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이야기보따리
소예지는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정성껏 꾸민 덕에 고하슬도 으쓱해 하면서 가방을 들고나와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우리 엄마야.”

소예지는 손을 뻗어 딸을 번쩍 안았다.

“하슬이 오늘 정말 잘했어.”

집으로 돌아온 후 양희순에게 케이크와 쿠키 재료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고하슬은 신난 얼굴로 소예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케이크를 어떻게 만드는지 지켜보았다. 소예지는 미리 만들어둔 쿠키 반죽을 오븐에 넣었다. 아몬드의 달콤한 향기가 거실에 퍼지자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고하슬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쿠키 먹고 싶어요.”

“금방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소예지는 일부러 밀가루를 찍어 자기 얼굴에 발랐다.

고하슬은 바로 알아챘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휴지를 가지러 갔다. 휴지를 가져와서야 엄마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엄마, 얼굴에 밀가루 묻었어요. 내가 닦아줄게요.”

소예지가 놀란 척했다.

“어머. 정말?”

그러고는 몸을 숙여 고하슬이 진지하게 얼굴을 닦아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딸 때문에 가끔 속상하긴 해도 착한 아이였다.

고하슬은 얼굴을 꼼꼼하게 닦아준 후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엄마, 나 잘했죠?”

“정말 잘했어.”

소예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좋은 재료로 딸에게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설탕의 양도 조절했기에 밖에서 파는 것보다 더 깨끗하고 영양가가 있었다.

드디어 예쁜 작은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시간이 어느덧 저녁 6시 30분을 가리켰다. 고하슬은 곧 어두워지는 밖을 내다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아빠는 왜 아직도 안 와요?”

소예지는 고이한이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심유빈에게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지금쯤 고이한은 심유빈의 옆에 있을 것이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자 양희순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알겠습니다. 사모님께 말씀드릴게요.”

양희순이 전화를 끊고 소예지에게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저녁 약속 있으시다고 밖에서 식사하고 오신대요.”

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저녁은 우리 셋이 먹어요.”

지금부터 소예지는 그 누구도 그녀와 딸의 기분을 망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소예지는 딸과 함께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했다. 일부러 넘어지는 척하자 고하슬이 곧바로 달려와 걱정했다. 소예지는 다리를 저는 척했다. 딸의 두 눈에 걱정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소예지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어느덧 잘 시간이 되어 고하슬을 씻겼다. 노느라 지쳤던 고하슬은 9시 30분에 스스로 잠자리에 들었다. 소예지는 조용히 방 문을 닫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곧장 서재로 가서 실험 계획서를 작성했다. 이건 그녀가 연구하는 과제였는데 줄곧 포기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그리고 고이한이 싫어할까 봐 많은 것을 숨겨왔다.

조명 아래 소예지의 모습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이제부터는 숨기지 않고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소예지의 아버지 소영욱은 국내 최고의 의학 박사였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엘리트 인재들을 길러냈다. 소예지는 실험실을 설립하여 아버지가 완성하지 못한 의학 성과를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이 또한 아버지의 소원이었다.

컴퓨터를 덮고 미간을 주무르면서 딸과 함께 자려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아직 잠들지 않은 소예지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이한이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평소 고이한이 늦게 들어올 때마다 소예지는 밖으로 나가 챙겨주었다. 그가 술을 마셨다면 해장국을 끓여주었고 단순히 피곤하다고 하면 따뜻한 우유를 데워 잠들도록 도와주었다.

결혼은 그녀를 가사노동자로 만들었다. 빨래, 요리, 눈치 보는 것... 그러다가 결국에는 힘들기만 하고 보람은 없는 도우미로 훈련되었다.

발소리가 방문 앞에 멈추자 소예지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문이 열리고 훤칠한 그림자가 소예지의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 공기 중에 술 냄새와 여자의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 심유빈이 즐겨 쓰는 향수였다.

고이한은 몸을 숙여 딸의 이불을 여며준 다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소예지가 자는 척한 바람에 그의 입맞춤을 피하지 못했다.

따뜻한 입맞춤이 이마에 닿았다.

그 순간 소예지는 온몸이 굳어지는 듯했다. 고이한이 떠나자마자 재빨리 물티슈를 꺼내 입술이 닿았던 곳을 닦았다.

방금 다른 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남자라 더럽게 느껴졌다.

그 후 3일 동안 소예지와 고하슬의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다. 어릴 때부터 품에 안고 키운 딸이라 관계를 개선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딸의 사랑을 단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것일 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소예지가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면 딸이 그녀에게 의지하던 모습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금요일 점심, 소예지는 서재에서 오전 내내 계획서를 작성하다가 목이 말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중 계단을 올라오는 고이한을 보았다.

소예지는 3층 서재에서 내려갔고 결국 두 사람은 마주치고 말았다. 하지만 소예지는 그를 그냥 지나쳐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를 마셨다.

“아직도 화났어?”

고이한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섞여 있었다.

소예지는 잠깐 멈칫했다가 돌아섰다.

“내가 왜 화를 내?”

“아니면 됐어.”

고이한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최근 두 사람 사이의 많은 일들을 잊어버린 건 사실이었다.

몇 분 후 마침내 기억이 났다. 보름 전 소예지는 고이한과 심유빈의 해외 데이트를 막으려고 충동적으로 고이한의 여권을 찢어버렸다.

그 일로 고이한과 소예지는 일주일 동안 냉전을 펼쳤다. 결국 소예지가 고하슬이 잠든 틈을 타 그의 침실로 들어가 먼저 스킨십하면서 부부 관계를 가지고 나서야 화해했다.

조금 전 고이한이 말한 일이 바로 이 일이었다.

소예지는 그녀가 아무리 막아도 고이한은 결국 심유빈과 함께 해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고하슬을 데리고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려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윤혁 선배.”

“예지야, 네 논문 전부 다 읽어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너랑 빨리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

전화기 너머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선배.”

“요 며칠 시간 돼?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내가 거기 갈게.”

“나중에 내가 시간 정하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럼. 시간 될 때 만나자.”

소예지는 찻잔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고하슬의 하원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이한은 어젯밤에도 새벽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왔기에 지금쯤 방에서 곤히 자고 있을 것이다. 소예지도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고이한은 자지 않고 2층 거실에서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 비행기야. 응, 하슬이도 데려갈 거야. 갖고 싶은 선물 있으면 뭐든지 말해.”

소예지는 몸을 돌려 현관에 숨었다. 고이한이 방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 들어줄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30화

    “오늘 예지 씨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검은색 SUV가 몇 번이나 위협 운전을 했다더군요. 들어 보니 상황이 굉장히 위험한 것 같아서요...”“강 박사님께서 제 아내를 꽤 신경 쓰시나 보군요.”고이한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러자 강준석은 단호하게 반박했다.“전 단순히 예지 씨의 동료로서 걱정하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강 박사님께서 선을 잘 알고 계신다면 됐습니다.”강준석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고 대표님, 이건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예지 씨를 겨냥한 겁니다. 그러니 제대로 보호해 주세요.”고이한은 가만히 듣고 있었고 강준석은 이어서 상황을 설명했다.최근에 소예지가 화학공장의 불법 폐수 배출을 폭로했고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 그 공장이 영업정지와 정비 명령을 받은 일, 그리고 그로 인해 원한을 샀을 가능성까지.“사실 2주 전에도 그쪽에서 예지 씨한테 직접 협박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노골적으로 위협까지 했어요. 그들의 표적은 분명히 예지 씨입니다. 고 대표님이라면 가족을 지킬 방법이 있으시잖습니까?”“다 말씀하셨나요?”고이한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네.”“듣고 보니 제 아내의 사정을 저보다 박사님이 더 잘 아시는 것 같군요.”강준석은 난감해졌다.“지금 중요한 건 아내분의 안전...”“제 아내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박사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그 말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그러자 강준석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이한은 정말 소예지에게 이렇게 냉담한 걸까? 아내가 위험에 처했는데도 저렇게 모른 척할 수 있다니.저녁 여덟 시 반.소예지는 거실에서 고하슬과 함께 젤리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때 고이한이 집에 들어왔다.“아빠!”고하슬이 반갑게 달려가 안겼고 젤리도 꼬리를 흔들며 그의 발치에 매달렸다. 고이한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젤리를 한번 쓰윽 만지더니 말했다.“하슬아, 젤리 데리고 2층 놀이방에 가서 놀아. 아빠가 엄마랑 잠깐 얘기 좀 해야겠어.”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9화

    심유빈은 미소만 지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도 알아?”고수경이 물었다.“알지.”“하, 제 분수도 모르고 자기가 무슨 천재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 괜히 우리 오빠한테 말썽 부리고 난리야.”고수경은 소예지를 욕했다....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집에서 평가 시험을 치르고 오전 열 시 전에 시험지를 윤혁에게 보냈다. 윤혁은 곧장 그것을 의대 교수들에게 넘겨 그녀가 졸업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지 심사받게 했다.소예지는 곧장 박시온의 변호사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심 변호사님, 귀국하셨나요?][죄송합니다. 제가 돌아가려면 이틀은 더 걸릴 것 같네요.][알겠습니다.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뵙고 싶습니다.][네, 소예지 씨.]소예지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그때 강준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매곡마을 사건 승소했어. 화학공장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마을 주민들도 보상금을 받아냈어. 네가 이번 사건의 일등 공신이야.]소예지는 기분이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갔다.[고생 많았어, 선배.][이따 다시 얘기하자.][응, 운전 조심해.]그 후 윤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 두 시까지 의대에 직접 와서 시험 전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소예지는 바로 차를 몰아 의대로 향했고 삼십 분쯤 지나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교무처로 가서 서류를 작성했다. 그곳에 윤혁도 있어 둘은 잠시 잡담을 나눴다.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세 시가 되었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소예지는 차선을 지키며 평소처럼 규칙적으로 주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은색 SUV 한 대가 그녀의 차 앞으로 확 끼어들었다. 소예지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어 피했지만 SUV는 포기하지 않고 세 번이나 연달아 위협 운전을 했다. 다행히 뒤에서 경찰차가 나타나자 SUV는 속도를 내며 달아났다.가슴이 철렁한 소예지는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었다.집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윤하준에게 메시지를 보내 고하슬을 대신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윤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8화

    소예지가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너무 무리하지 마. 몸이 더 중요하니까.”고이한은 그녀가 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기 졸업 시험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하지만 소예지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쌓여 있는 책 더미에 파묻힌 소예지의 가녀린 어깨는 마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듯 위태롭게 보였다. 그러나 고이한은 정작 그녀가 더 야윈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채 문틀에 기대서서 무심하게 말했다.“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네가 원하는 거, 내가 다 들어줄 수 있는데.”“이한 씨가 줄 수 있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절대 줄 수 없어.”소예지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단호하게 받아쳤다.고이한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계를 흘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자정은 넘기지 마.”저게 걱정하는 걸까? 아니, 그저 고이한 특유의 지배적인 태도일 뿐이었다.소예지는 그를 무시한 채 책장을 넘겼다.한편, 집으로 돌아온 심유빈은 가정부에게 약을 발라달라고 했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고수경이 보낸 메시지였다.[유빈 언니, 자? 나 언니한테 할 말이 있어.][아직 안 잤어. 무슨 일이야?]곧 영상 통화 요청이 들어왔고 심유빈은 가정부를 내보낸 뒤 통화를 수락했다.“어, 수경아.”“언니, 나 하준 오빠 차에 있던 그 머리끈이 누구 건지 알아냈어.”“그게 누구 건데?”심유빈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새언니 거야.”고수경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 말에 심유빈은 놀랐다.“그게 어떻게 예지 씨 거야?”“맞다니까! 저번에 새언니를 축하해 주던 날에 봤는데 새언니가 그거랑 똑같은 머리끈을 하고 있었어.”고수경은 확신에 차 있었다.심유빈은 지난번에 윤하준이 소예지를 몰래 도와줬던 일이 떠올라 애써 고수경을 달래 주었다.“수경아, 그게 진짜 예지 씨 거라고 해도 별거 아닐 거야. 혹시 하슬이가 실수로 차에 두고 간 걸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7화

    심유빈은 턱을 괴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았어.”그러더니 무심하게 말했다.“아까 내 동생한테서 들었는데 예지 씨가 이번에 조기졸업 시험을 본다면서? 학부를 빨리 끝내고 싶다던데, 오빠도 알았어?”고이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그래?”“그리고 양 박사님이 이번에 팀을 새로 꾸리면서 예지 씨의 이름을 명단에서 뺐대. 오빠, 혹시 예지 씨를 다시 넣어줄 생각 없어? 그래도 오빠 아내잖아.”고이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내가 양 박사님께 넣지 말라고 부탁했어.”심유빈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그럼 예지 씨가 화내지 않아?”“이번 연구에 예지 어머니의 샘플을 사용해서 날 많이 원망하고 있어.”심유빈은 미소를 지은 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럴 만도 하지. 아무래도 그건...”“무슨 얘기 하고 있어?”이때 하종호가 다가오며 말을 끊었다.고이한은 그와 간단히 인사했고 하종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심유빈을 바라봤다.“괜찮아요? 아까 뉴스를 봤는데 진짜 아찔하더라고요.”“괜찮아요. 저도 팬이 그렇게까지 과격할 줄은 몰랐어요. 그냥 손목이 좀 부은 정도예요.”심유빈은 말하며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하종호는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했다.“다음부턴 조심해요. 외출할 땐 경호원을 꼭 데리고 다니고요.”잠시 후, 윤하준도 도착했다.“이안이 오늘은 떼 안 썼어?”하종호가 농담하듯 묻자 윤하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새 장난감 하나 사주겠다고 약속했지, 뭐.”심유빈은 곁눈질하며 말했다.“하준 씨도 이제 슬슬 여자 친구 만들어야겠어요. 그래야 이안이를 돌봐줄 사람이 생기죠.”하종호는 윤하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농담을 보탰다.“그런데 너, 너희 외숙모의 자선 사업에 투자한다면서?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히 의학 쪽까지 손을 뻗은 거야?”윤하준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앞으로는 이쪽이 큰 흐름일 거야.”그 말에 잔을 들고 있던 고이한은 멈칫했고 심유빈도 눈빛이 흔들렸다.윤하준이 정말 단순히 사업적 이유로 의학계에 투자한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6화

    고이한은 고하슬에게 다가가지 않고 곧장 돌아서 버렸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서 연인이 딸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닐까 싶었다.몇 분 뒤, 윤하준이 허겁지겁 도착했다.“미안해요. 길이 너무 막혀서 늦었네요.”그가 난처해하며 말하자 소예지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괜찮아요. 아이들은 재밌게 잘 놀았어요.”“이한이는 안 왔어요?”“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소예지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녀를 바라보는 윤하준의 눈빛에 안쓰러움이 번졌다.오후 다섯 시 반, 소예지는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고하슬이 해맑게 물었다.“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요?”소예지는 고하슬의 작은 손을 꼭 잡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하슬아, 엄마가 너한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고하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네, 물어보세요.”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만약에 언젠가 엄마랑 아빠가 따로 살게 된다면 너는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 아니면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최대한 부드럽게 물어 본 소예지는 마음속으로 고하슬이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고하슬은 순간 멈칫했지만 거의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저는 엄마랑 같이 살 거예요!”그러곤 눈알을 또르르 굴리며 되레 물었다.“그런데 아빠는 왜 우리랑 같이 안 살아요?”소예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결국 이 문제에서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둘 중 하나뿐이라는 걸 알기에 그녀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아빠랑 엄마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같이 못 살아.”소예지는 애써 웃으며 설명했다.고하슬은 다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엄마의 목을 껴안으며 말했다.“전 엄마가 좋아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요. 앞으로도 절대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요.”소예지는 고하슬을 꼭 끌어안으며 비로소 안도에 찬 미소를 지었다.몇 분 뒤, 박시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심유빈이 남자 팬에게 집착에 가까운 추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5화

    소예지가 막 복도를 돌았을 때 이서연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채린아, 정말 부럽다. 네가 양 박사님의 제자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 앞길이 창창하겠네.”“교수님이 나한테 거는 기대가 커. 하지만 교수님이 잘 이끌어주시면 내가 훨씬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야.”안채린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이서연이 맞장구치듯 말했다.“이번에 양 박사님이 직접 나서셨으니, 소예지는 더 이상 끼어들 방법이 없을 거야. 보나 마나 바로 탈락이야.”“능력 없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어. 이 바닥에 약자는 필요 없거든.”안채린의 조롱 섞인 말소리가 복도에 울렸다.그들이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소예지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는 마음이 쓰렸지만 티내지 않고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 책상을 정리했다.그때 강준석이 찾아왔는데 그는 벌써 해외 인맥을 총동원해 전 세계의 유전자 은행에서 기증자 샘플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매칭되는 게 나오면 소예지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겠다고 했다.“선배, 고마워.”소예지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고맙긴. 네 실력이 어떤지 우리 다 알아. 이번 일로 기죽을 필요 없어.”강준석은 담담하게 그녀를 위로했다.그러자 소예지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나도 끝까지 해볼 거야.”그 사이 윤혁은 그녀의 조기졸업 시험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고 잠시 후 평가용 시험지를 보내왔다.“예지야, 시험을 신청하기 전에 먼저 평가를 봐야 해. 결과가 좋아야 학교에서 정식으로 조기졸업 시험을 신청해 줄 수 있어.”“네, 선배. 최대한 빨리 해서 내일 아침까지 보내 드릴게요.”“급하지 않으니까 꼼꼼히 풀어. 완성도 높게.”그런데 마침 이서연이 윤혁에게 자료를 전해주러 왔다가 프린터에서 뽑히는 신청서를 보고 물었다.“선배, 저건 뭐예요?”“아, 예지가 조기졸업 시험을 신청하려고 해서 평가 서류를 출력해 주려고.”“뭐라고요? 예지는 아직 대학교 2학년인데요?”이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윤혁은 가볍게 웃으며 설명했다.“일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