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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오해 살 일은 없습니다

Author: 훌리아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05 13:53:37

17화

레오노라에게 황녀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황족이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격식만 따지며, 스스로 하늘 위에 있다 여기는 자들인 줄 알았는데, 황녀는 달랐다.

“차를 내어 드릴까요?”

“마시던 차로 부탁해.”

지빌라는 샤를로트가 보낸 초대장 속에 은밀히 숨겨 놓은 편지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신진 귀족세력인 베노 말라르메 후작을 따르는 이들의 부인들이 대거 초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제국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이득을 취하느냐에 있었다. 수단이 불법이라도 상관없이.

회귀 전 황태녀였던 그녀는 억울한 백성 하나 없는 나라를 꿈꿨다. 귀족의 권세를 누르고자 혁명가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을 우대했다.

하지만 귀족은 더 영리했고, 혁명가들은 시간이 지나자 이상을 잃은 채 귀족들과 결탁해 이익을 챙겼다. 결과적으로 백성은 지키지도 못했고, 귀족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해 황권은 흔들렸다.

지빌라는 손끝으로 초대장의 금박을 천천히 따라 그으며 중얼거렸다.

“프레데리크와 나, 처음으로 나란히 서는 자리야. 그러니 가장 사치스럽고, 가장 눈에 띄는 드레스를 입어야겠지…….”

레오노라는 순간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아는 황녀는 대공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것을 내비쳤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황실의 눈치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

지빌라는 다정하게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황실이 그런 날 원하지. 황위엔 관심 없고, 대공에게 푹 빠져 있길 바라거든. 그 기대엔 부응해야지.”

레오노라는 의문이 들어 물었다.

“그러시다가 대공 각하께서 오해하시면요? 괜찮으신가요?”

“이건 북부에 가서도 바뀌지 않을 거야. 황실은 나를 끊임없이 주시할 테니까. 프레데리크가 오해한다면… 그땐 레오노라가 도와줘.”

***

귀족의회가 끝나자 프레데리크는 곧장 황후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별도의 면담을 청했다는 보고를 받은 황후는 상석에 앉아 조용히 그 이유를 헤아리고 있었다.

잠시 후, 프레데리크가 도착해 예를 갖추고 앉자, 황후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넘겼다.

“대공께서 자주 궁을 찾아주시니, 북부로 보내는 게 점점 아쉬워지려 합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짐작한 황후가 선수를 치는 것이 마뜩찮았지만, 프레데리크는 침착히 말을 꺼냈다.

“결혼식을 앞당기고 싶습니다.”

“준비는 최대한 서두르고 있습니다. 두 달도 빠듯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죠? 황족의 결혼을 졸속으로 치른 전례는 없습니다. 내 체면이 깎이는 일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대공을 수도로 불러들인 지 일 년, 황후는 그 긴 시간 끝에야 축복 연회에 맞춰 약혼을 성사시켰다. 남은 건 결혼식. 그를 수도에 묶어둘 수 있는 시간도 두 달뿐이었다.

이 결혼이 정략혼인 탓에, 그를 두고두고 부릴 패로 곁에 남겨둘 수 없다는 사실이 아까울 뿐이었다.

“나도 북부의 수장을 이토록 오래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녀의 결혼식이니만큼, 대공도 그 정도는 감당해 주셔야겠습니다.”

황후의 말인즉, 늦가을보다 빨리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프레데리크는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결혼식 직후, 곧장 북부로 떠나겠습니다.”

황후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가 그것까지 막을 도리가 없겠지요. 대신…….”

황후는 그에게 별궁에 머물기를 제안했다. 황녀궁과 인접한 곳에 거처를 마련해두었다며, 그의 타운하우스는 대외적으로 부적절하다고까지 말했다.

“황녀와의 시간이 부족하면, 괜한 오해를 사기 딱 좋습니다. 후계자 문제도 시급한 마당이니, 다른 생각은 마세요.”

황후의 입가엔 여전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결혼식 이후 북부까지 가는 길만도 한 달은 걸릴 텐데, 황녀가 몸이 약해서 걱정입니다. 북부에서 아이 하나 갖지 못하고 몸져눕기라도 하면, 베라트 가문에도, 내 체면에도 그만한 손실은 없겠지요.”

프레데리크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말끝마다 섞인 속내가 빤히 보여,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황녀와의 침실까지 국사처럼 셈하는 입들. 제 몸이 패처럼 테이블 위를 오가는 감각에, 목 끝까지 채운 칼라 안쪽이 갑갑하게 죄어 왔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황녀와 차 마실 시간을 정해두지요.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비워 두십시오. 황녀의 소문을 누를 방법은 대공의 관심뿐이니까요.”

황후는 마지막 말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황녀가 투기할 마음은 아닐 테지만… 결혼 전에 미움을 받는 건 걱정입니다. 그러니, 어여쁘게 대해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프레데리크는 황후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레오노라 클레브 백작 영애.

황녀가 시녀로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말하고 있었다.

“오해 살 일은 없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는 황후를 만날 일이 없기를 바랐다. 프레데리크는 묵직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황후의 시선을 등졌다.

응접실을 나서던 그는 문턱을 넘자마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등 뒤로, 황후의 느릿한 미소가 여전히 따라붙는 듯 오래도록 어깨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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