잠깐 쉴 생각이었다. 식탁의 도시락을 빠르게 정리하다 젓가락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가 침대 밑의 임신 테스트기를 봤다.멈칫했다.집어 들어 살폈다.작은 결과 창에 두 줄이 있었다.‘임신이라고?’‘세상에!’“이것 좀 봐!”배수자가 흥분해서 심영기에게 테스트기를 내밀었다.“이거... 경서가 임신한 건가?”심영기는 이내 차분해져 말했다.“꼭 경서 것이라고는
“엄마!”나래가 맑은 목소리로 부르며 통통한 손을 내밀었다.“응, 우리 아가.”혜니는 혼이 나갈 만큼 놀랐지만 발끝을 재빨리 움직였다. 테스트기를 잽싸게 침대 밑으로 차 넣어 보이지 않게 했다.서둘러 다가가 인우에게서 나래를 받아 꼭 안았다. 말랑한 볼에 거듭 입을 맞췄다.나래는 까르르 웃다가 침대에 있는 경서에게 고개를 돌렸다.“경서 언니, 아파?”귀여운 아이를 보니 경서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바로 두 팔을 벌렸다.“응, 머리 아파. 와서 호 해 줘.”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앞으로 언니 말고 계속 이모라고
질투가 수많은 개미처럼 주비의 속을 갉아먹었다.주비는 책상 위 전화를 움켜쥐고 비서에게 걸었다.“오늘 밤 J시 가는 비행기 예약해요. 지금 당장!”지난 주주총회가 끝난 뒤 인우는 주비를 N시로 돌려보냈다.‘윤혜니가 그렇게 쉽게 나만의 인우를 빼앗게 둘 수는 없어.’‘절대로!’...J시의 병원.혜니는 핸드폰을 들고 진춘심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화면 속 진춘심은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다짜고짜 잔소리를 쏟아 냈다.[이 못된 것아. 일주일 출장이라더니 보름이나 눌러앉아 있어? 사람까지 보내서 우리 나래도 데려가고!]
배수자가 옆에 있던 민찬에게 지시했다.“얼른 우리 새아가를 병실로 데려다줘. 편히 쉬어야지. 좋은 음식하고 따뜻한 옷도 빠짐없이 가져오라고 하고.”“네.”민찬도 눈가가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다. 대표님이 드디어 고비를 넘기셨어.’‘새아가’라는 호칭에 경서는 살짝 어리둥절했다.배수자가 다시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말투였다.“너도 얼른 나아야지. 그 녀석 돌봐야 하잖아.”“N시 돌아가면 혼인신고하고, 이번 설은 우리 집에서 함께 보내자.”경서는 코끝이 시큰해져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경서의 울음이 뚝 멎었다.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내가... 잘못 들었나?’몸이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몇 초 뒤에야 아주 천천히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윤모의 눈이 어느새 가늘게 열려 있었다.검고 충혈된 눈이 경서에게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았다.윤모는 힘없이 미간을 좁히고 온 힘을 다해 한마디 더 했다.“우니까... 진짜 못생겼다.”경서는 놀라서 온몸이 뻣뻣해졌다.“심윤모?”믿을 수 없어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끝으로 뺨을 만져 봤다.‘진짜야. 따뜻해.’“깨어났구나. 정말 다행이야!
“응.”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경서가 호출 벨을 누르자 간호사가 문을 열었다. 경서는 안으로 들어갔다.하얀 침대 시트와 차가운 기계들, 그 한가운데 몸에 여러 관을 꽂은 남자가 누워 있었다. 생기 하나 없이 고요했다.침대 곁으로 다가간 경서는 용기를 내어 옆으로 내려진 손을 가볍게 잡았다.차가웠다. 온기가 전혀 없었다.“심윤모.”경서의 목소리는 심하게 말라 있었다.“나 왔어.”아무 반응도 없었다.경서는 훌쩍이며 주머니에서 망가진 혼인서약서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펼쳐 주삿바늘이 꽂히지 않은 손에 넣어 줬다.“네
혜니는 이를 악물고 보고서를 다시 확인했다.한 번으로는 부족해 두 번이나 더 들여다보았다.그렇게 시계가 밤 9시 반을 가리킬 때가 되어서야, 겨우 보고서 검토를 끝낼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오류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혜니는 보고서를 챙겨 다시 대표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보고서를 정중히 올려놓았다.“검토 끝났습니다.”인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보고서를 한 번 훑더니, 태연하게 말했다.“미안해. 윤 비서. 내가 잘못 본 것 같다.”혜니는 할 말을 잃었다.‘
인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아이는?”“없습니다.”“좋군.”인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혜니는 그런 인우를 한 번 바라보았다.‘좋긴 뭐가 좋아.’‘그때 남겨 놓은 네 ‘보물’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어!’“됐어. 회의 있습니다.”인우가 새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소 비서, 따라와.”“네, 대표님.”새연은 기쁜 얼굴로 회의록을 적을 노트를 챙기러 갔다....결국 회의는 세 시간이나 이어졌다.새연의 키보드는 불꽃이라도 튈 듯 쉴 새 없이 두드려졌다.‘우리 새 대표님... 확실히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사실 혜니는 어젯밤에도 인우의 꿈을 꾸었다....은행나무 아래, 매트, 별빛, 이혼하던 날의 마지막 작별. 혜니가 울부짖었고, 인우는 뜨거운 숨을 귓가에 뿌리며 끝을 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했다. “한인우, 이제 그만해.”혜니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음까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인우는 낮게 숨을 내쉬며 혜니를 내려다보았다.뜨거운 기운이 가까이 닿았지만, 인우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렇게 소리칠 힘은 남아 있
“공주님, 얼른 신발 신자. 늦겠다!” 바쁜 아침, 시간에 쫓기는 윤혜니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싫어!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나래는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틀며 말랑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아이고, 우리 착한 아가. 오후에 엄마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 줄게. 딸기 맛이야.” 혜니는 온갖 방법을 다 써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낮췄다.달콤한 회유가 통하자 나래는 마지못해 조그만 발을 내밀었다.혜니는 잽싸게 신발을 신기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내 소새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새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