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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作者: 이야기보따리
“이한아, 이리 와. 소개해줄 사람 있어.”

하종호가 고이한에게 말했다.

고이한은 하종호를 따라 소예지와 강준석에게로 다가갔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에 하종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예지 씨, 아는 분이세요?”

소예지가 웃으며 답했다.

“네, 알아요.”

하종호가 껄껄 웃었다.

“이한아, 내가 소개하려던 분이 바로 강준석 씨야. 클리번 교수의 가장 뛰어난 제자이자 미래 의학 분야의 인재셔.”

고이한이 존경과 감탄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친분을 맺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강준석 씨. 고이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강준석은 그를 힐끗 보고는 짧게 악수했다.

“예지 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는 일부러 존댓말 하며 웃으면서 옆으로 물러났다.

고이한은 강준석의 뒷모습을 잠깐 쳐다보다가 소예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예지가 주스 한 잔 더 가지러 가려던 그때 고이한이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네가 누군지 잊지 마.”

고이한의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에 경고와 강압적인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소예지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비웃었다. 고이한은 공공연하게 애인을 데리고 사교 모임에 다니면서 그녀가 강준석과 잠깐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 경고를 받고 말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아주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소예지가 손을 뿌리치자 고이한도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주스 한 잔을 더 가지러 갔다.

그 시각 심유빈이 한 사모님과 옆에서 D국 언어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여자는 누구예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러자 심유빈이 웃으며 답했다.

“고이한의 와이프예요.”

사모님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해졌다.

“유빈 씨 오늘 저녁에 조심해야겠어요. 이한 씨랑은 거리를 두도록 해요. 아내분이 화라도 내면 어떡해요.”

심유빈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신경 안 쓸 거예요. 두 사람 지금 이혼 절차를 밟고 있거든요.”

“딱 봐도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한 씨랑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네요.”

사모님은 소예지를 보면서 평가했다.

그들은 소예지가 D국 언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소예지는 지난 6년 동안 4개 국어를 마스터했다.

심유빈은 그들의 모임에서 두 사람이 이혼할 거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고이한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걸까?

고이한은 술잔을 들고 두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준석은 홀로 서 있는 소예지를 보고는 잔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예지야, D국에는 언제 왔어? 무슨 일 있어?”

“남편이랑 딸이랑 크리스마스 보내러 왔어.”

소예지가 갑자기 E국 언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강준석도 웃으면서 E국 언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가르친 걸 아직 기억하고 있구나.”

강준석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심유빈 쪽을 힐끗 보았다.

“나가고 싶다면 내가 데리고 나갈 수 있어.”

그는 소예지 남편의 내연녀가 심유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소예지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

“고마워.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말할게.”

고이한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미소를 띠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입가에 가져간 술잔도 공중에서 몇 초간 멈췄다.

“다 같이 게임 하나 해볼까요? 게임 이름은 시간 저장고로 정했어요. 사실은 와인을 감별하는 게임인데 간단해요.”

하종호가 웃으며 말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기뻐하며 참여 의사를 밝혔다. 심유빈은 윤하준의 옆에 서서 의미심장하게 소예지를 쳐다보더니 좋은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흥미진진한 얼굴이었고 소예지는 그저 구경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이 즐겁게 놀고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웨이터는 술 세 병을 천으로 덮었고 쟁반 위에 술 석 잔이 놓여 있었다. 술을 마신 사람은 주된 풍미만 말하면 되었다.

고이한이 첫 번째로 나섰다. 와인 한 잔을 들고 흔든 다음 맛을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블랙커런트.”

“맞았습니다. 다음 분.”

곧 심유빈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우아하게 와인 잔을 들어 흔들고는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오크통 풍미인가요?”

하종호가 검은 천을 걷고 웃으며 말했다.

“유빈 씨가 웬일로 틀렸죠?”

심유빈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한 벌을 내려줘요, 종호 씨.”

“그럼 이 잔을 다 마시세요.”

하종호가 크게 웃었다.

심유빈은 와인 잔을 보며 난감한 듯 눈썹을 찡그리더니 입을 가리고 기침했다.

“내가 대신 마실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고이한이 심유빈의 앞에 놓인 잔을 들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소예지는 그 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았다. 심유빈은 고이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조명 아래 심유빈의 하얀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돌았다. 심유빈이 고이한에게 말했다.

“고마워.”

어느덧 강준석의 차례가 되었다. 강준석은 술잔을 들고 맛을 보았다.

“찍어야겠네요. 흑연 풍미인 것 같은데 맞나요?”

“찍었는데도 맞히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그때 소예지의 차례가 되었다. 하종호는 소예지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화들짝 놀랐다.

심유빈과 친한 사모님이 말했다.

“소예지 씨 차례예요.”

“이 사람은 참여하지 않습니다.”

고이한이 나서자 사모님이 웃으며 말했다.

“고이한 씨, 아내분이 참여하면 더 재미있을 텐데요.”

그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다시 소예지에게로 쏠렸다. 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한번 찍어볼게요. 틀려도 웃지 마세요.”

소예지는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크리스털 와인 잔을 잡았다. 먼저 잔을 흔들어본 다음 냄새를 맡았다. 차분한 얼굴에 신비함과 고전적인 분위기가 묻어 있었다.

심유빈이 씩 웃으며 생각했다.

‘소예지가 틀리면 이한이가 대신 마셔줄까?’

소예지는 한 모금 마시고 음미했다.

“부끄럽지만 제가 짐작하기로는 블랙커런트 풍미의 와인이에요. 맞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 하종호가 검은 천으로 덮어 놓았던 술병을 열더니 놀라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와인 감별 능력이 뛰어나시네요, 예지 씨. 맞혔습니다.”

심유빈의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고이한의 집에 많은 종류의 와인이 있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이 게임은 소예지에게 그리 어려운 게임이 아니었다.

“예지 씨 정말 대단하네요. 와인을 잘 아는 걸 보면 예술 방면에도 조예가 깊겠죠? 저기 피아노가 있는데 한 곡 연주해보시겠어요?”

심유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두 눈에 조롱의 빛이 담겨 있었다. 소예지가 이 자리에서 망신을 당하길 바라는 게 틀림없었다.

“유빈아.”

고이한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심유빈은 입술을 깨물면서 오만하게 웃었다.

“됐어요. 없던 일로 하죠.”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하종호와 윤하준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하려던 그때 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부족하지만 한 곡 연주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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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712화

    자료실 안은 무척 조용했다.줄지어 늘어선 높은 선반에는 각종 실험 자료와 문헌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소예지는 곧장 신경과학 자료가 있는 구역으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손가락으로 파일들을 하나씩 훑어보던 그녀는 그중 하나를 꺼내 몇 장 넘겨보았다. 찾던 자료가 아니었는지 도로 제자리에 꽂은 뒤 계속해서 다음 파일을 살폈다.고이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가에 기대어 그런 소예지를 바라보았다.흰 가운을 입은 소예지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운 깃 사이로 안에 입은 흰 셔츠가 살짝 드러났고 몇 가닥의 잔머리가 뺨을 따라 흘러내려 있었다.자료를 확인하는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때때로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기는 모습은 꼭 공부에 열중한 학생 같았다.한동안 자료를 찾던 소예지가 마침내 파일 하나를 꺼내 고이한에게 다가갔다.“찾았어.”고이한은 그녀가 건넨 파일을 받아 들면서 다른 한 손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예지의 허리를 감쌌다.소예지는 허리를 감싼 그의 손을 가볍게 밀어냈다.“장난치지 마. 나 아직 일 남았어.”“보는 사람도 없잖아.”고이한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곧 순순히 허리에서 손을 떼고 대신 소예지의 손을 잡았다.자료를 챙겨 사무실로 돌아온 소예지는 다시 하던 일을 이어갔다. 고이한도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손에 잡히는 과학 잡지 한 권을 펼쳐 들었다.한참 일에 몰두하던 소예지는 문득 목이 말라 컵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컵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일을 마치고 마시기로 하고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려는데 고이한은 그 작은 몸짓을 놓치지 않았다.고이한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향했다. 물 한 잔을 따라 소예지 곁에 놓아주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번 바라본 뒤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소예지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이한의 보살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여덟 시 반이 되어서야 소예지는 마침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711화

    이서연의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다.“나도 알아. 지원이가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인 건. 근데 너무 재미가 없어.”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오히려 서로 잘 맞는 거지. 넌 밝고 솔직하니까 지원이랑도 잘 어울리고.”이서연도 더는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사실 가끔 실험실에서 일하는 모습 보고 있으면... 꽤 멋있긴 해.”“내가 보기엔 지원이도 너한테 꽤 신경 쓰고 있어.”소예지의 말에 이서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아니거든!”소예지는 그런 이서연을 보며 웃었다.“난 너희 둘이 성격도 잘 맞는 것 같아.”이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지원이는 완전 일 중독이야. 눈에는 데이터랑 실험밖에 안 보이는데 날 볼 틈이 어디 있겠어.”소예지는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화면의 데이터를 바라보며 말했다.“평소에 말수가 적기는 해도 일은 정말 착실하게 하잖아. 지원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말로 티 내는 사람은 아닐 거야. 대신 행동을 보면 분명 알 수 있겠지.”그 말을 듣자 이서연은 최근 이지원이 자신에게 간식이나 작은 케이크를 사다 주기 시작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동안은 별생각 없이 넘겼던 일이었다.“요즘 지원이가 시도 때도 없이 간식도 사다 주고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 맛도 기억하긴 해. 근데 그것만으로 날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이서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한테 마음을 쓰고 있다는 뜻이지.”이서연이 눈을 깜빡였다.“그럼 고 대표님도 너한테 그래?”소예지는 잠시 생각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만 그 사람은 좀 바쁘지.”이서연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나이도 적지 않은 데다 이지원이라면 확실히 괜찮은 남자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녁이 되어서도 소예지는 실험실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고이한이 저녁 식사를 챙겨 실험실로 찾아왔다.“하슬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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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일찍 고이한은 약속대로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었고 소예지는 실험실로 향했다.소예지가 실험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지원이 이미 와 있었다.“예지야, 좋은 아침. 어제 보내준 데이터 밤새 한 번 돌려봤어.”이지원이 고개를 들었다. 눈 밑에는 밤을 새운 흔적이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었다.소예지는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결과는 어때?”이지원은 자리를 비켜주며 화면에 나타난 파형 그래프를 가리켰다. 목소리에는 억누르기 힘든 흥분이 묻어났다.“여기 봐. 우리가 전에 발견했던 특이점과 완벽하게 일치해. 게다가 새 장비로 세 번이나 재검증했는데 매번 이 파형이 안정적으로 나타났어.”소예지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곧바로 데이터를 하나씩 불러내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가량 확인한 뒤에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지원아.”“예지야, 우리 추론이 맞았어. 이건 노벨상급 발견이야.”소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화면에 나타난 익숙한 곡선을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서서히 뜨거워졌다.“해냈어. 정말 해냈어.”이지원이 흥분한 얼굴로 소예지를 바라보았다.소예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우리가 해낸 거야. 우리 팀 모두의 성과야.”이지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웃었다.“네 팀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야.”그때 출입카드를 찍는 소리와 함께 이서연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커피 석 잔이 들려 있었다.“자, 커피 마셔.”이서연이 두 사람에게 커피를 나눠주었다.이지원은 커피를 받아 들며 조금 수줍은 눈빛으로 이서연을 바라보았다.“고마워.”이서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한 건데 뭘 고마워해.”이지원을 바라보는 이서연의 눈에는 행복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그러다 이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부끄러워져 슬쩍 얼굴을 돌렸다.한창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소예지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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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거.”소예지는 웃으며 달고나를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달고나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달콤한 맛이 퍼졌다.두어 입 먹은 소예지는 고이한 앞으로 달고나를 내밀었다.“당신도 먹어봐.”고이한은 고개를 숙여 한입 베어 물더니 웃음기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응. 달다.”소예지가 다시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 고이한이 그녀의 귓가로 가까이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당신이 더 달아.”그 한마디에 소예지의 귓불이 살짝 뜨거워졌다.고이한은 낮게 웃으며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거리를 천천히 둘러본 뒤 고이한은 미리 알아둔 작은 식당으로 소예지를 데려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고하슬은 두 사람이 사 온 선물을 받자 무척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보인 건 여러 개의 고리가 얽혀 있는 금속 퍼즐이었다.소예지가 곁에 앉아 지켜보는 동안 고하슬은 퍼즐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푸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턱을 괸 채 한참 고민하기도 하고 다시 손으로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했다.그러면서도 소예지에게 도와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혼자 한참 퍼즐과 씨름하던 고하슬은 마침내 고리 하나를 풀어내자 뿌듯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엄마, 나 이거 천천히 다 풀어볼래요.”역시 고하슬이 가장 좋아하는 건 이렇게 직접 머리를 써서 도전해볼 만한 장난감이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예지는 딸이 정말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혼자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 판단할 줄도 알았다.저녁이 되자 고하슬은 금속 퍼즐을 챙겨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혼자 잠드는 습관도 완전히 자리 잡아 소예지가 가끔 밤에 방에 들러 이불을 걷어차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주는 정도였다.딸이 방으로 들어간 뒤 소예지는 쉬는 대신 서재로 향했다. 컴퓨터를 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그녀는 송세아의 상태와 관련된 자료를 하나씩 대조하기 시작했다.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송세아의 회복을 돕고 싶었다.그렇게 자료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밤 열한 시가 되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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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평소보다 늦게까지 잠들어 있었다.비몽사몽한 와중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여덟 시 반이었다.소예지는 잠이 덜 깬 채 몸을 일으켜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별생각 없이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하던 그녀는 그곳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놀란 소예지는 곧바로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고이한이 서 있었다. 먼 길을 서둘러 온 기색이 역력했지만 소예지를 보자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내가 깨웠어?”“당신... 여긴 어떻게 왔어?”소예지는 놀란 채 고이한의 뒤쪽까지 한번 살펴보았다.“나 혼자 왔어. 하슬이는 집에 있어.”말을 마친 고이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긴 팔을 뻗어 소예지를 품에 끌어안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보고 싶어서 왔어.”소예지는 그의 품에 기대면서도 나무라듯 말했다.“당신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 안 됐잖아. 왜 이렇게 함부로 돌아다녀?”고이한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당신 대체 나한테 관심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오늘로 벌써 16일째야. 회복 기간은 진작 지났어.”최근 일에 매달리느라 소예지는 고이한이 회복한 지 며칠이나 됐는지 제대로 세어보지도 못했다.“병원 가서 수술 후 검사도 받았어? 문제는 없었고?”소예지가 걱정스레 물었다.“갔어.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 없어.”말을 마친 고이한이 웃음기 어린 눈으로 소예지를 바라보았다.“진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소예지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를 흘겨보았다.소예지가 몸을 돌리려 하자 고이한은 놓아주기는커녕 그대로 입을 맞추려 했다.소예지가 손을 들어 그의 입술을 막았다.“나 아직 세수도 양치도 안 했어...”“난 상관없어.”고이한은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부드럽고도 긴 입맞춤이었다. 그동안 쌓인 고이한의 그리움과 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한참 뒤에야 고이한은 소예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707화

    “현욱 선배한테 전화 받았어요. 와줘서 고마워요.”송세아가 소예지를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는 단정했고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흐트러진 구석 하나 없이 깔끔했다. 몸에서는 군인 특유의 당당하고 씩씩한 기운이 묻어났다.젊은 나이에 조종사가 된 송세아를 소예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소예지는 송세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송세아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다. 몸에 밴 군인의 자세였다. 눈빛 역시 맑고 굳건했으며 여전히 희망으로 가득했다.“세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소예지가 물었다.송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소 박사님.”“그냥 예지라고 불러요. 내가 두 살 많긴 해도 또래나 다름없잖아요.”송세아가 미소 지었다.“그럼 예지 언니라고 부를게요.”소예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송세아의 눈빛 깊은 곳에는 진심 어린 고마움이 어려 있었다.“예지 언니, 현욱 선배가 다시 깨어날 수 있었던 게 언니 덕분이라는 거 알아요. 저한테 언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소예지는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렸던 그때를 떠올렸다. 다행히 하늘은 그녀의 노력을 저버리지 않았다.“세아 씨, 치료 보고서는 이미 확인했어요. 신경 신호 활성도가 회복되고 있으니까 꾸준히 치료만 받으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송세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눈가가 살짝 붉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예지 언니, 전 아픈 것도 안 무섭고 힘든 것도 괜찮아요. 근데 다시는 비행을 못 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겁나요.”소예지는 그런 송세아가 안쓰러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럼 일단 다시 일어서는 것부터 생각해요.”소예지의 격려에 송세아는 눈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소예지는 송세아의 담당 의사를 찾아가 앞으로의 치료 방안을 함께 논의했다. 현재 상태와 치료 경과를 꼼꼼히 살펴본 뒤 몇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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