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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이야기보따리
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화장을 하고 고하슬이 가장 좋아하는 원피스를 들고 깨기를 기다렸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의 다정한 얼굴을 마주한 고하슬은 어색한 듯 새끼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하슬아, 예쁜 원피스 입을래?”

소예지가 웃으며 물었다.

고하슬이 몸을 뒤집더니 예쁜 핑크색 공주 원피스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래요.”

소예지는 예쁘게 꾸민 딸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고이한이 이미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나갔다.

“아빠, 나 예뻐요?”

신이 난 고하슬이 고이한 앞에서 빙글 돌았다.

고이한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아이를 보면서 망설임 없이 칭찬했다.

“응. 엄청 예뻐.”

고이한이 딸을 안았고 소예지는 양희순이 건네주는 가방을 받아 들고 함께 집을 나섰다.

유치원은 집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빌라 단지 바로 밖에 있었는데 A시에서 가장 비싼 사립 유치원이었다.

고하슬이 차에서 내리자 소예지는 딸을 유치원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가방을 메어준 다음 물었다.

“오후에 엄마가 일찍 데리러 올게. 우리 같이 케이크 만들까?”

고하슬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장과 선생님에게 인사한 다음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

소예지는 다정한 눈빛으로 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차 안에 있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그의 모습은 여전히 차분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눈빛은 늘 한겨울의 밤처럼 차갑고 냉랭했다.

“난 집에 걸어갈 테니까 이한 씨는 이만 회사 가봐.”

소예지가 운전석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고이한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적셨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핸들을 돌리자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차들을 제치고 떠나갔다.

소예지는 고이한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보았다. 그와 결혼한 지 수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동안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는 걸 알면서도 소예지는 어리석게 기다렸다. 그가 사랑해주기를.

그런데 그렇게 기다린 세월이 벌써 6년이었다.

소예지는 이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을 잘못 고른 그녀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양희순이 다가와 물었다.

“사모님, 아침에 뭐 드시겠어요?”

“계란 두 개랑 옥수수 반 개만 삶아줘요.”

소예지가 답했다.

양희순은 뜻밖이라는 듯 잠시 멈칫하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사모님의 눈빛이 평소와 달라 보여. 평소보다 더 차가워진 것 같기도 하고. 어젯밤에 사모님이랑 대표님이 싸우셨나?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평소 고이한이 몇 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소예지의 안색이 몹시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딸이 입원해서 폐 세척까지 했는데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소예지는 3층 서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 달 전 그녀는 최우수 졸업생으로 M국 의학 포럼에 서서 연설했는데 수많은 최고 제약 회사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녀가 고개만 끄덕이면 바로 연구소에 들어가 수천억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모습을 소예지는 단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 집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녀는 그저 금으로 된 새장 속에 갇힌 쓸모없는 가정주부일 뿐이었다.

그녀의 남편 고이한은 18살에 M국 금융 중심지인 화얼스트리트의 최고 컨설턴트가 되었고 23살에는 회사를 물려받아 투자 업계의 냉혈 신화가 되었다. 불과 4년 만에 국내 재산 순위 1위에 올랐다.

그때 소예지의 변호사 친구 박시온에게서 문자가 왔다.

[예지야, 오늘 점심에 내가 거래처 만나다가 누굴 봤는지 알아?]

이어서 사진 세 장이 도착했다.

사진 속에서 고이한이 룸에 앉아 외국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고 그의 옆에 심유빈이 요염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심유빈은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 우아하고 매혹적인 자태를 뽐냈다. 세 번째 사진에서는 무슨 농담이라도 했는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고이한이 시선을 늘어뜨리고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예지야, 좋게 생각해. 충격받지 말고.]

박시온이 위로를 건넸다.

[괜찮아.]

소예지가 답장했다.

고이한에게 있어서 소예지는 사람들 앞에 내세우기 창피한 아내였지만 심유빈은 달랐다.

세계적인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패션계에서 각광받는 사람이고 또 주얼리 홍보모델로도 활동할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예뻤다. 어느 것 하나 고이한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는 게 없었다.

오후 3시 30분, 소예지는 서둘러 차를 몰고 딸의 유치원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유치원으로 들어가 딸을 데려오고 싶었다.

4시쯤 빨간색 페라리 한 대가 그녀의 맞은편에 멈춰 섰다. 소예지는 저도 모르게 핸들을 꽉 잡았다. 왜냐하면 심유빈도 온 것이었다.

심유빈이 차 안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고이한이 딸을 데리러 오는 걸 알고 일부러 미리 와서 기다린 게 분명했다.

고이한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삼자라면 수단과 방법이 뛰어난 여자일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소예지는 대놓고 심유빈과 맞서지 않았다.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면 고이한이 가정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더욱 심하게 굴면 굴었지 덜하진 않았다.

이번에는 소예지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차 문을 열고 먼저 내려 심유빈의 차량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소예지를 본 심유빈이 화들짝 놀랐다.

‘오늘 이한 오빠가 하슬이를 데리러 안 온 건가?’

소예지가 그녀의 차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심유빈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차 문을 열고 매혹적인 자태로 차에서 내려 소예지에게 다가갔다.

소예지는 주먹을 꽉 쥐고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심유빈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안녕하세요, 예지 씨. 내가 누군지 알죠? 정식으로 자기소개할게요. 난 심유빈이고 이한 오빠의... 친한 동생이에요.”

“그쪽이 누구든 상관없으니 내 딸한테서 떨어져요.”

소예지는 경고하듯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그녀를 쳐다보던 심유빈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예지 씨, 혹시 내가 예지 씨 남편을 좋아해서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소예지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심유빈이 콧방귀를 뀌며 계속 말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예지 씨가 빼앗아간 거라면 예지 씨도 괘씸한 사람이 아닐까요?”

“그쪽처럼 이렇게 뻔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은 처음 봐요.”

소예지가 거침없이 평가했다.

심유빈이 손가락으로 목에 한 목걸이를 어루만지자 소예지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가느다란 목에 파란색 사파이어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고이한이 선물한 것이라는 걸 소예지는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지난 2주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있었으니까.

소예지는 유치원 문이 열린 걸 보고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심유빈은 소예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씩 웃더니 두 눈에 가소롭다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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