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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산사의 아이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1 22:14:39

이현의 손이 움직였다.

그녀의 팔을 향해, 망설이듯.

흉 진 손등이 그녀의 화상 자국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손가락 끝이 살갗에 닿기 한 치 앞에서, 손이 멈췄다.

서의는 숨을 쉬지 못했다.

시신실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궁도의 눈만이 왕의 손끝과 그녀의 팔 사이를 느릿하게 오갔다.

한 호흡.

두 호흡.

허공에 머물던 손이 물러나, 용포 소매 안에서 주먹으로 말려 들어갔다.

"……어디서 다쳤느냐."

낮게 갈라진 목소리였다.

"불이 났었사옵니다."

"불."

"……예."

"아팠겠구나."

서의는 소매를 끌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기억나지 않사옵니다."

거짓말이었다.

불길이 문고리를 타고 손목을 감아 오르던 순간도, 살이 타는 냄새도, 그녀는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연기 속에서 그녀의 등을 뒷문 밖으로 떠밀던, 물일에 터서 갈라진 투박한 여인의 손바닥까지도.

한동안 말이 없던 이현이, 이윽고 등을 홱 돌렸다.

"검안서는 오늘 안으로 올리라. 판정은, 의녀의 검안을 따른다."

남궁도가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현은 이미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

복내관이 허둥지둥 그 뒤를 따랐지만, 멀어지는 발소리는 뛰기 직전처럼 빨랐다.

***

내의원 회랑 모퉁이를 돌아 인적이 끊기자마자, 이현은 기둥을 짚고 멈춰 섰다.

"전하!"

복내관이 놀라 달려와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지만, 이현은 그 손을 보지도 않았다.

기둥을 짚은 제 손등만 내려다보는 그의 흉터 위로, 시퍼런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팔꿈치까지였다."

"예?"

"그 불이, 팔꿈치까지 그 사람을 태웠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복내관 앞에서, 이현이 눈을 감았다.

기둥에 댄 손끝이 나뭇결을 파고들 듯 하얗게 질려 갔다.

한참 뒤에야 기둥에서 손을 떼고 든 얼굴은, 다시 왕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아까 그 견습 의녀. 벌레를 셌다던."

"예, 전하."

"영특한 아이다. 내일부터 그 아이에게 어선 상의 다과를 한 접시씩 내려 주라. 그 사람 곁에 붙어 있는 아이가, 굶어서야 쓰겠느냐."

복내관이 입을 떡 벌렸다가,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예, 전하."

복내관은 품에서 손때 묻은 일지를 꺼내려다, 왕의 눈길에 걸려 슬그머니 도로 집어넣었다.

***

그날 저녁, 순덕의 사인은 부자 중독과 결박 후 익사로 고쳐 적혔다.

서의는 판정문 끝에 제 이름을 적으며, 마지막 획을 끝까지 눌러 썼다.

그 곁에 왕의 수결이 찍혔고, 남궁도의 이름은 어디에도 오르지 않았다.

늦게 찾아온 박 의관만이 판정문을 받아 가며,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서의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밤이 깊어서야 서의가 처소 등잔불 아래 소매를 걷어 올리자, 오그라든 살갗 위로 불꽃 그림자가 일렁였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이어진 제 흉 위로, 다른 흉 하나가 겹쳐 떠올랐다.

그의 오른 손등에서 손목 안쪽으로 번져 있던 흉터.

그녀가 궐을 떠나던 날까지만 해도 없던 것이었다.

바닥이 드러나도록 비어 가던 자운고 함.

그녀의 팔을 향해 다가오다 멈춘 손.

'아팠겠구나.'

그 한마디에는, 덴 살이 아물며 얼마나 당기고 저리는지 겪어 본 사람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설마.'

서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불은 폐서인의 초라한 거처에서 났다.

왕이 그런 곳에 걸음할 리 없었고, 그녀를 폐하고 등을 돌린 사람이 그 불길 속에 손을 넣었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서둘러 끌어내린 소매가 흉을 덮었다.

"스승님."

문밖에서 연이의 목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연이가 작은 보자기 하나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

"이거요. 어제 순덕 언니가 준 떡이에요. 아까워서 아껴 뒀는데……."

연이가 보자기 매듭을 풀었다.

하루 새 돌처럼 굳어 버린 떡 위로, 말라붙은 콩고물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이제 못 먹겠어요."

연이가 떡 위로 고개를 푹 떨궜다.

말없이 방 안으로 들인 연이와 함께, 서의는 한참 동안 그 떡을 가운데 두고 앉아만 있었다.

사그라드는 등잔 심지만 이따금 젓가락 끝으로 돋울 뿐이었다.

이윽고 연이가 코를 훌쩍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순덕 언니랑 제일 가깝던 소주방 언니가 몰래 일러 줬는데요. 남들한텐 입도 뻥끗 말라면서요. 순덕 언니가 출궁 패를 받아 나가던 데가 산사였대요. 약재를 갖다주러요. 누가 시킨 건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해 질 녘에야 흙투성이 버선으로 돌아왔다던 순덕.

착한 일 하러 간다고 웃기만 했다던 순덕.

연이가 문 쪽을 한 번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거기서 봤대요."

"무엇을."

"10살쯤 된 사내아이요. 스님들이 무척 귀하게 숨겨서 키운대요. 그 아이가 쓴 약을 못 먹어서, 약을 달일 때마다 감초를 한 푼씩 꼭 더 넣는대요."

심지를 돋우던 서의의 손이 멈췄다.

감초 한 푼.

쓴 약만 보면 울며 고개를 돌리던 아이를 위해, 그녀가 약을 달일 때마다 몰래 더 넣던 양이었다.

잔뜩 찌푸렸던 작은 얼굴은 혀끝에 단맛이 닿으면 금세 배시시 풀어지곤 했다.

어의들은 약효가 흐려진다고 질색했지만, 그녀는 끝내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그 버릇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남지 않았다.

연이가 서의의 눈치를 살피더니, 무릎걸음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순덕 언니가 그랬대요. 그 아이가, 죽은 원자 아기씨를 꼭 닮았다고요."

툭-

서의의 손에서 젓가락이 떨어져 방바닥을 굴렀다.

원자는 죽었다.

그 밤, 그녀의 품 안에서 작은 손발이 차갑게 식어 가던 것을 이 두 손이 기억했다.

이튿날 아침, 원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궐 안팎에 알려졌다.

독을 먹이려 한 죄로 그녀를 내쫓아 놓고, 정작 아이는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한 번도 맞춰 보지 못했던 그 어긋남이, 이제야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그런데.

어마마마, 그럼 어마마마가 죽으면 누가 대신 적어 줘요?

죽었다던 그녀는, 지금 여기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등잔불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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