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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요... 너무 아파...요...."
그녀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떴을때, 가장 먼저 들린 것은 가냘픈 아이의 목소리였다.
비현실적으로 하얀 천장조명에 시야가 번졌고 고막에는 날카로운 이명이 울려퍼졌다. 이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소하 그녀는 자신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서늘한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일곱살쯤 되었을까?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한 안색의 소년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너.. 누구니...?"
소하의 물음에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섬뜩한 광경이었다.
소년의 머리통 절반은 기괴하게 함몰되어 있었고, 그 틈으로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버린채 탁한 유리구슬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공포에 질려 그녀는 굳어버린 찰나, 옆 침대 너머에서 한 여자의 처절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한성아...! 아가...우리아가...! 한성아 눈떠봐...!!"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무미건조하게 시계를 확인하며 사망선고를 내렸다.
"사망 시간은 20시 10분.. 영안실로 옮기세요"
하얀 시트가 머리끝까지 덮인 작은 몸뚱이. 그 곁에서 짐승처럼 오열하는 여자.
그리고 여전히 소하의 소매를 꽉 움켜쥔 채 죽어있는 자신의 육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소년.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괴기스러운 장면에 그녀는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그녀의 삶은 평탄하다 못해 지루할 만큼 고요했다.
열일곱살에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은 비극을 겪긴 했지만, 부모님이 남겨주신 막대한 유산과 보험금은 그녀의 삶은 물질적인 풍요속에 가두었다. 강남 모처에 반듯한 카페 두 곳은 운영하며 남 부러울것 없는 일상을 보냈지만, 그녀의 마음 한국석은 늘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제발 신이시어, 제 인생좀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어주세요! 네?!"
강남 사거리를 달리며 그녀는 진담과 농담이 섞인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를 신께서 들어주신걸까? 반대편 차선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한 거대한 쇳덩이가 그녀의 차를 들이받았다. 180도도 모잘라 540도를 빙글빙글 돌아 박살 난 차안에서 살아남은 대가는 혹독했다. 신은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그녀의 기도를 들어준것 같았다.그날 이후 그녀의 세계는 산 자들의 영역이 아닌 죽은 자들의 놀이터로 변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를 기다린것은 고요한 안식이 아니었다.
밥을 먹을 먹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때도 '그들'이 보였다. 목이 꺾인채 거실 천장을 기어 다니는 여자, 눈알이 없는 상태로 여주의 밥그릇 속 쌀알을 세고 있는 노인.. 게다가 몇달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뽀미가 거실 한복판에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을때 그녀는 확신했다. 자신은 미친게 아니라 정말로 영혼을 마주하게 되었다는것을.신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인생에 예고도 없이 영안이 트여져 버렸다는것을.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아. 제발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줘.."
공포에 질려 일주일째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여주의 눈에 기묘한 문구 하나가 들어왔다.
[귀신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모든 것을 해결해 드립니다! - 꽃미남 흥신소 이도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주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서 뿜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이 그녀의 떨리는 손등을 비췄다. 이것이 다시 평화를 되찾아줄 구명줄인지, 아니면 더 깊은 심연으로 이끄는 덫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주의 등 뒤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고 있었으니까.
[……누구랑, 통화해?]
귓가를 파고드는 서늘한 목소리에 여주는 숨을 들이켜며 전화를 걸었다. 이제 그녀의 인생은, 결코 예전처럼 지루해질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하며.
갑작스러운 백호의 등장에 담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일그러졌다.제아무리 영험한 능력을 갖추고 수많은 귀물을 부리는 담이라 할지라도 이 깊은 산의 절대적인 주인인 백호를 그의 영역에서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그때였다. 거대한 신수의 형상을 하고 있던 백호가 담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짓는 듯하더니 커다란 앞발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스산한 겨울바람과 함께 눈을 멀게 할 만큼 진한 백색의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그리고 찰나의 순간 담의 공격을 받아 땅바닥에 험하게 널브러져 있던 도훈과 그 앞에서 처연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소하가 백호와 함께 연기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담의 검은 단검이 허공을 가른 자리에 남은 것은 차가운 정적뿐이었다.소하의 눈에는 그 모든 상황이 찰나에 일어난 환상 같았다. 그저 두려움에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하지만 정신을 차린 순간, 소하의 몸은 달빛이 부서져 내리던 서늘한 겨울 숲속이 아니었다.머리를 들어 올리자 달빛 대신 은은한 한지 불빛이 비치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기왓장과 서까래가 촘촘히 쌓여 있는 낯선 기와집 안이었다.현실 세계가 아닌 것 같은 고요하고도 영험한 분위기. 온 사방에서 기분 좋은 흙냄새와 마른나무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소하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눈만 그저 껌뻑껌뻑 지켜보았다.어느새 거대한 백호의 모습에서 아까 전 바위 위에서 익살스럽게 눈웃음을 짓던 앳된 소년의 몸으로 돌아온 백호가 눈앞에 서 있었다."어...... 여긴 어디.........."소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소년의 모습을 한 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저벅저벅 나무마루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백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던 소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휘휘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마당 한쪽 구석,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도훈의 모습이 보였다. 소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도훈에게 다가가려 발을 내딛던 바로 그 찰나, 소하의 머릿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이 해골의 손가락처럼 뻗어 있는 깊은 산 속.소하의 등 뒤로 얼음장같이 서늘한 겨울바람이 휘몰아쳤다.바람은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소하와 그녀를 등 뒤에 숨긴 채 살벌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도훈, 그리고 그들을 비웃듯 마주 서 있는 담의 사이를 날카롭게 가르고 지나갔다.무거운 정적이 숲을 짓눌렀다. 서늘한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피가 흥건히 묻은 검은 단검을 든 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담의 안광 때문일까.소하는 자신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부르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담이 쥔 단검에서 뚝, 뚝 하며 붉은 선혈이 흙바닥으로 떨어졌다.도훈은 그 피를 보는 순간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현빈의 피다.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홀로 남았던 그 바보 같은 도깨비의 피였다.“설마…… 그 피…….”도훈의 거친 숨소리가 공명하듯 숲을 맴돌았다. 소하 역시 담이 저지르려 했던 일을 예감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까 전,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도깨비의 모습으로 변해 자신들에게 어서 도망가라 소리치던 현빈의 마지막 모습이 잔인한 잔상처럼 눈앞을 가렸다.[ 이도훈 삐삐 데리고 빨리 가-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야해 ][ 김현빈 너 혼자 여기서 남겠다는 거야? ][ 빨리 가라고!!! 시간이 없어! ]소하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현빈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아닐 거라고 애써 부정하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담은 그런 소하의 기대를 비웃듯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손등으로 스윽 닦아냈다.그리고는 냉소 가득한 목소리로 짧게 내뱉었다.“도깨비....”그 한마디에 소하의 눈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주 흘러내렸다.도훈의 표정 또한 짐승처럼 일그러졌다. 현빈이 죽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이 괴물 같은 남자에게 처참히 당했다는 증거였다.“바보.......바보 도깨비......”“곰도......”건조하고 차가운 숲의 공기를 ‘스읍’ 하고 들이마신 담이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터벅... 터벅....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소하를 당장 어디론가 피신시켜야 한다는 중원의 성화에 소하와 현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하지만 도훈만은 달랐다.고서인 '선녀집'에 새겨진 그 기이한 기록들이 진실이라면 지금 당장 소하를 지켜줄 강력한 힘을 가진 신령 백호가 있는 산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도훈은 멍하게 서 있는 소하의 손목을 질질 끌다시피 하여 차에 태우고는 조수석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뭐? 선녀? 내가..............?"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소하는 황당하고도 허탈한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아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소하를 따라 뒷좌석에 급히 올라탄 현빈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었지만 중원과 도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님을 직감했다.현빈은 앞 좌석에서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중얼거리는 소하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운전석에 올라탄 도훈에게 물었다."이도훈..... 아까 진짜 책에 그렇게 써 있었어? 그 땡중이 한 말이 다 사실인거야?"".......어 아마도.... 아니- 틀림없어...."도훈이 세심하게 소하의 안전벨트를 채워주었다.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짐짓 침착하게 엑셀을 밟았다.차가 비명을 지르며 도로 위로 미끄러져 나갔다. 한참 동안 침묵만이 감도는 차 안에는 오직 불안한 소하가 엄지손톱을 질질 깨무는 서글픈 소리만 울려 퍼졌다."옛날 아주 먼 옛날에......... 옥제,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옥황상제에게 귀하디귀한 딸이 하나 있었대...."긴 침묵을 깬 것은 도훈의 낮은 목소리였다. 손톱을 깨물던 소하도, 창밖을 보던 현빈도 숨을 죽이고 도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도훈은 앞만 주시한 채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잠시 인간 세계에 내려온 옥제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 옥제가 금이야 옥이야 아꼈던 옥선녀"소하가 빨리 다음 이야기를 해보라는 듯 재촉하는 눈빛으로 도훈을 바라보았다.도훈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다시 입을 뗐다."
(비밀의 서막 챕터와 이어집니다.)[ 속보입니다. ST그룹 안성민 회장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안 씨는 안성민 회장의 아들로 확인되었으며....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재민이 수많은 기자에게 둘러싸인 채 살인 용의자로 검찰청에 들어가는 모습이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흥신소 거실에 모여 있던 현빈과 도훈, 그리고 소하는 입을 떡 벌린 채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전히 TV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에 시선을 고정한 소하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설마..............저거 진짜예요?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싸가지 안재민 씨 맞는거에요?"".............아무리 봐도 그 안재민이 맞는 것 같은데.,,,"현빈이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훈은 기가 찬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뱉었다."아니 이 자식은 집에 간다더니 함흥차사여서 어디서 오도가도 못하나 했더니만 지금 뉴스에 살인 용의자로 나와서 안부를 전하는 거야?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그나저나 살인 용의자라니요.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니 아무리 안재민 씨가 싸가지 밥 말아 먹긴 했어도....."소하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때 현빈과 도훈이 동시에 단호하게 입을 뗐다."안재민이 그럴 놈은 아니지""절대 아니지. 그 자식은 자기 손에 피 묻히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놈이야"멤버들의 신뢰 섞인 말이 오가는 그때였다.갑자기 한 손에 낡고 헤진 고서를 든 중원이 방문을 박차고 튀어 나왔다. 그는 뉴스 속 재민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소하의 손목목을 낚아채듯 휘어잡았다.중원의 눈등자에는 이전에 본 적 없는 광기 어린 흥분이 서려 있었다."너였어? 그 나머지 반쪽이 정녕 너였던거야?!""네? 아.........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이거 좀 놓고 말씀하세요....."소하가 당황하여 고개를 갸우뚱하며 팔을 빼려 했으나 중원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듯 손에 든 고서를 소하의 눈앞에서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그의 목소리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가쁘게
“담이 지금 그곳으로 갔어연목하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 옥선녀의 쪼개진 나머지 반쪽 영혼을 가진 강소하가 있는 곳으로...”구미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재민의 두 눈이 잔뜩 커졌다.그는 몸을 벌떡 일으켜 위협적으로 구미호에게 다가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죽은 목하의 이름과 소하의 이름이 왜 함께 나오는 것인지그리고 그들이 쌍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대체 무엇인지. 재민은 묘하게 뒤틀린 표정으로 물었다."목하가 강소하랑.......... 쌍둥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재민의 격앙된 반응에도 구미호는 ‘흐응’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그녀는 앞으로 기울였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뉘고는 재민을 비웃듯 앞에 놓인 펜을 손가락으로 데굴데굴 굴렸다.입가에 머금은 조소는 마치 어리석은 인간을 농락하는 포식자의 여유와 같았다."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말해!"재민은 당장이라도 구미호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수갑에 묶인 두 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취조실 안은 그의 고함 소리로 윙윙 울려 퍼졌다. 구미호는 귀찮은 듯 귀를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성질을 냈다."소리 좀 죽여. 그런다고 죽은 연목하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그 더러운 입에 목하 이름 담지 마! 죽여버릴 거야!"오열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재민이 구미호에게 달려들던 그때였다.굳게 닫혀 있던 취조실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훈이었다.그는 재민보다 빠르게 구미호에게 다가서더니 품에서 꺼낸 부적으로 감싼 예리한 칼날을 구미호의 목줄기에 들이밀었다."허- 어이없네?"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구미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구미호.....""박지훈- 너 어떻게 여기를...."지훈의 등장에 재민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바르르 떨리는 등을 바라보았다.지훈의 등 뒤로는 억누를 수 없는 살기와 분노가 진동하고 있었다. 지훈의 뺨을 타고 뚝뚝
“천계에서부터 이어진 자네를 포함한 여섯 명의 질긴 인연.........”스님의 나직하고도 깊은 목소리가 법당 안의 정막을 깨뜨렸다.잠시 몽롱하게 어두운 과거의 잿더미 속에 빠져들었던 지훈의 정신이 그 목소리에 이끌려 현재로 끌어 올려졌다.지훈은 방금 본 환영이 단순한 꿈이 아님을 직감하며 의문이 가득 서린 눈으로 살짝 고개를 비틀었다.“스님 말처럼 모든 게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면.... 옥선녀, 그리고 천계.......그 모든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운명을 만든 거죠?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겁니까?”격양된 지훈의 목소리가 법당 천장에 매달린 연등을 가늘게 떨게 했다.하지만 스님은 요동치는 지훈의 감정과는 대조적으로, 호수처럼 고요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이제 자네들도 기억해야 할 때가 되었지.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는 그 지독한 전쟁의 끝이 다시 시작될 터이니....”스님은 옆에 놓여 있던 다섯 개의 작은 단지 중 하나를 천천히 탁자 중앙으로 옮겼다.단지 표면에는 해묵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이게 뭐죠? 이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겁니까?”“이 안에는 200년전 자네들의 기억을 강제로 봉인해 놓은 영혼의 구슬이 담겨 있네..”지훈은 단지들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문득 위질감을 느꼈다.“.......기억이라고요? 헌데, 우리 인연이 여섯이라 하셨으면서 왜 단지는 다섯 개뿐인 거죠?”“여섯 중 한 명의 기억이 이미 돌아왔기 때문이라네. 주인에게 돌아간 기억의 구슬은 저절로 깨져 사라지는 법이지”그 순간 지훈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최근 들어 부쩍 이상한 행동을 보이던 사람“.........설마 스님......... 그 한 명이라는 ......... 이정혁입니까?” [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기억이 나게 해주지. ]지훈은 정혁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를 떠올렸다.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