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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4화

Author: 경옥
태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제를 바라보았다. 충격으로 크게 뜨인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너는 이 어미의 아들이다. 헌데 어찌 외인의 편을 들 수 있단 말이냐...”

황제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오래 참아 온 피로와 분노가 서늘한 눈빛 사이로 배어 나왔다.

“짐은 모후의 아들이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입니다. 또한 서준이의 매형이기도 합니다.”

황제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짐은 모후의 손에 들린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이번만큼은 짐이 모후를 위해 이 일을 덮겠습니다. 모든 죄는 봉녕군주가 저지른 것으로 매듭지을 테니, 모후께서도 부디 대국을 헤아리십시오.”

말을 마친 황제는 더는 태후를 바라보지 않았다. 곁을 지키던 내관 총관에게 태후를 모시고 나가라는 명을 내릴 뿐이었다.

태후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전각을 나섰다.

문밖으로 나오자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밝은 빛이 두 눈을 날카롭게 찌르는 듯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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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038화

    그제야 서신이 왔다는 사실을 떠올린 심씨 노부인은 품에 간직하고 있던 서신을 계연수의 손에 쥐여 주었다.“정오 무렵에 도착했다.”계연수는 몇 차례 기침했다. 심씨 노부인과 황후는 몸을 일으키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계연수는 끝내 상체를 세워 편지를 펼쳤다.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서러움이 남아 있었다.태후는 자신과 아이를 죽이려 했는데, 황제는 그런 태후를 감싸고 용인했다. 계연수는 그 부당함과 억울함을 심서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그가 곁에 있었다면 마음에 쌓인 불평을 두서없이 늘어놓기만 해도 한결 편안해졌을 터였다.하지만 지금 심서준은 곁에 없었다. 계연수가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가 보내온 서신뿐이었다. 종이 위에 남은 그의 글씨를 따라가며 자신이 바라는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계연수는 편지 속에서 변경의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돌아가겠다는 심서준의 말을 발견했다.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되읽자 무겁게 내려앉았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계연수는 그제야 서신을 고이 접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이내 긴장이 풀린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계연수는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궁에 머물며 몸을 돌보았다.사흘에서 나흘가량 지나자 불안정했던 태기도 차츰 안정되었고 풍한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간혹 한두 번씩 가벼운 기침이 나오기는 했지만,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몸이 나아지자 계연수는 심씨 부저로 돌아가고 싶어졌다.황후는 궁에 머무는 동안 계연수를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가장 좋은 것으로 마련해 주었고, 수시로 상태를 살피며 곁을 지켰다.그래도 이곳은 계연수에게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아무리 극진한 대접을 받아도 낯선 궁전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마음 한편이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았다.게다가 요 며칠 태자비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계연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딘지 모르게 적의가 서려 있었다. 마치 계연수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도 빼앗은 듯한 눈빛이었다.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계연수도 곰곰이 생각한

  • 주문춘귀   제1037화

    임풍은 진가옥의 아이처럼 천진한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그러나 그 말에 담긴 뜻만큼은 누구보다 또렷하게 알아들었다.진가옥이 자신을 좋아해서 혼인을 입에 올린 것은 아니었다. 고된 혼인 생활과 아이를 낳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신이라면 그런 고통을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그 사실을 알면서도 임풍은 기꺼이 진가옥을 평생 지켜 주고 싶었다.그가 평생 마음에 품은 여인은 오직 진가옥 하나뿐이었다.하지만 진가옥이 순간적인 마음으로 꺼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혼인을 말하지만, 훗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뒤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두려웠다.임풍은 끝내 청혼이나 다름없는 그 말에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셋째 아가씨의 일생이 걸린 혼사입니다. 충동적으로 정해서는 안 됩니다.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집안 어른들과도 의논하셔야 합니다.”진가옥은 임풍이 기뻐하며 단숨에 좋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임풍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쯤은 진가옥도 느끼고 있었다. 바보처럼 우직하게, 오직 자신만 바라보며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물론 자신도 임풍을 좋아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그러나 임풍 없이는 안 될 때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진가옥의 곁에는 잘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끝까지 받아 주고 응석을 부려도 한결같이 감싸 주는 사람은 임풍뿐이었다.그런데도 임풍은 자신의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진가옥은 그가 제게 주어진 복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상한 그녀는 콧방귀를 가볍게 뀌고는 더 이상 임풍을 상대하지 않았다.기름종이 꾸러미를 든 채 홱 몸을 돌려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임풍은 넋을 잃은 듯 멀어지는 진가옥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손은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손바닥 아래에서 심장이 뜨겁고 힘차게 뛰고 있었다.조금 전 진가옥이 자신에게 시집가겠다고 한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정하려 해도 가슴은 말을 듣지

  • 주문춘귀   제1036화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진가옥은 손에 든 기름종이 꾸러미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만약 제가 혼인하더라도 계속 제 곁에 있어 줄 겁니까? 지금처럼 저한테 잘해 줄 겁니까?”임풍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그는 흑백이 선명한 진가옥의 맑은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가옥은 혼인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했다.혼인하고 나면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다른 남자가 있게 된다.그녀의 부군이 그녀를 웃게 하고,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 줄 것이다. 그때부터는 그녀의 곁에 다른 남자가 머물러서는 안 된다.임풍이 지금처럼 시시때때로 진가옥을 찾아온다면, 그녀의 부군도 당연히 불쾌하게 여길 터였다.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세게 움켜쥔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어려워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임풍은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셋째 아가씨께서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언제든 곁으로 가겠습니다. 다만 그때가 되면 제가 먼저 아가씨를 찾아뵙지는 못할 겁니다.”진가옥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요?”산들바람이 불어와 진가옥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살며시 흔들었다.임풍의 가슴속에는 차마 다 꺼내지 못할 말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하나였다.진가옥이 평생 아무 탈 없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진가옥은 천성이 선량했다. 그 순수한 선의야말로 무엇보다 귀하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빛이었다.어린 시절 진가옥이 늘 임풍을 찾아왔던 것도 그가 하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은 무엇이든 아낌없이 그에게 나누어 주었다.하지만 임풍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귀한 것이라고는 진심 하나밖에 없었다.그는 처음부터 진가옥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평탄하고 순조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자신이 평생 곁에서 지켜 줄 수 있기를 바랐

  • 주문춘귀   제1035화

    사실 계연수도 조금 전부터 이 문제를 말하려던 참이었다.진가옥이 마음에 품은 사람은 평남후부의 세자 최성군이었다. 그 마음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기에 진씨 가문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미 아는 이가 적지 않았다.진가옥이 혼인을 받아들이느냐도 문제였지만, 정말 같은 평남후부의 셋째 공자에게 시집가게 된다면 여러모로 난처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최성군은 그 사실을 알고 어떤 심정이 들겠는가.계연수는 대장공주에게 자신이 염려하는 바를 솔직히 전했다.“정말 그 혼사를 추진하실 생각이라면, 반드시 최씨 셋째 공자의 뜻부터 물어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옳지 않은 듯합니다.”진가옥은 더없이 옳은 말이라는 듯 옆에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대장공주는 계연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곰곰이 헤아려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네 말도 맞구나. 그럼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마침 그때 궁인이 들어와 봉녕군주가 사죄하러 왔다고 알렸다.계연수는 지금 봉녕군주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황후에게 굳이 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찾아와 사죄한다고 해서 과연 진심이겠는가.봉녕군주 때문에 자신과 심서준의 아이는 하마터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할 뻔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형식적인 사죄 몇 마디를 들어 줄 이유가 없었다.황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굳이 만날 필요는 없겠구나.”대장공주와 진가옥은 정오가 가까워질 때까지 머물다가 궁을 나섰다.궁문을 통과하던 진가옥은 멀리 문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얼굴까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익숙한 뒷모습만으로도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진가옥은 조모에게 먼저 마차에 올라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입술을 삐죽인 채 임풍에게 다가갔다.“여기서 뭘 하고 계세요?”임풍은 진가옥의 눈가에 남은 붉은 흔적부터 발견했다.본래도 흰 옥으로 빚은 듯 곱고 맑은 사람이었다. 그런 진가옥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으니 유난히 애처로워 보였다.늘 웃음이 떠나지 않던 임

  • 주문춘귀   제1034화

    태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제를 바라보았다. 충격으로 크게 뜨인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너는 이 어미의 아들이다. 헌데 어찌 외인의 편을 들 수 있단 말이냐...”황제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오래 참아 온 피로와 분노가 서늘한 눈빛 사이로 배어 나왔다.“짐은 모후의 아들이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입니다. 또한 서준이의 매형이기도 합니다.”황제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가라앉았다.“무엇보다 짐은 모후의 손에 들린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이번만큼은 짐이 모후를 위해 이 일을 덮겠습니다. 모든 죄는 봉녕군주가 저지른 것으로 매듭지을 테니, 모후께서도 부디 대국을 헤아리십시오.”말을 마친 황제는 더는 태후를 바라보지 않았다. 곁을 지키던 내관 총관에게 태후를 모시고 나가라는 명을 내릴 뿐이었다.태후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전각을 나섰다.문밖으로 나오자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밝은 빛이 두 눈을 날카롭게 찌르는 듯했지만, 그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심서준을 향한 증오였다.태후는 도무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자신은 지엄한 태후였다. 그런데 고작 좌도어사에 불과한 심서준이 감히 자신의 친정을 탄핵하고, 정씨 가문의 혈육마저 모조리 죽음으로 내몰았다.그런데도 계연수, 그 천한 계집은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살아남았다.분노와 원한이 피를 타고 온몸으로 번지자 손끝부터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태후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크게 휘청이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전각 안에서 붓을 들고 있던 황제는 태후가 쓰러졌다는 보고를 듣고도 손을 잠시 멈췄을 뿐이었다.붓끝에 맺힌 먹물이 종이 위로 짙게 번졌다.황제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태의를 부르라고 명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하던 일을 이어 갔다.한편 계연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봉녕군주가 황제에게 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온 진가옥이 당시의 상황을 눈앞에서 다시 펼쳐

  • 주문춘귀   제1033화

    봉녕군주는 모든 일이 태후의 지시였다고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조금 전 황제의 명을 전하러 왔던 내관이 이미 뜻을 분명히 내비쳤다. 태후를 배후로 지목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황제의 처지만 곤란해질 뿐이었다.대장공주는 여전히 서슬 퍼런 기세로 봉녕군주를 몰아붙였다.“어린 나이에 어찌 이토록 악독할 수 있느냐! 남의 자식을 해치려 들다니, 너는 어려서부터 대체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것이야? 네 아비가 너를 이따위로 가르쳤느냐!”봉녕군주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이미 밖에서는 시위들이 들어와 그녀를 끌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대장공주는 슬쩍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말 태후를 배후로 끌어낸다 해도 황제가 제 생모를 제대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대장공주는 함께 물러나겠다고 고했다.황제는 전각 안을 가득 채운 소란에 미간을 문지르며 손을 내저었다.그러나 대장공주가 미처 물러나기도 전에 태후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기세등등하게 들이닥쳤다.태후는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무릎 꿇은 봉녕군주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상석에 앉은 황제를 향해 말했다.“이 어미가 보증하마. 이번 일은 봉녕군주가 저지른 것이 아니다.”황제가 천천히 눈을 들어 태후를 바라보았다. 굳게 다문 입가에는 억누른 분노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다.황제는 이미 온 힘을 다해 태후의 체면을 지켜 주고 있었다. 그런데 태후는 그것도 모르고 이곳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황제는 서늘하고 무감한 시선을 황후에게 돌려 대장공주와 함께 먼저 물러나라는 뜻을 보였다.황후는 황제의 뜻을 알아차렸다. 지금은 자신들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될 때였다. 황후는 곧바로 대장공주와 함께 전각을 나섰다.이 정도면 충분했다.전각 안에 태후와 황제만 남고 나서야 황제가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모후께서는 그런 수법으로 대체 누구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태후의 안색이 미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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