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김우성의 진술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됐다. 전날 왕궁은 그에게 밤새 기억을 짜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오래된 기록을 빼내고 완성된 문서를 지정된 서류함에 넣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돈을 받은 시기와 실제 문서 이동도 일부 맞아떨어졌다. 여기서 조급해지면 그가 정말 기억하는 것과 조사관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이 뒤섞일 수 있었다. 그래서 하룻밤을 쉬게 한 뒤, 이번에는 ‘누가 시켰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일이 전달되었느냐’부터 차근차근 되짚었다.김우성은 처음 돈을 준 사람과 자신을 협박한 사람이 달랐다고 했다. 첫 번째 남자는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 서른 중반쯤으로 보였고 특별한 인상착의가 없었으며, 오래된 종이를 몇 장 가져다주면 품삯을 주겠다는 말만 했다. 두 번째 사람은 세 번째 일이 끝난 뒤 나타났다. 김우성이 자신이 넣은 문서가 실제 관청 명령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그만두려 했을 때였다.“그 사람이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었느냐?” 조사관이 묻자 김우성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종이를 빼낸 날부터 적어놨다고 했습니다. 날짜하고 장소까지 다 말했습니다. 제가 아니라 해도 이미 증인이 있다고 했고요.”“증인을 보여줬나?”“아닙니다.”“그럼 실제로 증인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거군.”김우성은 잠시 멈췄다가 “예.”라고 대답했다. 전날 같았으면 ‘분명 있었습니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협박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직접 본 것과 상대가 말한 것을 구분해서 진술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그 사람은 네게 무엇을 시켰지?”“종이를 넣으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꺼내라고 했고요.”“내용은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지.”“예.”“그런데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는 어떻게 알았나?”“그 사람이 그림을 그려줬습니다.”조사관의 붓이 잠시 멈췄다.“무슨 그림?”“창고 안쪽을요.”“지도?”“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문으로 들어가면 어느 쪽으로 가고, 몇 번째 문서함인지
다섯 사람의 이름 옆에 근무표와 열쇠 인수 기록, 휴가 날짜와 문서함 개폐 기록을 붙이는 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처음에는 적어도 한 사람쯤 모든 조건에 걸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첫 번째 사람은 문제의 보고서가 접수된 날 창고에 있었으나 다음 날 번호가 재사용될 때는 휴무였고, 두 번째 사람은 폐기 문서를 분류할 권한은 있었지만 별고 열쇠를 받은 적이 없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역시 한두 단계에는 접근할 수 있었으나 전체 흐름을 혼자 만들 수 없었다. 마지막 사람은 문서 번호를 정리할 권한까지 있었지만, 임석주의 보수 불가 보고서가 사라진 날에는 왕실 밖에서 다른 관청의 감사를 받고 있었다.도겸은 다섯 장의 근무표를 내려놓으며 미간을 문질렀다. “그럼 다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는 건 아니네요. 적어도 기록대로라면요.”“기록대로라면 그렇다.” 윤정헌은 바로 덧붙였다. “그러니 기록도 확인해야 한다. 근무표가 거짓일 가능성까지 한꺼번에 열어두면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니, 우선 독립된 기록부터 맞춰.”왕실 출입 기록과 식사 지급표, 다른 관리들의 업무 일지까지 대조했다. 다섯 사람의 동선은 대체로 맞았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기록을 전부 조작해 자신의 부재를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서로 다른 부서의 기록이 지나치게 많이 일치했다. 그렇다고 다섯 사람이 공모했다고 볼 증거도 없었다. 오히려 각자가 자기 권한 안에서 평범한 일을 했고, 그 사이사이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지시와 서류가 들어간 흔적이 더 선명했다.도겸은 다시 처음부터 흐름을 적었다. 폐기 예정 문서를 수레에서 빼오라는 지시, 동쪽 별고에 임시 보관하라는 처리, 보수실로 넘기라는 명령, 훼손 보고서를 상급자 검토함으로 보내는 절차, 그 보고서가 사라진 뒤 빈 접수 번호를 다른 문서에 사용하는 과정. 각 단계의 담당자는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모두 자기 앞에 놓인 종이가 정당한 지시라고 믿었다.“한 사람이 다 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도겸이 낮게 말했다.
다섯 장의 문서 아래에 같은 오래된 틀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왕궁은 곧바로 송환 문서의 작성자를 찾지 않았다. 수십 년 전 서식과 최근 문서의 여백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옛 기록을 베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관청 서식은 오래 살아남았고, 한 번 만들어진 형식이 다른 부서로 옮겨가며 수십 년 동안 변형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윤정헌은 서이경에게 가장 먼저 최근 문서가 아니라 그 오래된 송환 서식 자체의 계보를 확인하게 했다. 언제 처음 사용되었고, 어느 관청에서 쓰였으며, 이후 어떤 서식으로 바뀌었는지 알면 ‘같은 틀’이라는 사실이 특별한지부터 판단할 수 있었다.결과는 반나절 만에 나왔다. 문제의 송환 서식은 외지인이나 표류민을 원래 거처로 돌려보낼 때 사용하던 일반 문서가 아니었다. 서쪽 수로 일대에서 임시로 사용된 보조 양식에 가까웠고, 공식 명칭조차 따로 없었다. 현지에서 보호 중인 사람을 다른 관청이나 가족에게 인계할 때 필요한 사항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였다. 남아 있는 사본도 많지 않았고,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모두 폐도진과 서쪽 나루 주변에서 작성된 것이었다.도겸은 서이경이 정리한 표를 읽다가 물었다. “그럼 최근 사람이 우연히 같은 여백을 썼을 가능성은 조금 낮아진 겁니까?”“조금은요. 하지만 아직 그것만으로 일부러 베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서이경은 오래된 문서와 최근 문서를 나란히 놓고 손끝으로 빈칸을 짚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있습니다. 이 서식은 사람이 이동하는 걸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름이나 특징을 적는 칸, 현재 머무는 곳, 보내는 곳, 인계하는 사람, 도착 뒤 확인할 사람까지 순서가 정해져 있어요. 그런데 최근 다섯 문서는 그 자리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항목만 물품에 맞게 바꿨습니다.”도겸이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제야 구조가 보였다. 오래된 문서에서 ‘보호 중인 사람의 특징’을 적던 자리는 최근 문서에서 석재의 재질과 크기를 적는 칸이 되었고, ‘현재 머무는 곳’은 보
죽은 관리의 이름이 적힌 인계서는 새벽까지 왕궁 조사실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누구도 그 문서를 곧바로 치우거나 무효라고 붉은 줄을 긋지 않았다. 서부 제방 제삼 보수창은 삼 년 전에 폐쇄되었고, 물품을 받았다고 적힌 관리 박원길은 열두 해 전에 죽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더 볼 것도 없는 가짜 문서였지만, 윤정헌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 두라고 했다. 누군가가 실수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쓴 것인지, 오래된 서식을 베끼다가 확인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책임질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돌의 기록을 보내려 한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도겸은 밤새 세 장의 문서를 시간순으로 늘어놓았다. 돌아터에서 서부 폐기 잔석 제칠호, 왕실 내고에서 수로 공사용 기초석, 동쪽 별고를 거쳐 다시 서쪽으로 향하는 구관 보수용 석재. 실제 흰 돌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장부 속 물건은 이름과 관할을 바꾸며 세 번이나 이동했다. 마지막에는 폐쇄된 창고와 죽은 관리에게 넘겨질 예정이었다. 도겸은 한동안 그 흐름을 바라보다가 문득 빈 종이를 끌어당겨 반대로 적기 시작했다.“뭘 하느냐?” 윤정헌이 묻자 도겸은 종이를 돌려 보여주었다. “없애는 과정을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돌아터의 돌을 제칠호로 만들고, 제칠호를 왕실 공사용 석재로 만들고, 그걸 다시 죽은 사람이 받는 물건으로 만들었다면, 저희가 지금 해야 할 건 범인을 찾기 전에 이 세 이름이 같은 실물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는 걸 공식 기록에 남기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마지막 장부가 완성돼도 돌아터의 돌이 장부 밖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윤정헌의 눈이 아들의 종이에 오래 머물렀다. 도겸이 적은 것은 새로운 이름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름을 하나로 합치지 않는 방법이었다. ‘서부 폐기 잔석 제칠호로 등록된 물품은 돌아터 수변의 백색 소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심되나 실물 동일성 최종 확인 전.’ 그 아래에는 ‘왕실 수로 공사용 기초석 일점 및 이후 파생된 이관 기록은 동일 물품을 대상으로 작성
왕실 내고의 당직 장부에 적힌 「왕실 수로 공사용 기초석 일점 — 수령 완료」라는 문장은 짧았다. 너무 짧아서, 그 한 줄만 떼어놓고 보면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어느 관청에서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적힐 법한 물품 인수 기록이었고, 담당자의 수결도 있었으며 시간까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각 진짜 흰 돌은 서쪽 나루의 물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무진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고, 한연화 역시 돌이 움직이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수로청에서 보낸 수레 세 대도 빈 채로 돌아갔다. 그러니 왕실 내고가 받았다는 것은 돌이 아니라, 돌이 도착했다는 기록이었다.도겸은 당직 장부와 돌아터의 현장 보고서를 한참 번갈아 보다가 손가락으로 두 문서의 시각을 짚었다. “내고에서는 술시 초에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돌아터에서 수레가 출발한 건 유시가 지나서였고요. 실제로 돌을 실었다면 이 시간에 도성까지 오는 건 불가능합니다.”윤정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바로 ‘위조’라고 적지 않았다. 먼저 내고의 당직 관리가 무엇을 보고 수령 완료를 기록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물건을 직접 본 것인지, 인수증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상급자의 지시만으로 장부를 먼저 작성한 것인지에 따라 책임도 달라질 수 있었다.당직 관리 최문식은 불려오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도망치지도 않았고 기록을 숨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적은 장부를 보자 곧바로 인정했다. “제가 썼습니다. 하지만 물건이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누구에게?”“저녁 교대 직전에 인수표가 먼저 왔습니다. 수레는 뒤따라온다고 했습니다.”“인수표를 가져온 사람은?”“내고 서리였습니다.”“이름은?”최문식이 말한 이름은 실제로 내고에서 일하는 서리의 것이었다. 그러나 확인해보니 그 서리는 그날 병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곧바로 누군가 그를 사칭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최문식은 전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물품이 몰리는 시간에 서류를 건네받았고, 익숙한 서식과 인장이 찍혀 있어 이름만
네모 안에 물결 세 개가 그려진 표식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관상감의 오래된 수로도에서도 비슷한 모양이 발견되었고, 지방 나루의 물품 장부에서도 물길이나 나루터를 간단히 표시할 때 네모 안에 물결을 그려 넣은 사례가 몇 차례 확인됐다. 모양만 같다는 이유로 오래된 원문과 최근 제지소의 수레를 하나의 장소로 연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윤정헌은 그 사실을 확인하자 오히려 조사 범위를 더 넓혔다. ‘같은 그림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와 같은 지역에서 그 그림이 무엇을 뜻했는지를 찾아야 했다.관상감과 수로청, 형조와 호조에서 오래된 지도를 가져왔고, 서쪽 물길과 폐도진이 표시된 자료만 따로 분류했다. 도겸은 이번에는 그림을 발견할 때마다 바로 표시하지 않고 옆에 쓰인 지명과 용도부터 적었다. 어떤 것은 단순히 나루를 뜻했고, 어떤 것은 물길을 관리하는 창고였으며, 또 어떤 것은 수문이었다. 그러던 중 폐도진이 아직 폐쇄되기 전 작성된 지도 한 장에서 같은 표식이 발견됐다. 네모 안에 물결 세 개. 그 옆에는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서귀진(西歸津).도겸은 이름을 읽고도 바로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다. 먼저 같은 지명이 다른 지도에도 있는지 찾았다. 두 번째 지도에는 없었다. 세 번째에도 없었다. 네 번째, 폐도진보다 십오 년가량 오래된 수운도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서귀나루라고 적혀 있었다. 위치는 현재 돌아터보다 남쪽으로 반나절 정도 떨어진 물길이었다.그제야 도겸이 자료 두 장을 들고 윤정헌에게 갔다.“같은 표식이 같은 지역의 독립된 지도 두 장에서 확인됐습니다. 이름은 서귀진과 서귀나루로 조금 다르고, 위치는 거의 같습니다. 다만 이곳이 이명환이 본 원문 속 장소라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윤정헌은 아들의 설명을 들은 뒤 지도를 살폈다. “지금은?”“없습니다. 적어도 현재 지도에는요.”“언제 사라졌지?”“그걸 찾고 있습니다.”도겸은 맞은편에 앉으며 오래된 지도들을 다시 펼쳤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급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